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 간첩 초선의 활약
    2009년 02월 05일 08:35 오전

Print Friendly

   
  ▲ 그림=억수씨

화웅이 관우에게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동탁은 곧바로 20만 대군을 일으켜 연합군과 전면전을 펼칠 태세를 취했다. 동탁은 대군을 둘로 나누어 5만 군사를 사수관(汜水關)으로 가게 하는 한편, 자신은 이유, 여포 등과 함께 15만군을 이끌고 ‘호뢰관(虎牢關)’에 진을 쳤다. 호뢰관은 낙양성 50리 밖에 있는 주요 길목이다.

그러나 동탁은 이곳에서도 역시 반동탁 연합군에게 밀리기 시작한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이때 동탁의 모사인 이유가 다시한번 계략을 낸다.

천도(遷都) 정치

"장군, 아예 낙양을 포기하는게 어떨지요?"
"아니 책사, 그게 무슨 말이오.?"

"원래 조조가 주도해서 소집한 17로의 의군들은 말로는 황제를 보위한다는 그럴싸한 대의명분을 걸고 있습니다만, 사실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하긴, 이 세상에 괜히 고상한 기치를 핑계로 자기 잇속만 차리는 경우가 많지."

"맞습니다 장군, 우리도 천자를 바꿀 때 괜히 이상한 정치적 명분을 들이대지 않았습니까? 저들의 실제 속내가 뭔지를 잘 알아야만, 적절한 해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
"그럼, 저들의 실제 속내는 뭐요?"

"17로의 제후들은 사실 저마다 낙양을 점령하거나 자신이 황제를 차지하여 제각각 실권을 장악하고자 하는 속셈이 있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만약 여기서 우리가 낙양을 그들에게 줘 버리고 황제를 낚아채 멀리 가 버리면 저들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흠.. 일리가 있는것 같소만.. 낙양을 버리면 우리도 모든 것을 잃는게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도읍을 장안으로 옮겨 천자를 그리 데리고 가면 됩니다. 새로운 궁궐을 짓고 도읍을 건설하는 일은 낙양의 백성들을 끌고 가서 하면 되지요. 장안은 농우 지방이 가까워 큰 나무와 석재, 기와 등을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또 효산과 함곡관 같은 천혜의 요새가 있고 지형이 험해 낙양보다는 훨씬 수비하기 유리한 곳입니다."

동탁이 가만 생각해 보니 절묘한 계책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은 무조건 정면으로 싸워서 상대를 쳐부수는 것만 관심을 가졌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상대의 목표를 들어주는 척하면서 이를 무력화 시키는 것도 매우 좋은 해법이었던 것이다.

무작정 적들을 깨부수기보다는 저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되 껍데기만 만들어 던져줌으로써 적의 열정을 감퇴 시키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17로의 제후 연합군은 거대 집단이기는 하지만 내부를 잘 살피면 저마다 생각과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입니다. 우리가 낙양을 내주면 자기들끼리 논란이 발생할 것입니다."

동탁이 무릎을 치며 명령을 내렸다.

"옳소. 책사, 그대는 나의 꾀주머니요. 즉시 실행하시오"
"예!"

조조, 일을 벌이다

이유는 그 즉시 천도령을 내려 천자와 문무백관들은 물론, 낙양의 백성들도 모조리 강제 이주시키기 시작했다. 백성들을 5천명 단위로 묶어 조를 짜고, 그 사이에 병졸들을 끼워 장안으로 내몰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 장안으로 끌려가는 사람들은 부자건 가난뱅이건 재산을 몽땅 빼앗긴 것은 물론이었다. 장안으로 가는 긴 행렬은 원통함과 울부짖음으로 가득했다. 백성들의 원성은 하늘에 닿고도 남았다.

뿐만 아니었다. 동탁은 낙양을 떠나면서 이유의 계책대로 초토화 전술을 구사하였다. 모든 민가와 궁궐에 불을 지르고 낙양 전체를 태워 없애버린 것이다. 한나라 200년 도읍지인 낙양은 하루 저녁에 잿더미가 되었다. 말 그대로 곧 들이닥칠 연합군의 목표를 완전히 지도상에서 지워버리다시피 했던 것이다.

