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위원, ‘체육관 선거’ 안 된다
        2009년 02월 12일 11: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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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위원 간선제, 이거 중요한 문제입니다

    지난 연서를 비롯해 지금까지 진보신당(홈페이지 게시판 등)에서 주로 진행된 논의는 당 대의원 선출을 둘러싼 1인 다표제와 추첨제, 할당제 등이었지만, 지금 보니 사실 그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가 전국위원(중앙위원) 간선제인 듯합니다. 전국위원은 당 대의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직책이며, 그러하기에 잘못된 선거제도를 통해 뽑았을 경우의 해악도 훨씬 더 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알다시피 당 대의원이 당 대회 때만 잠깐 모여 당의 합당과 해산, 강령제정, 당헌 제/개정과 같은 결정만을 담당하는 것과는 달리, 전국위원은 상시적으로 운영되며 당의 굵직굵직한 의사결정에 거의 개입합니다.

    △당의 예산과 결산안을 심의/의결하고 △사무총장/정책위의장 등 주요 당직자들을 인준하며 △당규의 제정과 개정·해석 권한을 지니고 △‘주요 정책과 당 방침의 수립’도 합니다. △‘창당대회와 당대회에서 위임한 안건을 처리’한다는 권한도 있지요. 웬만한 건 다 한다는 이야깁니다.

    국가로 치면 입법부인 의회의 기능을 대부분 담당하면서도 집행부의 권한까지 일부 갖는 막강한 조직입니다. 이들은 당대표가 임명하는 사람들이 아니기에, 그의 통제를 받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이들을 어떻게 하면 당원이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인지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체육관 선거가 웬말입니까?

    그런데 이 중요한 직책을 당대회 대의원들의 간접 선거로 뽑는 쪽으로 굳어져가고 있다 합니다.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들은 여기에 단 한 표도 행사할 수 없다는 거죠. 솔직히 처음 들었을 때는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담이라더군요.

    다들 아시다시피 간선제의 문제점은 전국위원을 선출하는 데 있어 당원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당대회 대의원들이 자기 맘대로 뽑으면 그만이니까요.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죠. 우리는 대의원들이 당원들의 의사를 반영해 표를 던지게끔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 통일주체국민회. 1972년 12월 유신헌법에 의해 공포·조직된 헌법기관

    한국에서 간선제의 사례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아마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통일주체국민회의’일 겁니다.

    당시에도 국민들은 선거인단이 누구를 찍을 지에 대해 아무런 정보를 갖지 못한 채 그들을 선출했고, 이렇게 뽑힌 선거인단은 장충체육관에 모여 99.9%의 득표율로 전두환을 대통령좌에 앉혔죠. 박정희가 창조해낸 ‘유신의 추억’이 30년만에 무려 ‘진보정당’에서 부활하는 광경을 보는 건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좀 더 심각한 건 전국위원에 대한 선거권 뿐만 아니라 피선거권마저도 일반 당원에게는 주지 않겠다는 안이 유력하다는 겁니다. 당대회 대의원이 아니면 전국위원 출마도 안 된다는 게 현재 중앙당이 밀고 있는 선거제도입니다. ‘우리끼리 다 해먹겠다’는 의도를 과연 이보다 더 노골적으로 노출할 수 있는 걸까요?

    어처구니없는 간선제 옹호론들

    이런 말도 안 되는 제도를 도입하려다 보니 당연히도 무리하기 짝이 없는 정당화 논리들이 동원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전국위원은 당대회 대의원을 대리하는 기구이니 대의원 중에서 뽑아야 한다’는 논리죠.

    이건 민주주의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조차 결여된 주장입니다. 이같은 주장에서는 민주적 선거의 기본원리인 ‘대표성의 구현’에 대한 고려를 조금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중앙당은 ①일반 당원->②당대회 대의원->③전국위원 식의 대표 구조를 생각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①을 ②가 대표하고, ②를 ③이 대표하면 결과적으로 ③이 ①을 대표한다는 거죠. 이것이 가능하려면 일단 ②당대회 대의원이 ①일반 당원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라는 명제가 성립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알다시피 당대회 대의원들은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경선 없이 찬/반 투표로 당선되는 사람들입니다. 나오면 무조건 당선이라는 겁니다. 이는 그들이 지역 당원들의 정치적 의사를 ‘대표’해서 선출된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형식적으로라면 몰라도, 내용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지요.

    정치적 ‘대표성’ 가지지 못하는 전국위원 간선제

    가령 당원들은 당대회 대의원 입후보자들이 전국위원으로 누구를 찍을 것인지를 미리 알고 대의원으로 뽑아준 게 아닙니다. 그런 약속을 후보들이 한 적도 없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당원의 의사를 대표해 그들이 원하는 정책을 집행할 전국위원을 선출할 필요가 없으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을 겁니다. 정치적 ‘대표성’의 원리가 전혀 구현되지 않는 것이지요.

    게다가 당 게시판 쟁점토론방에서 회사원 님이 열거한 수많은 사례들을 보면, 당 대의원 선거가 거의 ‘코메디’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선출된 대의원들에게 당의 요직 중에 요직인 전국위원의 선출을 맡겨도 되는 걸까요?

    참고로, 간접선거가 내용적인 ‘대표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의 문제와 별도로 그 형식도 충분히 문제가 됩니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을 국민이 아니라 선거인단이 뽑는데, 그 나라 정치학계의 대부 격인 로버트 달 등은 이를 "귀족주의적이며 결함이 많은 잘못된 선거방식"이라고 질타하고 있습니다. 불가능에 가까운 헌법개정절차 때문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선거제도가 좀 황당할지는 모르지만, 이번 선거에만 국한된 것이기에 다음부터 바꾸면 별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식의 주장도 있더군요. 한숨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제도가 일단 한 번 만들어지면 고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모르는 아마추어가 아니라면,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겁니다. 이런 분들은 국회에서 법률 바꾸는 게 얼마나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부터 좀 공부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게다가 전국위원 선거규정은 당규에 박아넣도록 돼 있는데, 이거 고치는 권한도 역시 전국위원들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독점한 사람들이 그것을 스스로의 손으로 일반당원에게 넘기기를 기대하라는 건가요. 그저 웃지요.

    예전에 조국 교수가 진보정당을 향해 "정치학 교과서부터 좀 읽어보라"고 일갈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 집권을 해서 국가를 운영하겠다는 정당이, 무슨 당내 선거제도조차도 이렇게 엉망으로 만든단 말입니까. 그나마 원외정당이라 언론의 관심이 적어서 공론화가 안 된다 뿐이지, 만일 좀 더 큰 당이라서 집중보도라도 나가면 심하게 얻어맞을 겁니다.

    선거제도, 좀 상식적으로 만듭시다. 남들 다 하는 것처럼 직선제로 뽑으면 될 것을, 왜 무리해서 굳이 간접선거로 만들려는지 모를 일입니다. 좀 제대로 하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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