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용산은 위험하지 않았다”
By mywank
    2009년 02월 06일 05:5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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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화염병을 투척하고 있어 시민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판단해, 일찌감치 특공대를 투입했다. 예전에 없던 화염병이 난무하고 새총, 골프공을 무작위로 투척한 점으로 미뤄, 시내 중심에서 ‘테러’라고 할 만큼 과격했다.”-1월 20일 김수정 서울지방경찰청 차장 브리핑 중

조기 진압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경찰 측의 증언과는 달리, ‘용산 참사’가 발생되기 하루 전인 1월 19일 철거민들의 건물점거 농성으로 인해 주변 시민들에게 중대한 피해가 발생되지 않았으며, 경찰이 발표한 피해 상황도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된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민변, 인권단체연석회의 등으로 구성된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 진상조사단’은 6일 오후 2시 서초동 민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시 상황을 목격한 주변 상인과 시민, 전철연 회원, 용산 철거민 대책위 관계자 등 17명의 증언을 토대로 경찰 측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지난달 19일 농성장의 상황을 목격한 사람들과 면담한 김랑희 인권단체연석회의 활동가가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랑희 인권단체연석회의 활동가는 “경찰은 ‘철거민들이 경찰․용역뿐만 아니라, 행인에게도 화염병과 벽돌 등을 무차별 투척하고 방화를 시도했다’고 밝혔지만, 1월 19일 농성을 벌인 철거민들은 행인, 차량을 상대로 한 새총 발사, 화염병 투척은 없었다”며 “대치 과정서 벌어진 화재 1건, 차량 유리가 깨지는 피해 1건, 공부방 유리가 깨진 피해 1건 이외에 다른 피해는 없었다”고 밝혔다.

"시민들에게 투척행위 하지 않았다"

그는 이어 “당일 오전 대치 과정에서 주변 건물에 1차례 화재가 발생된 것도 고의적인 방화가 아니라, 경찰의 물대포를 저지하다가 일어난 일”이라며 “이와 함께 경찰보고에서 철거민들의 새총, 화염병이 등장한 시점은 19일 오전 10시 45분 이후라는 내용이 있는데, 경찰은 이미 오전 9시경 경찰특공대에 출동 지시를 내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경찰은 ‘진입작전 전 위해용품 반납 후 자진 퇴거토록 설득․경고 방송을 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당시 목격자들은 ‘19일 설득이나 대화를 요구하는 방송은 듣지 못했다’고 증언했다”며 “이날 오후부터 경찰이 물대포를 사용한 진압을 중단하자, 철거민들의 투척 행위도 소강상태를 보였다”고 밝혔다. 

그는 경찰이 발표한 당시 피해상황의 문제를 지적하며 “경찰은 ‘1월 19일 오전 10시 50분 경 농성건물 옆 신용산빌딩 4층에서 화재가 발생됐고, 1층에 있는 MK치킨과 한강지물포는 영업중’이라고 밝혔지만, 당시 이곳은 영업을 중단한 상태였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경찰은 김 아무개씨의 증언을 들어, ‘19일 오후 2시 남일당 건물 출입구 앞에 모닝차량을 주차했다가 철거민이 던진 돌에 맞아 차량 유리가 파손되었다’고 했지만, 이날 오후 2시는 이미 경찰의 진압이 중단되고 철거민들의 투척 행위도 없었던 시점”이라고 밝혔다.

