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천봉쇄 속 도심 곳곳 게릴라 시위
        2009년 02월 15일 12: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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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참사 4차 추모대회가 1만여명(주최측 추산)의 시민이 모인 가운데, 경찰의 원천봉쇄를 피해 당초 장소를 옮겨 서울역에서 진행됐다. 대회 참석자들은 곳곳에 쳐져있는 경찰의 바리케이트를 뚫고 도심 곳곳에서 밤늦게까지 게릴라 시위를 벌였으며, 밤 11시가 넘어서 명동성당 입구에서 마무리 집회를 가졌다.

    일부 도로 점거도

    경찰은 행진하는 유족들 앞에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차량 바리케이트를 설치했다. 정부와 여당, 보수언론이 떠드는 소위 ‘도심 테러리스트’들을 봉쇄하기 위해서였다. 경찰은 단지 이를 위해 시위에 참가하지 않은 시민들까지 고함으로 위협하고 “시위대에 길을 내줄 수 없다”며 인도를 경찰버스와 병력을 이용해 막아섰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도심 테러리스트’들은 무임승차 한 번 안 하고, 지하철을 이용해 도심 곳곳에서 게릴라 시위를 이어갔다. 시위대는 이날 하루에만 충정로, 신촌, 이대 앞, 탑골공원, 명동,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종로 3가, 명동성당 등에서 시위를 이어갔으며 경찰의 완전 봉쇄 속에서도 신촌 인근에서 도로를 점거하기도 했다. 

       
      ▲서울역에서 행진을 시도하는 유족들과 시민들(사진=정상근 기자)

    12일 오후 4시부터 진행키로 한 ‘용산참사 4차 범국민 추모대회’는 애초 용산역 부근으로 계획되어 있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인해 갑자기 서울역으로 변경되었다. 갑작스런 장소 변경이었으나 많은 시민들이 서울역 광장을 가득 메웠다.

    갑작스런 장소 변경으로 일정이 다소 늦춰져 3시부터 하기로 했던 ‘비정규직-최저임금 노동자 생존권 쟁취를 위한 노동자 결의대회’는 4시 20분부터 시작돼, 청년-이주노동자-비정규직 등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노동법-비정규직법 개악에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될 각계 노동자들의 규탄발언으로 진행되었다.

    추모대회 슬프고 숙연한 분위기 속 진행

    뒤이어 유족들의 자리배치로 5시 20분 경 시작된 범국민 추모대회는 숙연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특히 이날 용산참사로 숨진 고 윤용현씨의 아들 윤현구군이 전날 졸업식 소회를 고인이 된 아버지를 향해 낭독할 때는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아빠. 어제 졸업식을 했어요. 친구들끼리 모여 밥이라도 먹으려 했지만 엄마가 생각나 바로 영안실로 왔어요. 저녁에 친구들이 저를 위해 파티를 열어줬는데 엄마는 울기만 해요. 오늘 같은 날 가족들끼리 맛있는 거 먹어야 하는데… 아직도 이별이 믿어지지가 않아요. 꿈속에서라도 제발 나타나주세요 그러면 꼭 껴안고 다시는 놔주지 않을 거야.”

       
      ▲한 유가족이 윤현구씨의 발언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사진=정상근 기자)

    윤군에 이어 노래패의 공연이 이어졌고 뒤이어 인태순 전철연 연사위원이 발언에 나섰다.

    그는 “2월 9일, 검찰은 얼토당토하지도 않은 수사결과를 발표했고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우리 5명의 동지들이 자살했다고 한다. 정말 기가 막히고 가슴이 찢어진다”며 “이제 하루하루 (용산참사의)진실이 밝혀지고 있는데 우리 5명의 동지들의 명예가 회복될 때 까지 함께해 달라”고 말했다.

    이어 언론노조 최상재 위원장도 단상에 올라 “그제 한 유족의 사연을 기사로 봤는데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만 났다”며 “오늘 이곳 서울이 지옥인데, 이 정권과 조중동은 지옥을 지옥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온갖 왜곡을 일삼고 있고 밥먹듯이 거짓말한 김석기를 정의로운 경찰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후 추모대회를 마친 집회참가자들은 6시 20분 경 서울역에서 행진을 시작했지만 경찰이 전경버스를 인도에까지 올리면서 철통 봉쇄하는 바람에 가두진출에 실패하면서 대열이 흩어졌다. 

    대회 참석자들은 지하철을 이용하거나 걸어서 충정로에 모였으나, 다시 경찰에 의해 가두시위가 봉쇄되자 신촌과 이대입구 등으로 흩어져서 가두시위를 벌였으며, 이후 종로3가로 다시 명동으로 이동했다. 촛불 집회의 확산을 두려워하는 이명박 정권의 경찰은 이날 철통 방어로 시민들의 집회와 행진을 막고 나섰다.

    이날 경찰과 시위대는 도심 곳곳에서 몇 번의 마찰을 빚었지만 큰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시위대는 명동에서 경찰과 대치 후 명동성당으로 이동했으며 이곳에서 28일 ’10만 추모대회’를 약속하고 밤 11시 경 정리집회를 가진 후 자진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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