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탁 공포정치 맞선 지방 연합군 거병
        2009년 01월 28일 08:3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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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동탁은 마음대로 황제를 갈아치우고 공포정치를 시작했다. 이 공포정치는 동탁의 성격이 유달리 포악해서 발생한 상황이 아니었다. 동탁은 얼떨결에 잡은 정권을 잘 유지하기 위해 나름대로 합리적인 전략을 찾아냈다. 그것이 바로 공포 정치였다.

    동탁의 공포정치

    명박병법은 크게 민중의 반란이 ‘일어나기 전’ 과 ‘일어난 후’로 상황을 구분하고 있었다. 일어나기 전의 핵심적인 대응전략은 ‘정권 대체세력을 발생 단계에서부터 원천통제 하는 것’이었다. 동탁은 이런 원리로부터 처절한 반대파 제거에 나섰다. 동탁의 반대파에 대한 기본노선은 적대적 공존 관리가 아니라 상대의 존재 자체를 깨끗이 부정하는 타도노선 이었다.

    동탁이 제일 먼저 손을 본 것은 폐위시킨 황제였다. 동탁은 자신의 모사인 이유(李儒)를 폐제와 하태후, 두 모자(母子)에게 보냈다. 물론 그냥 보낸 것은 아니었다. 이유의 손에는 흰 비단끈과 술 한 병 그리고 작은 칼 한 자루가 있었다. 이유는 먼저 하태후에게 자신이 가져간 물건들을 쭉 펼쳐 보였다.

    폐위된 14살 소제가 이를 의아하게 여겨 물었다. "이것들이 웬 물건이오?" 이유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하태후는 그 웃음의 의미를 금방 알아챘다. 이야기인 즉 목매달아 죽을 것인지, 독을 탄 술을 먹고 죽을 것인지, 칼로 죽을 것인지? 죽을 방법을 선택하라는 얘기였다.

    하태후와 소제는 죽지 않으려 반항했으나 소용없었다. 결국 어머니인 하태후는 비단끈에 목이 졸려 죽고 소제는 강제로 독을 탄 술을 먹고 죽었다. 소제로서는 황제가 된지 5달 만에 일어난 일이었으니 권력의 무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주요 정적을 1차 제거한 동탁은 다음으로 ‘청류’라 불리던 지식인 운동을 제거 대상으로 삼았다. 환제와 영제 시대에 환관의 전횡이 절정에 이르자 외척과 환관의 추천으로 관료가 된 자들이 조정에 넘쳐났다.

    이들을 ‘탁류’라 비난하면서 스스로 ‘청류’를 자처하는 일군의 흐름이 있었으니 사람들은 이들을 ‘청류파’라 불렀다. 이들은 종종 환관의 횡포를 탄핵하다가 옥사하는 경우가 있었을 정도로 ‘유교’라는 이념에 충실한 집단이었다.

    지식인 운동과 유교 이념

    이들 청류파의 근거지는 태학이었다. 당시 낙양에는 태학이 있었고 3만명의 태학생이 있었을 정도로 청류파는 나름의 세력을 꾸리고 있었다. 황건 농민 반란 당시에는 황제 측에서 낙양 내부의 청류파가 황건농민군과 연합할 경우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된다는 판단을 하는 바람에 대규모 관군을 낙양 수비에 집중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청류파의 기본은 어디까지나 한 황실을 유지한 상태에서 세상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유교 이념에 있었다. 따라서 청류파의 극히 일부만 환관세력을 타도하기 위해 농민무력과 손잡아야 한다고 판단해, 황건당 청년파의 일원으로 봉기에 참여 했을 뿐이었다.

    동탁의 눈에는 이들 청류파가 매우 위험한 존재로 보였다. 황건 농민 반란 당시 황제가 이들이 농민군과 연합할 것을 걱정할 정도였으니, 동탁의 눈에도 잠재적 위협으로 비쳐졌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말하기 좋아하는 지식인 사회에서 동탁의 정권 찬탈 과정은 술자리에서 씹어 먹기 좋은 욕 안주로 제격이었다. 태학생들 사이에서 동탁은 천하에 인간 같지 않은 인간으로 지칭되고 있었다.

