• "더 개방적으로, 더 분권화로"
        2009년 02월 16일 09:4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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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시민운동과 풀뿌리지역운동에 주로 참여해 온 사람이다. 구 민주노동당과 현재의 두 진보정당(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당원이었던 적은 없었고, 앞으로도 지금 현재의 진보정당 당원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다.

       
      ▲ 필자

    그러나 구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지역 진보정당에서 요청하는 강의라면 마다않고 달려갔고, 지방자치 문제나 조례문제 등에 대해 자문도 해 왔다. 진보정당에 대해 나름대로의 기대를 가지고 있었기에 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진보정당이 잘 되기를 바라면서도, 내가 생각하는 ‘좋은 정당’의 모습과 현실의 진보정당의 모습은 차이가 많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부담스럽긴 하지만 평소 생각하던 것을 한 번 털어놓고자 한다. 잘 모르고 비판한다고 해도 좋다. 어차피 잘 모르는 사람의 비판을 들을 기회도 별로 없지 않은가?

    지금 필요한 정당의 모습은?

    내가 생각하기에, 현 단계 한국사회에서 필요한 진보정당의 모습은 ‘개방적이고 분권화된 대중정당’이라고 본다. 그리고 성취형의 정당이어야 한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진보정당의 당원들이 꿈꾸는 정치, 꿈꾸는 사회를 성취하는 것 아닌가?

    자기 조직 중심의 생각, 무언가를 선점하려는 생각은 ‘성취’를 어렵게 할 수 있다. 꼭 우리 정당을 통해서만 정치와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것도 오만이다. 지금의 정당운동, 시민사회운동의 현실을 볼 때에, 어느 누구도 그런 오만을 부릴 자격은 없다.

    그렇다면, 내가 바라는 ‘개방적이고 분권화된 대중정당’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설명해야겠다. 우선 ‘분권형’이라는 것은 조직의 무게중심이 아래에 있다는 의미이다. 의사결정권도 아래로 분산되어 있고, 중요한 의사결정은 아래로부터 모아지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조직이다.

    위로부터 내려오는 사업을 수행하는 것이 지역에서의 정당활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동안 진보정당들이 보여온 문제점들 중 상당수는 권력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들로 볼 수 있다. 중앙집권적이고 수직적인 정당은 중앙의 당권을 장악하기 위한 내부권력투쟁에 휘말리기도 쉽고, 사람들의 일상과 괴리되기도 쉽다. 건강한 리더십이 성장하기도 어렵다.

    건강한 리더십은 지역에서 일상활동을 통해 검증되고, 자신의 건강한 삶(성평등을 실천하고 겸손하고 삶과 인권, 생태에 대한 감수성을 유지하는 삶)을 통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리더십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당의 무게중심이 아래로 내려올 필요가 있다. 그것이 분권형 정당이다.

    겸손한 삶, 개방적인 당

    ‘개방’적이라는 것은 경직되고 폐쇄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이다. 정당은 대의정치에 참여하기 위한 조직이지만, 정당만이 대의정치를 독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진보정당은 당원들만의 협소한 조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특히 지역에서는 그렇다. 지역에는 다양한 시민운동단체, 생협, 풀뿌리조직 등이 존재한다. 그러한 조직들과 소통하고, 그러한 조직들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게 하지 못한다면 ‘풀뿌리 보수주의’가 팽배한 한국에서 정치를 바꾸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최소한 지방선거에서는 진보정당이 지역사회의 운동조직들과 경계를 허물고 연대하고, 지역사회의 비전에 대해 토론하고, 선거참여의 방식에 대해서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못하면 진보정당이 지방선거에 후보를 내 본들,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대안적 정치세력으로 인식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대중정당이라고 할 때에, 형식적으로 대중의 범위를 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진보정당이 지향하는 가치와 비전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고 연대할 수 있는 것이 대중정당 아닐까?

    진보신당 내에 ‘노동자 중심’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 누가 누구보다 정치적으로 더 우월한(올바른) 존재라고 누가 규정할 수 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현실에서는 ‘노동자 중심’이 ‘노동조합 중심(더구나 정규직 중심의)’으로 읽힐 가능성이 높다. 그런 식의 접근법으로는 정치에서 희망을 만들기 어렵다.

