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만지면 어때!”
    2009년 01월 22일 03: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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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타입의 학생이었는가?

   
  ▲ 필자

고등학교 때 이런 친구가 있었다. 공부는 잘한다. 늘 반듯하고,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는다. 말은 언제나 바른말만 한다. 지적하는 것이 사리에 맞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런데, 애들한테 인기는 없었다. 왜냐?

예를 들면 이렇다.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낸 이수호 선생님은 고등학교 당시 우리의 국어선생님이셨다. 솔직히 이수호 선생님은 시험에 나오는 문제 기막히게 잘 찍어주거나, 고득점에 맞는 수업을 진행하는 ‘학력향상형 선생’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들도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하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시사적인 말들에 귀를 기울였고 그를 따랐다. 선생님이 학력고사 점수를 올려줄 것을 포기한 일부 학생들은 그의 수업시간을 잠자는 시간으로 활용하거나 다른 공부를 했다. 선생님도 크게 문제 삼지는 않았다. 그런 식으로 이수호 선생님의 수업시간은 서로에게 방해되지 않는 분위기를 용인하면서 진행되었다.

그런데, 그 인기없는 친구가 선생님이 세상 이야기를 할라치면 손을 들고 말하는 거다. “선생님, 진도 나가시죠.”

그렇지! 진도 나가야지. 학생은 공부가 우선이고, 수업시간에는 공부를 해야겠지…. 말은 틀린 게 아닌데, 왜 그렇게 그 아이의 이 지적이 얄미웠을까? 그 아이는 지금도 우리 동기회에 나오지 못한다. 아무도 연락을 하지 않는 모양이다.

대변인을 지내면서 국민들이 민주노동당에게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지, 진보정치세력들에게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 유심히 관찰했었다. 안타깝게도 우리들은 ‘진도 나가자!’고 이야기 하던 인기없는 학생 같은 이미지가 있었다.

틀린 말을 하지 않는다. 비판의 목소리는 늘 단호하고 원칙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다. 사람들은 생각한다.

‘세상에 저런 세력은 꼭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랑 친구하는 건 싫다. 박수는 칠 수 있어도 지지는 할 수 없고,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기는 해도 집권은 하지 않아야 할 세력이다. 저 사람들이 대통령을 하거나 집권여당이 되면 온 국민이 피곤해 할 것이다.’

이제 이야기할 최연희 의원 성폭력 사건은 황우석 사건과 함께 진보정치세력이 왜 필요한 것인가를 세상에 제대로 보여준 계기였다. 끈질기게 사안을 물고 늘어져 원칙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로 굳세게 행동하고 발언했던 사안이었다.

하지만 해당 국면에서는 주목받고 박수받았던 우리지만 장기적인 측면에서 볼 때 우리가 비판과 비난에만 집중하는 세력인 것처럼 되고, 남의 문제에 집착하기 좋아하는 정당처럼 인식되어 버렸다.

‘이제 그만 좀 하지’ 하는 소리를 듣는, 절제의 미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세력으로 국민들의 뇌리 속에 자리 잡아 되어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진보정치’가 바른 말만 잘하는 게 아니라,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아이들과 어울려 놀기도 잘하면서 아이들에게 인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나에게 큰 숙제이다.

만지면 좀 어떠냐와 폭탄주가 문제라던 보수정치권

사건은 공교롭게도 아무도 알아서는 안되는 은밀한 만남에서 벌어졌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비롯한 한나라당의 지도부와 동아일보의 데스크와 정치부 기자들이 ‘흥겹게 어울리는’ 자리에서 불상사가 벌어진 것이다.

사실 각 당 대표단 혹은 대변인이 언론사 데스크나 기자들과 술자리를 갖는 일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불가근 불가원의 원칙을 지켜야 하는 사이에 이는 공개된 비밀쯤 되는 일이다. 또 이런 식의 접촉이 주는 부정적인 결과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도 정치권과 언론계에서 점점 커지고 있다.

일인당 한 끼 식대값이 수십만 원이나 하는 고급 한정식집에서 식사와 폭탄주를 돌린 양측은 2차로 그 한정식집 내 노래방으로 옮겨갔다. 술에 취한 최연희 의원은 <동아일보> 국회 출입기자의 가슴을 더듬었고 피해를 입은 기자는 즉각 항의하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피해기자는 이 문제를 덮어두지 않았다. 이미 현장에서 문제제기와 항의를 했고 용기를 내 이 문제를 공론화 해달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한 보수정치권의 첫 대응은 가히 경악스러울 지경이었다. 열린우리당 소속 한광원 의원은 꽃을 보면 만지고 싶은 것이 자연의 순리라고 표현해 최연희 사건으로 한나라당을 신나게 두들기고 있던 자기당의 뒷통수를 날리는가 하면, 박진 의원은 폭탄주가 원수라며 국회 브리핑룸에서 망치로 폭탄주 담긴 유리잔을 참수(!)하는 활극을 벌여 온 나라 애주가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민주노동당 없었다면 흐지부지 끝났을 사건