    동탁이 이를 가만히 봐줄 리가 없었다. 동탁은 폐제와 하태후를 죽인 후 2단계로 사소한 핑계를 대서 청류파를 완전히 쓸어버리기로 작심하였다. 그 해 2월이었다. 동탁이 군사를 이끌고 태학의 정문 앞에 이르렀다. 때는 봄이 완연하여 태학의 학생들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나와 봄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동탁이 말했다. "태학의 학생들이 학업은 하지 않고 모여서 꽃놀이 판을 벌이고 있으니 제 본분을 잃은 행동이다". 그리고 곧바로 학생 몇 사람을 끌어다가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던 정문 앞에서 곤봉으로 마구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이없는 상황에 분개한 주변의 태학생들과 백성들이 모여들었다.

    공포와 침묵 그리고 저항

    군사들은 그들을 상대로 ‘즉각 해산하지 않으면 모두 척살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태학생들과 백성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동탁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저놈들이 감히 관부의 해산 명령을 따르지 않으니 이것은 반역이나 다름없다. 내 직접 역적 무리를 다 쓸어버려야겠다. 저기 모여 있는 저것들을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베어버려라!"

    동탁은 그렇게 명을 내려 태학 정문 앞에 모여 있던 백성들과 학생들을 마구 죽이기 시작했다. 동탁의 부하들은 칼 한 자루, 몽둥이 하나 없이 비무장으로 있던 사람들을 남자건 여자건 보이는 대로 찌르고 베기 시작했다. 저녁 때가 되니 동탁의 수레에 천여 개의 사람머리가 매달렸을 정도였다. 여기저기 피를 흘리며 도망간 사람들을 합치면 수천이 넘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태평스런 나날을 구가했던 태학의 학생들을 상대로 벌인 끔찍한 살상극이었다. 동탁은 태학을 근거지로 하는 청류파들을 제물로 삼아 공포정치를 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공포정치의 효과는 처음에 극에 달했다. 누구하나 동탁의 죄상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는 경우가 없었다. 동탁의 공포정치는 겉으로 사람들의 입을 막는데 성공한 듯 보였다. 하지만 이 상황이 오래갈 리 없었다. 사람들은 겉으로 들어 내지 못한 의지를 암살 같은 숨은 행동으로 계속했다. 그렇지 않아도 종종 발생하던 동탁에 대한 암살 위협은 계속 늘어났다.

    특히 태학에서 치명적인 학살을 당했던 청류파는 ‘폭력, 학살 정권 타도를 위한 청류파 직접행동단’을 결성해 동탁을 직접 처단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 때 오부라는 청류파의 한 지식인이 조복 속에 가벼운 갑옷을 받쳐 입고 단도를 품은 채 동탁을 죽이려다가 실패한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조정은 뒤숭숭하였다.

    조조의 격문 정치와 가짜 조서

    그 역시 동탁을 암살하려다 실패하고 우여곡절 끝에 낙양을 탈출한 조조는 아버지 조숭이 살고 있는 진류 땅에 도착한다. 조조는 처음에 단지 죽지 않고 살았다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러나 잠시 후 조조는 생각을 고쳐먹기 시작했다. 그가 동탁에 저항했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지원, 동조세력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단지 내가 동탁을 죽이려다 실패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날 충분히 신뢰하고 도와주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시대의 흐름이자 시대의 정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조조는 재빨리 잠재된 시대의 동력을 이끌어내야겠다는 판단을 했다. 사람들을 불러모아 세력을 조직하고 정치후원을 조달해 독자적인 무장 세력을 형성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조조는 이러한 잠재된 정세 동력을 현실화하기 위해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궁리해보기 시작했다.

    이 때 다시 한번 태평도 시절의 부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타인의 머릿속에 내 머릿속의 생각과 비슷한 얘기를 전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격문’이었던 것이다. ‘머릿속에 잠재된 생각이나 욕망을 눈에 보이도록 바꾸어놓은 것이 글자가 아니던가!’