    또한 현실의 노동자는 지역에서 주민이다. 노동자로서의 정체성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이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다. ‘노동자 중심’이라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일상활동에서 중요한 것은 조직이 아니라 당원이다

    한편 진보정당이 지역에서 어떻게 활동하는 게 좋을 지가 고민일 것이다. 실제로 어떤 경우에는 ‘정당’이라는 이유로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이나 주민조직들이 진보정당과 거리를 두는 경우들도 있어 왔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섭섭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진보정당의 일상활동에서 중요한 것은 조직이 아니라 당원이다. 당원들이 받는 신뢰, 당원들이 가진 영향력만큼이 지역사회에서 진보정당의 신뢰, 진보정당의 영향력이 된다. 그런 점에서 진보정당의 당원들은 가능하면 1개 이상의 시민단체나 풀뿌리조직에 가입하고 지역활동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활동하다보면, 당원들은 자연스럽게 지역에 섞이고, 일상 활동을 통해 당원들이 얻은 신뢰가 진보정당에 대한 신뢰로 쌓일 것이다. 굳이 정당을 내세워서 활동한다고, 지역에서 진보정당의 기반이 확대되고 뿌리내리는 것은 아니다.

    정당조직은 당원들이 그렇게 풀뿌리에서 활동하도록 교육하고 적극 지원해야 한다. 이런 기반이 ‘분권형 대중정당‘으로서의 진보정당의 기반이 될 것이다.

    반대 프레임에서 벗어난 열린 대안이 필요

    진보정당, 특히 민주노동당을 비판하며 나간 진보신당이 우리 사회의 비전에 대해 토론하고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같다. 그런 것이 궁금해서 가끔 진보신당 게시판에 들어간 적도 있고 <레디앙>에 올라오는 글도 읽어 본다.

    사실 시민운동이든 진보정당이든 반대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것은 필요하다. 반대운동은 필요하지만, 기득권층은 반대운동에 대해 ‘반대를 위한 반대’ 또는 ‘반대만 하는’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다.

    지역에서도 여러 현안에 대한 반대운동을 벌여 왔고 실제로 반대운동이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반대운동이 반복될수록 그 운동 주체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오히려 축소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가능하면 반대운동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서 국가적 차원과 지역적 차원의 대안적 비전을 모색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비전을 모색할 때에 좀더 과정 중심으로 접근했으면 좋겠다. ‘–주의’를 선언하고, ‘너는 우이고 나는 좌이네’ 하고 말한다고 정체성이 분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끼리끼리 이야기하는 것에 불과하다.

    대중정당이라면 그 정체성도 대중으로부터 인식되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정이 중요하다. 앞으로 진보신당이 만들어갈 대안적 비전도 열린 비전이었으면 좋겠다. 지금 필요한 대안은 보완ㆍ수정의 가능성이 있는 대안이어야 한다.

    무조건 이래야만 한다고 하면, 갇힌 대안이고, 그런 대안이라면 대중에게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꼴밖에 안 된다. 누가 만들어 놓은 경직된 대안을 사람들에게 주입하겠다는 것은 낡은 생각이다. 이제는 아무도 그런 대안을 원하지 않는다. 대안이 대안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토론에 부쳐질 수 있어야 하고, 수정ㆍ보완될 가능성도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역에서부터 대안적 비전을 만들어가는 것도 필요하다. 지역에서의 비전은 종합적이고 구체적일 수 있다. 삶을 살아가는 지역이라는 공간 자체가 우리 삶의 모든 문제들이 녹아들어간 종합적인 공간이면서도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와 개발주의가 ‘삶의 질’과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면, 지역에서부터 ‘삶의 질’과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켜 나갈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무너진 민생을 살리고 지역에서부터 대안적 경제발전전략을 모색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또한 지역에서 무능한 진보정당이 전국적으로 유능하다고 인정받기는 어렵다. 그런데 진보정당이 지방자치에 활발하게 진출해 왔던 울산지역에서조차도 자체평가에서 ‘지역과 관련된 의제발굴에 실패’, ‘지방자치에 대한 상의 부족’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다. 그런 점에서 진보신당은 지역에서의 진보정당 활동에 대한 비판적 평가와 성찰을 해야 한다.

