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조정치, 돈 내는 기계를 넘어서
        2009년 01월 25일 10: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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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미국으로 떠나기 전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민주노동당 분열 전후로 정말 마음고생이 많았다. 그리고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 ‘노동자 진보정당 건설 전국추진위원회(노건추)’라는 것을 제안해 둔 상태였지만 그 길의 험난함을 알고 있어서 더욱 그랬다. 당연히 SEIU의 정치활동에 대한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관련해서 여러 사람을 만나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워싱턴 본부의 Skip Roberts, Peter Pocock를 비롯해서 LA 사무실의 Heidi, Ali Cooper, 캘리포니아 주 전체를 담당하는 Stacy, 심지어는 LA AFL-CIO의 정치담당자인 Rusty Hicks도 만날 수 있었다.

    난 그들에게 건방졌다

    그 외에도 SEIU LA Office에서는 전략지역으로 파견되었던 상근자들이 대통령 선거를 끝내고 돌아와서 자기 느낌을 얘기하는 자리도 있었고, Local 1877의 각 지역 정치 활동가들의 평가 모임에도 참가할 수 있었다.

       
      ▲LA 지역 AFL-CIO의 오바마 당선 축함 모임 모습.

    솔직히 미국 노동조합 운동의 정치활동에 대해서는 그저 민주당을 지지하는 운동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었다. 처음엔 건방졌었다. “역사적 맥락은 알겠지만 장기적으로라도 당신들은 민주당 지지 이상의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라고 대뜸 물었었다.

    돌아온 답변은 매번 같았다. “점진적으로!”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 ‘그래 결국 그 정도겠지, 그래도 우리는 잘 안되긴 하지만 지속적으로 독자적인 정당을 고민하는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만나면 만날수록 초라해지는 건 거꾸로 나였다.

    위원장 Andy Stern은 그의 책 『A Country That Works』에서 이렇게 반문한다. “내가 노조 지도자인가 아니면 현금 인출기인가?(Was I a leader of Workers or an ATM machine?)” 그리고 그런 질문에 대한 답으로부터 그들의 정치활동이 시작되고, COPE가 만들어졌다.

    그는 과거와 같은 고립분산적인 정당에 대한 지지를 바꾸었고, 특히 일방적인 민주당 지지와 거리를 두었다. “우리 조합원들은 지지할 후보가 민주당이냐 공화당이냐 혹은 좌익이냐 우익이냐에 관심이 없다. 우리 조합원들은 그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정치적 이슈가 옳으냐 그르냐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보기엔 이해하기 어렵지만 공화당을 지지하기도 한다. 오바마와 대선에서 격돌한 매케인이 이민 문제에 대해 우호적이기 때문에 지지한 경우도 있다. 철저히 실리적인 정치활동인 셈이다.

    다시 우리로 돌아와 본다. 우리 역시 민주노동당 분당과 함께 노동정치에 대한 심각한 반성을 하고 있는 중이고, 그 중에 하나는 노조의 정치활동이 “돈 대고, 사람 대는” 것에 머문 데 대한 반성이었다. 그 대답은 어디에 있을까?

    Committee On Political Education(COPE)

    2004년 대의원 대회 이후 SEIU는 정치강화위원회(Political Strength Committee)를 만들었다. 그리고 각 지부가 가진 자원의 10%를 정치활동에 쓰도록 했다. 이를 위해 정치활동을 위한 기구로 COPE를 만들었다. COPE는 독자적으로 기금을 가지고 활동한다. 노동자들이 조합에 가입할 때 조합비와 별도로 한 달에 5~10달러 정도를 별도의 정치활동 기금으로 내고, COPE에 가입한다.

       
      ▲Local 721의 조합원 가입원서, 밑에 COPE 가입란이 함께 있다. 

    “COPE에 가입되어 있는 노동자가 몇 명이나 되나?” 민주노동당 분열 전 나는 연맹의 정치위원장이었고 15만 조합원 중에 약 6천 명 정도의 당원이 있었다.

    돌아 온 답은 간단했다. “30만명!” 조합원 수가 다르긴 하지만 단순하게 비교해 보아도 엄청난 숫자라 할 수 있다.

    보고서에 의하면 2006년에 비해 COPE의 재정은 19%, 230만 달러(환율 1,200원일 때 27억원 정도)가 증가했다고 한다. 역사상 그 어느 노조보다도 많다고 했다. 