    조조는 그냥 격문이 아니라 뭔가 ‘위엄이 있는 문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조가 생각해낸 방도는 "동탁을 처단하라"는 황제의 가짜 조서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이 가짜 조서는 어차피 ‘밀명’ 이기 때문에 누구도 그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종이였다. 이 가짜 조서를 조조가 뿌리고 다니자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조정의 밀명을 받고 조조가 내려왔다.’는 소문이 급격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조조, 군사와 자금을 만들다

    이런 소문이 퍼지자 인근 장정들과 향사들이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조조는 사람들에게 가짜 조서를 보여주고 다니면서 거사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이 때, 제일 먼저 양평 사람 악진이 1천여명의 인마를 이끌고 달려왔다. 뒤이어 조조와는 피붙이와 다름없는 하후돈 하후연 형제가 군사 3천을 이끌고 왔다. 특히 하후돈은 어려서부터 창 솜씨가 뛰어나기로 유명한 장수였다. 이 밖에 조조의 사촌뻘 되는 조인과 조홍이 각기 군사 1천씩을 이끌고 합류했다.

    이렇게 순식간에 수천의 대오를 만들자 조조는 부족한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진류 지역의 대부호이던 위홍을 찾아갔다. 조조는 위홍에게 황제의 거짓 밀서를 보여주며 군자금을 내 줄 것을 요청했다.

    위홍은 조조가 내민 밀서를 믿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아니었다. 이미 진류지역에서 수천의 군사력을 확보한 조조에게 위홍은 대항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위홍이 가진 재산이란 순식간에 들고 멀리 도망갈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었다. 위홍은 판단이 빨랐다.

    ‘조조는 이미 조정에 반하기로 작심한 인간이다. 여기서 조조에게 등을 돌리면 어차피 조조의 손에 죽을 것이다. 기왕에 이렇게 된 것, 아예 조조에게 확실하게 줄을 서자!’

    위홍은 소극적으로 나가 조조에게 재산을 빼앗길 바에야 아예 적극적인 자세로 재산을 헌납해 조조로부터 협조자의 지위를 얻는 편을 택한다. 조조는 이렇게 위홍이 적극적인 동조자가 되어주자 몹시 기뻤다. 이로 인해 조조의 위세는 더욱 커져만 갔다.

    반동탁 연합군 기병하다

    이렇게 조조가 어느 정도 세를 형성하자 정세를 관망하던 지방세력들이 본격적으로 조조 측에 호응하기 시작했다. 서량 태수 마등, 북평 태수 공손찬 등이 각기 몇천, 몇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달려왔던 것이다.

    한편 동탁의 횡포에 분개하여 낙양을 떠났던 원소에게도 조조의 가짜 조서가 전달되었다. 사실 이 때 반동탁 운동은 전국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형성되고 있었다. 단지, 이 시한폭탄의 뇌관을 누가 터트리느냐 라는 문제만 있었을 뿐이었다.

    동탁이 권력을 잡자마자 낙양을 떠났던 원소 역시 군사를 기르며 호시탐탐 동탁을 향해 쳐들어 갈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원소는 사실 소제를 세우고 십상시의 난을 진압한 일등 공신이었다. 그러나 동탁이 나타나 모든 것을 가로 챈 것이었다.

    "조조가 동탁을 처단하기 위해 황제의 밀명을 받아 의군을 모집한다는 조서가 왔는데 어쩌면 좋겠는가?". 원소는 심복들을 소집해 이 같이 물었다. 안량이 입을 열었다. "망설일게 무엇입니까? 당장 조조와 힘을 합쳐야 합니다.".  

    원소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하필 조조가 황제의 밀조를 받았다니, 그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황제의 밀조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별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황제가 밀조를 내렸건 안 내렸건, 황제가 마음속으로 누군가 동탁을 처단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이미 그 조서인지 뭔지를 근거로 중원천하의 반동탁 연합군이 모두 진류땅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우리만 빠질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하긴, 그 말이 맞다.". 원소는 결심했다.

    원소가 3만여 병력을 이끌고 말을 달려 진류 땅에 도착하자 먼저 도착한 반동탁 의병의 진용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원소는 군막에 도착순으로 적혀 있는 명단을 쭉 훑어보았다.