사태를 파악한 반동탁 연합군 중에 맨 먼저 낙양에 들어선 것은 사수관 쪽에서 진입한 손견의 군대였다. 그러나 동탁이 모든 것을 태워버린지라, 사수관에서 낙양으로 오는 수 백리 길 위에는 사람은 물론 닭이나 개 같은 가축도 한 마리 눈에 띄지 않았다. 그렇게 손견을 필두로 17로 의군들의 여러 제후들도 속속 낙양으로 몰려와 진을 쳤다.

그 때 조조는 낙양에 진입하자마자 곧바로 원소를 찾아가 건의했다.

"지금 동탁이 장안을 향해 떠났으니 당장 추격합시다. 이 기회를 이용해 뒤를 치면 동탁을 잡을 수 있습니다. 빨리 군사를 움직이십시오."

그러나 총대장 원소는 이에 반대했다. 원래 목표가 낙양 점령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고려해볼 것이 많았던 것이다. 또 어차피 추격군을 예상하고 있을 적의 매복이 걱정되기도 했다.

젊은 조조는 그러나 퇴각하는 적의 뒤를 쳐야 한다는 자기 확신에 너무나 차 있었다. 조조는 생각해 볼수록 자기 감각에 믿음이 갔다. 조조는 드디어 일을 벌였다. 말해도 듣지 않는 다른 제후들과의 합동작전을 포기하고 1만여 명의 자기 군사들만 신속하게 몰아 동탁의 뒤를 쫓기로 한 것이다.

함정에 빠진 조조

조조는 동탁 일행이 재물을 실은 수레들과 부녀자들을 대동하고 있어 행렬이 느리고 행동도 굼뜰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추격하라! 동탁은 아직 멀리 가지 못했다."

조조는 군사들을 독려하며 맨 앞에서 추격을 시작했다. 그러나 동탁은 그에 대한 대비가 이미 되어있었다. 추격군을 대비해 주요 길목에 미리 군사를 매복시켜둔 것이었다.

조조는 동탁의 대오를 쫓던 중 뒤를 지키던 여포의 3만 대군을 만났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뒤에 숨어있던 1만의 매복군이 나타나 조조군의 대오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조조군은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갔다. 그때서야 함정에 빠진 것을 안 조조는 급히 퇴각명령을 내리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조조가 정신없이 말을 달려 겨우 어느 산기슭에 당도해 보니 온 종일 쫓기고 지친 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조조는 그 자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러나 군사들이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사방에서 진동하는 함성과 함께 한 무리의 매복군이 또다시 덮쳐왔다.

조조는 다시 말을 몰아 도망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이제 조조의 주위에는 10여명 남짓한 군사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군사들이 태반이었다. 장수들은 난전 속에 뿔뿔이 흩어져 어디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참으로 처절한 패배였다. 그 때였다. 조조가 그렇게 패배를 한탄 하고 있는 순간 또다시 어디선가 고함 소리가 들렸다.

"저기 조조가 있다.!!"

그리고 갑자기 날아온 화살 하나가 조조의 한쪽 어깻죽지에 꽂혔다. 조조는 팔이 끊어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말 잔등에서 툭 떨어지고 말았다. 이젠 정말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순간에 뜻밖의 구세주가 나타났다. 조조의 동생 조홍이 홀로 산중을 헤매다 문득 조조를 발견하고 급히 그쪽으로 달려온 것이다.

구사일생

"형님, 정신 차리십시오. 홍입니다."

조조가 고개를 들어보니 낯익은 동생의 얼굴이 들어왔다.

"형님, 상황이 위급합니다. 어서 말에 오르십시오."
"홍아! 난 틀렸다. 너라도 빨리 이곳을 빠져 나가라. 너만이라도 살아서 후일을 도모해다오."

그러나 조조의 말에 아랑곳없이 조홍은 조조를 말 위로 들어 올리며 말했다.

"천하를 위해 저는 없어도 되지만, 형님은 꼭 살아계셔야 합니다.!"

위급한 순간에도 그런 말을 들으니 조조는 약간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였을까? 조조는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그 순간에도 동생에게 정치적으로 감사표시를 잊지 않았다.

"내가 만약 목숨을 보전한다면, 그것은 순전히 네 덕분이다."

