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세방은 왜 한국에만 있을까
        2009년 01월 19일 09: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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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전세)값이 떨어지면서 집주인이 전세 보증금을 내주지 않거나 심지어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가 전세보증금을 날리는 일이 있다고 한다. 이른바 ‘역전세대란’이다. 아직 심각한 상황은 아니지만 집(전세)값이 실제로 큰 폭으로 떨어지면 외환위기 때 겪었던 전세시장 마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집(전세)값이 오를 때 나타났던 ‘방값을 올릴래? 방을 뺄래?’로 상징되는 ‘전세대란’과는 정반대 현상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2005년 현재 전세가구는 전체의 22.4% 356만 가구에 달한다. 또 완전한 전세는 아니지만 전세와 월세가 혼합된 보증금 있는 월세가구도 15.1% 240만 가구에 이른다. 이들에게 세를 내준 집주인을 포함할 경우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이 보증금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전세 보증금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전세제도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주택 임대차제도이기 때문이다. 지구촌에서 보편적인 주택 임대차 제도는 매달 사용료를 지불하는 월세다. 설사 보증금이 있더라도 월세를 보완하는 수준의 소액이지, 적어도 우리처럼 목돈으로 임대료를 올려달라거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어 문제가 되진 않는다.

    왜 한국에만 전세제도가 자리잡게 됐으며, 그 때문에 주택문제는 어떤 영향을 받고 있을까. 오늘은 전세제도에 대해 공부해보겠다.

    전세제도 역사 100년 넘어

    우리나라 주택문제를 공부하다 보면 외국에는 없고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몇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아파트가 주택을 대표하고 있는 현상이나, 짓지도 않은 아파트를 팔고 사는 선분양제도가 여기에 속한다. 또 한 가지 세계에서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가 바로 전세제도다.

       
      

    우리나라 국민 열 중 넷 꼴로 셋방살이를 떠돌고 있는데, 그 규모는 657만 가구 1천666만 명에 달한다. 이 중 보증금이 아예 없는 월세 19만 가구와 몇 달치 월세를 한꺼번에 내는 사글세 14만 가구를 제외한 한국 주택임대차의 91%가 전세이거나 전세와 월세를 결합해 보증금을 내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전세제도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기록에 따르면 조선시대 말에 이미 시행되고 있었다. 당시 임차인은 주택 임대차 계약을 맺으면서 집주인에게 일정 금액을 맡기고 집을 빌려 산 뒤, 집을 돌려주는 시점에 맡긴 돈을 돌려받았다.

    집주인에게 맡기는 돈은 기와집과 초가집에 따라 달랐는데 보통 집값의 절반에서 비싼 곳은 70∼80%였다. 계약기간은 통상 1년으로 기간을 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전세제도가 시작된 지 최소한 100년이 넘은 셈이다.

    일제시대에는 주로 서울(경성)지역에서 전세제도가 발달했는데, 해방 후 도시화 과정에서 전국으로 확산돼 한국의 대표적인 주택 임대차 방식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1960∼1970년대 인구가 도시로 물밀듯이 밀려드는 상황에서 집 주인 입장에서는 전세 보증금이 불확실한 임차인의 신원을 보증하는 기능을 한 데다 매월 약간의 임대료를 받는 것보다 쉬웠다. 농촌에서 도시로 무작정 올라온 세입자들에게도 유일한 밑천이 땅을 팔아 마련한 얼마 안 되는 목돈이었는데, 전세는 도시의 새로운 삶터에 정착할 때까지 밑천을 잃지 않고 주거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왜 한국에만 전세제도가 있을까

    셋방이 한국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도시화 역시 세계적인 추세였는데 왜 유독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예를 찾기 힘든 전세제도가 주택 임대차의 주요한 형태로 자리잡게 됐을까. 학계의 연구 결과는 공통적으로 두 가지 요인을 지적하고 있다. 첫째 주택금융이 덜 발달된 점과 둘째 집(전세)값이 계속 오르기만 한 점이다.

    전세 계약과 동시에 세입자는 보증금을 지불하고 집주인은 주택을 제공한다. 계약기간 동안 세입자는 보증금 외에 월세나 다른 사용료 없이 살다가 계약이 끝나면 전세 보증금을 이자 없이 원금만 돌려받고 주택을 비워준다.

    집주인 입장에서 전세는 주택(또는 방)을 제공하는 대신 이자를 지불하지 않고 목돈을 조달하는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택관련 금융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세는 목돈을 조달할 수 있는 손쉬운 방편이었다.

    무엇보다 집값이 계속 올랐기 때문에 돈만 있으면 너도나도 집을 사려 했는데, 전세를 끼면 현재 가진 돈 보다 더 비싼 집을 살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자신이 거주할 집을 장만할 때는 물론이고, 투자목적으로 여러 채를 사는 데도 ‘전세 끼고 집 사기’가 널리 활용돼왔다.