    제1진은 남양태수 원술, 제2진은 기주자사 한복, 제3진은 예주자사 공주, 제4진은 연주자사 유대, 제5진은 하내태수 왕광, 제6진은 진류태수 장막, 제7진은 동군수 교모, 제8진은 산양태수 유유, 제9진은 제북상포신, 제10진은 북해태수 공융, 제11진은 광릉태수 장초, 제12진은 서주자사 도겸, 제13진은 서량태수 마등, 제14진은 북평태수 공손찬, 제15진은 상당태수 장양, 제16진은 장사태수 손견, 제17진은 발해태수 원소 자신이었다.

    천하의 명장 호걸 구름처럼 모여들다

    그야말로 천하의 명장, 호걸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었다. 17진을 이룬 제후들의 군사가 모두 모이니 진류의 3백리 들판이 근왕의 의군들로 뒤덮이다시피 했다. 원소는 새삼 급류와 같은 시대의 흐름에 놀랐다. 이 때, 16진의 수장을 맡은 장사태수 손견이 제후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이제 우리는 저 잔혹한 동탁을 없애고 황실을 보전하자는 대의를 위해 모였소. 그러나 우리 군사는 수는 많으나 명령을 받는 곳이 제 각각이라 힘을 합치기 어렵소. 먼저 우리의 맹주를 세우고 모두 그 명령을 받기로 해야 단합할 수 있을 것이오."

    그러자 조조가 그 말을 받았다. "맞는 말씀이오. 저는 원본초(본초는 원소의 자)를 우리의 맹주로 하자는 제안을 드리는 바이오." 원소가 황급히 일어나 사양했다. "저는 그만한 그릇이 못됩니다."

    그러다가 제후들이 한결같이 원소가 아니면 안된다고 추대하자 원소는 이윽고 맹주가 되는 일에 동의했다. "제가 비록 재주 없으나 공들의 추대를 받아 맹주의 자리에 올랐소. 군대에는 군율이 있는 법이니 마땅히 지켜야 하오."

    조조로서는 무형의 정치적 승리였다. 자신이 주도하여 반동탁 연합군을 결성하고, 자신이 점찍은 인물을 결국 연합군의 총대장으로 세운 격이었던 것이다. 이튿날부터 원소는 군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내 아우 원술에게 군량과 말먹이 풀 같은 군수 조달을 맡도록 하겠소. 또 손견 장군을 선봉으로 삼아 낙양으로 가는 요지인 사수관을 먼저 점령하도록 해야겠소. 손견 장군은 먼저 가서 사수관을 깨뜨리시오. 장군의 용맹이면 능히 그 일을 할 만하오."

    거침없는 원소의 군령이었다. 이에 선봉을 맡은 손견은 자기가 이끌고 온 군마를 이끌고 사수관으로 달려갔다. 그의 휘하에는 1만여 명의 병졸들 외에 황개, 한당, 정보 같은 용장들이 있었다.

    지방 연합군의 첫 패배

    손견이 사수관을 향해 몰려온다는 소식을 듣자 동탁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급히 여러 장수들을 불러 대책을 의논했다. 그 때 앞으로 나서는 장수가 하나 있었다. "주머니 속의 물건 꺼내 듯 제후들의 목을 잘라오겠습니다"

    동탁이 보니 화웅이라는 장수였다. 동탁은 화웅에게 마보군 5만을 주어 그날 밤으로 사수관으로 향하게 했다. 때맞춰 손견도 휘하의 군마를 이끌고 사수관 앞에 이르렀다.

    그러나 화웅은 쉽게 손견을 당해내지 못했다. 화웅의 부장들은 출전하는 족족이 손견의 군사들에게 당하고 돌아왔다. 결국 화웅은 높고 견고한 사수관의 성벽 위에서 통로를 지키기만 할 뿐 도통 나와서 싸우려 들지 않았다.

    그러자 아무리 용맹한 손견이지만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5만 대군이 지키는 천혜의 요새인 사수관을 1만 군사로 빼앗기는 힘들었다. 별 수 없이 본진이 오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끌다보니 군량과 마초가 동이 났다.

