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르샤의 혁신과 진보정당의 진로
    [축덕후의 정치직관] 통합진보당, 실패한 발렌시아 모델 되나?
    By 시망
        2012년 05월 07일 11:4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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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랬었다. 딱 10년 전… 한국의 진보정당사를 따지자면 민주노동당의 대선후보였던 권영길 후보가 대선에서 바람을 일으킨 바로 직후인 02/03시즌.

    바르샤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챔피언스 리그 진출 정도가 아니라 UEFA컵(현재 EUROFA 리그) 진출이라는 기록과 함께 지도부가 사퇴하는 치욕스런 사건을 겪는다. 이렇게 들어선 새로운 경영진에게 남겨진 것은 엄청난 부채와 허울 좋은 과거의 영광뿐이었다.

    이 새로운 경영진에게는 두 가지 미션이 주어진다. 클럽의 재정 상태를 건강하게 만들 것과 다시 라리가를 호령할 수 있는 경기력을 찾는 일. 당시 경영진 중 한 명의 말에 따르면 새로운 경영진은 긴축 재정과 대대적인 혁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어떤 선택이든 장단점이 있듯 전자를 선택할 경우 부채의 폭은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선수 수급 등에 있어서 예산의 문제가 생겨 성적을 당분간 포기해야 했다. 후자의 경우 기존의 예산 규모를 유지하면서 성적을 우선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적을 통해 반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반면, 성적이 나지 않는다면 한방에 훅 갈 정도로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문제가 있었다.

    당시에 바르샤는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클럽의 전통이었던 저지에 광고를 달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로 시끄러웠고, 실제 베이징 올림픽의 광고를 달기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불량채권도 해결하고 성적도 내고.. 뿅가는 미션이었을 듯..

    그 선택의 기로에 서있던 그들은 한 일은 분석과 평가였다. 즉 어떤 부류의 클럽들이 있는지, 각 부류의 장단점은 무엇인지를 확인해봤다. 그런 과정을 거쳐 성공할 수 있는 세 가지 성공할 수 있는 유형을 짚어는다.

    먼저 맨유, 레알의 사례이다. 이들은 경영적으로 막대한 수익을 내면서 동시에 자국 리그뿐 아니라 국제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는 경우로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유형은 포르투, 세비야, 리옹 사례이다. 우승보다는 돈을 지향하는 축구계의 거상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공통점은 유럽대회에서의 성적과 우승보다는 클럽의 금고를 채우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델이다.

    그런데 이것도 대단한 것이 클럽이 이익을 내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의 성적을 내주지 않으면 거상 짓도 못 한다는 것.(유럽대회가 싸게 영입한 선수들의 쇼 케이스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거기서 떨어지는 이익은 부상이고) 포르투는 지난 시즌 유로파 리그에서 우승을 먹고는 엄청난 가격으로 감독마저 팔아치웠는데 그게 바로 첼시에서 얼마 전에 짤린 빌라스-보아스.

     

    수트 간지가 개간지였던 보아스.. ㅠㅠ @

    세 번째 유형은 어슬래틱 빌바오 사례다. 거의 유일무이하다시피 한 특이한 색채를 가진 팀인데, 이 클럽의 목표는 우승이나 돈이 아니다. 축구를 통해 바스크 민족의 자존심을 세우고 바스크(바스크 분리주의의 바로 그 바스크다) 아이들에게 민족혼을 집어넣는 것이 목적이다. 성적과 돈은 그에 따른 부수물일 뿐 중요하지 않다는 것. 실제 어슬래틱 빌바오의 레플리카를 사려면 빌바오에 가야만 한다.

    그들은 이렇게 성공한 모델과 함께 실패한 모델 또한 벤치마킹한다.

    먼저 발렌시아. 발렌시아의 경우 첫 번째 유형과 두 번째 유형 사이에서 헤매다가 침몰한 케이스인데, 첫 번째 유형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꾸준하게 클럽의 예산을 2억 유로 내외로 유지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문제는 한때 합리적인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던 발렌시아가 회장이 바뀌면서 확실한 투자를 할 것인지, 두 번째 케이스로 남을 것인지 명확한 지향점을 찍지 못했다는 점이다. 결국 발렌시아에게 남은 것은 엄청난 부채와 함께 어정쩡한 성적만이 남아서 인간계를 여전히 헤매고 있다.

     

    응원을 안 할 수도 없고 그저 깝깝하기만 했던 발렌시아 팬들.. “깝깝하면 니가 뛰던지..” feat.기성용

    다른 케이스는 한 때 남미 선수들의 쇼 케이스였던 네덜란드 클럽들의 몰락. 아약스, PSV 아인트호벤 등의 클럽은 21세기 초반까지 두 번째에 걸맞는 전략을 가지고 운영됐지만 포르투갈 리그의 시장 잠식과 함께 리그 전체의 경기력 저하가 맞물리면서 과거의 명성을 못 찾고 있다.

