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격변 이면엔 '세금'이 있었다
        2009년 02월 10일 08:4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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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세문제 전문가인 김정진 변호사의 ‘역사속의 세금과 정치’ 시리즈를 연재한다. 필자는 세금은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질 뿐 아니라, 정치와도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정치적 변동과 세금과의 연관성을 강조한다.

    "3국 시대에 이미 부유세가 있었다"고 말하는 필자는 우리 역사 속에서 세금과 정치가 어떻게 교직되면서 상호 작용을 해왔는지에 대해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펼쳐나갈 예정이다. <편집자 주>

    1.

    경제생활을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세금이라는 골치 아픈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국세청이라는 한국에서 몇 안되는 강력한 국가기관으로부터 세금과 관련한 문제를 당한 사람이면 누구나 세금문제에 대해서 매우(?) 조심하게 된다.

    과거와 달리 탈세한 자에 대해서는 시선이 매우 따가우며, 세금문제로 낙마하는 공직자들을 종종 보게 된다. 따지고 보면 부동산투기도 세금문제와 관련이 있다. 공급이 제한된 재화를 이용하여 막대한 이익을 올리는 것도 문제지만, 그 과정에서 탈세가 일어나기 때문에 도덕적 비난이 더욱 심하게 된다.

       
      ▲ 사진=미디어오늘

    이처럼 우리 생활과 아주 밀접하지만 그것이 정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정치와 무관한 것이어야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정치변동을 보면 세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치변동과 세금

    미국독립혁명의 단초가 된 보스턴 차 사건은 영국이 동인도회사에 차 수입의 독점권을 주면서 발발하였고(차 수입에 독점권을 주면 차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가 생긴다. 이를 전매익금-fiscal monopoly-이라 한다), 프랑스혁명의 단초가 된 3부회의 소집도 결국 세금을 더 징수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에서 소득세의 도입은 헌법까지 개정하는 전국적인 투쟁에 의해서 가능하였으며, 우리 역사를 보더라도 조선왕조 붕괴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가 세금을 제대로 거두지 못함으로써 발생한 재정위기였다. 

    가까이는 박정희 정권의 붕괴를 몰고 온 부마항쟁의 한 원인으로서 부가가치세 제도 도입이 지적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는 종합부동산세 문제는 정치적 쟁점 중의 하나이다.

    2.

    즉, 실제로는 세금은 정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정치라고 하는 것이 결국 가치를 배분하고, 그 배분하는 룰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때, 국가가 관장하는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의 핵심인 세금이 정치와는 가장 밀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하겠다.

    오히려 한국에서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세금은 전문가의 영역(예컨대, 재경부 관료나 학자들)이어야 하며, “세금과 정치는 무관해야 좋다”라는 주장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라고 하겠다.

    대통령과 국세청장

    왜 시가 6억원 이상의 주택을 보유한 자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여야 하는가는 전문가의 판단에 의하여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주택을 통하여 급격한 부를 형성한 일부 계층은 당연히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다수 국민의 정치적 의사가 반영된 것이다.

    물론, 자신에게 반대하는 자에 대해서 세무조사라는 수단을 사용하였던 군사정권을 거친 한국-역대 국세청장은 대부분 대통령과 동향이었다-으로서는 정치와 세금을 분리시키는 것이 좋다는 생각도 우세하지만, 이미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전은 이런 우려를 상쇄시킬 만하기 때문에 오히려 현재는 세금은 계급, 계층적 이해를 대변한다는 의미에서의 정치와 무관할 수 없다.

    3.

    세금은 당연하게도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계급적으로 자산가 계층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또한 그것이 장기적으로 피지배계급의 반발을 무마시켜 체제를 안정시키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세금을 통한 복지는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한데 이에 대해서는 다종다양한 비판이 있어 왔지만, 그나마 인류가 만들어낸 시스템 중에 가장 친노동자적인 체제라는 평가는 가능할 것이다. 영국의 NHS(국민건강보험)도, 스웨덴의 놀라운 복지시스템의 가장 큰 수혜자는 의심의 여지없이 다수의 노동자 계급이며, 이는 세금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세금, 사민주의 그리고 공산주의

    세금은 그래서 체제를 안정시키는 기능도 하지만 마르크스가 이야기하였던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는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적 속성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능력이 출중한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가 없이 국가가 예컨대 40%이상을 강탈(?)해 가지만, 능력이 없는 이에 대해서는 10% 미만만을 강탈하거나 아예 가져가지 않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산가 계층이 대개 소리 높여 세제를 반대하는 것은 그것이 공산주의적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라고 하면 어감이 너무 강하므로 일반적으로 쓰이는 말은 인민주의적 공평 내지 공평성 정도인데, 결국은 똑같은 이야기이다.)

    4.

    국가권력과 계급이 성립되어야 세금이 필요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원시시대에는 이를 상상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농경 이전의 사회에서도 세금 문제에 대한 단초는 충분히 존재하였다.

    인류학적 연구가 충분히 반영되기 이전에 엥겔스가 쓴 『국가, 사유재산, 가족의 기원』에는 인류가 초기에 원시공산제 사회였다고 하나, 요즈음의 인류학적 성과에 의하면 반드시 그런 것 같지는 않고, 다만 공산제적 요소가 다분히 있었다고  생각된다.

    세금과 원시사회

    대부분 수렵을 하였던 종족들은 채집에 의하여 취득할 수 있었던 과일류에 대해서는 직계 가족들만 나누어 먹었으나, 최소한 2인 이상이 협력하여 잡을 수 있었던 동물에 대해서는 직계 가족이 아닌 종족 구성원들이 비교적 균등하게 나누어 먹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머리 속에 면면히 흐르는 생각-일정 규모 이상의 부는 자신의 노력이 아닌 사회의 기여에 의하여 가능한 것-이 이미 수렵사회부터 존재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이 세금의 긍정적 기초가 되는 것이다.

    5.

    하지만 세금이 수탈이라는 생각 또한 진실에 가깝다. 인류가 경험한 세금은 오랜 기간 동안 지배계급에 의한 피지배계급의 수탈의 성격을 띠었다. 사회적 혁명의 도화선이 된 세금 문제는 인민들이 세금이 자신들을 수탈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파리에서 바스티유를 불태우고 제3신분이 권력을 잡아갈 무렵, 농민들은 자신들의 토지에 부과된 봉건적 부과조(부동산에 부착된 귀족들이 일종의 세금을 받을 권리라고도 할 수 있다)에 격렬하게 저항하면서 영주를 살해하며 그 대장을 불태운 것은 그 봉건적 부과조가 자신들을 수탈하였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수탈과 공평성, 체제 유지와 체제 변화

    백골징포와 황구첨정의 일화처럼 구한말과 일제시대를 거친 한국의 경우 세금이 수탈이라는 관념은 매우 일반적이다.

    심지어 6. 25 전쟁 이후 인민군이 남쪽에 내려와 세금을 걷기 위하여 벼의 낟알을 직접 손으로 세는 것을로 보고 토지를 더 분배받아 좋아하던 농민들이 대경실색하여 “빨갱이는 피도 눈물도 없다”라는 말의 근거가 되었다고 하니, 아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과도한 열정으로 인민들의 세금에 대한 반감을 과소평가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 1960년대까지만 해도 동대문시장에서 세무납부시기만 되면 과도한 세금에 항의하며 철시하였다는 이야기는 세금이 수탈이라는 관념이 해방 후에도 지속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수탈과 공평성, 체제 유지와 체제 변화라는 대립되는 경향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발현되어 왔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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