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본 희망, 여기서도 보고싶다"
    2009년 02월 02일 08:4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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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을 가진 당신들이 부럽다

   
  ▲ 한국노동운동에 대한 브리핑을 알리는 내부 선전물

미국을 떠나기 직전 SEIU 워싱턴 본부에서 한국의 노동운동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 시간을 가졌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노동운동이 발전해 온 측면과 퇴보한 것에 대한 얘기, 그리고 우리가 노력하고 있는 과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을 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당신들이 전략을 가지고 운동하는 것이 부럽다”라는 얘기를 했다.

돌아보니 처음 반월공단에 들어간 게 85년이다. 직업훈련소에서 용접을 배웠고, 야학에서 가르친 학생의 주민등록증을 이용했다.

아무도 그것이 당시의 ‘전략’이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무려 10,000명 가까운 학생들이 공장으로 갔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났다. 학생운동만으로는 안 된다는 ‘심정의 공유’가 만들어 낸 거대한 흐름이었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는 지금 비정규직의 비율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기형적인 나라에서 노동운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심정적으로나마 미조직 비정규직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전략은 무엇일까?

학생운동이라는 운동의 저수지는 말라버렸지만 대신 굳이 신분을 위장할 필요도 없이 다수의 대학생들이 자연스레 비정규직이 되어 버리고 마는 현실에서 우리는 어떤 중장기적인 목표를 가져야 할까?

미조직된 노동자과 동시에 조합원도 조직하라

자료에 의하면 미국의 조직화 모델은 1989년 조직화 연수원(Organizing Institute)의 창립을 계기로 급속히 확산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 1992년에 미국 노총 산별 연맹의 개혁파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선출직 지도자 조직화 사업단’(Elected Leaders Task Force on Organizing)을 구성하면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SEIU 출신이면서 현재는 미국노총(AFL-CIO)의 위원장인 스위니(Sweeny) 집행부는 조직화 사업을 노조의 제1순위 과제로 천명하였고 미국노총의 예산 가운데 30%를 조직화 사업에 할당할 것을 약속하고, 산하 연맹들에게 예산의 30%를 조직화 사업에 투자할 것을 권고했다.

   
  ▲ 각종 유인물. 조합원 얘기가 많은 게 특징이다

SEIU는 이 과제를 당초 목표 이상으로 가장 충실하게 이행한 셈이다. 그리고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결국 변화하지 않는 미국노총을 벗어나서 2005년에 ‘Change To Win’이라는 별도의 노총을 만드는 데까지 진행되고 있다.

SEIU에게서 만약 무엇인가를 배운다면 그것은 크게 두 가지 조직화 방식에 대한 것일 것이다. 하나는 저임금 노동자를 조직대상으로 한 미조직 부문 조직화에 조직의 운명을 걸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기존 조합원들의 요구를 충분히 경청하고, 그들의 이해를 넓혀 나가되 그것이 전체 노동자의 생존과 결합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강조해 나간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에 기초한 정치운동이 생기고, 지역에 있는 다양한 시민사회단체와의 유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만들고 있다.

신규 조직화 방식에 대한 얘기는 많이 했으니까 두 번째 사항을 중심으로 보자. 이들은 조합원에 대한 조직화에 결코 소홀하지 않다. 물론 앞서 말한 Member Resource Center도 기본적으로는 조합원의 고충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선전이라고 말하는 영역을 SEIU에서는 Communication 부서가 담당하고 있다.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되겠지만 설명을 들으면서 내게는 ‘소통을 중심’에 두는 것으로 이해가 되었다. LA에서 이것을 담당하는 Jeniffer에게 설명을 들었다. 워싱턴 본부에서도 많은 선전물을 받았다.

다른 노조와 다른 점을 설명하면서 그녀는 “우리는 노동자가 노동자에게 직접 얘기하는 방식을 쓴다”고 강조했다. 그러고 보니 유인물에 나타나는 공통점 중의 하나는 조합원이 얘기하는 것이 많다는 점이다.

   
  ▲오른쪽에 서명하면 바로 인터넷 상에 나타나도록 되어 있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간호사가 간호사에게, 청소부가 청소부에게 말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언어를 중심으로 쓰지 않는다”라고 강조해서 말했다. 또한 당연히 조직과 연동되지만 대상을 노동자로만 국한하여 선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처지가 개선되면 당연히 환자에게 좋은 서비스가 주어진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따라서 신중하게 선전의 초점을 전체 주민들의 이해와 맞춰 나간다.

