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맨스 빠빠>와 장면 정권 & 쿠데타
        2009년 02월 06일 09:4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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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현대성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집단적 역사의 기억을 새기는 사회적, 정신적 장치다. 굳이 기록영화가 아니더라도 당대의 의식과 풍습을 담아내고, 대중적인 상영을 통해 공유되는 상업영화는 역사적 기억을 활용하며 그것을 재현하고 재구성하면서 당대의 기억을 기록한다.

    그러므로 영화는 특정 시기의 특정 상황을 내러티브와 이미지를 통해 표현함으로써 당대의 기억을 조정하는 한편, 영화 속에 표현된 요소들이 지니는 당대의 문제에 대한 해결점을 모색하는 매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영화사의 특정 시기를 이야기하고자 할 때, 또는 특정 시기의 한국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할 때 영화가 당대의 역사와 맺고 있는 관계를 표현된 이미지와 서술된 내러티브에 대한 미학적 해석을 통한 분석뿐만 아니라 그 시기의 정치적, 사회적 배경이 영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지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영화는 시대를 증언한다

       
      ▲영화 <로맨스 빠빠> 

    한국사의 특정 시기인 1950년대 말부터 60년대 초 사이의 정치적, 사회적 현실을 통해 그 당시의 한국 영화를 텍스트 삼아 영화에 재현된 당대의 기억이 당대의 역사적 현실과 맺고 있는 관계를 살펴보자.

    이 시기는 정치적으로는 자유당 정권의 몰락과 군사독재 정권의 출현 사이에서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대중적으로 광범위하게 불거진 시기이자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의 기틀이 형성된 시기이며, 사회적으로는 미국 중심의 모더니티가 전방위적으로 사회를 장악해가는 시기였다.

    또한 이 시기는 한국 영화의 본격적인 중흥기에서 난립기를 거쳐 산업으로서의 기업화의 토대가 마련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 한국 영화계의 대표적 감독이자 제작자라고 할 수 있는 신상옥 감독이 자신이 세운 신필름에서 제작, 발표한 영화 <로맨스 빠빠>와 <서울의 지붕 밑>는 역사적 기억을 일상에 담아낸 흥미로운 작품이다.

    또한 이 영화들은 한국영화사에서 고전으로 꼽히는 작품이며, 한국영화 데이터베이스 사이트에서 누구나 쉽게 온라인 VOD 서비스를 통해 찾아볼 수 있는 작품이다.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사정권은 새로운 사회질서를 구축하면서 이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영화계에 대해서도 새로운 개편안을 구상하고 ‘보호와 육성’이라는 명목 아래 ‘통제와 관리’를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영화법을 제정했다.

    군사정권 영화정책과 신필름

    이에 따라 당시 65개 사에 이르던 영화사가 16개 사로 통합되었는데 신필름 만이 유일하게 단독으로 등록한 영화사였다. 이것은 신필름의 기반이 그만큼 안정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다.

    영화사의 대형화를 유도하기 위해 통합 조치가 시도되면서 제작사들의 재편이 이루어졌지만 기본적인 부실이 개선되지 않은 채 외형상의 통합만 이루어지자 정부는 보다 강화된 시설 기준을 적용하고, 제작과 수입으로 이원화되어 있던 영화계를 제작자 중심으로 개편하는 새로운 정책을 제시했다.

    이런 정책은 영화계의 중심축을 영화제작에 두되 규모의 대형화를 통한 내실화와 물량의 수급조절을 통한 유통관리를 목표로 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영화기업화를 추진하는 것이었다. 새로이 강화된 기준에 따라 등록을 신청한 영화사는 8개에 불과했고, 이 중 6개 사가 허가를 받게 되었는데 ‘신필름’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영화법이 의도했던 기업화 정책이라는 측면에서 신필름은 성공적인 사례였다. 신필름은 전용 촬영소와 전속 배우를 확보하고 교육시설과 배급망, 해외 시장 진출에 이르기까지의 종적 통합을 이루면서 모두 224편에 이르는 영화를 제작하였다.