    아무리 강동의 맹호 손견이라 하지만 군량과 마초가 없이 싸울 수는 없었다. 얼마 못 가 배고픈 군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군마도 더 이상 뛰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손견의 곤경을 눈치 챈 화웅이 야간에 손견의 진채를 급습했다. 놀란 손견군이 급히 갑옷을 꿰고 말 위에 올랐을 때는 이미 적이 내지른 불길까지 치솟아 손견의 군사들은 크게 혼란에 빠졌다. 화웅은 날이 새도록 손견의 군사들을 죽이다가 사로잡은 군사를 앞세우고 돌아갔다.

    관우의 화려한 등장

    손견이 화웅에게 대패했다는 소식을 들은 원소는 크게 놀랐다. 모든 제후들이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대책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그때 급보가 날아왔다. "화웅이 사수관을 내려와 싸움을 걸어오고 있습니다."

    원소가 급히 제후들에게 물었다. "누가 나가서 대적하겠소?". 그 말에 원술의 등 뒤에서 유섭이란 장수가 나섰다. "소장이 나가보겠습니다"

    원소가 기뻐하며 허락했다. 유섭은 창 한 자루를 집어들고 씩씩하게 화웅을 맞으러 나갔다. 그러나 그의 말발굽 소리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급한 보고가 들어왔다. "유장군께서는 화웅과 겨룬지 3합도 못 돼 목을 잃으셨습니다"

    그 기막힌 전갈에 자리에 있던 제후들은 모두 놀랐다. 잠시 서로 쳐다 볼 뿐 말이 없는 가운데 불쑥 한 사람이 일어났다. 태수 한복이었다. "내 상장 가운데 반봉을 내보내주시오"

    원소가 급하게 반봉의 출전을 명했다. 반봉의 위풍은 과연 늠름했다. 큰 도끼를 들고 부릅뜬 눈으로 달려 나가는 기세가 단번에 화웅을 장작 패듯 쪼개 놓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반봉이 달려 나간지 얼마 되지 않아 또 급한 전갈이 날아들었다. "반 장군 역시 화웅에게 목이 날아갔습니다."

    그 소리를 듣자 제후들은 모두 얼굴빛이 변했다. 상장군 둘이 잠깐 동안에 죽어나가자 모두 간담이 서늘해진 것이다. "내 상장 안량과 문추가 이곳에 없는 게 애석하구나. 둘 중에 하나만 있어도 어찌 화웅 따위를 두려워하랴!"

    더 이상 나서려는 장수가 없자, 원소가 크게 탄식했다. 그 순간 한 장수가 나서며 큰소리로 말했다. "소장이 나가 보겠습니다.". 모두가 놀란 눈으로 보니. 키가 아홉 자에 수염이 두 자, 얼굴은 잘 익은 대추 빛 같은 장수가 서 있었다. "저 사람이 누구요?"

    "유현덕의 아우로 관우라 합니다.". 그랬다. 그 장수는 관우였다. 원래 유비는 황건 농민 반란이 어느 정도 진압된 이후 중산부 안희현의 현위라는 낮은 벼슬을 하나 얻었다. 그러나 이것은 유비가 기대했던 벼슬 치고는 너무 보잘 것 없는 것이어서 유관장 삼형제는 속으로 불만이 많았었다.

    화가 난 유비, 관원을 폭행하다 

    그 때였다. 중앙에서 내려온 독우라는 감찰관리가 안희현에 내려와 유비의 비리를 감찰하겠다며 이것저것 따지기 시작했다. 독우는 유비가 황건란 당시의 전공을 과장해서 상부에 보고했고, 자신이 황족의 일원임을 사칭하고 다녔다는 두 가지 죄목을 상부에 고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유비로서는 억울했다. 사실 5백 군사로 5만 농민군을 해산시켰다는 것은 계산 방법의 문제였지 자신이 전공을 과장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5만명의 황건적 대오 중에 실제 군사라고 볼만한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 유비의 주장이었다.

