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모 얼굴 공개 실익 전혀 없다"
        2009년 02월 05일 09: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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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서남부 연쇄살인 피의자 강모씨에 관련해서는 <조선일보>, <중앙일보>가 그의 얼굴을 앞장서 공개한 후 <KBS>, <MBC> 등 대부분의 언론이 그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한 이후라 강모씨에 대한 신상 비공개는 이미 의미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범죄피의자의 신상 공개문제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 경기서남부 연쇄살인 피의자 강모 씨

    그와 같은 논란은 사회적, 정치적 파장이 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다.

    일부 언론은 2006년 5월 경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 피습사건 때도 피의자 지충호의 실명과 사진, 신용카드 및 핸드폰의 사용내역을 공개하였고, 2004년 7월경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을 보도하면서도 유영철의 가족관계 등을 보도하였다.

    흉악범에게는 보호해줄 인권이 없다거나 국민의 알권리 보장, 범죄 예방 효과 등이 공개의 근거였다.

    여기서 그와 같은 근거들이 타당성이나 설득력을 가지는지 한 번쯤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피해자의 인권, 기본권 역시 당연하게 보장되어야 하지만, 이는 범죄피의자의 신상 공개 문제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므로 검토에서 제외하도록 하겠다.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신상 공개 주장 논거 타당성, 설득력 낮아

    이번 연쇄살인 피의자 강모씨의 경우에도 가장 공격적인 신상 공개의 논거는 ‘인권은 지켜줄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만 적용된다’라는 것으로 보인다. 참으로 노골적인 논거다. 흉악범에게는 인권이나 기본권이 없다고 이야기하면 범죄피의자의 신상 공개논쟁은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관심이 매우 크고, 분노와 지탄을 불러일으켜 기본권 제한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건일수록 역설적으로 인권, 기본권을 보장해야 할 필요성이 가장 큰데, 무릇 헌법상의 기본권이란 그와 같은 경우를 위해서 존재하는 최소한의 것이기 때문이다.

    ‘신원 공개를 통한 사회적 응징(동아일보)’이 필요하다는 논리도 있다. 그와 같은 사회적 응징 대상은 우선은 피의자 그 자신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흉악범죄를 저지른 피의자가 단지 자신의 신상이 공개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얼마큼 고통을 받을지 의문이며, 흉악범죄에 대해서는 수사와 재판이라는 사법절차를 통해서 그에 대한 대가를 받게 한다는 점에서 별도의 사회적 응징이 필요한지도 의문이다.

    오히려 범죄피의자의 신상 공개를 통해서 실제로 사회적 응징을 받는 자는 범죄피의자의 가족들일 것이다. 그러나 현대 형벌론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원칙 중의 하나가 자기책임의 원칙이라는 점에서, 실제 범죄행위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범죄피의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낙인이 찍히는 것이 타당하다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이외에도 국민의 알권리 보장, 범죄의 진실 규명, 범죄 예방, 경각심 고취(한국외대 법대 교수 문재완) 등이 논거로 제시되기도 한다. 그런데 단순한 호기심(혹자는 이를 ‘분풀이성 관음증’이라 하기도 한다) 이외에 흉악범의 실명과 얼굴을 보는 것을 통하여 국민의 어떠한 알권리가 보장되는지도 의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법원의 판례가 참고할 만하다. 이 판례에 의할 때도 다른 이유 없이 단지 흉악범이라는 이유만으로는 피의자의 실명, 얼굴이 국민의 알권리 대상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법원, “신원 밝힐 수 없음이 원칙”

    “범인과 범죄혐의자에 대한 공개적 신원노출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으며, 그에 따라 범죄에 관한 언론의 보도에 있어서는 관계인의 신원을 밝힐 수 없음이 원칙이다. … 공적 인물이 아닌 자의 범죄 혐의 신원확인 보도는 공적 인물의 경우보다 더욱 엄격한 요건을 요하는 바,

    첫째로 그 범죄행위를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 시사에 관한 포괄적 정보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하고 여론 형성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서 기사 작성상 불가피하거나 또는 범행이 직접적인 정치적 관련을 갖는 것이어서 그 중대성 때문에 포괄적인 해설을 필요로 하는 경우라든가,

    둘째로 그의 범행이 사회적으로 고도의 해악성을 가지며,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공적 생활이나 기타 사회의 상위 이익에 대하여 직접적 연관을 갖는 경우에 한하여 그 신원을 명시한 실명보도나 그 초상의 보도가 허용되나,

    범행의 증명이 확정되지 아니한 단계에서는 그러한 요건을 충족한다 하더라도 그 혐의를 사전에 보도하여야 할 특별히 불가피한 이유가 있거나, 그의 범행이 자의로 진술된 신빙할 만한 자백에 의해 증명되었거나 다툼이 없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된다.” – 서울고등법원 1996. 2. 27. 선고 95나24946

    범죄피의자의 실명 및 얼굴 공개로 범죄 진실, 추가 범죄가 규명된다고 한다면 수사가 왜 필요한지, 그렇다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공개한 후 혹시 범죄사실을 목격한 사람이 있는지를 왜 묻지 않는지 의문이 든다.

    피의자 강모씨와 같은 흉악범이라면 영원히 사회와 분리될 것인데, 그의 실명, 얼굴 공개를 통하여 무슨 범죄를 예방한다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또한 연쇄살인 피의자 강모씨의 얼굴 공개를 통하여 많은 국민들이 불안감과 불신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은 들었어도 국민의 경각심이 고취되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여기서 범죄피의자의 신상 공개 문제는 공익적 필요와 피의자의 인권, 기본권이라는 사익과의 충돌 문제이다. 따라서 일정한 상황, 조건, 제약 속에서는 범죄피의자의 기본권도 제한될 수 있고, 범죄피의자의 신상도 공개될 수 있을 것이다.

    사형제 부활론, 피의자 인권 축소 전주곡?

    그렇다면 그와 같은 일정한 상황, 조건, 제약 등이 무엇인지 먼저 사회적으로 진지한 논의와 합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인데, 현재까지 그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헌법상의 형사피의자 및 피고인에 대한 무죄추정의 원칙(제27조 제4항), 개인의 인격권(제10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제17조), 그와 같은 기본권을 법률에 의해서 뒷받침하는 형법상의 피의사실공표죄(제126조) 등과 법원에 의해서 확립된 위와 같은 판례라고 할 것이다.

    그와 같은 사회적 논의, 합의 없이, 단지 여론의 요구라는 이유로 이루어지는 일부 언론의 범죄피의자에 대한 신상 공개는 단순히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일으키기 위한 도구이거나 또는 신문을 많이 팔거나 시청률을 높이려는 수단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와 같은 범죄피의자의 신상공개가 실질적인 폐지상태인 사형제의 부활론 주장, 피의자 인권축소 주장의 전주곡이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과 두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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