    AFL-CIO 본부에서 일하는 경제분석 전문가 Jeff Vogt도 SEIU의 정치활동이 상당히 강화되었다고 설명했다.

    조직과 정치가 결합되어 있다.

    COPE는 아주 세부적이고 구체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08년도 계획을 보면 주(states)의회 15개를 선정하여 친 노동자 후보가 다수를 점하도록 하고, 국회의 다수를 점하기 위해 48개 목표(target) 지역의 선거전에 대응을 조직한다.

    15개 주에서는 상원의원 지지를, 11개 주에서는 주지사 당선을 위한 운동을, 그리고 24개 주에서는 주민 발의안 중 나쁜 내용을 가진 것을 거부하는 부결 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자료를 보면 주의원을 세분화하여 의료보험 개혁을 지지하는 사람, 노동법 개정(EFCA)를 지지하는 사람으로 나누고 그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조직이 누구인가를, 그리고 목표가 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그것의 달성을 위해 노력한다.

    우리와 달리 상하의원을 한 번에 교체하지 않고 2년에 한 번 절반씩 선출하고, 주의 각 시장을 직선으로 뽑는 등 거의 매년 선거가 있기 때문에 더 활성화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COPE 담당자는 이렇게 말한다.

    “중앙 차원에서는 대통령 선거라든가, 연방 정부 차원의 후보 인준, 언론 사업, 로비 등을 한다. 그리고 지역 차원에서는 지역 차원의 후보 인준, 주 정부 예산 문제, 각 조직의 영역에 맞는 사업 등을 전개하고 필요시에는 몇 개 지역을 묶어서 활동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캘리포니아에는 20여 개의 지역노조가 있는데 주 정부 차원의 대응은 하나로 모아서 한다. 이번에 우리가 주 정부 행정집행관(Supervisor)으로 당선되는데 도움을 준 Mark Ridley Thomas는 SEIU 721에 매우 중요한 사람이다.”

    미국 노조 정치교육의 현장

    “특히 활동가가 현장을 조직하면서 목표를 가지고 COPE 참가를 조직한다. 정치와 조직이 결합(combine)되어 있다. 직접 현장에서 정치가 노동자의 삶과 별개의 것이 아님을 얘기하고 조직한다.

    예를 들면 경비원이나 청소부에게 의료보험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용주는 이 비용을 계속 줄이려 한다. 이것은 당연히 단체협약에 포함되어야 하는 문제고, 정치적인 문제다. 저임금 노동자에게 정치적으로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임금인상보다 정치적인 문제다.

    또 SEIU 1877의 단협 체결과정을 보면 LA 시장인 Villaragosa(교사노조 출신)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리는 각 영역에서 우리의 힘을 정치적으로 보일 때 효과가 무엇인지를 중심으로 조합원을 설득한다.”

    물론 이런 유기적 결합이 한 번에 된 것은 아니었다. SEIU는 ‘Local Union Strength Committee’를 구성하여 ‘Institute for Change’와 함께 대대적인 조직실사를 했고, 여기에는 20개 지부 700,000만 명이 설문조사 등에 참여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런 조사를 통해 “정치활동에 결합하는 조합원이 적다. 정치담당자 한 명이 혼자서 정치 사업에 대한 의무를 지고 있다. 그러나 더 많은 조합원은 조직가와 결합될 때 특화된 정치담당자가 하는 것보다 더 많이 결합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결국 우리와 비슷한 결론을 내리고 ‘결합’에 대한 대안을 찾은 것이다.

    조직과 정치가 결합되어 있다는 설명이 유난히 가슴에 와 닿았다. 정치 사업을 오래 담당해 온 내 경험을 돌아보면 우리는 그게 따로 놀았다. 생활과 연결된 정치, 조합원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활동은 조합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높이고 있다.

    2007년에 비해 COPE에 의한 매달 기부금은 25% 증가했고, 4,014명이 새롭게 COPE에 결합했다. 대선운동 기간 중에는 3,000명이 넘는 중앙과 지역의 스탭들이 주요 목표 대상인 20개 주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10,000명이 넘는 간호사, 청소부, 보육교사 등이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조합원들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SEIU안의 공화당 지지자들의 공식조직이 있다는 것이다. 현재 약 300,000명으로 알려지고 있는 데 이들은 공화당 후보들이 친 노동정책을 지원하도록 하는 활동을 전개한다. 2006년 SEIU는 ‘GOP Advisory Committee’를 구성했다.