   
  ▲권영국 변호사가 고 이성수씨와 지석준씨(빨간색 원)가 지난 20일 새벽 남일당 건물 옥상 난간에 있던 상황을 설명 있다.(사진=손기영 기자)

이날 진상조사단은 지난 1월 27일 망루와 옥상에서 1층으로 떨어져 현재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지석준씨와 김영근씨와 나눈 면담 내용과 당시 사진을 다시 공개하고, 검찰이 사인 확인에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는 증언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고 당시 고 이성수, 윤용헌씨와 함께 망루에서 옥상으로 추락한 뒤, 다시 옥상 난간에서 1층 슬라브 지붕으로 떨어져 목숨을 건진 지석준씨는 “망루에서 뛰어내린 당시 이성수, 윤용헌 씨 모두 생존해 있었고, 외관상 별 다른 이상이 없었다”며 “두 분은 살았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망루 안에서 불에 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믿기지 않았다”는 증언을 하며, 이들의 사인에 강한 의혹을 제기해왔다.

진상조사단은 사진 자료까지 제시된 지씨의 이 같은 증언을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한 검찰의 주장에 대해 “사진 속의 인물은 지석준 씨가 맞는데, 검찰은 지씨와 김영근씨를 제대로 구분하지도 못하며, 부실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검찰은 "지석준씨는 그동안 ‘사진 속 매달린 사람이 본인’이라고 주장했지만, 어제(4일) 그를 조사를 해보니 (사진 속 인물은) 다른 농성자 김영근씨였다"며 "지씨도 조사 때는 본인이라고 얘기하지 않았고, 체포경위도 전혀 얘기하지 못해,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밝혔다.  

검찰, 결정적 증언 무시

하지만 기자회견에 참석한 권영국 민변 변호사는 “사고 당시 건물 1층 슬라브 지붕 위에 떨어진 사람은 지석준씨(고 이성수씨와 함께 있다가, 옥상 난간서 떨어짐)와 김영근씨 두 사람이었다”며 “하지만 검찰은 김영근씨 1명만 이곳으로 떨어진 것으로 잘못 파악하면서, 지석준씨의 진술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 변호사는 이어 “김영근씨는 ‘검찰의 1차 조사 때, 이들이 보여준 영상이 흐리고 작아서 구분할 수 없었다’고 진술했고, ‘1층 슬라브 지붕 위에 떨어진 사람이 맞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며 “하지만 검찰의 질문이 ‘옥상 난간에서 1층 슬라브 지붕으로 떨어진 사람’을 묻는 내용이었다는 것을 확인한 뒤, 2차 조사에서 ‘나는 망루에서 1층 슬라브 지붕으로 떨어졌다’고 정정을 요구했지만, 검찰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이 망루에서 직접 건물 1층으로 떨어져서, 옥상에서 숨진 이성수, 윤용현씨를 볼 수 없었던 김영근씨의 진술만 증거로 채택하면서, 실제로 당시 사망자 두 명을 옥상에서 직접 본 지석진씨의 진술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일으키게 만드는 대목이다.   

   
  ▲권영국 변호사와 오윤식 민변 변호사(오른쪽)가 지난 19일 경찰 물대포를 철거민에게 발사한 용역업체 직원의 모습과 당시 사진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한편 진상조사단은 이와함께 모 철거업체 과장이 경찰의 호위 아래, 철거민들에게 물대포를 발사한 일과 20일 새벽 용역직원 5명이 ‘POLICIA’라고 적인 사제방패를 들고, 경찰을 뒤따라 남일당 건물로 진입한 일에 대해 검찰 주장과 달리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밝혔다. 

오윤식 민변 변호사는 “용역 직원이 철거민들에게 물대포를 발사한 것은 ‘폭행죄 및 경비업법 위반죄’를 물을 수 있다”며 “당시 현장 경찰 책임자는 용역직원의 위법행위를 제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묵인, 방조한 것은 ‘폭행죄 및 경비업법 위반죄의 공동정범’과 ‘직무유기죄’가 성립 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또 용역직원들이 ‘POLICIA’라고 적힌 방패를 들고 다닌 것은 경찰공무원을 사칭한 것이고, 또 그 방패를 들고 진압 업무를 위해 경찰과 건물로 진입한 것은 경찰공무원의 직권을 행사한 것이기 때문에, ‘공무원자격 사칭죄’가 성립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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