    한 집에 여러 가구가 살 수 있는 다가구 단독주택에서는 집주인은 안방에 살고 세입자는 곁방살이를 하거나 2층 또는 지하방이나 옥탑방에 산다. 반면 아파트나 연립-다세대 주택에서는 집주인과 세입자가 함께 살기 어렵기 때문에 아예 독채로 전세를 내주는 예가 많다.

    집을 사놓고 경제사정이나 직장 교육 문제로 세를 주고 자신도 셋방에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예 전세와 은행융자를 합쳐 추가로 집을 사는 방식으로 여러 채 심지어 수십 수백 채를 소유한 집주인도 상당수다. 형태야 다양하지만 어쨌든 집값이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는 ‘전세 끼고 집 사기’가 계속될 것이다.

    세입자 처지에서 볼 때는 집을 살 만큼의 돈이 없어서 전세를 사는 것이기는 하지만, 월세와 비교해 전세만의 장점이 있는 게 사실이다. 우선 집값의 절반 정도의 보증금을 집주인에게 맡겨 놓고 매달 임대료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돈으로 구입할 수 있는 집이 아예 없거나 아주 좁다는 점을 감안하면, 절반의 돈으로 상대적으로 넓은 집(방)에 사는 셈이다. 또 보증금을 은행에 맡긴다 해도 이자가 별로 높지 않기 때문에, 꼬박꼬박 월세를 내는 것보다는 경제적으로도 낫다.

    월세나 사글세와 달리 계약기간이 끝나 이사를 갈 때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전세 사는 사람 중 보증금 액수가 상대적으로 높은 경우에는 전세금이 나중에 내집을 장만할 수 있는 종자돈이 될 수 있다. 이자는 없지만 대신 월세도 없기 때문에 내집마련의 미래를 위한 저축 개념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처럼 전세제도는 주택금융이 덜 발달한 가운데 집값이 계속 오르는 조건에서 독특하게 발전해온 한국형 주택 임대차 제도인 것이다. 만약 집값 상승세가 끝나버리거나, 주택금융이 발달해 주택구입자금을 제도 금융권에서 충분히 조달하게 될 경우엔 전세제도의 운명도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전세제도가 주택시장에 미친 영향

    전세가격의 수준은 어느 정도이며 전세 보증금에 얼마를 더 얹어야 집을 살 수 있을까? 아파트를 기준으로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중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2008년 말 현재 평균 52.4%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의 전세가격이 집값의 절반 조금 넘는 셈이다.

    한 때는 전세가격이 집값의 3분2를 넘긴 적도 있었는데, 지금도 지방 도시는 그렇다. 반면 최근 몇 년 동안 서울과 수도권 집값이 폭등하면서 서울은 38.2%, 경기도 42.1%, 인천 42.2% 등 수도권 전체가 40.9%로 낮아졌다. 특히 서울 안에서도 집값이 많이 오른 한강이남지역은 36.4%로 집값이 전세가의 거의 세 배에 육박하고 있다. 그만큼 집값에 거품이 많이 끼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집값의 절반이 넘는 전세 보증금에 부모형제의 도움을 받거나 저축해놓은 돈이나 은행 융자를 더하면 집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전세수요는 언제든 실제 주택구매로 전환될 수 있는 잠재수요라 할 수 있다.

    특히 집값이 한 차례 큰 폭으로 오르고 난 뒤에는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사려는 욕구가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는 우리나라 주택시장이 다른 나라보다 더 빨리 달아오르는 이유가 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보증금 5천만 원이 넘는 셋방에 살고 있는 가구는 2005년 현재 약 130만에 달하고(이 중 29만 가구는 어딘가에 집을 사놓고 셋방에 살고 있다), 이 가운데 보증금 1억 원 이상 가구도 38만에 이른다. 특히 집값이 많이 오르는 수도권에 5천만 원 이상 가구가 100만이 넘고 1억 원 이상 가구가 34만 가구에 이르고 있다.

    물론 전체 셋방 사는 가구 중 80%는 보증금이 5천만 원 미만이거나 아예 보증금이 없이 살고 있지만, 5천만 원 이상 주택자산을 확보한 사람이 100만 명이 넘고, 1억 이상도 30만 명이 넘는다는 점에서 상당한 잠재수요라 할 수 있다.

