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 최초 직불금조례 "꼬박 1년 걸려"
        2009년 02월 09일 10: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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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은미 민노 전북도의원.

    지난해 말 ‘직불금 도둑’으로 일컬어지는 공직자, 부자들의 부당직불금 수령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할 때, 전라북도 의회에서는 직불금 조례를 제정했다. 필자가 발의해 10월에 제정된 조례는 쌀뿐 아니라 밭작물까지 직불금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례를 제정하기까지의 여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우선 농민들에게서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여름에는 마을모정으로, 겨울에는 마을회관으로, 크고 작은 행사를 찾아다녔다.

    그렇게 쉼없이 많은 농민들을 만나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서명을 받았다. 재작년 여름부터 시작한 일이니 꼬박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농촌에서는 아직도 의원이라면 으레 정장을 입은 남성의 모습만을 상상한다. 그러니 보따리 장수처럼 큼지막한 가방을 메고 마을모정으로, 마을회관으로 찾아와 일일이 설명하고 서명을 받는 여성의원의 모습이 그분들에게는 무척이나 낯설었던 것 같다.

    꼬박 1년 큰 가방 메고 마을 찾아디니며 발품 

    서명을 받는 동안 “의원이 직접 와서 농민들을 위해 고생해 줘서 고맙긴 헌디 민주노동당 의원이, 그것도 여성의원이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어린 눈빛도 있었지만, 직불금제도가 경쟁력 강화와 규모화·조직화라는 허무맹랑한 구호를 내세운 현재의 농업정책에서 소외된 소규모 농가, 고령농 등에게 액수가 적든 많든 골고루 돌아가는 제도라는 것을 알기에 모두들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서명을 받는 것 외에도 전북도의 괴상한 논리를 앞세운 방해공작과 도의회의 의지 박약 등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끈질긴 설득과 협박(?)으로 마침내 전국 최초의 직불금 조례를 만들었다. 절절함을 담은 6,000여 농민들의 서명이 바로 조례를 만든 힘이었다.

       
      ▲’사랑방 좌담회’를 통해 의정보고를 하고 있다.  

    지난 해 12월 말부터 나는 마을 회관을 돌며 ‘사랑방좌담회’ 즉 의정보고회를 진행하고 있다. 겨울이 되면 60대 이상 어른들이 회관에 모여 점심식사도 하시고 화투도 치시고 TV도 보시다가, 하루해가 기울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농촌의 겨울 풍경이 되었다.

    농한기인데다가 혼자 사시는 분들이 많은 까닭도 있지만 집집마다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회관에 모여 함께 생활하시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낫기 때문이다.

    마을회관에서 열리는 의정보고회

    전북 순창은 지난해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정동영 전 의원이 태어난 곳으로 작년 대선에서 민주당에 90% 투표율로, 몰표에 가까운 득표를 줬다. 심지어 어르신들을 만나 민주노동당 도의원이라고 하면 바로 “어, 나도 민주당이여!”라며 반가워하신다.

    노동당은 생략하고 무조건 민주당으로 받아들이실 정도로 뼛속까지 민주당 일색인, 민주당이 만년 여당인 지역이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조례제정이라는,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일을 보란 듯 해내는 모습을 보며 이제는 민주노동당에 대해, 여성의원에 대해 아니 정치인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 새롭게 받아들이고 있다.

    처음엔 경계하시던 분들도 이제는 마을회관을 나설 때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손을 흔들어 주신다. 지금까지 다른 의원들은 의원이랍시고 평상시에 한 번도 찾아온 일이 없었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하기보다는 농로·도로포장, 마을 안길포장 등 마을 숙원사업 하나 해결해 주면 그만이었다. 농민들 또한 그들에게 앞에선 아쉬운 소리를 하고도 뒤돌아선 욕을 해대는 악순환이 되풀이 돼 왔던 것이다.

    그러기에 꾸준히 마을을 찾아 농민들의 마음을 읽고 함께하려는 모습이 그분들에게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그 진심을 알고 나서는 손을 흔들어 주시는 것이리라!

    멈출 수 없는 진보정치 실현

    “산에 불이라도 내 고사리, 취나물이라도 뜯어먹고 살게 해줬으면 좋겄어….”

    한 농민의 말이 농민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60대 이상이 70~80%를 차지하고 있는 농촌 현실을 볼 때 우리의 농업·농촌·농민은 억지 죽음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러나 농업·농촌·농민의 죽음은 그들만의 죽음이 아니다. 농촌이 죽으면 다같이 죽는 뻔한 이치를 알면서도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스스로들 이명박을 안 찍었다는 이유로, 한나라당을 안 찍었다는 이유로 자부심과 우월감을 내비치지만 현실은 어떤가? 이명박이 당선됨으로써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곳이 바로 농촌이며, 가장 고통받는 이들이 농민이다.

    깊게 패인 거친 주름살을 조금이라도 펴 줄 수 있는, 농민들의 심정에서 대신 말하고 일해 줄 제대로 된 정치인이 되고자 한다. 지금보다 더 열심히 뛰고 그들과 함께하며 농민들이 믿고 의지하는 그들의 일부가 되고자 한다. 진보정치 실현을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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