조홍은 칼을 빼들고 조조가 탄 말고삐를 잡은 채 자신은 두 발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뛰다 보니 이번에는 앞을 가로막고 있는 커다란 강물이 보였다. 조조는 순간적으로 ‘나의 운명도 여기까지 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점점 약해지는 조조와 달리 조홍은 포기하지 않았다. 조홍은 우선 조조를 말 위에서 내리게 한 뒤 강을 건널 준비를 했다. 그는 칼을 입에 물고 조조를 업은 후 강물에 뛰어들어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다행히 강은 깊지 않아 물은 턱밑까지 차오를 정도 였다. 그러나 그렇게 한참 강을 건너던 조홍의 눈에 강 건너에서 조조를 찾아 두리번 거리고 있는 동탁군의 일개 부대가 보였다.

상대를 발견한 것은 저쪽도 마찬가지 였다. 곧바로 강건너에서 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조홍은 물위에 숨어있다 말고 벌떡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조조도 있는 힘껏 동생을 따라 달렸다.

그때 또 다시 앞쪽에서 칼을 들고 조조에게 달려오는 10여기의 군사가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그들은 조조의 행방을 애타게 찾아다니던 하후돈과 하후연이었다. 서로 반가움을 교환할 새도 없이 조조 일행이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또 한 떼의 군마가 다가왔다. 조조가 놀라 그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들은 조인, 이전, 악진 등 조조의 장수들이었다.

겨우 살아남기는 했으나 조조의 심경은 착잡하기 이를데 없었다. 1만의 군대를 이끌고 갔으나 남은 군사를 수습해보니 고작 5백 명을 넘지 못했던 것이다.

조조는 속으로 탄식했다.
"아! 내가 내 머리를 너무 믿었다가는 일찍 죽겠구나!"
그 일이 있은 뒤, 17로 연합군의 동탁 추격 시도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미녀 초선의 괄괄한 입

한편, 무사히 장안에 도착한 동탁은 곧바로 백성들을 후려쳐 궁궐을 짓기 시작했다. 또 다시 낙양에서처럼 공포 정치를 시작한 것이었다. 동탁은 백성들을 거의 노예나 다름없이 다루면서 사람 죽이기를 밥 먹듯이 했다. 그것은 명박병법의 원리를 그대로 계승한 것이었다. 명박병법은 이렇게 쓰여있었다.

"본시 백성의 군대라 함은 물리적인 조직 상태가 아니라 심리적인 조직 상태이다. 따라서 백성의 군대는 어느덧 쉽게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근본에 있어 공포에 취약하고 도망가기를 즐겨하는 습성이 있다. 하여 잠재된 백성의 군대를 대할 때는 적의 심리상태가 어느 단계인지를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적의 심리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일반 백성들의 예측 수준을 뛰어넘는 새로운 공포를 창조해 백성의 군대가 근원적으로 태동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마치 무슨 공포영화의 선전 문구 같은 이런 원리가 동탁이 신봉하던 명박병법의 기본이었던 것이다. 백성들 외에 황제를 포함해 문무백관들도 억지로 끌려오기는 마찬가지 였다. 이들에겐 일반 백성들처럼 노역이 부과되지는 않았지만, 백성을 통제하고 동탁이 하달한 각종 공사명령을 수행하는 역할이 맡겨졌다.

이 때 함께 끌려온 관료들 중에 사도 왕윤이 있었다. 왕윤은 더 이상은 동탁의 폭정을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동탁이 황제를 끌고 강제 천도를 할 때부터 어떻게 동탁을 죽일 수 있을지 만을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동탁을 제거하려면 무엇보다 동탁의 일거수일투족에 관한 자세한 정보가 필요했다.

생각 끝에 왕윤은 자신의 집에 기거 중인 초선에게 그 일을 맡겨보기로 했다. 초선은 본시 태학에서 일하던 하급 여자 관원이었다. 초선은 동탁이 청류파 학살을 위해 태학 문 앞에서 벌였던 대규모 살상극 당시 현장에 있다가 부상을 입고 가까스로 도망쳤다. 그 때 청류파의 존경을 받고 있던 왕윤의 집에 겨우 피신해 있다가 장안까지 따라오게 된 것이었다.

