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사이코패스보다 더 무섭다
    2009년 02월 12일 10:35 오전

Print Friendly

오늘 서점에 갔더니 옛날에 나왔던 연쇄살인 관련 서적과 사이코패스 책들이 좋은 자리에 나란히 놓여있었다. 강호순 사건 이후 사이코패스 열풍이 불고 있다. 사이코패스라는 생소했던 단어는 불과 몇 년 만에 일상어가 됐다. 사이코패스 진단법이라는 것도 인터넷에서 빠르게 유포되고 있다.

   
  ▲ 사이코패스를 소재로 한 영화 <검은집>의 포스터

사이코패스 공포증이다.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있다. 원래부터도 한국인은 스트레스 상태에 빠져있었다. 그것이 과도한 열광이나 과도한 공포증으로 발현된다. 뭔가 자극적인 ‘꺼리’가 나타나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인의 삶에서 안전성이 파괴됐다. 이제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 성인은 언제 잘릴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다. 아이들은 더 위험하다. 1980년대까지는 학교에 자식을 무서워서 못 보내겠다는 부모가 없었다. 이젠 거의 모든 부모가 그런 스트레스 속에 있다.

동시에 경쟁의 강도도 격심해졌다. 경쟁 강도가 경제개발이 시작된 이래 최고조에 달했다. 그것은 울화증과 우울증을 초래한다. 다시 태어나면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다거나, 외국으로 이민가려는 사람들이 나날이 늘어간다.

도대체 내 삶이 왜 이럴까? 아무도 모른다. 그저 답답하고 화가 날 뿐이다. 이럴 때 사이코패스라는 존재는 그 이유를 속 시원히 설명해준다. 알고 보니, 저 놈들이 문제였어. 저 놈들만 없으면, 저 놈들만 없으면. 그러면 좀 더 안전해질 텐데.

한국의 사이코패스, 미국의 테러리스트

불안의 원인이 아주 단순한 형태로 적시되면 답답했던 속이 풀어진다. 복잡한 사회구조를 탐구하는 것은 답답한 속을 더 답답하게 한다. ‘한 놈’을 콕 찍어 ‘모든 것의 원인’으로 만드는 게 속 편하다.

한국인과 비슷한 스트레스 상태에 빠져 있었던 미국인들에게 ‘이 모든 것은 테러리스트 때문이야’라는 도식은 그래서 먹혀들었다. 미국인의 삶을 파괴한 것이 테러리스트였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복잡한 것을 싫어했다. 그저 자기들 스트레스의 원인을 테러리스트에게 돌리고, 집단공포의 편안한 품에 안기길 원했을 뿐이다.

사이코패스 열풍은 그런 심리를 닮았다. 범죄가 발생하는 사회적 원인을 탐구하진 않고, 사이코패스 낙인찍기에 열광하는 것이다. 얼마나 단순하고 속 편한가. 이런 식의 단순한 원인 찾기는 ‘노무현 탓’, ‘이명박 탓’ 열풍에도 이어진다. 물론 이 두 대통령이 잘못한 것은 맞다. 그러나 민생파탄은 이 두 ‘개인’만의 탓이 아니다. ‘노조 탓’, ‘전교조 탓’도 이런 구조에 있다.

사이코패스 탓을 아무리 해도 범죄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노무현 탓, 이명박 탓을 아무리 해도 한국사회는 변하지 않을 것이며, 노조 탓, 전교조 탓을 아무리 해도 경제와 교육은 정상화되지 않을 것이다. 대중이 이렇게 단순명쾌한 ‘탓탓탓’에 열광할수록 사회의 증오지수만 높아질 뿐이다.

사회적 차원의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사이코패스는 정신병자로 간주된다. 두뇌구조가 비정상이라는 주장도 있고, 호르몬 분비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아무튼 ‘비정상’인 사람인 것이다. 또 사이코패스는 ‘절대로’ 치유할 수 없다는 주장이 대세다.

사이코패스가 정말로 그런 사람인지와는 별개로, 대중이 이런 이야기에 열광하는 것이 문제다. 애초에 이상이 있고 치유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가 저지르는 악행은 온전히 그 사람 개인의 탓이 된다. 문제가 사회 차원에서 개인 차원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때 사회가 할 일은 그 개인을 ‘색출’해서 ‘박멸’하거나 ‘배제’하는 것일 뿐이다. 이런 식의 담론이 공감을 얻을수록 점점 더 사회는 무서워진다.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무거워지고, 감시의 시선이 강해진다. 이렇게 경직될수록 점점 더 위험한 사회가 될 것이다.

학교폭력 사건이 터질 때마다 더 강력한 처벌, 더 치밀한 감시를 주문하는 여론이 나타난다. 그래서 학교폭력이 줄었는가? 아니다. 우리 고등학생들은 20% 이상이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을 정도로 스트레스 상태에 빠져 있다. 이 구조를 그대로 두고 아무리 처벌과 감시를 강화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한국인의 자살률은 아주 빠른 시간에 OECD 최고가 되었다. 사회는 황폐해졌다. 위험사회가 됐다. 사이코패스 열풍은 이런 황폐함과 위험함을 더 심화시킬 뿐이다.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면 사회를 바꿀 수 없게 된다. 사회가 이대로라면 문제 있는 개인들은 계속해서 양산된다.

미국은 서북부유럽에 비해 살인사건율이나 범죄자 수감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미국에서 사이코패스가 많이 태어나서? 아니다. 미국은 양극화 사회고, 서북부유럽은 복지사회다. 똑같은 인성을 가지고 태어났어도 후천적으로 어떤 가정, 어떤 사회에서 자랐느냐에 따라 범죄자가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었다.

낙인찍기, 사회 전체의 사이코패스화

누가 사이코패스인가, 사이코패스를 색출하기 위해 어떤 감별법이 필요한가를 연구할 시간에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그들이 발현되지 않을까’를 탐구하는 것이 진정 ‘안전한 사회’로 가는 길이란 뜻이다.

그렇지 않고 사이코패스 낙인찍기에 함몰되면 결국 감시, 차별, 배제, 처벌 강화로 인해 사회 자체가 사이코패스화할 뿐이다. 범죄적 인성을 순화시키는 사회는 ‘관용적이고 따뜻한 사회’다.

그러나 잘못을 저지른 개인을 추궁하는 대중심리는 불관용과 냉혹함으로 이어진다. 이야말로 사이코패스의 특징이다. 두뇌구조를 문제 삼으면 종국엔 정신개조설까지 등장할 것이다. 여기까지 가면 정말 무서운 사회가 된다.

물론 아직 그 정도까진 아니다. 그러나 성과급제 강화나 경쟁 기조 등의 이슈엔 무관심하면서 귀족노조만 탓하고, 소득재분배 제도엔 무관심하면서 범죄자만 탓하는 이 증오의 폭주는 위험하다. 사이코패스 열풍은 증오할 대상을 하나 더 늘렸다. 이럴수록 ‘따뜻한 사회’와는 멀어진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