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범한 아빠, ‘쥐 사냥꾼’ 되다
        2009년 02월 12일 10:0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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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누리 씨(38)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촛불문화제에서 한 번 쯤은 마주쳤을 것 같은 얼굴, <아고라>나 인터넷카페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쥐 사냥꾼’이라는 그의 닉네임을 확인하면, “아~ 그 사람이구나”라고 무릎을 칠 분들이 있을 거라고 본다.

    풍선을 만들어 주던 아저씨

    안씨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5월 초, 네티즌 단체들이 청계광장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를 시작하던 때였다. 집회에 참석한 중․고등학생들에게 풍선을 나눠주고, 투쟁가 대신 동요를 개사해 경찰을 풍자하는 노래를 함께 부르던 모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 경찰버스에 붙은 홍보물 앞에서, 귀를 막고 이를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는 안누리 씨 (사진=손기영 기자)

    10일 오후 청계광장에서 안씨를 다시 만났다. 이날도 ‘용산 철거민 희생자 추모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그는 집시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의미로 ‘복면’을 착용하고 있었고, ‘국민의 소리 언제나 귀담아 듣겠습니다’라고 적힌 경찰버스 홍보물 앞에서, 귀를 막고 이를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안씨는 대학에서 증권과 금융을 공부했고 졸업한 뒤 작은 부동산 사무소를 운영하기도 했지만, 현재 초등학교 5․6학년과 중학교 1학년을 상대로 역사와 논술을 가르치는 방문학습 교사 활동을 “내 적성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부동산 사무소를 하면서 돈을 많이 벌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적성에 안 맞고 제가 하고 싶은 일도 아니었던 것 같았죠. 대학에 다닐 때, 역사와 관련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어요. 아버지가 출판사에 다니셨던 영향도 있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을 만나고, 가르치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방문학습 교사 일을 하게 되었죠.”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딸을 둔 ‘평범한 아빠’이기도 한 안씨는 지난해 촛불문화제 때 ‘정책 반대 시민연합’이라는 네티즌 단체를 만들어,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집회에 참여하곤 했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질문을 던지자, 안 씨는 “아이들에게 한없이 미안해서 그렇다”고 답했다.

    평범한 아빠, ‘쥐 사냥꾼’ 되다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나 주변 어른들에게 ‘착하고 정직하게 살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그런 말을 하는 어른이 없는 것 같아요. 대부분 아이들에게 ‘좋은 대학에 가고 취직 잘 돼라’는 말만 하는 것 같죠. 아이들에게 ‘경쟁’을 강요하고 있는 것에요. 저는 제 딸 그리고 제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에게 경쟁을 강요하고 싶지 않아요.

    일례로 요즘 초등학교 5, 6학년만 되어도 특목고에 들어가기 위해, 반강제로 부모에게 떠밀려서 매일 영어학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있어요. 이건 정말 정상이 아니에요. 아이들이 그런 사회에서 살게 만든 어른의 한 사람으로써 정말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고, 아이들과 함께 있어주고 싶어요.”

       
      ▲ 지난해 여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 현장에서, 시민들에게 다양한 모양의 풍선을 만들어 줬던 안누리 씨 (사진=안누리)

    지난해 ‘촛불 광장’으로 나온 이유를 묻자, 안씨는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할말이 없을 것 같았다”며 “딸에게도 ‘아빠가 양심적으로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촛불을 들었고, ‘쥐 사냥꾼’이라는 닉네임으로, 이명박과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인터넷카페 등에서 활동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은 일화도 들려주었다.

    “네티즌을 대표해 다른 분들과 함께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운영위원 활동을 하면서, 제 일이 꼬였던 것 같아요.(웃음) 어느 날 종로경찰서의 한 관계자가 ‘피켓 크기에 제한이 있고, 집회에 나온 인원이 신고 인원보다 많으면 주최자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잘못된 내용의 집회관련 규정을 제게 이야기 했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뒤에 이 내용을 녹음해, 한 신문사에 알려줬어요. 그런데 5월 초 그 신문에 제 사진과 함께 관련기사가 2면에 크게 났어요. 제가 가르치는 학생의 부모들 중에 그 신문을 보는 분들이 많았는지, 이후 저를 부담스러워 하시더군요. 또 집회 때문에 수업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결국 짤리고 당시 에는 수입이 완전히 없어졌죠.”