초선은 그날 사건 이후로 ‘폭력, 학살정권 타도를 위한 청류파 직접행동단’의 일원이 되었다. 그 사건 당시 초선의 언니 재선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동탁에 대한 초선의 분노는 극에 달해있었다. 그런 초선이를 잘 알고 있었던 왕윤은 초선이를 동탁의 근거리에 심어놓고 동탁의 동선을 파악해 암살의 기회를 잡고자 했던 것이다.

왕윤이 초선을 불러 ‘천자가 어떠니 공자가 어떠니 세상이 어쩌니..’ 하는 얘기를 떠들기 시작했다. 물론 결론은 초선이에게 험한 일을 좀 맡아달라는 얘기였다.

초선은 어쩌면 생명을 걸어야 할지 모르는 험한 일을 순순히 승낙했다. 그리고 예쁜 입술을 오물 오물거리며 쌍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개떡 같은 미친놈은 콱 밟아 죽여 버려야 해요!"

동탁과 여포

초선이는 얼굴은 아름다웠으나 성격은 외모와 달리 괄괄한 성격이었다. 다소 괴팍하다 싶을 정도로 다혈질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동탁의 곁에 들어가 내부정보를 빼내서 보내다오.!"

초선은 그 자리에서 과감하게 말했다.

"알았어요. 제가 몸을 던져 꼭 그 인간 말종의 끝을 꼭 볼거에요."

왕윤은 벌떡 일어나 초선에게 큰절을 했다. 스무살 꽃다운 처녀 초선을 동탁의 집에 들여보낼 생각을 하니 앞으로 그가 어떤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왕윤은 그러나 이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처럼 믿고 따르던 왕윤이 자신에게 절을 하자, 갑작스런 상황에 놀랄 법도 했지만 초선은 그 순간 자신이 절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스무 살 청년 초선에게는 뭔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뻗쳐 나오는 알 수 없는 정의감에 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왕윤은 그 일이 있고 얼마 뒤 초선이를 동탁의 처소로 보낼 수 있었다. 동탁은 하루가 멀다 하고 전국에 명을 내려 미녀를 올려 보내라고 독촉을 해댔기 때문에 초선이를 동탁의 처소에 추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왕윤이 초선을 동탁의 집에 들여보내고 얼마 되지 않아 초선이로부터 매우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아무래도 동탁과 그의 양아들 여포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것이었다. 사실 둘 사이가 벌어졌다는 얘기는 전부터 들렸던 얘기였다.

여포는 동탁에 대한 암살 위협이 늘어나자 매일 동탁을 따라다니며 경호 수행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렇게 누군가를 하루 종일 따라다니는 것은 여포의 적성에 전혀 맞지 않는 일이었다. 여포는 동탁이 자신에게 큰 영지 한 덩어리를 떼어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지만 전혀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단지 동탁이 놀러 다닐 때마다 칼을 차고 따라다니며 혹시 자객이 없는지 신경쓰는 일만 계속 되었던 것이다. 여포는 점점 짜증이 나고 있었다.

초선이 전해준 정보

사실 동탁은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권력에 대한 천박한 태도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것은 권력의 처절한 사적 소유로 나타났다. 왕윤은 동탁이 갖고 있는 이러한 권력에 대한 천박한 태도를 이용하기로 했다. 왕윤은 생각했다.

‘천박한 권력은 반드시 내부에서 붕괴한다.’

왕윤은 이런 이치를 써먹기로 했다. 여포와 동탁의 분열을 이용해 볼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초선이가 전해준 또 한가지의 정보가 있었다. 그것은 아무래도 여포가 초선이 자신을 여자로 보기 시작한 것 같다는 전갈이었다. 이 대목에서 왕윤은 아무래도 ‘이건 좀 믿을 수 없다.’ 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은 좀 예쁘지만 말은 쌍스럽게 하는 초선이에게 여포가 반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일이 참으로 묘하게 돌아가는 것인데… 아니면 초선이가 동탁이네 집에 가서는 입닥치고 있었나?’

왕윤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었다. 여포는 남자 같은 여자를 좋아했다. 어느날 동탁의 집에 새로 들어온 초선이를 본 여포는 첫눈에 그녀에게 호감을 느꼈다. 그래서 어느 날 동탁의 집에서 여포가 초선이에게 농을 걸고 있었는데 이를 보게 된 동탁이 갑자기 난리를 쳤다.

"아니 저놈이 내 집의 시녀에게 집적거리다니!!"

