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 사회주의’ 선언
        2009년 02월 10일 11: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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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척박한 우파의 땅 한국 언론조차 관심을 가지고 보도 중인 반자본주의신당 창당대회는 NPA 당원뿐 아니라 프랑스 국내외의 진보 인사들, 세계 각국의 취재기자들로 북적였다고 한다. <레디앙>의 박지연 파리 통신원도 대회 전 기간동안 현장 취재를 했다. 

    프랑스 사회 곳곳의 소식을 전하며 독자들에게 익숙해진 박지연 통신원이 이번에도 NPA 창당대회의 생생한 뉴스를 전한다. 올리비에 브장스노와의 단독 인터뷰, 국제 좌파 정당 모임 등 관련 기사를 다섯 차례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주>

    반자본주의신당이 공식적으로 창당되었고 이제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2월 5일부터 8일까지 나흘간 파리 교외 생드니에서 진행된 당 대회에서 첫날인 5일, 혁명적 공산주의동맹(LCR)이 해체되었다. 제 18회 LCR 당 대회이자 마지막 당 대회가 된 이 날, 해체 제안 연설은 68혁명세대의 상징적 인물인 알랑 크리빈느가 시작하였다.

    LCR의 역사적 원류는 러시아혁명과 궤를 같이 한다.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혁명 때 혁명을 지지하는 프랑스 좌파들이 소그룹을 만들어 활동한 것이 최초의 조직적 전신이다. 그 후 1938년 9월 ‘제4인터내셔널’ 창설에 가담하면서 좀 더 당적인 모습을 갖추어 갔다.

    그 후 이어온 활동 명맥은 1960년대 새로운 좌파로서 다시 전면 등장을 한다. 1966년 혁명적 공산주의청년회(JCR)로 조직을 개편하고 68혁명에 적극 가담하면서 알랑 크리빈느의 주도하에 혁명적 공산주의동맹(LCR)이 탄생하여 오늘까지 이어져 왔다.

       
      ▲ 알랑 크리빈느 (사진=박지연 파리통신원)

    그래서 68세대의 상징이자, 올리비에 브장스노 이전에 LCR의 대표적 전략가로서 활동을 해 온 알랑 크리빈느가 해체를 위한 연단에 올랐을 때, 이미 그것 자체가 LCR의 역사와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당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가게 주인이 바뀐 관계로 대폭 할인’

    크리빈느는 “혁명적 전투는 계속된다”라는 말로 연설을 시작하였다. 그는 “정당은 종파와는 다르다. 정당의 목표는 정당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당은 LCR에서 배운 많은 전략들을 실행할 것이다 … 자본주의의 몰락이 중요한 사건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지금이야말로 반자본주의를 위한 새로운 정당 건설을 위한 시간이다. NPA는 내일을 위한 불가피한 반자본주의자들의 힘이 될 것이다”라고 단호한 어조로 선언하였다.

    이어서 “우리는 이미 정부에 의해서 두 번의 당 해체를 경험하였다.(69년, 73년) 그러나 이번엔 우리 스스로가 해체하는 것이다”라고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제 해체는 실행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계속 진행할 것이며 모두와 함께 할 것이다”라고 말을 맺었다.

    올리비에 브장스노로 이어진 연설에서 그는 “LCR의 위대한 유산이 매우! 매우! 자랑스럽다”고 선언하였다. 거수로 진행된 LCR 해체에 관한 투표에서 87.1%가 찬성하여 이로써 40년간 이어져 온 정당은 새로운 역사를 위하여 길을 비켜주었다.

       
      ▲ 올리비에 브장스노의 LCR 마지막 연설(사진=박지연 파리통신원)

    대회장 밖의 기념품 가게에서는 티셔츠, 볼펜, 당기관지 등 LCR 관련 물품 60% 할인 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벽에는 ‘가게 주인이 바뀐 관계로 대폭 할인’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오후에 진행된 제4인터내셔널과의 관계를 위한 의제에서도 새로운 정당의 새로운 행보를 위하여 NPA는 제4인터내셔널에 가입하지 않기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이 날 회의에서 새로운 정당은 국제 연대라는 위대한 혁명 전통을 어떻게 배울 수 있는가라며, NPA 또한 제4인터내셔널에 남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트로츠키주의 정통을 뛰어넘는 새로운 정당이어야 함이 더 주요한 과제임을 인식하였기에 이런 결론에 도달하였다. 다만, 여태까지 LCR이 제4인터내셔널 프랑스의 주요한 자금책이었던 점을 고려하여 2012년까지 NPA는 재정적 지원만은 계속하기로 하였다.

    새로운 행보 위해 제4인터내셔널 가입 않기로

    대회의장을 장식했던 ‘100% 좌파 LCR’의 붉은 깃발과 플래카드는 정리되었고, 그 이튿날부터 시작된 반자본주의신당 창당대회장은 어느새 연단과 벽면에 NPA의 새로운 깃발이 장식되었다.

    6일부터 8일까지 3일 동안 현 정치 상황, 당면과제와 이와 관련한 규약, 당 강령, 당명 등에 관한 토론과 표결이 시작되었다. 각각의 위원회별로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각국에서 참가한 해외 좌파정당들과 운동단체들은 LCR과 NPA의 정치국 일원인 프랑스와 사바두의 사회로 ‘경제위기와 환경위기’를 주제로 한 회의가 따로 열렸다.

