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우형님들 귀염받으며 잘 살아보렴"
        2009년 01월 31일 07:28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솔직히 진중권이 좀 원망스럽다. 어쩌자고 이번엔 변씨를 상대해 준 걸까. 변씨가 진중권에 집착하는 이유는 오로지 그를 팔아 장사해먹으려는 속셈뿐이라는 걸 잘 알면서 말이다.

    어쩌자고 얼굴 마주보고, 맞장 토론 같은 것을 해주었으며, 술 마시고 토악질하며 내뱉은 듯한, 저 오물 같은 글이 조선일보에 나오거나 말거나, 왜 상대를 해주었는지 잠시 이해불능이다. 이씨 집권 1년 동안 물밀듯이 밀려오는 매일 매일의 오물과 악취들도 감당이 안 되는 상황에서 말이다.

    젊은 것이 오죽 할 짓이 없으면

    변모씨. 그런 인간이 있다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젊은 놈이 오죽 할 짓이 없어서, 우파논객을 자처할까. 조갑제, 이문열(가끔 지만원까지) 등 60대 몇 명이 저열, 민망, 황당을 세일즈 포인트로 삼는 어법을 구사하는 그 동네에서, 나름 청년 우파로서의 틈새시장을 공략한 모양인데, 그게 자기 먹고 사는 방법이라면, 그러거나 말거나다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의 인터넷 상에서의 공식 명칙은 ‘진중권 스토커’였고, 변씨가 이번에 조선일보에 적은 글들은, 이미 수년에 걸쳐, 수십 번 그가 여기저기에서 퍼나르며 반복하던 논리였다. “진중권은 무능한 386의 대표주자다. 그는 박사학위도 없고, 전문성도 없는 장사꾼이다. 진중권이 사라져야 세상이 바뀐다.”

    여기저기서 그토록 말해도 아무도 안들어주는 그 얘기를 이제 많은 사람들 귀에 들어가게 하는데 성공했으니, 이 인간의 끈기에 대해서는 인정해줄만 하다.

    같은 학과를 나왔다는 것을 이유로, 마치 동류에서 나온 이질적인 두 개의 관점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케팅 지점을 설정하며, 2~3년 단위로 새롭게 창업하는 그의 인터넷 신문들은 줄기차게 진중권 태클 걸기를 주력상품으로 밀어왔고, 그 결과, 넷상에서 진중권의 친근한 관련 검색어로 변씨가 자리잡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한 네티즌이 모아놓은, 그가 진중권 먹고 산 흔적. http://discuss.egloos.com/329557

    조갑제가 롤 모델이라더니, 오래 그의 뒤를 따르며 기술을 연마할 것도 없을 것 같다. 그는 이미 ‘리틀 조갑제’이다. 변의 꿈은 벌써 이루어졌다.

    살짝 광기가 깃들여진 눈빛으로, 조잡하기 이를 데 없는 단어들을 조합하여 진보적 움직임, 진보적 인사들의 뒤를 슬그머니 쫓아다니며, 극우파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어이없는 글들을 생산해 내고, 그 수준의 저열함 때문에 차마 대응하기 싫어하게 만듦으로써 생존해가는 그 코스가 영락없다.

    ‘리틀 조갑제’ 꿈은 이루어지다

       
      ▲진중권.

    입이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하자. 진중권이 언론사와 방송사를 기웃거린다고? 변씨의 관찰과는 정반대로 방송과 언론은 수년 전부터 진중권의 입만 쳐다봐왔다.

    기웃거린 것은 오히려 그쪽이겠지. 진중권이 최근 쏟아낸 수 많은 글들은 주로 진보신당 게시판에서다. 조선일보가 오매불망 그의 글을 받기 위해 간청하고 간청해왔으나, 끝내 거절해온 얘기는 유명하다.

    많은 진보신당 당원들이 그러하듯, 우리의 뇌관을 건드리는 정치, 사회적 사건이 터질 때 그들은 당원게시판에 들어가서 의견을 나눈다.