동탁은 면전에서 여포에게 핀잔을 주어 여포를 집 밖으로 내보냈다. 며칠 뒤, 동탁은 이유를 비롯한 몇몇 심복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여포가 자기 집에 들어온 여자까지 넘본다며 심한 말을 섞어 욕을 했다.

"여포 그놈이 오냐 오냐 해주었더니, 아무래도 날 우습게 생각하는 것 같다. 앞으로 계속 그러면 죽여 버리겠다!"고 까지 말했다.

이유가 생각해보니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선머슴처럼 생긴 여자하나 때문에 천하의 명장을 죽인다는 것이 황당했던 것이다. 더구나 이 같은 내부 분열은 나중에 치명적인 문제를 낳을 수도 있는 중요한 문제였다. 이유는 이것이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차분히 동탁에게 다음과 같은 옛 고사 하나를 말해주었다.

절영지회(絶纓之會)

옛날 춘추시대 초나라의 장왕이 신하들을 모아 놓고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잔치 분위기가 한창 고조될 무렵 갑자기 바람이 불어 방안의 불이 일시에 꺼져 버렸습니다. 바로 그때 어둠을 이용해 장웅이란 장수가 왕이 사랑하는 시녀를 껴안고 입술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러자 그 시녀는 어둠 속에서 그의 갓끈을 잡아 끊어 버렸습니다. 그리곤 왕에게 그 일을 알렸죠. 불만 켜면 갓끈이 끊긴 자를 찾아 범인을 색출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왕은 도리어 불을 켜지 못하게 하고 큰소리로 모두에게 갓끈을 떼어 던지도록 했습니다. 따라서 다시 불을 켜고서도 누가 그런 무엄한 짓을 했는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장웅은 그런 왕의 관용에 감복했습니다.

몇년 후, 장왕은 진나라와 전쟁 중에 적군에게 포위당해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이때 한 장수가 포위망을 뚫고 달려와 장왕을 살려냈습니다. 장왕은 온몸에 피투성이가 된 그 장수를 보고 물었습니다.

"고맙다. 그대 덕에 목숨을 건졌다. 상을 내리고 싶으니 그대가 누구인지 말하라!"
그러자 그 장수는, "제가 바로 몇 해 전에 갓끈을 끊긴 자입니다." 라고 말한 후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 고사가 바로 절영지회(絶纓之會)의 고사입니다.

이 얘기를 들은 동탁은 속으로 크게 느낀 바가 있어 더 이상은 여포를 욕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탁이 여포를 욕하고 다녔다는 소식은 여포의 귀에도 들어갔다. 여포는 그렇지 않아도 불만이 많던 차에 동탁이 더 이상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자 서서히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흡사 예전에 양아버지 정원을 죽이고 동탁에게 귀순하던 때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이미 신뢰관계가 깨진 마당에 누가 먼저 배신하느냐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구닥다리 암살 수법

왕윤이 초선이가 전해준 정보를 기초로 여포를 만나보기로 결심한 것은 그 때 쯤이었다. 왕윤과 여포는 깊숙한 이야기까지 나눈 뒤, 결국 여포가 왕윤의 음모에 가담하기로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여포는 친구인 이숙까지 이 음모에 가담시킨다. 이숙은 자신으로 하여금 정원을 배신하고 동탁에 가담하게 만든 바로 그 인물이었다.

동탁 암살에 합의한 이들은 구닥다리 수법을 구사하기로 한다. 황제의 명을 동원해 동탁을 대궐로 불러들인 다음 암살하기로 한 것이다. 황제가 동탁을 대궐로 오게 하는 명분은 ‘헌제가 동탁에게 황제자리를 양위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가히 동탁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명분이었다.

이 때 황제의 명령으로 동탁을 불러내는 역할을 이숙이 맡았다. 이숙으로부터 황제의 전갈을 받은 동탁은 입이 찢어져 자신이 지은 미오궁을 나섰다. 동탁은 일군의 군사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 황제의 처소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호위 군사들의 표정도 좋아보였다. 햇살을 밝고 싱그러웠다. 동탁은 좀 있으면 황제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싱글벙글 마차를 타고 가고 있었다.

그러나 호위대장인 여포와 그를 황제로 인도하고 있던 이숙이나 모두 동탁을 죽이기 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던 자들이었다.

