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2009년, '반란의 해'
        2009년 01월 23일 09: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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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유럽 소식들을 접할 때마다 전쟁터에서 전황을 알리는 소식지를 읽는 듯한 느낌입니다. 곳곳에서 민중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이고, 또 가면 갈수록 그 강도가 세지기만 합니다.

    사실, 여태까지 본 것은 어디까지나 시작에 불과하니 금년은 어쩌면 역사에서 ‘반란의 해’로 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1968년 이후로 이미 40년이 지났으니 한 번 더 그런 해를 겪는 것은 의미 있지요. 요즘 정부가 ‘떼법’을 억수로 욕하지만, 사실 민주성이 거의 없는 형식뿐인 우리 ‘민주주의’ 하에서는 대규모 집단 행동 이외에는 지배자들에게 그 어떤 뜻 있는 양보도 따낼 방도는 별로 없습니다,

    유럽은 전쟁 중?

    이 ‘떼법’이란 사실 위기 시대 민중들의 생존법일 뿐입니다. 그것까지 봉쇄한다면? 아예 화약고 전체가 다 터져버릴지도 모르겠어요. 며칠 전에 준주변부에서의 ‘혁명’의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한 바 있었는데,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지배자들도 몸 보전을 좀 잘 하려면 ‘떼법 지수’를 좀 덜 들먹이기를 권합니다예…

    사실 국가 파산 상태가 다 된 종전의 신자유주의의 모범국, 아이슬랜드는 바로 지금 ‘터지고’ 있는 것입니다. IMF 구제금융과 노르웨이 등 스칸디나비아 자매국들의 구제로 겨우 살아남았지만, 소비 수준은 동유럽 수준으로 떨어지고 인구의 약 25%가 노르웨이 이민을 꿈꾸는 곳은 지금 아이슬랜드입니다.

       
      

    뭐, 그 쪽 분들에게는 노르웨이 이민에 제한이 없기에 그렇게 될는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성장’의 폐허에서 드디어 오래간만에 적기(赤旗)가 꽂혔습니다. 지금 며칠간 야당(좌파적 사회주의자 – 노르웨이의 사회주의좌파당과 동격의 당임)과 노조 등이 주도하는 시위로 국회가 포위 당하여 수도 레이캬위크가 비상 상황입니다. (관련링크)

    사민주의자들마저도 지금 정부를 떠나 야당 진영에의 합류를 할까 고심하고 있는 중이랍디다. 잘 되면 미구(未久)에 그 섬에서 지금 노르웨이 정부와 같은 성격의 강력한 좌파 블록 정부가 들어설지도 모르겠어요. 문제는, 좌파가 권력을 거머쥐어도 국가 책임이 된 부실 은행들의 채무를 어떻게 갚아야 할는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좌파가 집권한다 해도

    하여간, 이번 아이슬랜드판 신자유주의 경제 몰락으로는 그 섬에서 앞으로 아마도 한 세기 동안 1980년대초반 이전의 국가주도, 어업/관광업 위주 모델을 절대 떠나지 않을 거에요. 아이슬랜드로서는 최적의 모델이지요, 뭐.

    아이슬랜드도 이제 사람들이 다 짐을 싸가지고 떠나는 ‘북구판 동유럽’이 됐지만 ‘원조 동유럽’, 즉 구소련, 구 동유럽 국가들은 1929년 이후의 최악의 위기로 ‘반란’ 상태입니다. 약 1주일 전에 – 제가 소련 시절에 자주 여행다녔던 – 라트비아 공화국의 수도 리가에서 노조 등 대중 개혁주의 조직들이 주도하는 격렬 시위로 비상상태가 돼버렸어요.(관련링크)

    스웨덴, 독일의 투자와 차관으로 이루어진 여태까지의 ‘고성장’이 바닥을 드러내고 대중들의 소비력이 급격히 떨어지니 서구형 소비자가 되려다가 갑자기 다시 빈민이 된 사람들이 들고 일어난 것입니다.

    또 제가 동유럽에서 가장 좋아하는 나라인 리투아니아도 공무원 연봉 감봉과 연금생활자 연금의 인플레이 연동제 포기 등 정부의 반민중적 위기 대책에 노조 등이 대규모 시위를 조직해 결국 ‘반란’의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부상자까지 다수 나왔으니 조용한 나라 치고는 아주 비상한 일이지요.(관련링크)

    지금 불가리아 등도 ‘민란’을 대비하고 있는 긴장의 상태고, 앞으로는 공업 생산량이 약 25% 떨어진 우크라이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는지 아무도 감히 예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며칠 전 이야기한 대로 유럽의 준주변부, 즉 1인당 1~2만불 안팎의 중간 규모 소득의 중진국들은 국제적 질서의 ‘약한 고리’가 된 셈입니다.

    한국에서는?

    그들과 구조적으로 매우 닮은 – 그리고 복지제도는 그들보다 훨씬 못하는 – 한국에서는 금년에 어떤 일이 얼어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번 용산 참사를 보시면 가히 아실 것입니다.

    제가 걱정하는 바이기도 하지만, 경제가 쇠락해가고 생존이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민생고를 해결하기는커녕 ‘강경 진압’과 살인적 망동으로 대응할 경우 민중의 행동은 대개 ‘비폭력’ 수준에 잘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은 고금동서의 통례입니다.

    이게 걱정이에요, 걱정. 피가 피를 부르거든요. 그 사실을 정부만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2009년판 촛불 사태가 횃불 사태, 또는 투석전 사태로 발전될 경우에는 민중을 제발 탓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준주변부가 이제 들고 일어나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혁명’이 도래할까요? 글쎄, 지금까지 제가 유심히 지켜보는 아이슬랜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지에서는 대중의 행동들을 좌파적/급진적 사회주의자 – 노르웨이의 사좌당이나 독일의 좌파당 격의 정치조직들과 노조들이 주도해온 것이고, 그들이 선언한 목적은 제가 몇 달 전에 이야기한 ‘급진적 개혁’과 거의 동질적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이윤 추구가 아닌 복지 지향적 국가 주도의 경제 (여기에서 은행의 국유화가 중심적임), ‘자유무역’의 중지와 민중의 요구에 맞추어진 통제된 무역만의 허용, 외국 투자를 위시한 일체 투자에 대한 철저한 통제 등은 핵심적 아젠다입니다.

    혁명과 급진적 개혁

    케인스주의보다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간 것은, 예컨대 은행을 비롯한 대규모 기업체들의 국유화에 대한 요구일 것입니다. 어차피 경제가 폐허화되는 상황에서는 국유화는 유일한 생존 방안일 수도 있구요.

    하여간 제가 깊이 사랑하는 동유럽의 리투아니아 같은 곳들은 일종의 ‘민주화된 소련’, 즉 국가 주도의 경제이면서도 현실적 소련과 달리 민주주의/인권주의의 틀을 유지하는 사회가 된다면 저로서 더할 나위 없이 기쁘지요. 물론 구소련과 다르게 국가가 중소부문까지 다 잠식하여 경제를 송투리째 통제할 필요성까지야 만무하지요.

    요컨대 볼셰비키들의 일당 독재/비밀경찰의 횡포만 빼고 개인 인권 보호 위주의 성숙된 민주주의로 대체시킨다면 1921~1929년 사이의 소련의 국가 자본주의적 혼합경제시스템과 같은 모델은 유럽 준주변부의 나라들에게 – 물론 시대적 변화에 따라 알맞게 손질한 뒤에는 – 어느 정도 맞을 여지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러나 그 목표 달성을 위해 가열찬 싸움을 계속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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