     진중권이 한마디 하면, 진보신당 게시판을 언제나 기웃거리며, 진중권의 어록을 정리하고, 기사화하는 것은 언론이다. 그가 바빠서 글을 남기지 못하면, 전화해서 한 마디라도 의견을 따려 한다. 그리고 그것을 특종이라도 되는 것처럼 타전한다.

    변씨는 그가 전문 분야가 없다는 것을, 그리고 박사학위도 못 땄다는 것을 줄기차게 공격포인트로 내세워 왔다. 이런 몰상식한 발언을 대담무쌍하게 떠벌이는 변씨는 전문분야는 확실히 있어 보인다.

    우리가 그 사람의 이름을 가끔 들을 땐, 항상 진중권이 연관검색어로 따라다녔던 걸 보면, 그의 전문 분야는 ‘진중권’임에 틀림없다. 그에 대한 안티를 전문 분야로 챙기는 인간을 따로 둔다는 면에서 또한 진중권 이란 지식인은 예외적인 기록을 남긴다.

    진중권은 물론 미학자다. 그는 대한민국에 미학이란 단어를 처음으로 일상화시킨 사람이다. 서울대 미학과가 일찍이 있어왔고, 김민기를 비롯하여 유홍준, 심광현, 황지우 등 한국사회에서 흥미로운 발자취를 남긴 인물들을 상당수 배출해 왔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음악과 뮤지컬로, 문화재로, 영화로, 문학으로 각자 자기의 길을 개척해서 걸어갔고, ‘미학’이란 영역을 부여잡고,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사회를 조명하는 인간은 진중권 하나뿐이다.

    진중권에게 국민들이 연봉 줘야 될 판

    진은 또한 왕성하게 활동하는 문화평론가이며 시사평론가이다. 최근 와서 나는 ‘국민 카피라이터’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의 기가 막힌 카피들이 하나씩 탄생할 때마다, 온 국민이 십시일반으로 그에게 연봉이라도 줘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의 미학 책들이 그 영역의 생경함에도 불구하고 국민교양서처럼 진득하게 자리하는 풍경은, 어쩌면 이러한 심정들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라가 보일러냐 거꾸로 가게”, “이명박 머릿속에 삽자루 하나” “기는 만수, 뛰는 백수” 등의 적확하고 스피디한 카피들로, 상황을 말끔하게 정리해주는 저런 기민한 지식인이 있어, 숨가쁘게 역방향으로 전개되는 역사의 흐름과 관전포인트를 온국민이 포착할 수 있다는 건 분명 행복한 일이다.

    지난 봄에서 여름으로 이어지는 4개월간, 그는 광장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에게 ‘밤의 대통령’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 기나긴 촛불의 향연에서 진중권은 칼라TV를 진두지휘하는 현장리포터 역할을 하기도 하고, 즉석 토론을 벌이면서, 정치와 대중 사이에 서서 투쟁을 유쾌하고 신명나게 만드는, 자유롭고 강인한 지식인의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와 사진을 찍고자 줄을 서는 여대생들의 행렬이 연일 이어질 만큼, 이 놀라운 에너지의 남자가 상상을 초월하는 대중적인 인기까지 누리게 되자, 좌파 진영 내에서도 살짝 그를 질시하는 분위기가 감돌기도 했다.

    이래저래 만만찮은 안티를 거느린, 그리하여 언론과 방송이 가장 사랑하는 스타 지식인이 되어간 진은 워낙 실력이 뛰어난 투사인데다가 맷집 면에서도 가히 수준급이라 누가 감히 그를 두둔하거나 지지하는 글을 쓸 필요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이번 변씨가 만들어낸 사태를 어쩔 수 없이 지켜보면서 아무리 진중권이라도 질척대는 똥을 밟은 심정은 매우 불쾌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위가 그리 중요한가요, 변학사님?

    변씨가 혹시 ‘롤랑 바르트’라고 들어보셨나 모르겠다. 그 사람 그냥 대학 나왔다. 박사 아니다.  프랑스 최고의 지성의 전당이라 일컬어지는 꼴레즈 드 프랑스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전공? 고전문학이다.

       
      ▲롤랑 바르트. 