    그러나 신필름은 설립자이자 운영의 실세였던 신상옥 1인 중심의 운영체제를 유지하면서 그의 성쇠에 따라 영화사 자체가 부침을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

    50년대 초반에서 7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신필름의 활동 시기는 크게 보아 신상옥 감독이 데뷔작 <악야>를 제작하던 54년부터 61년 <성춘향>으로 확고한 기반을 잡기까지의 설립기, 정부의 기업화 정책과 더불어 발전을 거듭한 70년까지의 성장기, 이후 75년 이른바 ‘예고편 사건’으로 정부에 의해 허가를 취소당하기까지의 침체기로 구분할 수 있다.

    가족 보수성의 기원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50년대 말에서 60년대 초반 까지는 이 중 신필름의 설립기에 해당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신상옥 프로덕션’을 설립한 신상옥이 직접 감독한 <로맨스 빠빠>는 흥행과 작품성 모두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면서 신필름이 기업적 활력을 갖출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이 영화는 또한 소시민 가족을 둘러싼 당대의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므로 정치적 격변기인 특정 시기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어떻게 재현되고 무엇을 표상하는 가를 당대 최고의 감독과 제작사의 시선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는 흥미로운 텍스트이기도 하다.

    가족은 한 사회가 개인을 구속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기본적인 집단이다. 가족을 통해 한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유지되고 재생산된다. 각자 다른 성과 세대에 속하는 가족의 구성원은 가족이라는 혈연 집단의 직접적이고도 강력한 물질적 관계 속에서 통제 당함으로써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승인된다.

    가족은 관습법과 실정법이라는 두 가지 엄격한 법에 의해 승인될 때만이 정당성이 승인되며, 그 승인을 위해서는 합법적인 결혼과 그 결혼에 의한 출생에 의해서만 신분이 보장되는 극도로 폐쇄적인 사회집단이다.

    가족은 대개 한 계급 또는 계층에 속하며, 각 계급에 속하는 가족은 그 가족이 속한 계급의 전형을 가족 내에서 구현하기 위해 강한 내적 규범으로 가족 구성원을 지배한다. 그러므로 가족을 구성하는 개개인의 의식 수준과는 별개로 가족 내 관계를 유지하는 바탕은 강한 보수성이다.

    일단 한 개인이 가족 내 성원으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거부하지 않는 한 그 개인은 보수적 존재여야 한다. 보수성에 반기를 들게 된다면 가족은 해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복한 가족’에 대한 영화는 보수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보내는 영화이다.

    ‘행복한 가족’에 대한 영화의 이데올로기

    대체로 가족의 구속력은 어지간한 외적 충격보다 훨씬 강력한 것일뿐더러, 자기 보존의 본능이 우선적으로 작용하는 생물학적 집단인 까닭에 외부로부터의 위해가 가해지면 내적 결속력이 더욱 견고해진다. 그런 까닭에 한 사회가 변화를 겪을 때 가족은 사회의 균열과 혼란을 방지하는 완충제로서 탁월한 기능을 행사한다.

    가족의 성원 각자가 겪는 사회의 변화가 가족 내로 전화되면서 가능한 한 가장 보수적인 경계를 사수하면서 사회의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족에 대한 영화는 그 영화가 제작되는 사회의 균열과 문제를 가족 내 갈등으로 그리면서 사회상을 반영하게 된다.

    <로맨스 빠빠>는 데이터베이스 분류가 지금처럼 서양식 장르 구분을 따르지 않던 몇 년 전까지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통속’이라는 장르로 구분해 놓았던 영화이다. 같은 해에 제작된 영화 87편 가운데 64편이 ‘통속’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1960년의 사회상이 어떠했기에 이렇게 많은 통속 영화가 제작된 것일까? 1960년은 변혁기였다. 4․19로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면서 비교적 자유로운 정치적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나, 혁신 세력이 참패하고 장면 정권이 들어서게 되는 7월 선거에서 당시 한국 사회의 보수성을 잘 볼 수 있다. 그리고 <로맨스 빠빠>가 개봉된 해인 1961년에는 쿠데타에 의한 군사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60년 7월에서 61년 5월 사이의 제2공화국 기간은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시기였다. 1960년에 행해진 여론 조사에 따르면 정부에 대한 가장 ‘시급한 요구’의 첫 번째 항목으로 실업자 구제와 물가 안정을 들고 있다.