보수정치권은 겉으로 원칙적 대응을 이야기하고 최연희 의원의 잘못에 목소리를 높였으나 속으로는 ‘운 나쁘게 걸렸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게다가 최연희 의원이 평상시에는 점잖은 사람이라는 등 두둔하는 분위기도 감지되었다. 잘못된 술문화에 희생된 것이라며 애꿎은 술을 희생양 삼으려는 태도도 공식화되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은 최연희 의원의 탈당과 당직 해제로 할 일을 다했다고 말하면서 사태가 진정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민주노동당이 없었더라면 최연희 의원은 다른 국회의원들을 둘러싼 추문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소리 소문 없이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최연희 의원은 결국 국회에서 ‘최연희의원사퇴촉구결의안’이 가결되는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비록 강제력이 없는 결정이기는 하였지만 ‘동료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국회의원들이 ‘정치적 제명’이나 다름없는 사망신고서를 발표하게 한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수 개월 동안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면, 국회 내에 최연희 의원 문제로 한나라당을 압박할 원칙적 정치부대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국회에 귀신이 산다?

최연희 의원 사건의 하이라이트는 국회에서 최초로 벌어진 사퇴촉구결의안을 둘러싼 투표결과였다. 민주노동당은 이른바 ‘동료의식’과 남성우월주의에 젖어있는 국회의원들의 반대표를 우려해 이름을 밝히는 ‘기명투표’를 줄기차게 주장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인사 문제에 대한 표결은 무기명 비밀투표가 그동안 전례였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결과는 결의안 통과였지만 우려했던 대로 엄청난 수의 반대표가 나왔다. 한나라당은 물론 열린우리당에서도 반대표가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그러자 여론의 비판을 의식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그 반대표가 모두 상대편에서 나왔다며 책임을 떠넘기기 시작했다.

이때 나온 논평이 김성희 부대변인의 명논평인 ‘국회에 귀신이 산다’였다. 반대표는 나왔는데 찍었다는 사람은 없으니 귀신이 투표를 했다는 말이냐, 양당 지도부는 표결내용을 공개해서 국회에 사는 귀신을 잡는데 협조해야 한다는 김 부대변인의 일침은 온 국민을 후련하게 만든 작품이었고 겨우 10석의 정당이 거대보수양당을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고 토끼몰이 하듯 표결까지 몰고 간 전무후무한 사건의 대미를 장식하는 일이었다.

X 달린 놈이 못하는 게 병신이지!

최연희 의원의 성폭행 사건에서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될 이야기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최연희 의원이 사건 직후 한 발언이다. “술집여주인인줄 알고 그랬다.” 그의 황당한 인식을 잘 보여주는 대목인데다 전국의 ‘식당아줌마들’을 분기탱천하게 한 말씀이다. 실제 이 발언으로 최연희 의원은 전국의 네티즌들의 경멸을 받아야 했으며 더욱 궁지에 몰렸다.

   
  

또 하나는 최연희 의원의 지역구에서 있었던 민주노동당 시위대와 한나라당 관계자들과의 마찰과정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한나라당의 지역구 관계자들이 모여 최연희 의원 구명운동을 전개하려 한다는 소식을 접한 민주노동당 동해삼척 당원들이 모여 규탄 현수막을 들고 선전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 앞을 지나가던 한나라당의 한 중년 여성이 이렇게 내뱉었다는 것이다. “X 달린 놈이 못하는 게 병신이지!”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이 발언을 한 사람이 한나라당의 기초비례의원 후보로 출마하려 했던 경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사건이 단순히 남성 대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관의 대립이고 정치적 대립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 발언이었다.

최연희는 여전히 국회의원이고 우리에게는 숙제가 남고

서두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사건은 민주노동당의 존재 이유를 더욱 빛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민주노동당은 유야무야 끝나고는 했던 국회의원의 부도덕한 행위에 대한 응징에 대해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일정한 정치적 성과도 보였고 많은 칭찬도 받았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지지세는 완만한 하향국면이었고 최연희 사건에 의한 정치적 반사이익은 사실상 미미했다. 정치세력의 존재이유가 비판에만 머물지 않고 새로운 대안과 정책의 제시에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민주노동당이 원내진출에 성공하게 된 ‘부유세-무상의료-무상교육’의 약속에 대한 실천이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다른 당의 실수와 헛발질이 우리에 대한 지지로 옮겨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태도인 것이다.

문성현 대표는 당시 피해 여기자가 사건 고발 이후 국회기자실로 첫 출근을 하던 날 <동아일보> 기자부스에 커다란 격려의 꽃바구니를 보냈다. 이 일은 두고두고 국회출입기자들 사이에서 아름다운 일로 회자되었다.

민주노동당은 <동아일보>가 사태 수습 차원에서 여기자의 근무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국회를 떠나야 할 사람은 기자가 아닌 최연희’라고 공식 논평을 발표했다.

그리고 동아일보 데스크 쪽에 근무지 변경은 또다른 문제를 낳을 것이라고 압력을 가했다. 해당 여기자는 이 일을 두고 가장 든든하고 고마운 일이었다고 나중에 우리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최연희 사건은 그에 대한 사퇴촉구결의안의 가결로 마무리되었지만 그가 18대 총선에 다시 당선됨으로써 사실상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고 진보정치세력에게도 숙제를 남겼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대한민국 전체가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피해 기자의 용기가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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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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