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바마 의료개혁 성공할 수 있을까?
        2009년 02월 09일 04: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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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은 13억 명 중국의 1년 GDP에 맞먹는 2조 2천억 달러를 의료에 쏟아 붇고 있다. 그런데도 4천 5백만 명이 넘는 미국인들이 의료보험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의료보험이 있다고 해서 의료비 부담에서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보험이 있어도 질병에 걸리면 본인 부담이 만만치 않다. 미국에서 파산한 사람의 절반 이상이 의료비 때문이고, 의료비로 인한 파산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2백만 명에 이르는 실정이다.

    의료사각 지대에 4천 5백만명

    높은 의료비 문제가 단순히 일반 서민들에 국한된 사안도 아니다. 미국 의료보험 가입자의 55%는 기업이 부담하는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는데, 기업이 부담하는 직원들 의료보험료가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산된 자동차 한 대당 들어가는 의료비 부담을 비교해보면 그 실상이 잘 드러난다.

    미국 GM이 1,525달러 들어가는 반면, 캐나다 GM의 경우 187달러, 일본 도요다가 97달러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러니 미국의 높은 의료비 문제는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장애요인으로까지 발전해 있는 상황이다. 의료문제는 이래저래 미국 사회의 최대 골칫거리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의료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공인 받은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다. 2008년 미국 대선의 국내 이슈 중 최대 현안이었던 의료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하고 대통령이 되었으니,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오바마 뿐만 아니라 미국 민주당의 정치적 미래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오바마와 미국 민주당은 전국민의료보장을 위한 의료개혁에 올인을 해야 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만들어내야만 한다. 오바마의 성공 여부를 논하기 전에 오바마가 의료개혁에서 무엇을 어떻게 추진하고자 하는지부터 들여다보자.

       
      

    오바마 대통령은 ‘전 국민 누구나 부담 가능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의료보장체계(affordable, accessible health coverage for all)’를 구축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하였다. 이를 실현할 정책방향은 세 가지다.

    의료보호, 최악의 ‘선진국’

    첫째, 국민과 기업이 부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미국의 의료비를 낮추겠다는 것이다. 질병예방 및 만성질환관리 프로그램을 강화하여 고액 중증환자의 양산을 차단하고, 정보기술에 대한 대규모 투자 확대를 통해 전자의무기록체계를 구축하여 효율적 관리 인프라를 갖추며, 의료보험회사들과 제약회사들 간 경쟁을 촉진하여 비용을 낮추겠다는 것이 주요 정책수단이다.

    문제는 이들 정책의 효과다. 이들 정책이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장기적으로 의료비 절감에 기여하겠지만, 단기적으로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비용절감 보다는 신규사업으로 인해 돈이 더 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04년 기준으로 OECD 국가 1인당 연평균 의료비 2,550달러의 두 배가 넘는 6,401달러나 쓰고 있는 미국의 높은 의료비의 큰 절감 없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보장성을 확대해야만 하는 부담을 안고 개혁의 시동을 걸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상황이 결코 녹록치 않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모든 국민들이 양질의 의료보장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두 번째 정책방향이다. 이 대목이 오바마 보건의료개혁의 핵심이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오바마가 제시한 방식은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NHI)’과 같은 단일 국가보험체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바마가 제시한 계획의 핵심은 새로운 공공의료보험(new public plan)을 신설하고, 국가가 건강보험 상품 거래소(NHIE: National Health Insurance Exchange)를 설립·운영하여 기존의 다양한 민간보험 상품들과 새로운 공공의료보험을 비교하여 본인이 원하는 의료보험을 선택·가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건강보험 상품 거래소에 등록하는 모든 민간보험은 새로운 공공의료보험에 준하는 보험료, 보장성, 질 기준 등을 충족해야 하며, 과거 병력 때문에 보험 가입을 거절하지 못하도록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한다.

    재원조달 어떻게?

    한마디로 새로운 공공의료보험을 시장의 표준으로 삼아 기존 민간의료보험 상품과 경쟁하는 체제를 만들어 누구나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다는 의미이다.

    돈이 없어 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 공적 부조 형태의 MEDICAID와 SCHIP 가입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함께 제시되어 있다. 이러한 계획이 현실화될 경우 4천 5백만 명이 넘는 보험 없는 인구와 보장성 낮은 보험에 가입된 인구들 중에서 보다 좋은 의료보험을 갖게 될 사람들이 많아질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돈이다. 이를 위해 부시 행정부에서 이루어진 감세조치를 원상 복구하여 500억~650억 달러 규모의 재원을 조달하고, 중소기업 종업원의 의료보험 가입률을 높이기 위해서 직원들의 의료보험료 납입에 대한 세금감면 조치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들로만 재원 마련이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엄청난 양의 정부의 추가 재원이 필요할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 무역적자, 재정적자 상황에서 매년 지속적인 지출이 불가피한 대규모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미국 공화당을 비롯한 보수주의 세력들의 공격과 비난의 대상이었던 단일 공공의료보험체계(single payer system, 한국이나 캐나다의 전국민의료보험 유형)의 모양새를 회피하고, 보수주의 세력들이 좋아하는 ‘시장과 경쟁’의 외피를 갖추었기에 이전보다 보수주의 세력들로부터 공격받을 여지는 많이 줄어든 셈이다.