    프랑스와 사바두는 발제 연설에서 오늘날 전 세계에서 자본가들의 문제가 비정규직이라는 시스템을 가동시키며 혹독한 착취가 진행되고 있으며, 문제는 생태에 관한 위협으로까지 발전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어서 각국의 정당에서 자신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경제적 문제 혹은 정치적 특수성에 관한 이야기들을 이어갔다. 마지막으로 다시 프랑스와 사바두는 이러한 모든 발언들에 기초하여 우리는 실천을 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적 사회운동을 조직화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모색할 것과 그러한 틀 속에서 오는 4월 3일 이날의 토론 내용이었던 ‘경제와 환경위기’에 관한 국제적 시위를 유럽의사당이 있는 스트라스부르그에서 조직할 것이라고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  ‘팔레스타인 자유를 위한 민중전선’의 대표참가자가 발언하고 있다(사진=박지연 파리통신원)

    대회 3일째인 7일에는 남미, 캐나다, 아프리카 그리고 한국의 진보신당과 사회주의노동자당 준비위원회 등 25여 개 나라 150여 명의 좌파정당 대표단 혹은 운동단체들이 공식적으로 참가한 회의에서 ‘팔레스타인 자유를 위한 민중전선’의 대표참가자가 공식 발언하였다.

    25개 나라 좌파정당, 팔레스타인 지지

    그는 “이스라엘은 이번 파괴와 죽음을 동반하는 전쟁을 팔레스타인 민중계급의 저항을 깨부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제국주의와 반복되는 전쟁 속에서도 사회주의와 자유가 승리할 것이고 이것만이 민중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연설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승리가 아니면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연단을 내려갈 때, 회의장의 모든 당원들과 참가자들은 기립하여 “팔레스타인!”을 외치며 연대의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이어서 본 회의에서는 전날 각 위원회 혹은 지역 당에서 올라온 의제에 관한 거수 투표가 진행되었다. 강령에 들어가는 문구에 관한 토론에서는 모든 안건에 2명의 반대 발언과 2명의 찬성발언이 3분 정도씩 보장되었고, 투표는 찬성과 반대, 기권 그리고 거부가 보장되었다.

    사회주의에 관한 문구에서는 ‘사회주의’, ‘생태사회주의’, ‘21세기 사회주의’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를 놓고 토론을 벌여, NPA는 ‘21세기 사회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로 하였다.

    당명에 관해서는 반자본주의신당, 혁명적 반자본주의당, 혁명적 좌파국제주의동맹, 반자본주의당, 반자본주의좌파당 5개가 투표에 붙여졌으며, 이 중 반자본주의신당과 혁명적 반자본주의당이 결선 투표에 올라 반자본주의신당 NPA의 이름이 고수되었다.

    이 날 많은 안건들이 투표되었으며 어떤 것들은 반대표와 찬성표가 접전을 벌이기도 하였지만, 이 모든 것이 끝난 뒤 이것들이 강령으로 채택되는 것에 대해서는 단 한 표의 반대표도 나오지 않았다.

       
      ▲ 당령 투표 중 (사진=박지연 파리통신원)

    ‘21세기 사회주의’ 강령 채택

    모든 언론과 다른 여타 좌파정당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며 기다리던 다른 좌파 정당들과의 연대에 관한 투표와 NPA 중앙당위원과 정치국 선출은 대회 마지막 날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모두들 조금스레 내놓던 예상을 뒤엎고 차후의 정치, 지역 사업에 다른 좌파와 연대할 것이라는 방침이 80%의 찬성을 얻어냈다.

    그래서 표면상으로는 유럽의회 선거에 같이 공동 전선을 형성하고 후보를 같이 내는 것에 대문이 열린 듯하다. 하지만 NPA가 내건 조건이 연대를 기다리던 공산당과 좌파당에게는 부담을 주고 있다.

    NPA는 이미 창당 이전부터 사회당과는 좌파전선을 형성할 수 없다고 선언하였고, 이번 선거를 위한 좌파 전선은 당장 눈앞에 있는 유럽 선거뿐만 아니라 지방선거까지 같이 하는 조건을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공산당은 지방선거에서 사회당과 연합을 못하면 치명적 결과가 예상되고, 좌파당은 벌써 공산당과 유럽의회 선거를 공동으로 치르기로 합의를 했기 때문에 지방 선거까지 같이 치르는 조건이면 모두들 한 다리 건너서 사회당과 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중앙당위원은 192명의 중앙위원들 중 전 LCR의 출신은 45%로 과반수를 넘기지 못하게 스스로 제한하였다. 이는 NPA가 LCR에서 탄생한 것임에도 스스로 종파주의를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이 중에서 정치국이 구성되었으며, 또한 중앙위원회에서 올리비에 브장스노가 78%의 득표율을 차지하여 반자본주의신당 대변인으로 선출되었다.

    “혁명은 진군 중”

    이로써 모든 공식대회는 마감되었다. 여성당원 35.3%, 남성당원 64.7%, 직업별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가 40%, 교수 및 연구직 10.3%, 교사 17.6%, 실업자 6%, 학생 12.4%, 농업 및 장인 2.4% 등의 분포를 보이고, 18세 이하 당원 213명, 64세 이상 당원 338명, 34세부터 54세까지가 가장 많은 분포를 가진 새로운 당이 탄생하였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69년 4월 10여 명의 혁명적 정치가들 앙리 웨버, 줄리앙 드라이, 피에르 모스코비치, 소피 부세 페터슨 그리고 프랑스의 대표 지성 중의 한 명인 맑시스트 철학자 다니엘 뱅사이드 등이 모여 창당을 도모하여 120명의 당원으로 출발한 혁명적 공산주의동맹이 40년이 지난 2009년에 새로운 장으로 진입한 것이다.

    노혁명가들은 한결 같이 같은 말을 했다. 어떠한 아스라한 향수도 가지지 않는다고. 그래서 68년 당시의 68은 실패했을지라도 오늘날 68은 승리를 향하여 진군 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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