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억울한 대학입시 시대가 온다
        2009년 02월 06일 10: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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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의 고교등급제 논란이 한창입니다. 일반고 최상위권은 떨어지고 외고는 무더기로 합격했다는 지적이 최근 수치로 입증되었습니다.

    자료의 한계를 퍼즐맞추기로 극복한 권영길 의원실에 따르면, 한 외고는 212명의 지원자 중 190명이 1단계에서 합격하여 89.6%의 합격률을 보였습니다. 내신이 90% 반영되는 전형의 불리함을 극복한 것이기에 실로 쾌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 고려대의 고교등급제 논란이 뜨겁다.

    이런 단적인 사례로 인해 고교등급제 의혹이 작년에 이어 또다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엄격하게 따지면 고교등급제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일반고 안에서 최상위권은 탈락했지만 그 아래의 상위권은 합격한 현상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외고나 특목고를 우대하기 위해 나름의 계산식을 만들었는데, 계산식 자체가 잘못되었거나 운용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한 게 아닌가 여겨집니다. 일종의 입시부정이나 사고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물론 추정입니다. 고려대가 핵심 자료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드러난 결과를 가지고 미로찾기를 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고려대 수시 논란의 또다른 핵심은 바로 이겁니다. 고교등급제 여부가 아닙니다. 고려대만 사실을 알고 있고, 고려대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납득할 수 없으며, 고등학교 진학담당 선생님들조차도 왜 그런지 추측만 해야 하고, 떨어진 학생과 학부모 당사자는 억울한 게 핵심입니다.

    투명성과 객관성이 결여되어, 안개 속을 거니는 느낌 같은 것 말입니다. 앞으로는 고려대와 같은 일이 더 많이 벌어질 겁니다. 이명박 정부의 대입자율화 정책 때문입니다.

    대학의 자율일 뿐

    대입자율화의 대략적인 그림은 △대입 업무에서 교육과학기술부가 손을 떼고 △입학사정관제를 확대하며 △수능 과목을 줄이고 △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등 3불을 폐지하면서 △2012년 이후에는 완전자율화를 하겠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대학이 마음대로 학생을 뽑는 모양새입니다.

    시각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수 있습니다. 선발권은 대학에 있으며 우리나라 대학의 사회적 책임감이 충분하다고 여긴다면 이제는 때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물론 아직은 이르다는 관점도 있습니다. 시장원리를 따른다고 하더라도 “공급자가 소비자를 고르면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할 수 있겠죠.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대입자율화는 대학의 자율일 뿐입니다.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자율이 아닙니다. 학생 진학을 지도하는 고교 교사의 자율이 아닙니다. 그런 만큼 대학 자율은 도가 지나치면 학생, 학부모, 고교 교사에게는 ‘그냥 따르라’로 다가올 수 있답니다. 지금의 고려대처럼 말입니다.

    물론 대학이 사회를 생각하는 방향으로 자율권을 행사하는 그림도 있습니다. 예컨대, 사회양극화를 고려하여 대학들이 기회균등 전형을 확대하는 모습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대교협의 ‘2010학년도 대입전형계획 주요 사항’에 따르면, 올해 입시에서 기회균등 전형은 입학정원의 8.48%랍니다. 대통령과 대학 총장들의 토론을 거친 <기회균등선발 기본계획>에서는 9%인데 말입니다.

    불확실하고 투명하지 않은 입시

    이명박 정부와 대교협은 순조롭게 추진해왔습니다. 작년 6월에는 고등교육법 시행령을 바꾸면서 대입업무를 교과부에서 대학으로 넘겼습니다. 11월에는 사립대 총장들이 모여 본고사는 ‘대학별 고사’ 형태로, 고교등급제는 ‘개인 및 고교의 특성 반영’의 형태로 시행하는 방향을 논의했습니다.

    그리고 12월에는 박종렬 대교협 사무총장이 3불 폐지 검토 발언을 하고, 얼마 전에는 연세대 총장이 2011년 입시부터 대학별 고사(본고사) 검토 발언을 합니다. 여론을 떠보고 있습니다. 대교협이 올 6월에 3불 정책의 운명을 결정하겠다고 했는데, 그 이전에 슬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답니다. 정치를 아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고교등급제를 시행하면 어떻게 될까요. 우선 수년간 일류대에 많이 합격시킨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합니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습니다. 1학년에 입학한다고 하더라도 입시를 치르는 3학년까지는 2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2년 동안 합격생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가령 입학할 때는 5년 동안 평균 5명이었는데, 3학년이 되자 5년 동안 평균 3명이 될 수 있답니다. 그러면 가만히 앉아서 2명분을 손해보겠죠.