       
      

    보수세력-민간보험사-제약사 집요한 반대 

    하지만 전 연령대를 포괄하는 공공의료보험체계의 등장을 그들이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 보수주의 세력들과 민간보험회사, 제약회사들의 집요한 반대와 반발로 인해서 새로운 공공의료보험체계를 신설하지 못하고, 기존 민간보험회사들에게 위탁하는 형태로 변질된다면 기존 체계에 돈만 더 쏟아 붇는 결과만 초래하고 국가 재정만 축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세 번째 정책방향은 학교와 사업장 건강증진 및 예방사업을 강화하고 공중보건활동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여 급증하는 만성질환 증가에 효과적으로 대처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단기간에 효과를 보기는 어렵겠지만 지속가능한 보건의료체계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조치들이다. 미국이 보다 효과적인 성과를 얻는다면 이를 모델로 다른 나라에 좋은 본보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바마는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미국의 의료비를 절반으로 낮추어 전 국민이 의료보장 혜택을 누리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아홉 장짜리 오바마 개혁안의 구석구석이 과감한 조치들로 채워져 있다. 단기적 성패는 민간의료보험회사와 공화당을 위시한 미국 보수주의 세력의 반발을 무마하면서 국민들이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새로운 공공의료보험을 안착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달려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의료비를 낮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제조업을 포기하다시피 한 미국에서 의료산업은 지역경제를 떠받치는 주된 버팀목이다. 영화 ‘식코’에서 눈물을 흘리며 가입 거절 사연을 고백하던 보험 상담원 아가씨, 의료비 미납자의 뒷조사를 하였던 과거를 고백하던 체격 좋은 구렛나루 아저씨 등이 모두 미국의 상업화된 의료를 매개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급격한 의료비 절감을 수반하는 개혁은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기에 급진적 개혁은 예상치 못한 반발을 곳곳에서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료체계의 상업성이 미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탓이다. 이처럼 자본과 시장이 지배하는 미국 의료제도는 근본적 의료개혁이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힐러리 공약 수준으로 후퇴

    힐러리와 맞붙던 민주당 후보 경선 시절, 오바마는 원칙을 저버렸다며 힐러리를 줄곧 공격한 바 있다. 새로운 공보험을 신설하되, 기존 민간의료보험과 신설된 공보험을 경쟁시키는 방식으로 전국민의료보험을 추진하겠다고 하는 힐러리 주장에 대해 단일 공공의료보험체계로 강하게 맞서던 그였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로 등극한 후 오바마는 변했다. 대통령 후보 오바마의 공약은 명칭만 바뀌었지 힐러리의 의료개혁 플랜과 다를 바 없는 수준으로 후퇴하였던 것이다. 이런 전력을 되돌아 보건대, 앞으로 있을 공화당 중심의 보수주의 세력과 의료보험회사, 제약회사 등 자본의 집요한 로비와 저항 앞에서 어떤 식으로 변질될지 모를 일이다.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오바마 의료개혁의 전도사로 불리던 보건부장관 내정자 ‘톰 대슐’마저 세금탈루 혐의로 낙마한 상태다. 첫 출발치고는 조짐이 좋은 것도 아니다.

    자유시장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불완전시장(incomplete market)인 의료분야에서 정부와 사회의 공공성 원리가 아닌 ‘자본과 시장의 원리’를 위주로 짜인 기존의 미국 의료체계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공공보험과 민간보험의 경쟁을 통한 의료개혁을 추구한다는 것은 그 한계가 너무나 분명하다.

    유럽 선진국들의 의료제도 기준과 우리의 기대에는 턱없이 모자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오바마의 보건의료개혁 시도가 성공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오바마의 의료개혁으로 인해, 의료보험 없는 불안한 생활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수천만 명의 미국인들이 어떤 형태로든 새로운 의료보장의 수혜를 받을 수 있게 된다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지금보다는 엄청난 진보임에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록 작은 승리라 할지라도, 원래 공공의 영역이어야 할 의료를 ‘자본과 시장의 일방적 지배’에서 일부라도 공공의 영역으로 되찾아 온다면, 이 또한 진보의 소중한 승리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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