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 면죄부 수사, 적당히 덮자는 언론
        2009년 02월 10일 09: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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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박종철 사건은 비상식적인 수사결과 발표가 시작이었다. 9일 검찰의 ‘용산 참사’ 수사결과 발표를 둘러싼 논란도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특공대 진압 과정에서 5명의 철거민과 1명의 경찰관이 숨을 거둔 사건인데 검찰은 경찰에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검찰은 “아쉬운 점이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공권력의 힘을 믿고 시민의 의문과 분노를 잠재울 수 있을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검찰의 이러한 수사결과 발표는 언론이 예상했던 결과였다. 언론이 예상한 다음 순서는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하는 결정이다. 언론 예상대로 흘러갈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누구도 납득시키기 어려운 수사결과를 내놓았지만 언론의 표정은 엇갈렸다. 날 선 비판으로 검찰의 수사결과를 비판한 언론도 있었지만 시민의 분노를 잠재우는데 초점을 맞춘 언론도 있었다.

    다음은 10일자 주요 아침신문 1면 머리기사다.

    -경향신문 <‘용산참사’ 경찰에 면죄부>
    -국민일보 <김석기 내정자 오늘 사퇴>
    -동아일보 <김석기 내정자 오늘 자진사퇴>
    -서울신문 <실익없는 ‘성장률 공표’>
    -세계일보 <“용산참사 농성자 공동책임 경찰 특공대 투입작전 적법”>
    -조선일보 <경찰은 살리고, 김석기 떠나고>
    -중앙일보 <김석기 청장 오늘 사퇴>
    -한겨레 <철거민 20명 기소…검찰은 ‘혐의없음’>
    -한국일보 <검, 경찰에 면죄부 줬다>

       
      ▲ 한국일보 2월10일자 1면.  
     

    언론은 용산 참사와 관련한 검찰 수사결과 발표와 여권 지도부의 사태 수습 방안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 결과는 언론이 예상한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있다.

    한국일보는 1면 <검, 경찰에 면죄부 줬다>라는 기사에서 “‘용산 참사’ 수사 결과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검찰은 참사로 이어진 화재의 원인을 농상자들이 투척한 시너와 화염병으로 결론짓고, 경찰의 과잉진압 책임에는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3면 <‘합동작전’ 용역 처벌·경찰 무혐의…‘기묘한 결론’>이라는 기사에서 “9일 발표된 ‘용산 참사’ 경찰 수사 결과는 ‘경찰 무죄, 철거민 유죄’라는 당초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면서 “수사 막판에 불거진 경찰과 용역업체 직원의 합동 작전은 용역직원은 형사 처벌하고 이를 보호해 준 경찰에겐 책임을 묻지 않는 ‘이상한 결론’이 나왔다”고 지적했다. 

    검찰 면죄부 수사 예상했던 언론

       
      ▲ 한겨레 2월10일자 1면  
     

    한겨레 1면 <철거민 20명 기소…검찰은 ‘혐의없음’>이라는 기사에서 “경찰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처벌은 있어도, 철거민 다섯 사람의 죽음에 대한 처벌은 없었다”면서 “서울중앙지검 수사본부(본부장 정병두 차장)는 9일 오전 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농성자 20명과 용역·철거업체 직원 7명 등 27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에게 법적 책임은 없는 것으로 결론내렸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검찰의 이번 수사결과 발표는 의문을 해소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이 언론의 공통된 평가이다. 경찰 면죄부에 초점을 두다 보니 무리수를 뒀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일보는 3면 <검 “진압 아쉬운 점 있다”면서 경찰 책임 안물어>라는 기사에서 “검찰이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고 에둘러 표현했듯이 경찰의 진압작전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명백한 잘못도 밝혀졌다. 그러나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4면 <철거민 쪽엔 ‘과학수사’…경찰…용역 쪽엔 ‘진술 의존’>이라는 기사에서 “검찰은 수사기간 내내 철거민 쪽에 불리한 정황과 증거들은 선제적으로 내놓거나 이를 입증하려고 철저한 과학수사를 벌였다. 반면, 검찰과 용역업체 쪽에 불리한 내용은 정치권과 언론, 진상조사단이 의혹과 증거를 제기한 뒤에야 확인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고 비판했다.

    김석기 자진사퇴 카드, 여론 잠재울까

       
      ▲ 조선일보 2월10일자 3면.  
     

    국민일보는 4면 <경찰 준비덜된 진압작전 정당?>이라는 기사에서 “(검찰은)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을 비롯한 모든 경찰 작전·지휘 라인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며 “진압 장비 등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작전을 감행한 것과 경찰 소방 호스로 물을 쏜 철거 용역업체 직원만 처벌하고, 이를 묵인한 경찰에는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은 편파 수사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권은 김석기 내정자 자진사퇴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경찰은 법적 책임이 없다면서 경찰 수장이 물러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론의 반발을 무마할 카드가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조선일보는 3면 <그냥 덮어두기엔…‘김석기 불씨’ 너무 뜨거웠다>는 기사에서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자진사퇴하기로 함에 따라 용산 철거민 참사 사건으로 촉발된 정국의 불안이 새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여권이 끝내 김 청장 내정자를 안고 갔을 경우 예상됐던 용산사건의 폭발성은 크게 감소하게 됐다”고 전망했다.