    또, 자신이 황족의 일원임을 사칭하고 다녔다는 것도 유비는 억울했다. 유비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신이 한 경제(景帝)의 원손(遠孫)이라는 어머님의 가르침을 듣고 살아왔고 그렇게 주변에 얘기했을 뿐이었다. 이를 황족 사칭이라고 한다면 유비는 자신의 존재는 물론, 어머니의 가르침까지 부정해야 한다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경제의 아들, 딸이 200명이 넘었기 때문에 그 원손이라는 얘기는 도대체 확인이 불가능한, 신빙성 떨어지는 얘기인 것은 유비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독우가 이를 노골적으로 문제 삼자 온순하던 유비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사실 유비는 원래 불만을 속으로 쌓아두는 성격이었다. 그 불만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기 전까지는 계속 온순함을 유지하지만 일단 그 수준을 넘어서는 순간 사람들이 전혀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자기성질을 폭발시키는 성격이었던 것이다.

    그 폭발의 도화선이 이번엔 독우였다. 유비는 처음에는 참았다. 그러나 독우가 계속해서 유비의 심기를 건드리자 어느 순간 이윽고 성질이 폭발했다. 유비는 자신의 감찰관인 독우를 묶어놓고 매질을 가했다. 이것은 하극상이었다. 홧김에 하극상을 저지른 유비는 곧바로 관우, 장비와 짐을 챙겨 떠났다. 이로써 유관장 세 사람은 모두 관원을 폭행한 전력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관직을 집어던진 유비는 관우, 장비와 그 동안 기른 5천의 병마를 이끌고 자신의 선배인 공손찬에게 몸을 의탁했다가 공손찬이 조조의 선동에 따라 반동탁 연합군의 기치를 들자 함께 따라 나서 그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조조와 원술의 인사원칙

    하여튼 그렇게 해서 그 자리에 있던 관우에게 다시 원술이 물었다. "그럼 그대의 벼슬은 무엇이오?". "마궁수로 있습니다".

    관리를 폭행하고 공손찬에 의탁하고 있던 유비를 따라다니는 마당에 마땅한 직함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자 공손찬이 관우를 대신해 그냥 ‘활쏘는 사람’ 이라는 식으로 대답해 준 것이다. 그러자 돌연 원술이 관우를 꾸짖었다. "감히 한낱 궁수로서 출전을 요청하다니! 너는 우리 제후들에게 장군감이 없는 줄 아느냐? "

    그때 조조가 원술을 말렸다. "이 사람이 큰소리를 쳤으니 반드시 그만한 용력이 있을 것 같소. 시험 삼아 한번 내보내 봅시다." 그러나 원소도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한낱 궁수를 내보내면 화웅의 비웃음을 살 것이오."

    조조가 다시 말했다. "화웅이 어찌 그가 한낱 궁수인 줄 알아보겠소? 한번 내보내 봅시다" 조조가 능력만 있으면 출신이나 벼슬을 무시하고 사람을 쓴 것에 비해 원소는 언제나 가문이나 직위 같은 것을 중시했다. 그러나 이번엔 별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관우 외엔 아무도 지원자가 나오지 않자 원소도 마지못해 출전을 허락했다.

    "이 술 한 잔을 들고 가시오." 관우가 막 전장에 나서려 할 때 조조가 데운 술 한 잔을 권했다. 관우가 술잔을 받지 않고 그대로 나서며 말했다. "술은 그냥 놔두십시오. 다녀와서 마시겠습니다."

    제 물건을 맡겨두는 듯한 차분한 한마디와 함께 관우는 청룡언월도를 집어 들고 힘차게 말을 달려 나갔다. 그렇게 태연히 떠나는 모습이 마치 잃어버린 물건 찾으러 나가는 사람 같았다.

    그리고 잠시 후, 제후들이 막 결과를 궁금해 하려던 즈음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자, 여기 화웅의 목이 있소!"

    관운장이 화웅의 목을 땅에 내던지며 말했다. 관우는 곧바로 조조가 따라 둔 술잔을 들었다. 데운 술이 식지 않아 아직 따듯하였다. 관우의 목구멍으로 따뜻한 낮술 한잔이 흘러내렸다. (계속. 10편 ‘미녀첩자 초선’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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