맨 먼저, 거리에서 동탁을 덮친 것은 ‘청류파 직접행동단’ 이었다. 일군의 선비출신 청년들이 초선의 연락을 받고 기다리다가 먼저 지나가던 동탁 일행을 덮쳤다. 그들은 칼과 무기를 들고 동탁의 마차를 공격했다. 여포는 호위군이 청류파들을 막지 못하도록 군대를 비정상적으로 지휘하면서 동탁의 암살을 음으로 양으로 지원했다.

그러나 청류파 직접행동단은 동탁의 마차를 부수는 데는 성공했으나 동탁을 죽이지는 못했다. 동탁은 급히 마차에서 내려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 때였다. 도주하는 동탁을 발견한 거리의 백성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동탁에게 돌을 던지며 쫓아 왔다. 그들의 다수는 동탁이 심혈을 기울여 지었던 미오궁 건설에 동원된 백성들이었다. 여포는 짐짓 놀란 척 호위군에게 퇴각명령을 내려버렸다.

동탁은 호위 군사도 몇 명 없이 한참을 그렇게 사람들에 둘러 싸여 쫓겨다녔다. 그러던 중 갑자기 어디선가 맞닥뜨린 누군가가 동탁의 배에 힘껏 칼 한자루를 찔러 넣었다. 그러나 동탁은 예복 안쪽에 늘 갑옷을 받쳐 입고 다녔다. 칼은 들어가지 않았다. 동탁은 자신에게 칼을 휘두른 자를 후려쳐서 멀리 던져버리고 또다시 죽을 힘을 다해 도망가기 시작했다.

명박병법과 어청사

백성들에게 한참을 쫓겨 들어가다 보니 어느덧 자신을 호위하던 군사들은 다 사라지고 자신만이 혼자 남아 있는게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디선가 백성들로 보이는 발자국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동탁은 급히 몸을 숨겨 어떤 작은 사당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런데 뛰어 들며 슬쩍 간판을 보니 어청사 라고 쓰여 있었다.

‘어청사?..라..’

위급한 가운데에서도 순간적으로 동탁은 어디서 많이 듣던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 작자 미상, 연대 미상의 <명박병법>이 처음 발견된 곳, 바로 어청사라는 사당이었다. 쫓기던 와중에 하필 그곳으로 숨어들게 된 것이다. 동탁은 곰곰 생각해 보았다.

‘따지고 보면 내가 이렇게 백성들에게 쫓겨 여기까지 오게 된 이 모든 것이 명박병법 때문이다. 내가 그 해괴한 괴서를 따르다 이런 꼴을 당하는 구나. 한스럽도다. 나는 명박병법대로 했을 뿐이고, 그러다가 결국 이 지경이 되었을 뿐인데…’

지칠대로 지친 동탁은 더 이상 도망가기를 포기하였다. 그 때였다. 힘들고 지친 동탁의 눈앞에 기골이 장대한 한 장수가 나타난다. 여포였다. 여포를 발견한 동탁은 갑자기 얼굴에 화색이 돌며 크게 외쳤다.

“오! 나의 아들 여포야! 너로구나, 네가 이제 날 살리겠구나!”

그러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포는 방천화극으로 동탁의 얼굴을 후려쳤다. 동탁은 머리의 반이 날아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동탁의 죽음에 대해 후세의 사가들은 많은 기록을 남겼다. 그중 특이한 기록은 동이족 계통의 고우영 사관이 지은 글이다.

동이족 고우영 사관의 기록

사관 고우영은 약 2,000장이 넘는 풍경화로 조조, 유비, 손권의 삼국시대를 기록하면서 "동탁이 죽자 사람들이 시체를 길거리로 끌어내 마구 짓밟았다. 그리고 누군가 동탁의 배에 촛불을 꽂아 불을 붙였다. 그런데 동탁의 배에 기름이 많아 그 촛불이 50일이나 거리에서 꺼지지 않았다" 고 남겼다.

동탁의 배에 깃들어있던 기름기는 민중의 피땀을 빨아먹어 만들어진 기름기였으니, 아마도 그 촛불은 백성의 한과 눈물이 맺힌 촛불이었을 것이다. 그 촛불은 무려 50일이 넘도록 꺼지지 않았으니 한나라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