    문제는 평균 5명에서 3명으로 줄어드는 게 학생 당사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오로지 선배들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배들의 성적은 학생 당사자가 통제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고교등급제는 연좌제와 불확실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대입자율화의 또다른 정책인 입학사정관제는 어떨까요. 대교협은 입학사정관제를 “수험생의 특기, 적성, 잠재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고등학교 교육과정 운영 등의 특성을 반영할 수 있는 제도”라고 말합니다.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특성을 반영하는 건 필요합니다. 문제는 주체입니다. 입학사정관 개인이 평가하고 반영합니다.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다단계 전형 등을 통해 주관을 제어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주관을 아예 배제할 수 없답니다. 그래서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불공정성과 불투명성이 입학사정관제의 한계입니다.

    그렇다고 입학사정관제가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원래 그런 겁니다. 입학사정관제를 두고 공정성을 말하는 건 식당 가서 휘발유 달라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사회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뿐입니다. 공정성과 객관성을 꼼곰히 따지지 않는 사회에서는 최적의 제도입니다. 하지만 정반대의 사회라면 문제투성이 제도가 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입학사정관제가 발달한 국가는 미국입니다.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심하지 않습니다. 사회에서 출신학교의 이름이 거래되는 정도가 우리에 비하면 새발의 피입니다. 그래서 한 학교 입시에서 떨어져도 “5분만 괴로워하다가 다른 대학을 선택한다”는 표현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고려대에서 떨어지면 50년이 괴로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학생과 학부모 당사자가 납득해야 합니다. 내가 왜 탈락했는지 납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해할 수 없으면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점수와 거트라인을 선호합니다. 왜곡된 노동시장과 대학서열화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우리의 토양입니다.

    이런 토양에서 불확실성을 안고 있는 제도가 성공할지는 미지수입니다. 누구는 입학사정관의 눈에 들어 합격하고, 누구는 입학사정관과 접촉할 기회조차 없어서 탈락했다고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입학사정관이 특목고와 자사고를 우대하는 제도로 악용되면 어떤 논란이 발생할까요.

    대입자율화의 다른 제도는 본고사인데, 본고사의 불확실성은 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경험하였듯이 고등학교 교육과정 범위를 넘어 문제가 출제됩니다. 그동안의 출제경향을 통해 올해 문제를 추측할 수 있을 뿐, 어디에서 문제가 나올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의 대입자율화는 불확실성을 어느 정도 안고 있습니다. 물론 구체적인 제도 하나하나의 비중을 가지고 제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중이 크든 적든 간에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면, 그게 우리의 토양에서 어떤 결과를 낳을지 의문입니다. 혹자는 “아니, 시장의 투명성은 강조하면서 입시의 투명성은 제고하지 않느냐”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안개 속을 걷는 방법은 사교육과 경제력

    정부 관계자가 한 마디 신호를 보내면 시장이 반응합니다.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려대의 고교등급제 논란은 그 자체가 하나의 신호입니다. 특목고나 앞으로 세워질 자율형 사립고 등에 진학하라는 신호입니다. 그래서 특목고 대비 사교육을 지금보다 더 이른 나이에 시키는 것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영어는 필수입니다.

    3불 폐지와 관련한 일련의 발언들 역시 신호입니다. 불확실한 입시에 대비하는 방향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불확실한 입시란 예측하기 어렵다는 의미인 까닭에, 준비가 여간 난처합니다. 그래서 확실한 줄이라고 믿는 것을 잡아야 합니다.

    예컨대, 그동안의 본고사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 사교육시켜야 합니다. 학교 교육과정을 벗어나 어디에서 문제가 튀어나올지 모르니 소위 ‘교과서만 열심히 팠다’는 거짓말은 통용되지 않습니다.

    사교육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2012년 이후에 완전자율화라고 밝혔지만, 그 시기는 언제든지 앞당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년 6월에 고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3불을 어긴 대학에 대한 제재수단이 실종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려대의 고교등급제 논란에 대해 교과부나 대교협 모두 ‘권한이 없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이건 다르게 보면, 대학들의 결심에 따라 지금까지 은근슬쩍 해오던 것에서 탈피하여, 예컨대 내년부터 고려대는 대놓고 고교등급제를 하고, 연세대는 본고사를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사교육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리고 실탄도 두둑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불확실하기 때문에 길을 찾는 정보비용이 필요한데, 그만큼 학원비가 인상될 게 뻔하니까요. 거기다 안심할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하려면 아무래도 고가의 명품 사교육을 받아야 할 겁니다.

    이상이 정부와 대학 관계자가 보낸 신호를 따라 행동하는 요령입니다. 남은 건 실제 움직이는 겁니다. 하지만 주식시장에서 성공한 개미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관계자들이 보내는 신호를 보고 제대로 반응하여 소원성취한 경우도 있겠지만, 또는 이미 내부정보를 입수하여 성공한 이들도 있겠지만, 높은 담장에 둘러싸인 사람들만 그럴지 모릅니다. 서서히 유리천장이 우리 머리 위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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