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포만의 소리없는 통곡을 들어라"
        2009년 01월 30일 10: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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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년 대투쟁 이후 20년이 지나면서 미포만의 함성은 절규로, 통곡으로 변해버렸다. 노동조합은 제 기능을 상실한 채 사측 눈치보기에 급급하고 노동 현장은 관리감독자의 허락(?) 없인 숨소리도 낼 수 없는 참혹함 그 자체로 변해버렸다. 너무 과도한 표현일까? 하지만 이것이 바로 미포만, 아니 한국 대부분 조선소의 현주소다.

    참다못해 울분을 토해내고 노동자의 권리를 조금이라도 주장하고 나서면 그때부터는 일거수일투족 집중감시가 시작된다. 작업지시에서부터 잔업, 특근까지 곧바로 집요한 불이익 조치가 떨어진다. 그토록 친하게 지내던 동료들도 관리감독자들의 눈치와 협박 속에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어버리는 것은 한 순간이다.

    물론 그때부터 승진과 승급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하고, 왕따 아닌 왕따로 한동안 직장생활을 감수해야 한다. 조금만 실수해도 보란듯이 인사권 징계권을 마구 휘둘러댄다. 그런 현장에서, 그런 자본 앞에서 한 노동자가 목에 밧줄을 매고 투신했다. 뒤이어 겨울 한파도 아랑곳 않고 이영도, 김순진 두 동지가 죽음을 넘나드는 치열한 고공 굴뚝농성에 돌입했다. 그리고 70일만에 움켜쥔 합의서 한 장이 나왔다.

       
      ▲ 사진=울산노동뉴스

    목까지 매도 왜 분노하지 않을까

    현대 자본의 잔인성은 굳이 20년 전 식칼테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충분하다. 오죽했으면 이홍우 동지가 노동탄압 중단을 외치며 자신의 목에 밧줄을 걸고 투신했을까? 오죽하면 그런 가슴 아픈 일이 발생했음에도 왜 현장은 최소한의 분노마저 짓눌린 채 꽁꽁 얼어붙어 있었을까?

    마음은 벌써 이홍우 동지가 있는 병원으로, 굴뚝 앞으로 달려갔을 텐데 몸은 여전히 자본의 통제 속에 절단기와 용접 홀더를 잡았을 터이다. 그러면서 가슴으로만 절규하고 통곡하는 미포만 노동자들의 아픔을 나는 조금은 이해한다.

    나도 20여 년 동안 조선소 생활을 하고 87년 노동자대투쟁을 직접 경험하고 비록 해고된 몸이지만 지금은 같은 현대 자본의 조선소 노동조합에 몸담고 있다. 미포만 노동자들이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처절하게 내몰렸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직업훈련소 들어오는 과정부터 그 잘난 직영 정규직 노동자가 되는 날까지도 거미줄처럼 온몸에 걸쳐져 있는 감시망을 빠져나갈 수 없다. 대부분이 중역 임원 내지는 관리감독자, 지역 유지나 기관단체의 급들, 소위 ‘빽’있는 사람의 추천 없으면 어림도 없는 입사 문턱은 너무도 높다. 천운(?)을 얻어 입사를 했다하더라도 그놈의 그물망은 좀처럼 벗겨지지 않은 채 여전히 옥죄곤 한다.

    노동조합 집회 한번 참석하고 나면 곧바로 입사 추천인부터 전화질해대고 곧바로 면담 들어오고 난리가 난다. 파업 한번 참석하고 나면 개별면담이나 전화질은 양반이다. 부모에게까지 협박전화에, 협박방문하는 것은 사돈에 사촌, 팔촌까지 만나고 다닌다.

    힘없는 부모님은 행여 자식 놈 짤릴까봐 전전긍긍 하시다 결국 앓아 누우시고 집회 한번, 파업 한번 참석한 자식 놈은 불효자가 된다. 그러다 결국 다수 동료들에게는 노동조합 행사참여가 두려움의 대상으로 되어버린다.

    미포만, 절규와 통곡으로 신음

    몇년 전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을 통해 들은 이야기가 있다. 대의원선거가 있었는데 그것도 사측이 내세운 단일 후보였는데, 글쎄 반대표가 ‘무려’ 6표가 나왔다고 한다. 그때부터 관리자 직·반장 총동원하여 반대표 던진 6명 색출한답시고 거의 한 달 이상을 개별면담에다 조사 아닌 조사를 하고 다니면서 현장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고 한다.

    물론 제 놈들이 신이 아닌 이상 찾아내지는 못했겠지만 그 다음해부터 어설픈 반대표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버렸다. 민주노조운동을 지향하는 후보들이 명함도 못 내미는 구역이 속출하였다. 그리고 어렵게 출마하더라도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현장목소리를 담은 선전물한잔 변변히 배포하지 못하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서막을 알렸던 미포만의 함성은 그렇게 절규와 통곡으로 변해버렸고 현장은 불치의 병을 앓는 듯 신음하고 있다.

    오늘의 투쟁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될 목숨을 담보로 한 투쟁이었지만 현대 자본에 다시 한번 맞서는 미포만의 함성을 다시 깨워내는, 일으켜 세워내는 소중한 투쟁으로 승화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밧줄로 목을 맬 수밖에 없었던, 100m 고공굴뚝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만들어지기까지 우리는 어떠했는가. 우리의 안일함과 부족함, 관성화된 노동조합활동이 그런 상황에 일조하지는 않았는지, 마음속 한 켠에 그런 생각이 자꾸 드는 건 왜일까?

    * 이 글의 필자는 현대삼호중공업 해고 노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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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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