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자리나누기’를 회피해서는 안된다
        2009년 01월 21일 10: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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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자리나누기가 세간의 화제가 되더니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경제를 강타하고 한국경제의 중추산업이 구조조정의 회오리에 휩싸이면서 한국사회가 고용대란의 파국에 임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의 경제위기국면이 어느 정도 지속될지, 어느 정도의 파급력을 가지고 우리의 삶과 생존을 뒤흔들어 놓을지에 대한 이견이 존재할지는 모르지만, 올 한 해 동안 고용조정의 ‘쓰나미’가 한국사회를 덮치게 될 것은 분명하다.

       
     

    이미 영세자영업자, 일용직의 일거리가 급격히 줄어들어 노숙자가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조직사업장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계약해지와 해고통보가 현실화되고 있다. 한편 지금까지 보수언론의 집중적 공격타켓이 되던 소위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 또한 감산과 조업단축, 휴업으로 생존권의 위협을 절감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가운데 몇몇 언론에서 98년 외환위기의 정리해고가 미친 사회적 악영향을 여론화시키고 <매일경제>와 <중앙일보>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소위 ‘일자리나누기’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이야기하는 ‘일자리나누기’의 핵심적 내용은 ‘노동시간의 단축을 통한 일거리나누기’에 있기보다는 ‘임금삭감과 임금동결을 전제로 한 일자리나누기’이다. 노동시간의 단축과 일거리의 나누기를 통한 고용안정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의 임금을 줄여 기업에게 추가고용의 여지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 논지의 골자이다.

    이들의 논리에서 ‘추가고용’의 전제조건은 고용창출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없고, 고용불안에 떨고 있는 노동자의 ‘양보론’이다. 결국 보수언론들의 결론은 노동시간의 단축과 나누기를 통한 ‘일자리연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비용의 축소를 위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삭감’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금속노조의 기득권 유지 관성

    한편 금속노조는 경제위기시대 비정규직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생존권의 확보를 위한 구체적 제안을 기대하던 사회적 여론을 뒤로 한 채,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단축’,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만들기’라는 ‘앙꼬 없는 찐빵’을 가지고 ‘대사회선언’이라는 흥행에 실패한 한 편의 쇼를 연출하였다.

    금속노조를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비정규직에 대한 책임있는 결단과 현 경제위기극복을 위한 구체적인 제안을 기대하였지만, ‘대사회선언’의 결과는 이 엄혹한 상황 속에서도 터부를 깨지 못하는 금속노조의 관성에 실망하고 ‘총고용보장’에 포장된 ‘기득권유지’에 무기력을 느끼는 것이었다.

    과연 금속노조는 ‘대사회적 선언’은 그 이름에 걸맞게 한국사회의 서민과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제시하였는가?

    하지만 ‘일자리나누기’가 이미 현 경제위기국면 한국사회의 핵심적인 화두가 된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노동의 ‘노’자도 알지 못하는 MB조차 며칠 전 ‘일자리나누기’를 통해 고용을 늘리자고 하면서 그 전제조건으로 임금삭감을 걸고 나온 것이다.

    과연 명박이가 일자리나누기의 개념에 대해 제대로 알고나 이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기획상품을 만드는 데 뛰어난 능력을 지닌 참모진 중 누군가가 귀뜸을 한 모양이다. ‘일자리를 쪼게 두 개로 나누면 됩니다’라고….

    초임 4000만 원 금융권 신입사원의 예를 드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주야맞교대로 매일 10시간의 노동에 주말특근을 밤새도록 하는 중소영세사업장의 노동자가 한 달에 얼마나 받고 있는지를 알고나 있는지? 그들이 소위 ‘노동귀족’이라고 매도하던 대기업 정규직 생산직 노동자의 기본급이 총액 대비 35%에 불과하고 수당과 상여금을 포함하여 60%선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노동자끼리의 이해관계 충돌

    아무튼 고용위기의 시대에 일자리문제는 모든 이들의 관심사항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이해관계는 첨예하고 복잡한 것이 현실이다. 대기업 기존 취업자는 감산과 조업단축으로 자신의 고용이 불안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상황에서 나눌 일자리가 어디 있냐고 호소한다.