    그런데, 기호학, 문학평론에 대해서 뿐 아니라 영화, 만화, 사진, 패션 등 현대 부르주아 사회를 둘러싼 신화를 읽어내고 그에 대해 역동적인 글쓰기를 했다.

    사진계에서 고전으로 꼽히는 저서 『밝은 방』은 비전공자인 롤랑바르트의 책이기도 하다. 그의 경계를 넘어서는 글쓰기는 현대 프랑스를 비롯하여 전 세계에 활력적인 사유 체계의 개척한 것으로 평가되고, 나 또한 그렇게 평가한다.

    80년대 저 세상으로 건너가셨지만,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롤랑바르트도 인터넷을 통해 더 역동적인 사유의 체계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었던 지식인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진중권에게서, 패턴은 조금 다르지만, 롤랑바르트 같은 풍성한 문화적 스펙트럼을 가진 지식인의 모습을 본다.

    (변씨에겐 박사 학위가 사람을 평가하는데 엄청 중요한 표식으로 작용하나 본데, 그래서 외국 가서 박사학위를 따오는 데 성공한 우석훈에게는 끝까지 ‘우박사’란 호칭을 구사하고, 학위를 따지 않은 진중권에게는 그냥 진중권이라 부르나본데, 학위를 가지고 인간을 평가하는 것이 그다지도 긴요한 것이라면, 앞으로 우리는 그를 특별히 ‘변학사’라고 불러주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또 촘스키라고 들어보셨나 모르겠다. 저명한 언어학자다. 언어학계의 아인슈타인이라고도 불린다. 변씨가 중요하게 챙기는 박사학위는 20대에 따셨다. 그는 정치, 경제, 문화, 언론, 외교정책, 국제관계, 역사에 대해 70여권의 저서 속에서 두루 말하고 전세계를 다니며 강연하고, 인터뷰하며 열렬히 집회에 참석한다.

    심지어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한국사의 감춰진 면에 대해서도 들춰낸다. 그는 물론 역사학자가 아니며 더구나 한국 전문 역사학자는 아니다. 그는 현존하는 학자 중에 가장 자주 인용되는 사람이며, 행동하는 좌파 지성인의 세계적 스타이다.

       
      ▲노엄 촘스키. 

    그 투쟁의 역동성 면에서, 자신의 모든 지성을 권력과 싸우는데 아낌없이 투여하는 투지 면에서 진중권은 또 촘스키를 닮아있기도 하다.

    촘스키한테도 시비 한 번 걸어보시지. 자기 전공영역도 아닌 것에 대해서 왜 말하고, 책도 쓰고, 인터뷰도 하냐고. 후배들 말할 것을 혼자서 왜 싹쓸이 하냐고.

    사회과학 서적 90%를 좌파가 쓴 까닭은?

    인터넷 앞에서 하루 종일 앉아있는다는 인터넷키드 변씨가 도서사이트에도 간혹 들어가는지 모르겠지만, 사회과학 쪽을 들어가보면, 세상의 모든 사회과학 서적의 90%는 좌파들이 썼다.

    그것은 머릿속이 빨간 사람들이 사회과학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모든 세상의 지식인들은, 그들이 죽을 때 지식인으로 남을 수 있다면, 결국 좌파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류가 그 어떤 의문도 부여하지 않고 합의하고 있는 민주주의라는 공존의 원칙, 인권이라는, 평화라는, 그리고 자유라는 가치를 권력으로부터 지켜내고, 확산하기 위해서 살아있는 모든 지식인들은 좌파일 수밖에 없다.

    우석훈이 장하준을 질투하지 않고, 하워드 진이 촘스키를 원망하지 않는다. 좌파 지식인과 지식인은 원칙적으로 동의어이며, 그들에겐 지식인으로서의 양심을 잃지 않는 것이 자신들을 지탱하는 삶의 방법이므로, 그것을 세상과 나누고자 글을 쓰고 발언한다.

    만인의 지식인에게는 만 가지 다른 필터가 있고 관점이 있고, 그들의 양심이 작동하는 한 그들은 발언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것이 지식인이 가장 아름답게 세상을 사는 방식이다.