"짧고, 쉽고, 구체적으로"

“청소부에게 정의를(Justice for Janitors)" 가 대표적인 예이지만 슈퍼마켓 노동자들을 조직하면서도 초점은 식품위생 안전성(safety)를 강조하는 것으로 정하고 있었다. 이들을 만나면서 무엇보다 슬로건이 매우 짧고, 한눈에 들어오고, 용어가 매우 쉽다는 점에 이끌렸다. 모든 선전은 조직과 연동되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대상을 분명히 한정짓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소통의 노력은 이어져서 조합원이 자신의 삶을 얘기하고 이것을 문화운동으로 연결하는 ‘Story telling’이라는 또 다른 영역으로 이어지고, 인터넷을 이용한 참여방식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워싱턴 본부에서만 12명을 인터넷을 이용한 New Media Team으로 배치한 것은 이런 배경이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홈페이지(www.seiu.org)에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의료보험 개정운동의 경우 인터넷 상에서 참여할 수 있고, 이게 지도에 바로 표시되어 이후 조직화와 연결된다.

   
  ▲ BSP에 참가한 조합원들은 만족한다.조합원의 눈높이에 맞춘 다양한 교육

조합원에 대한 교육은 이와 별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게 많았다. 예를 들어 Local 1877에는 BSP(Building Skills Partnership)라는 기구가 있다. 단체협약을 통해 사용자와 SEIU가 각각 50만 달러를 내서 청소원 조합원을 교육시키는 단체를 별도로 만들었다.

설명을 해 준 Aida에 의하면 조합원에게 영어는 물론 컴퓨터 등 각종 업무와 관련된 교육을 하는 이 기구에 대한 평가는 매우 높다. 주로 1:1로 조합원이 일하는 장소에서 근무시간 중에 교육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영어를 못하는 조합원에게 대학생이 영어를 가르친다.

대학교에서 청소를 하는 아줌마 청소원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대학생도 자연스레 노동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영어를 못해 자녀의 담임교사에게 가는 것을 두려워하던 조합원이 학교를 찾아갈 수 있게 되면서 자녀와의 소통이 더 커진다.

교육의 힘

유명한 인터넷 검색 업체인 구글(Google)에서 일하는 청소원들은 그 직원들에게 컴퓨터 교육을 받는다. 그러면서 직원들 역시 그 건물을 청소하는 노동자들의 처지를 충분히 이해하게 된다. 사용자들도 좋아한다. 호텔 등에서 일하는 청소원이 고객의 요청을 즉각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사용자에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외에 노동조합에 대한 이해를 돕는 우리와 같은 내용의 교육이 별도로 있음은 물론이다.

Local 721에서는 BSP와 또 다르게 조합원 자녀에 대한 교육을 준비하고 있었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법에 의해 노동자들이 1년에 40시간을 학교에 간다든가, 아이의 활동에 참가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다. 노조 차원에서는 이에 해당하는 조합원을 어떤 방식으로 도와줄 것인가를 지역 교육 단체와 협의했다.

조합원에 대한 설문조사 항목을 보면 조합원이 부모로서 어떤 교육을 받고 싶어 하는지, 예를 들면 자녀와의 소통방법, 상급 학교 진학 방법, 자녀 교육법 등등이 예시되어 있었다. 그 이외에 컴퓨터 교육이나 언어 교육 등도 마찬가지로 있었다. 그런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조합원에 밀착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에 SEIU에 대한 조합원의 믿음이 커지고, 그렇기 때문에 정치기금과 같은 별도의 기금을 내는 것이나 조합비 인상에 대한 저항이 적은 것으로 느껴졌다.

   
  ▲ 미국서 발제한 내용 중에서 조직률 하락 추이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노동운동가들의 전략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내 생각엔 현재 시기 노동운동 최고의 전략은 ‘조직화’여야 한다. 10명 중 1명을 조직한 현재의 조건으로는 투쟁다운 투쟁이 될 수가 없다. 거기다 나머지 9명 중 5명 이상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조직되어 있는 노동자들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현 시기 모든 정파를 비롯하여 민주노총 산하 모든 연맹의 최대 목표는 미조직 비정규직의 조직화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최근 각 정파들이 민주노총에 대한 위기감을 가지고 대화를 한다는 데 각 정파들이 미조직 조직화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그것을 통해 경쟁하면 안 될까?

2년짜리 각 연맹 위원장의 임기가 전략을 가지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면 모든 연맹이 전략을 가질 수 있도록 임기를 3년으로 연장하면 해결책이 보일까?

이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산업별노조가 빠르게 제자리를 잡아가는 것도 필요하다. 산별전환과 통합을 통해 조직화를 위한 근거지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소망으로 시작된 87년 노동자 투쟁 세대의 기업별노조가 비정규직 조직화의 모범이 되는 산업별노조로 새롭게 태어나야 희망이 찾을 수 있다.

