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수하려는데 쇠파이프 든 경찰이 폭력진압"
        2009년 01월 20일 01: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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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5시에 철수하려고 했었고 진압하러 들어온 컨테이너 안에 있던 경찰들은 모두 쇠파이프를 들고 있었다."

    전철협(전국철거민협의회중앙회) 소속이라며 자신의 이름을 밝힐 수 없다는 현장 목격자는 20일 새벽 폭력진압에 대해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20일 낮 1시께 사건현장 인근에 위치한 중앙대병원에서 만난 목격자는 "당초 우리 계획은 진압하려는 기미가 없으면 새벽 5시에 마무리하려는 것이었다"며 "그래서 농성일정을 마무리하다 보니 5시17분쯤이 됐는데 그때부터 경찰들 분위기가 이상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래서 경찰들 움직임을 살펴보니까 5시35분쯤 닭장차(전경차) 30대 이상이 몰려왔고 주변 4차선 도로를 막은 다음 인근 사거리에서도 버스를 전부 용산역 방면으로 돌리고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며 "그러더니 소방차와 물대포차가 등장했고 곧바로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현장에 있었냐는 질문에 그는 머뭇거리더니 "다 봤다"고 대답하더니, "특공대가 6시40분쯤 투입되지 않았냐"는 질문에 "동이 트기 전 어두울 때였는데 대략 맞는 것 같다"며 "경찰이 컨테이너를 동원해 들어왔는데, 경찰들 손에는 모두 쇠파이프, 전경들이 시위대 진압할 때 쓰는 쇠파이프를 다 들고 있었는데, 정말 살벌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건물 안에 있는 시신들이 경찰발표대로 5명이 맞는지 모르겠다"며 "누가 죽었는지, 유족들조차 철저히 접근하고 있어 시신이 국과수로 옮겨지는 걸 막으려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직계가족들조차 확인시켜주지 않고 시신을 옮기려는 것은 시신을 빼돌리는 것이다"며 "또 현장에 추가사망자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추가 사망자가 더 있을 것이란 주장의 근거는 뭐냐"는 질문에 그는 "현장에 52명, 53명 이렇게 얘기하는데 현장에 더 있었던 것 같고 지금까지도 확인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며 "그래서 유족들만이라도 시신을 확인시켜 달라는 것인데, 경찰이 이를 철저히 막는 것은 진실을 감추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전날부터 밤을 새웠다는 그는 20여분간 대화를 나눈 후 "경찰들이 시신을 빼돌리려 한다"며 일행 2명과 함께 사건현장으로 가봐야 한다고 자리를 떴다.

    현재 사건현장 주변에는 경찰들이 배치돼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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