    중앙일보 "사퇴하지 않으면 대통령에게 부담 된다는 논리"

       
      ▲ 중앙일보 2월10일자 3면.  
     

    중앙일보는 3면 <법적 면죄부 받았지만…“국정운영 짐 된다” 자진사퇴 급선회>라는 기사에서 “조기 사퇴론은 ‘비록 법적인 책임은 없더라도 김 후보자가 도덕적 책임이나 포괄적 관리책임은 져야 한다. 사퇴하지 않고 버티면 이제 이 대통령에게 부담이 된다’는 논리였다”고 보도했다. 

    국민일보는 3면 <법적 책임 면죄부로 ‘퇴로 명분’>이라는 기사에서 “김 내정자의 자진 사퇴는 사실 용산 참사 발생 때부터 예견돼왔다”면서 “사퇴를 하지 않고 버틸 경우 여론 및 야당의 거센 반발로 인해 자칫 ‘제2의 촛불’ 사태가 점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3면 <청 “경찰 혐의 벗었으니 명예퇴진 적기” 판단한 듯>이라는 기사에서 “용산 참사 문제는 사건 발생 20일 만에 일단 중요한 고비는 넘었다”고 보도했다. 김석기 내정자 사퇴로 조선일보가 예상한 것처럼 용산 사건의 폭발성은 감소하고, 동아일보가 예상한 것처럼 중요한 고비는 넘었다고 봐도 되는 것일까. 

    서울신문 "검찰 수사결과 당혹스럽고 실망스럽다"

       
      ▲ 서울신문 2월10일자 사설.  
     

    서울신문은 <철거민 유죄, 경찰 무죄로 결론난 용산수사>라는 사설에서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당혹스럽고 실망스럽다”면서 “공권력에 의한 시위진압 과정의 사망은 정당한 공무집행으로 생존을 위한 철거민들의 저항은 범죄 행위로 내몬 데 대해 국민들이 얼마나 납득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검찰 수사결과 발표는 본질적인 의문을 그대로 남겨 놓았다. 용산 참사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은 처음부터 수사의 초점과 거리가 멀었다. 언론이 명백한 증거를 들이대면 그때 수사에 나서는 소극적인 모습은 검찰의 의도를 짐작하게 한다.

    뻔한 수사결과를 발표해놓고 여론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적절한 태도일까. 검찰의 이러한 모습이 가능한 이유는 일부 언론이 “이제 그만하면 됐다”는 측면 지원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용산 참사, 수사결과 넘어 수습의 지혜 모을 때" 

       
      ▲ 동아일보 2월10일자 사설.  
     

    동아일보는 <용산 참사, 수사결과 넘어 수습의 지혜 모을 때>라는 사설에서 “정치권은 사회적 갈등을 확대 재생산해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 해선 안 된다. 민주당의 특검 수사 요구는 정략적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지금 할 일은 철거민과 영세 상인들의 피해를 줄일 합리적인 재개발 정책을 마련해 제2, 제3의 용산 사건을 막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일보는 <용산참사를 전화위복 계기 삼아야>라는 사설에서 “검찰 발표로 용산 참사에 대한 진상은 대부분 드러났다. 하지만 깔끔한 매듭은 아니었다”면서 “다행인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철거민 문제를 포함한 재개발 사업 전반에 걸쳐 법과 제도 정비를 강조했고, 오세훈 서울시장도 세입자 지위 회복, 분쟁 조정 공적기구 설치 등 세입자 배려 정책을 약속하고 있는 점”이라고 평가했다.

    일부 언론은 경찰 책임론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오히려 경찰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중앙일보는 <눈물과 불법 폭력, 악순환 고리를 끊자>라는 사설에서 “이번 사태는 불법·폭력시위를 하면 어떤 식으로든 이익을 보고, 그 결과 불법이 재발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일대 전환점이 돼야 한다. 경찰이 소신을 갖고 법질서를 수호하게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 "이번 수사는 야만의 극치…특검 도입 불가피"

       
      ▲ 경향신문 2월10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사설 <‘용산’ 책임은 철거민·경찰보다 정부·국회에 물어야>라는 사설에서 “경찰의 진압작전을 이번 사태의 직접 원인으로 보고 그 책임을 경찰에 물을 순 없다. 물론 경찰의 진압작전이 서툴렀던 것은 사실”이라며 “정부나 국회, 지자체 등이 나서 재개발 조합과 세입자들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해주는 절차나 제도를 만들었다면 이번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권이 김석기 자진사퇴를 내세우고, 일부 언론이 적당히 덮자는 분위기 조성에 나서고 있지만 용산 참사 논란이 쉽게 가라앉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한겨레는 <이런 수사결과를 믿으라는 건가>라는 사설에서 “정확한 진상규명도, 중립적인 자세도, 법과 원칙도 찾을 길 없다. 대신 정치적 이해타산만 두드러진다”면서 “(대통령의 태도는) 국민 목숨을 아랑곳 않는 오만과 독선이고, ‘야만적인 법질서 의식’”이라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용산 참사’ 수사결과, 기만이고 야만이다>라는 사설에서 “우리는 이번 수사가 국민 기만이고, 야만의 극치라고 본다”면서 “국회 국정조사나 특별검사제 도입이 불가피해진 까닭”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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