    비전문가 진중권이 나서서 ‘설레발쳤던’ 최고의 사례로 그는 <디워>를 든다. 당시 디워라는 영화에 대해 호평한 영화평론가는 없었다. 그런데 영화는 ‘개판’으로 만들어 놓고, 거기에 애국심 마케팅을 곁들여 장사를 하려고 하니, 그것에 대해 좋은 소리할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왜 또 나야?"

    이송일희 감독이 그것을 지적했고, 김조광수씨가 반복하여 거론하였다. 어디에서? 그들의 개인 블로그에서. 한 개인이, 혹은 한 영화인이 자신이 본 영화에 대한 평을 자신의 블로그에 적었을 뿐인데, 이에 대해 네티즌들이 사이버테러에 준하는 수준의 무차별 공격을 감행했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발생한다.

    그리고 이 현상에 대해, 상황을 그렇게 조장한 책임이 있는 그 영화와 영화감독에 대해 진중권은 자신의 펄펄 살아있는 언어와 에너지로 대답한다. 처음, 언론이 그에게 이미 들끓고 있는 <디워> 논쟁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 “왜 또 나야”가 진중권의 첫 반응이었다고 한다. 

    모든 사회현상에 대해서 명확한 의견을 가져야 하고,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입증해내야 하는 그 고달픔을 그도 한 번쯤 피해가고 싶었을 법하다. 그러나, 피해가지 않았다. 그것이 진중권이란 지식인이 갖는 놀라움이고, 다른 지식인들과 갖는 차별성이다.

    이미 디워는 문화계에서의 황우석 사건을 그대로 연상케 하는 조짐들을 충분히 드러냈고, 진중권은 그것을 정직하게 자기 입으로 말했을 뿐이다.

       
      ▲디워 영화 포스터. 

    진중권이 입을 연 후, 디워를 비판한 그 모든 이름들은 진중권이란 이름에 갇혀서 드러나지 않았다. 혼자서 디워 팬들의 몰매를 다 맞는 영광을 다시 누렸다.

    진중권을 전문영역으로 삼는 변씨의 의도적인 조작임이 분명하지만, 영화전문가들을 제치고 혼자 나서서 인신공격식으로 다 말해버리는 식의 행위를 그는 한 적이 없다.

    ‘미네르바’ 체포 사건에 대해서 이 나라에 진중권과 다른 입장을 가진 지식인이 있었던가. 그 사건이 터진 후, 내가 가장 먼저 그 의견을 접했던 사람은 법률가 박경신이었다. 의심할 수 없는 이 분야의 전문가인 그의 어조는 진중권의 그것과 같은 것이었다.

    이후 이어지는 외국 언론의 조롱을 접하였고, 심지어는 자유선진당에서도 이 사건을 강력한 어조로 비판했다.

    자유선진당을 넘어서는 우파,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제일 오른쪽을 향해서 조갑제 형님과 함께 가보겠다는 건데. 거기서 문열 형님, 만원 아저씨의 귀염받으며 한 번 잘 살아보렴.

    즐거울 때만 투쟁하시라

    그리고 그가 자신의 글의 끝에서 기원했던, 진중권을 아무도 안 불러주는 그 세상이 오면, 과연 그 때도 변씨가 뭔가를 해서 먹고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극우진영에서도 변씨의 효용가치가 진중권 땜에 창출되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말이다.

    마지막으로 진중권에 드리는 당부하나. 너무 과로하진 마시기 바란다. 그가 촛불집회 때 열렬히 광장을 지키는 것을 보고, 난 속으로 간절히 그가 어느날 비행기를 타고 날라주길 바랬었다. 저건 사람이 아니다. 라고 되뇌이며.

    그가 어느 날 탈진하여 산속으로 들어가거나, 어딘가 구석에 박혀 구두 수선공이 되었다던가 하는 얘기를 듣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팔팔한 에너지의 젊은 진중권이 어떻게 농익어갈까를 지켜보고 싶기 때문이다. 삶의 유희를 위해 에너지를 분배하길. 그것이 즐거울 때만 투쟁하길. 그러나 크게 걱정 안 한다. 그가 비행기를 타고 날라주길 바랬던 어느 날, 진짜로 그는 날아가고 없었으니까.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