미조직 조직화에 마지막 희망을 걸어야

진보정당운동 역시 지역에서 일상적으로 어떤 활동을 전개할 것인지를 분명하게 찾아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물론 진보신당, 그리고 사회주의 정당을 지향하는 각종 정당운동이 지역차원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산별노조와 공동으로, 혹은 지역 안에 산재해 있는 풀뿌리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의미 있는 일상 활동을 전개하지 않는 한 정치운동은 선거시기에만 반짝하는 것에 그치기 일쑤다. 그런 면에서 지역 community와 밀착하여 정치활동을 전개하는 SEIU의 경험을 참고할 만하다. 지역에서의 유대 강화를 위해 아예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를 노조 간부로 채용하기도 했다. 이들은 저변을 넓히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한다.

이민노동자 문제에 대해서는 멕시코 등 남미 쪽 조합원이 많은 청소원과 경비원 노조 중심의 Local 1877의 정치담당 Mario와 함께, 그리고 의료개혁 문제에 대해서는 공공부문 노동자가 많은 Local 721의 대외협력 담당 Saira와 함께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협의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돈도 있고, 실력이 있는 노조가 지역 시민사회단체외의 공동행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뒷받침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른 얘기지만 스웨덴 노조운동은 노동조합이 출연한 보험회사 ‘Folksam’을 만들었다. 현재 스웨덴 보험회사 중 4위를 차지하는 거대한 규모로 성장한 ‘Folksam’은 주주에 대한 배당을 하지 않는다. 물론 주주의 대부분은 각 연맹이다. 오히려 더 질 좋은 보험혜택을 주는 방식을 택한다.

2005년 그들은 자동차보험 25%, 가정보험 50%, 개인보험 50%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었고, 국내에 100개에 달하는 지점망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무분별한 컴퓨터 게임에 빠지는 현실을 보고, 의미 있는 그리고 재미도 있는 어린이용 게임을 개발하고 있었다. 모두 전략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조합원의 대부분이 각종 보험에 들고 있는 현실에서, 그리고 수많은 보험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민주노총의 조건에서 한 번 꿈꾸어 볼만 하지 않을까? 인터넷 속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한국적 풍토에서 자라나는 아이들과 퇴근하면 노동자 문화를 찾을 길이 노동자 가장들의 현실을 타개할 뭔가가 나올 때가 되지 않았을까?

“위기가 닥치면 우리는 변해요.” <지구가 멈추는 날>이라는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한 말이 유독 가슴을 친다.

그들에게서 본 희망을 우리 안에서도 보고 싶다.

원래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고 난 얘기는 별로 믿을 게 못된다. 전체보다는 부분에 그치기 십상이고, 판단의 오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그들에게서 미국노동운동의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고, 그 희망을 우리 안에서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에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 집회 모습. 우리보다 역동적이진 않지만 참가자 전체가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한다. 연설은 1분 이상하지 않는다.

8년에 걸친 노력 끝에 최근 조직이 합쳐졌지만 UHW, SEIU 521, SEIU 6434의 통합과정(240,000명의 새로운 통합 지부 탄생)에서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지부의 반발 등 불미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도 했다.

어디가나 간부들의 비도덕성으로 인한 비리사건은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데, 저임금 노동자들의 조합비로 만든 기금을 간부가 횡령하는 바람에 문제가 생긴 지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SEIU에게서 미국노동운동의 희망을 보았다.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활동가조차도 자기 조직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운동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가지고 있는 게 우리 운동의 장점이다. 그들처럼 높은 임금을 받지 않으면서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수많은 활동가들이 있다. 이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모아내고, 일관된 전략을 가지고 딱 10년만 운동해 보았으면 소원이 없겠다. 저들처럼 1년에 조합원이 10만 명씩 증가할 수 있다면 영혼을 팔아도 좋겠다.

모든 정파를 넘어서서 미조직 비정규직 조직화만을 가지고 전국의 ‘노동운동 활동가 원탁회의’를 열어보면 어떨까? 올해부터 각 연맹 및 산업별 노조의 사업비 중 일정 부분 이상을 조직화 기금으로 강제하는 방식을 SEIU로부터 배우면 안 될까?

동시에 조합원들을 재교육하고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전망을 공유하는 ‘교육재단’을 구성하여 교육하고, 연구하고, 연수하는 총체적인 중심을 구성하여 지금과 같은 구멍가게식 운영을 넘어서는 새로운 구상은 어떨까?

아니 부분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아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재 시기 운동의 전략을 마련하는 어떤 단위부터 구성해야 시작할 수 있겠다. 아직 늦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다.

“우리의 털갈이 시기는 날짐승의 그것처럼 인생에 있어 하나의 위기일 때여야 한다.” 
– 데이빗 소로우 지음, 『월든』 중에서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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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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