    이와 달리 비정규직을 포함한 불안정고용계층은 임금조정에 대한 인내는 감내할 수 있지만, 일자리만이라도 지킬 수 있는 길을 찾아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또한 바늘구멍 만큼이나 좁은 취업문을 뚫기 위해 학원과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하고 있는 청년들은 정부와 기업의 부실한 고용대책에 좌절하고 있을 뿐 아니라,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보장’ 요구에 허탈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의 근본책임이 분명 ‘강부자정권’과 ‘재벌독점자본’ 있는 것은 분명하다. 자산 및 금융 고소득자들에 대한 누진세 확대만으로 약 20조 원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고 이것으로 연봉 2000만 원의 일자리를 100만 개를 만들 수 있다. 100대 재벌이 보유하고 있는 사내유보금 300조의 10%만 고용창출을 위해서 사용한다고 하면, 이러한 일자리를 150만 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기초수학을 배운 초등학생들도 알 수 있다.

    지금이라도 MB정권은 ‘삽질-토건경제’를 포기하고 노동친화적이고 혁신지향적인 산업발전전략에 기반한 고용창출형 제조업활성화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재원마련도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작년에 시행한 감세정책을 되돌리면 20조에 해당하는 재원을 당장 마련할 수 있다.

    한편 현대차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7조 5천억의 일부라도 풀어 고사직전에 있는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상생협력기금’을 조성하고 비정규직의 일자리지키기를 위한 ‘고용안정기금’에 출연해야 한다.

    이 정도의 사회공헌은 98년 이후 재벌대기업들이 중소기업에게 단가인하를 통해, 그리고 정규직 대신 사내하청을 비롯한 비정규직의 투입을 통해 축적한 수익의 한 줌에 불과한 액수이다.

    재벌책임론 그리고 일자리 가진 자의 관점

    하지만 고용대란이 임박하고 이러한 위기상황이 사회적 약자의 고통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민주노조운동의 주력노동자들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이다.

       
      ▲ 취업설명회에 참석한 대학생들

    현 위기의 근본적 책임이 정부와 재벌에게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고용위기의 책임을 그들에게 묻는 것과 ‘또 다른 우리’를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을 찾는 것은 다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고용위기가 닥쳐오고 있는 현 국면에서 ‘비정규직 우선해고 금지와 고용보장’을 외치고 있는 민주노조운동에게 묻고 있다. ‘말은 좋은 데 당신들은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을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거냐’고, 더 나아가 ‘노동시간단축을 통해서 일자리를 만들자고 하는데, 이를 위해 당신들은 인내할 것이 없냐’고….

    비정규직의 일자리를 지키고 서민과 노동자를 살리기 위해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현 국면에서 진정 무엇을 할 것인가를 ‘보이지 않는 수많은 우리들’이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일자리나누기’가 자본의 ‘고통분담론’이고 노동자의 ‘양보론’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일자리를 ‘가진 이’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단선적 결론’이다.

    만일 노동시간의 단축에 따른 임금손실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실질적인 임금보전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면, 이는 일자리를 ‘가지지 못한 이’에게 나눔의 메세지일 뿐만 아니라, ‘가진 이’의 고용안정을 실현시키는 경로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첩경이 되는 것이다.

    고용연대, 일자리지키기-나누기-만들기

    ‘노동시간단축에 따른 임금보전’은 다양한 방식으로 가능하다. 노동시간단축분에 해당하는 만큼 임금손실이 이루어진다면, 이는 노동자의 생존위기를 의미하는 동시에, 내수경기의 침체를 통한 소비와 생산의 축소로 이어지고 결국은 자영업과 연관기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일자리를 뺏는 결과를 초래한다.

    하지만 과감한 노동시간단축에 대한 실질임금보전을 위해 노사정 모두 자신의 연대책임을 감내할 수 있다면, 시간당 실질임금의 상승과 노동비용의 절감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다.

    더 나아가 장시간노동체제를 근절하고 노동의 인간화를 실현할 수 있는 혁신적 노동시간제도의 기본틀을 이번 기회에 자리잡게 할 수 있다면, 생산량과 가동률의 증가는 신규채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에 대한 세밀한 검토 없이 ‘일자리나누기’ 그 자체를 터부시하는 것은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자멸’에 이르는 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비록 보수언론이 ‘일자리나누기’를 주절거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고용연대’의 핵심적 내용인 ‘일자리나누기’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 이미 사회적 화두로 던져진 이상 이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노동시간단축-주간연속2교대제-월급제)을 가지고 정면승부를 해야 할 시점이다.

    이를 피한다면 ‘일자리나누기’는커녕, ‘일자리지키기’조차 힘든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각인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지금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장년과 청년간의 ‘일자리나누기’를 넘어 이들 모두를 포함하는 ‘일자리지키기-나누기-만들기’에 대한 ‘고용연대’ 방안을 사회적 화두로 만들어가는 험난한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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