    GOP(Grand Old Party)는 공화당의 별명으로 위원장 Andy Stern이 중심이 되어 SEIU 안에 ‘공화당 자문위원회’를 구성한 것이다. 이들은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에도 참가하고, 전당대회에도 참가하기도 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한다.

    SEIU Local 721의 부위원장이 공화당 지지자라고 했는데 아쉽게도 얘기할 시간을 못 가졌다. “공화당인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현재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책을 중심으로 지지하고 있다.”

       
      ▲COPE 선전물. 

    어느 나라나 노동운동의 전통이 다른 만큼 노동자 정치활동에 대한 사업도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섣부르게 어떤 길이 맞다고 말하는 것은 건방진 일일 것이다. 그래도 새로운 노동자 정당에 대한 고민은 없을까?

    “기존 정당에 대한 지지를 넘어선 새로운 정당에 대해서는 점진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노조의 조직률이 낮다. 이렇게 노동자의 영향력이 낮은 지금의 상태에서는 무엇보다 노조의 힘이 커져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는 게 COPE 업무를 하고 있는 Heidi의 설명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10명이 COPE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면 조합원 중에 정치인이 되는 경우는 없을까? “그런 경우는 아직 없다. 우리는 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다. 조합원들이 처음에는 정치가가 되는 것을 동의하지 않았다가 이제야 동의한다. 전국적으로 50~100명 정도를 교육 훈련 중이다”라고 말했다.

    다시 우리를 돌아본다. 지금까지 나는 선거운동에 결합하여 10명 넘게 지방의회 의원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 중에는 ‘노동자’를 배반하고 ‘정치’를 택한 사람도 많다. 당선에 급급하여 출마 조직을 우선해 온 나로서는 “교육과 훈련”이라는 얘기에 많이 찔렸다.

    ‘로비’ 효과는 아침 먹을 때가 제일 크다

    ‘로비’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낯설다. 뭔가 안 좋은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사전적으로 보면 “의원에게 압력을 가하고, 법안 통과 운동”을 하는 것으로 미국에서는 일상적이다. SEIU에는 본부차원에서 6명의 로비스트가 있고, 지역마다 사안에 따라 로비를 한다.

    “경험상으로 보면 로비는 아침 먹을 때가 제일 효과가 크다. 최고의 로비는 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얘기가 중요하다. 선거에 나가는 정치인이 기억하는 것은 사람의 이야기다. 누가 그 얘기를 했는지를 기억한다. 예를 들면 정치인들은 어떤 가족이 의료보험 문제로 고통받았는지를 기억한다. 우리는 이민 문제, EFCA 문제, 건강보험(health care) 문제를 중심으로 국회에 대한 대응을 하고 있다.”

    “모든 정치인들이 토요일이면 자기 지역으로 돌아간다. 그 때가 중요하다. 우리는 위원의 지역사무실에 조합원을 데리고 가서 함께 미팅을 한다. 조합원들이 직접 애기를 하도록 한다. 이게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 장면을 카메라로 찍어서 뉴스레터로 발행한다. 마치 소를 몰고 가는 것처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정치인들과 함께 갈 수 있도록 노력한다.”

    사명감을 가지고 조합 활동의 하나로서 로비를 하는 것이다. 특히 주 정부나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조합원들은 고용과 처우에 대해 정치가 아주 긴밀한 연결을 가질 수에 없는 조건에서 힘을 조직하는 방식의 하나로 로비를 사용하고 있었다.

       
      ▲SEIU를 비방하는 뉴욕타임즈 12월 15일자 전면광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비가 가지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서 “로비스트는 아주 높은 도덕성과 헌신성이 요구될 텐데 조직적으로 그걸 어떻게 통제하는가?”를 물어보았다. 사실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의 상원의원 자리를 두고 일리노이주의 주지사 Blagojevich가 뇌물을 받은 혐의로 미국이 한창 시끄러운 것을 신문에서 보았다.

    거기에 SEIU가 관계되어 있다고 전면광고를 내는 사용자 단체까지도 있었다. 그러나 얘기가 일리노이주 문제로 넘어가면서 “문제는 민주노조다”라는 대답 이상을 듣지 못했다.

    언젠가 미국 노동자들이 ‘점진적으로’ 새로운 대안을 가진 정당을 고민하게 된다면 아마도 이러한 COPE의 정치적 활동 경험이 바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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