    “올해의 촛불, 강도부터 다를 것”

    지난달 ‘용산 참사’가 발생된 이후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는 ‘촛불 정국’이 다시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촛불시민 안씨가 전망하는 ‘올해의 촛불’이 궁금했다. 그는 “작년 촛불과 올해 촛불은 강도부터가 다를 것”이라며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작년에는 광우병 위험 쇠고기, 정부 정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느낀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어요. 하지만 올해에는 1년 동안 이명박 정부의 실체를 알고, 피해를 입은 국민들이 거리로 나오는 것이죠. 당연히 1년 전보다 저항하는 강도가 달라질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굉장히 강한 저항이 나타날 지도 몰라요.

    이명박 씨가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나거나, 상위 1%를 위한 정책 대신 보통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편다면, 올해가 아니라 당장 촛불이 꺼지겠죠. 하지만 이명박 정권은 여전히 ‘너희는 계속 떠들어라, 나는 내 방식대로 가겠다’고 하기 때문에,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제2의 촛불’이 일어날 가능성은 높죠.”

       
      ▲ 지난해 5월 초 네티즌 단체들이 주최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시민들의 모습 (사진=손기영 기자)

    안씨는 “‘용산 참사’뿐만 아니라, 올해 예상되는 ‘한미 FTA 비준’이 국민의 촛불에 기름을 끼얻을 것”이라고 전망 했다. 또 “이명박 정부에 맞서 ‘민주 대 반민주’, ‘민생 대 반민생’, ‘애국 대 매국’의 3가지 ‘촛불 전선’을 적절히 구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미 FTA 문제는 비정규직․농업․서비스․교육․실업 문제 등 국민 개개인의 문제와 관련된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좀 복잡한 게 탈이지만, 광우병 쇠고기 문제와 같이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만한 문제들이 많죠. 또 작년에 촛불문화제를 하면서, 국민들이 FTA 문제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어요. 이명박 정부가 FTA 비준을 밀어 붙인다면, 상당한 반발이 일어날 것 같아요.

    ‘민주 대 반민주의 전선’은 가장 폭발력이 강한 전선이지만, 그 만큼 금방 식어버리는 단점이 있죠. ‘민생 대 반민생’ 전선은 비정규 문제 등 당장 자신의 문제로 느끼지 않으면 구축되기 힘들지만, 현실적 문제를 투쟁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장점이 있죠. 일종의 틈새 전선인 ‘애국 대 매국 전선’은 정부의 반민족적 발언, ‘친미주의’ 노선을 공격할 수 있는 재미있는 전선이죠.”

    광장을 떠나, ‘게릴라 시위’로

    안씨는 “정부 여당의 집시법 개정에 맞서, 새로운 집회․시위 문화를 고민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광장 대신 시내 곳곳에서 산발적인 집회를 벌이는 ‘게릴라 시위’와 자유발언과 거리행진 등 정형적인 방식을 떠난 ‘놀이판 집회’ 그리고 다양한 단체들의 목소리를 한 곳에서 들을 수 있는 ‘박람회(EXPO) 형식’의 집회 등을 제안했다.

    “한나라당의 집시법 개정에 맞서 광장에서 대규모 인파가 모여 진행하는 집회 대신, 잠시 한 곳에 모였다가 시내 일대로 삼삼오오 흩어져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이는 ‘게릴라 시위’를 벌이면 좋을 것 같아요. 서울시내 전체를 경찰이 통제하기도 힘들 것 같고, 우리의 주장을 더 많은 분들에게 알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정형적인 집회를 지루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어요. 작년 마로니에공원에서 인터넷카페들이 자신의 개성을 살려 마우스 던지기, 물총 싸움 등을 하면서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를 했는데 대중들의 참여를 늘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또 한 곳에 부스를 차려 ‘박람회 형식’으로 집회를 하면, 여러 단체가 참여할 수 있고 다양한 목소리를 한 곳에서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요.”

       
      ▲ 안누리 씨가 ‘촛불의 성지’ 청계광장에서 함성을 지르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마지막으로 안씨는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아직 ‘정근상’ 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꾸준히 촛불 집회에 참여해, 촛불의 성지 청계광장에서 ‘개근상’을 받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또 이명박 정부뿐만 아니라, 이들과 맞서고 있는 야당과 노동조합들에게도 쓴 소리를 날렸다.

    “저희의 요구를 이명박 정부에서 아직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또 정부에 맞서 문제를 해결해야 할 야당과 노동조합이 ‘직무 유기’를 하고 있기에, 시민들은 계속 촛불을 들고 나올 수밖에 없어요. 17대 국회서 민주당이 잘 했다면, ‘가축 전염병 예방법’으로 광우병 쇠고기를 막을 수 있었고, 비정규직․교육 문제 등을 노조에서 잘 대응했다면, 시민들이 밤에 힘들게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올 필요가 없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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