    2010년 지방선거에 대하여

    2010년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만약 우리 사회에서 신자유주의적 비전이 아닌 다른 대안적 비전을 현실화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흐름이 형성되기를 갈망한다면, 2010년이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개발주의과 결합되어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하고 있는 곳이 한국의 지역사회이다. 그리고 풀뿌리 보수 기득권이 판치는 지역사회에서부터 정치를 변화시켜내지 못한다면, 중앙정치의 변화도 요원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서 2010년 지방선거는 중요하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신자유주의적 비전이 아닌 다른 대안적 비전을 모색하는 단체와 개인들이 지역에서 연대하여 선거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비전으로 본다면, 신자유주의+개발주의에 대응하는 대안적 비전을 중심으로 연대해야 하고, 지역정치로 본다면 ‘반 기득권 연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런 연대 흐름에 진보정당들이 열린 태도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특히 2006년 지방선거 때처럼 진보정당들이 배타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어려워질 것이다. 2006년 지방선거 때에는 진보정당 후보와 시민운동 쪽 후보가 겹치거나 하는 경우들이 있었는데, 서로 대화가 잘 안되는 경우들을 보았다. 그래서는 곤란하다.

    ‘정치’란 누구든 자기의 그림을 그려보고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시민단체든 시민단체 활동가든 정치에 적극적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이 진보정당이 꿈꾸는 정치를 위해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기득권 토호가 판치는 지역정치를 변화시키기는 것이 중요한데, 진보정당이 자기 조직 중심주의에 빠져서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지금 진보정당이 정치를 자신들의 독점영역인양 생각하면서 지역사회 내에서의 폭넓은 연대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그것은 ‘작은 기득권’을 주장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런 태도는 풀뿌리에서부터 일어나야 하는 정치변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지역에서는 차이 없어

    한편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을 말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서로 같이 할 수 없을 만큼 불신이 쌓였고, 국가 차원의 비전에 대해 차이가 있다면 갈라서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또 무리하게 합당하는 것은 더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이 지역에서의 비전에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묻고 싶다. 내가 보기에 울산에서, 제주에서, 영ㆍ호남에서, 충청에서, 강원에서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이 지역의 비전을 가지고 심각한 입장차이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종북주의 이야기도 지역에서는 의미가 없다. 지역사회에서의 비전, 특히 신자유주의와 개발지상주의와는 다른 대안적 비전을 꿈꾼다는 점에서 같다면 지방선거에서는 같이 해야 한다. 그게 상식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진보신당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보다 더 적극적으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지역 시민사회, 민주노동당을 포함해서 대안적 비전을 꿈꾸는 폭넓은 연대를 형성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그것이 ‘진보의 재구성’을 외친 진보신당이 해야 할 역할이 아닐까? ‘진보의 재구성’이 몇몇 사람들이 문건으로 정리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면, 아래로부터 ‘대안을 꿈꾸는 연대’를 통해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결론부터 내리지 않는 지혜가 필요

    일을 하다보면, 두 가지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머릿속에 경로가 다 그려져야 움직이는 사람이 있고, 움직이면서 경로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개방적인 분권형 대중정당’이 하루아침에 현실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진보신당이 그런 길로 가려고 해도 한순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 당장에는 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경로가 다 그려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서 그릴 수 있는 만큼만 그려 보고, 그 길로 가면 되는 것이다.

    필자가 2010년 지방선거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2010년 이후에 대해 묻는다. 그에 대해서는 필자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필자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2010년은 우리 정치를 바꾸기 위한 초기단계일 것이라는 점이다.

    지방선거에서 지역별로 대안적 비전을 만들어 가고 주민들과 폭넓게 접촉하고 소통하며 연대를 형성하는 경험은 이후에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 있어서 좋은 자양분이 될 것이다. 그 자양분이 생겼을 때, 그 자양분을 어떻게 흡수하고 더 나아갈 것인가?는 그 이후에 그려가면 될 것이다.

    글을 써 놓고 보니, 역시 거칠고 부족한 점 투성이다. 이 글이 도움이 되는 이야기일지는 모르겠지만, 진보신당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진 한 사람의 이야기로 읽어줬으면 감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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