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제는 다시 '국가'다
        2009년 02월 16일 08:4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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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좌파들에게 한 가지 별로 안좋은 버릇이 있는데, 다름이 아니라 가끔가다 지배자들을(본의 아니게일 수도 있지만) 좀 지나치게 악마화시키는 것입니다.

       
      ▲ 필자

    예컨대 MB에 대한 ‘왼쪽’으로부터의 비판을 보면, 꼭 환경을 일부러 망치고 노동자들을 일부러 죽이고 온갖 악을 골라 행하는 ‘원흉’의 모습은 나타납니다. 말 그대로 ‘흉악하기 짝이 없는’, 그런 인물로 보이는 것이지요.

    물론 그의 도덕적인 모습을 보면 과연 그와 같은 말을 해오고 그와 같은 일을 해온 사람이 공공의 영역에서 정치를 해도 되는가, 라는 의문은 강하게 제기됩니다. 지난 번의 ‘마사지 걸’ 발언만 갖고 이야기해도 말씀이지요.

    여성을 이 정도로 비하하는 말을 노르웨이 정치인이 했다면 이미 공공 영역에서 사라진 지 오래 됐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MB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차원에서는 한국 지배 계급의 전체적 문제이기도 합니다.

    MB 개인의 문제? 한국 지배 계급 전체의 문제!

    부동산 사재기, 술을 먹으면서 ‘경험담’을 과시하기, 회사가 망해도 부자로 계속 잘 살기(이건 한국 자본가의 전형적 모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고)  이러한 의미에서는 지배계급의 ‘합의’ 하에서 집권한 대통령은 이 지배계급을 명실상부하게 ‘대표’하는 것입니다.

    환경과 노동에 대한 무제한적 무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자본주의는 환경을 죽이면서, 노동을 꽉 짜면서 자라난 것인데, MB는 이 ‘성장 경로’에 대한 높은 의존성을 보일 뿐입니다. 즉, 1970~80년대에 해온대로만 잘하면 다 헤쳐나가겠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이지요. 수출기업에 특혜를, 토건 기업에 주문과 자금을, 비판자에게 사이버모욕죄를, 그렇게만 잘하면 결국 ‘겨울’을 내고 ‘봄’을 맞이할 줄 아는 것이지요.

    MB뿐만 아니고 한국 지배계급의 대다수는 (주)대한민국이 그렇게 해서 여전히 주가를 올릴 줄 아나 봅니다. 사실, 이들의 반노동, 반환경 지향만큼이나 그 이상으로 이와 같은 ‘성장 경로’에 대한 반성 없는 의존성, ‘수출/토건 경제’의 미래성에 대한 맹신이야말로 가장 무섭습니다.

    그들이 ‘악인’이라서 문제가 아닙니다. 자본증식을 위해 매진하고 자본주의 국가에서 정사를 보는 이들 중에서는 ‘선인’은 별로 없어요. 그들에게 – 소련이 몰락했을 때의 이북의 김씨 부자와 마찬가지로 – 미래에 대한 예측과 비전이 없다는 게 진짜 문제입니다. 저는 바로 그래서 ‘다가오고 있는 파국에 대한 두려움’에 지금 쌓여 있는 것에요. 눈먼 이들이 ‘지도자’가 될 때만큼 무서울 때가 없어요.

    지금 세계를 보시지요. 부동산 버블과 함께 수출버블이 지금 터지고 있습니다. 1945년 이후로 쭉 성장만 해온 세계 무역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할 확률이 크고, 오히려 조금씩 줄이들 징후마저 보입니다. 수출 의존성이 강한 경제들은 지금 거의 다 비상한 – 한 세기에 한번씩 오는 – 위기를 맞고 있어요.

    그들 중에서는 우크라이나와 같은 비교적 약체들은 지금 경제난에다가 정치적 갈등까지 겹쳐 ‘유럽의 파키스탄’으로 불려지게 됐어요. 그리고 일본과 같은 최강의 경제 국가도 지난 12월달에 36% 정도의, 전례 없는 수출 급락과 9% 정도의 제조업 생산 급감 등과 같은 파격적 현상을 보였습니다.

    부동산버블 붕과에서 수출버블 붕괴로

    지난 1월에 수출이 32%나 떨어진 대한민국도 거의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인데, 그만큼 경제 구조의 유사성이 강합니다. 양국은 일면으로 구미와 신흥 시장으로의 완성품 (특히 자동차) 수출이 망하다시피 떨어지고, 또 일면으로 중국으로의 중간재와 기계류 수출은 30~40%폭으로 떨어져 ‘더블 쇼크’를 맞은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도 한국도 이 ‘더블 쇼크’를 이제 쉽게 벗어날 수 없을 거에요. 한편으로는 중국이 이제 수출주도 성장에서 내수 주도 성장으로 전환함에 따라 일, 한으로부터의 수입이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자동차와 선박, 가전제품에 대한 공급초과 현상은 세계적으로 너무나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출혈 경쟁을 하든지 과잉 생산을 청산하든지 둘 중의 하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무한한 수출 팽창에 의한 성장의 시대는 이제는 완전하게 막을 내렸습니다. 1945년 이후의 ‘기나긴 전후’가 끝난 것이지요.

    그리고 수출에 의한 4~5% 이상의 성장이란 이제 완전하게 불가능해졌으니 건설경기도 아울러 하락할 수밖에 없을 터인데, 그걸 부양한답시고 계속 각종 토목공사에 나랏돈을 푸는 것은 부작용이 아주 많은, 질나쁜 고식책일 걸요.

    1964년 이후의 한국 경제 발전 모델(수출 주도 + 토건 경제)을 완전히 교체해야 하는 시점이 왔는데, 그걸 ‘수출+토건’이 몸에 밴 지배자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 답답한 노릇이지요.

    그런데 앞으로 우리 발전의 가능성들을 보면 1964~2008년 시대와 한 가지 중대한 공통점은 있어요. 그 때만큼이나 그 이상 – 아마도 차라리 그 이상 – 으로 국가 주도적 발전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보수주의자들이 하려는대로 1년에 40~50만 명 단위로 퇴출당하는 자영업자 등이 비공식 부문으로 들어가 고생하는 걸 방치한 채 그들의 반발을 경찰 특공대로 짓밟아도 ‘국가’ (경찰 국가)가 주도적일 것이고, 진보신당이 원하는 대로 퇴출당하는 이들을 재교육시켜 노인 도움이, 간호원, 간호조무사, 보육사 등으로 ‘거듭나게’ 만들려고 해도 국가 (복지 국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입니다.

    "나는 구좌파"

    다시 철권 통치 시대로 가도 국가고, (주)대한민국을 모든 종업원들이 똑같이 소액 주주로 돼 있는 ‘우리 모두의 사회적 기업’, 즉 복지 사회로 재디자인해도 국가의 역할은 주도적일 것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는 저는 ‘다중’을 중시하는 자율주의적 분위기의 ‘신흥 좌파’들에게도 많은 걸 배우고 있지만, ‘국가 권력의 평화적 탈환’을 꿈꾸는 ‘구식 좌파’로 남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지금 다가오고 있는 경제 대란을 구할 주체는 은행을 사회화시키거나 매우 무거운 부유세를 부과할 만한 행정력을 가진 ‘국가’밖에 어차피 없을 것 같아서에요. 그리고 좌파가 ‘국가 탈환’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에는 우리의 미래는 거의 뻔합니다. 그 미래에 비해 지금의 MB시절은 거의 ‘왕성한 민주주의 정치 시대’로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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