    이렇게 위너와 루저를 진단한 그들의 선택은 혁신이었다. 그 순간 혁신을 하지 않는다면 바르샤는 ‘클럽 그 이상’이라는 모토에 걸맞지 않게 빌바오 케이스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빌바오의 케이스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레알과 경쟁하는 바르샤의 철학과 상충됐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렇게 혁신은 시작됐고, 그 과정은 책 한 권은 써야 할 정도이니 생략하자.(실제로 책 한권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다들 알다시피 레이카르트 감독에 이은 과르디올라 감독의 전성기로 꽃을 피운다.

     

    바르샤 전성기를 만발하게 했던 펩.. 이제는 바르샤에 없다.. ㅠㅠ

    또한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2003년 당시 맨유의 매출액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던 바르샤의 매출이 최근에는 맨유를 앞질렀거나 비슷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런 성공을 가져 온 가장 큰 원인은 혁신이었지만, 그 혁신을 선택한 이유는 어찌 보면 간단했다. 바르샤는 ‘클럽 그 이상’이라는 자신들의 가치 지향을 명확하게 인식했다는 점이다. 바르샤는 까딸루냐 지방에서 단순한 축구 클럽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이라는 철학, 또한 까딸루냐의 정치사회, 문화 전반에서 영향을 미치며 바르샤의 서포터들은 결코 빌바오와 같은 위치에서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Needs의 파악이었다.

    어떤 위치에 있는 클럽이건 성공한 클럽들을 본다면 정확하게 현실을 보고 그 현실에 걸맞는 전술을 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실패한 클럽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하나로 만드는데 실패했다는 공통점이 있고.

    그런 관점에서 빌바오와 같은 클럽이 되겠다고 하는 것을 반대하거나 비판할 이유는 없다. 축구만 놓고 본다면 굉장히 매력적인 동시에 그런 클럽으로 살아남는다는 것 자체가 능력인 것이다.

    또한 전통적인 관점에서 빌바오의 위대함을 인정받는 만큼이나 현대적인 관점에서 포르투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고 칭찬을 받고 있을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 누가 상상을 했겠는가? 감독도 매매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듣도 보도 못했다고 다 나쁜건 아니다..

    하지만, 바르샤가 되겠다거나 포르투가 되겠다고 하면서 빌바오 식의 전술을 택하거나, 빌바오가 되겠다면서 포르투 식의 전술을 택한다면, 그건 당근 실패가 뻔한 일이고, 욕먹어 마땅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축구라는 것은 대단히 즉자적인 반응이 나오는 동네라서 욕먹기 이전에 실패로 귀결되겠지만.

    짧은 본론과 결론 들어가자.

    한 정당이 등대정당이 되겠다거나 혹은 원내 정당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을 반대하거나 비판해야 할 이유도 없다. 그건 내가 비판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존중받아 마땅한 정치적인 선택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지향과 현실의 괴리가 해결되지 않았을 때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발렌시아처럼 어정쩡한 현실인식과 지향을 가지는 순간 막장을 보게 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번 총선 결과만 놓고 본다면 축구와 비슷하게 굴러간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진보신당이 등대정당(빌바오)과 원내정당(포르투) 사이에서 헤매다가 등록 취소라는 결과를 받았다면, 통합진보당은 지금처럼 가다가는 발렌시아처럼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선출과정의 잡음과 진상조사 결과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보고 있으면 발렌시아가 헤매기 시작하던 당시의 클럽하우스 분위기가 생각난다)

    이 글이 <레디앙>의 재창간 시점에서 처음으로 쓰는 글이라는 점에서 몇 마디를 덧붙여 보자면 진보신당과 통합진보당이 지금처럼 어정쩡한 포지션인 이상 성공의 가능성은 낮아보일뿐더러 지지하고픈 생각도 별로 없다.(통합진보당의 경우 경기동부의 성공을 전체의 성공이라고 할 사람을 없겠지?)

    그렇다면 새로운 진보좌파정당은 절실한데(최소한 나에게는) 그 과정에서 지향을 제대로 가지는 것부터 시작해보자는 말을 하고 싶다. “같은 좌파세요? 아이고 그러시군요.” 이럼서 대충 눙치고 넘어가지 말자는 말이다..

    언제나 그렇듯 아님 말고, 싫음 말고다만…

    현실은 시궁창인데..

     

    정신승리만 해봐야 소용없다..

     

    물론 이렇다면 조땐거다만.. @@;;;

     

     

    필자소개
    지역 공동체 라디오에서 기생하고 있으며, 축구와 야동을 좋아하는 20대라고 우기고 있는 30대 수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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