    이런 경제적 난국을 해소하기 위해 61년 초 장면 정부는 5개년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했으나 제2공화국의 붕괴로 실행되지 못했다. 나중에 이 계획은 새 군사정부의 5개년 계획의 근간이 되면서 박정희의 치적으로 돌려진다. 1960년에서 61년까지의 시기는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난국 속에서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균열이 두드러지게 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 쿠데타군.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제작되고 개봉된 <로맨스 빠빠>에는 당시의 혼란과 균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코믹한 캐릭터로 제시되는 가장의 모습 자체가 실추된 가장의 지위를 보여주는데, 강력한 가부장적 표상의 사회에서는 가장의 희화화란 있을 수 없는 패륜일 터였다.

    로맨스 빠빠와 장면 정권

    김승호가 탁월하게 형상화해낸 가장의 캐릭터는 장면 정부의 모습을 그대로 의인화한 듯 권위를 상실했으며, 대책 없이 낭만적이고, 무능하며, 엉뚱하기까지 하지만 몹시도 인간적이다.

    당대를 대표하는 간판 배우들이 총출동한 화려한 출연진은 당시의 자유주의적인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나이와 성별에 따라 주장하지만 ‘가족 이데올로기’ 앞에서만큼은 자신의 입장을 유보하고 든든한 유대관계를 형성한다. 60년에서 61년 사이를 한 마디로 표현하는 이데올로기인 낭만적 자유주의를 표방한 보수주의가 한 가족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로맨스 빠빠>의 가족은 소시민이다. 균열과 혼란의 시기에 소시민이 겪는 문제는 얼핏 소소한 듯 보이지만 그 근원에는 엄청나게 폭력적인 사회적 배경이 있다. 한국 역사상 가장 자유주의적인 시기였다는 1960년에 ‘통속’이라는 장르의 영화가 그토록 많이 제작되었다는 것은, 그렇게 여러 가지로 형상화되어야 할 정도로 사회 전반에 문제가 산적해있어서 개인이 겪어내기에 힘겨운 시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해에 역시 ‘통속’으로 구분되어있는 김기영의 <하녀>가 제작되었다는 것은 그 시기에 가족이라는 틀이 겪는 문제의 스펙트럼과 그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스펙트럼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이 영화는 명보극장에서 개봉되어 흥행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제2회 문교부 제정 최우수 국산영화상을, 제7회 아시아 영화제에서는 주연 배우 김승호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제4회 부일영화상에서는 작품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런 출발을 바탕으로 이후 신상옥 프로덕션은 명실상부한 대형영화사로 자리 잡게 되면서 61년 <성춘향>을 통해 당시까지 제작된 한국영화 중 최고의 흥행신기록을 수립하기에 이른다.

       
      ▲신상옥 감독 

    신필름은 신상옥이라는 걸출한 영화인 개인의 부침을 통해 한국영화사를 둘러싼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현실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는 사례다.

    한 뛰어난 개인이 지닌 기획자로서의 역량과 감독으로서의 재능이 시대의 변천에 따라 탁월한 성과를 거두기도 하고, 정책의 변화에 따라 흥망성쇠를 겪으며 급기야 영화계에서 사라져 버리는가 하면, 분단 상황에서 남과 북을 오가며 영화보다 극적인 현실을 직접 체현하면서 역사적 사건 자체의 중심 인물이 되기도 했다.

    (<로맨스 빠빠>는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http://www.kmdb.or.kr 에서 추천 VOD로 온라인 상영중이니 극장가에 개봉중인 볼만한 한국영화가 별로 없다고 불만인 분들은 찾아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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