       
      

    다른 측면에서 집을 살 때 상당액을 전세 보증금으로 충당하기 때문에, 집값 중 은행 융자가 차지하는 비중 즉 주택담보대출 비중(LTV)이 상대적으로 낮은 원인이 되기도 한다. 미국 서브프라임 대출의 평균 LTV 비율이 94%(2006년 기준)에 달하고 영국 등 주요 선진국의 LTV가 70∼80%를 차지하는 반면 2008년 6월 현재 한국의 LTV는 48.8%로 상대적으로 낮은 상황이다. 물론 LTV 비율이 낮은 데는 참여정부 후반에 LTV와 소득에 따라 대출액을 결정하는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실시한 것도 크게 작용했다.

    한 가지 더 짚어보자. 전세나 보증금 있는 월세에 살면서 집주인에게 맡긴 전월세 보증금은 2005년 11월 현재 209조 원에 달한다. 전세 보증금은 182조 원, 보증금 있는 월세 보증금은 28조 원이다. 2008년 말까지 전세가격이 11.2% 오른 점을 감안하면 현재 233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2008년 11월 현재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금이 총 237조 원인 점을 감안하면 그 규모가 막대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돈이 모두 금융정책에 직접 영향을 받지 않는 사금융 시장에 머물면서 주택시장의 잠재수요가 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규모만큼의 거대한 자본이 전세시장을 통해 부동산 시장에 조달되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한국은 이자율이나 대출규제 등의 금융정책이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덜한 것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한편 전세 보증금 전액을 월세로 바꾸거나, 아니면 집값 전체에 대한 이자만큼을 월세로 받으려 한다면 셋방 사는 가구는 이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집값이나 이를 반영하는 전세가격이 세계에서 최고 수준으로 비싸기 때문에 한 달 버는 소득으로는 도저히 월세를 낼 수 없다. 또 오랫동안 주거비는 월세가 아닌 전세로 해결해왔기 때문에, 국민의 대다수인 노동자들의 임금체계나 생활비 배분도 여기에 맞춰져왔다.

    전세 보증금의 두 얼굴

    이처럼 전세제도는 주택금융이 덜 발달한 가운데 집값이 계속 오르기만 하는 조건 위에 자리 잡은 한국만의 독특한 주택 임대차 제도임과 동시에, 주택시장은 물론 한국인의 주거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전세제도 때문에 한국사회는 이래저래 들썩거리게 되는 데 집값과 전세가격이 오르고 내릴 때와 이사철에 그 증상이 심각해진다.

    전세 보증금에는 두 얼굴이 있다. 집값과 전세가격이 오를 때 보증금은 자산의 얼굴을 하고 있다. ‘전세 끼고 집 사기’의 소중한 종자돈인 것이다.

    반대로 집값이 떨어질 때 보증금은 부채의 얼굴이 된다. 세입자에게서 빌린 ‘무이자 대출금’인 것이다. 전세가격이 오를 때는 세입자의 부담이 커지고, 전세가격이 떨어지면 집주인의 보증금 상환 능력이 문제가 되는 것도 이와 연관돼 있다.

    ‘방값을 올릴래? 아니면 방을 뺄래?’로 상징되는 ‘전세대란’은 집(전세)가격이 오를 때 나타나는 풍경이다. 지하셋방 남매가 불에 타 숨진 슬픈 이야기를 담은 정태춘의 노래 ‘우리들의 죽음’의 배경이 됐던 1990년대 초 전세가격 폭등기가 대표적이다.

    그 동안에는 집(전세)값이 계속 올랐기 때문에 2년 전세계약이 끝나면 집주인들은 새로운 세입자를 구해 보증금을 빼주는데 익숙해져 있다. 이 경우 이전 보증금보다 더 올려 받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집주인들은 보증금을 ‘갚아야 할 빚’으로 생각하지 않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집(전세)값이 떨어지면 사정은 달라진다.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구한다 하더라도 추가로 돈을 얹어서 전에 살던 세입자 보증금을 돌려줘야 한다. 만약 집(전세)값이 폭락하면 사정은 더 심각해진다.

    수많은 집주인들이 보증금을 갚을 능력이 한꺼번에 떨어지는 상황이 돼 ‘역 전세대란’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경우 심하면 세입자에게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인 보증금이 위험에 처하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딱 한 번, 외환위기 직후 이 같은 일이 벌어졌었지만, 얼마 안 가서 다시 집(전세)값이 올라 더 이상 문제가 확대되지는 않았다.

    ‘전세대란’과 ‘역 전세대란’은 전세제도가 집(전세)값이 오를 때에만 아무런 문제없이 작동하는 제도이며, 최악의 경우 전세 보증금을 날릴 위험을 안고 있는 매우 불완전한 상태임을 보여준다.

    임대차 기간이 2년으로 지나치게 짧고, 인상폭에 대한 제한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도 전세제도의 불완전함을 증폭시키고 있다. 1981년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세입자들은 6개월에 한 번씩 전세 보증금을 올려줘야 했다. 임대차기간이 6개월이었기 때문이다.

    임대차 기간은 1989년 다시 늘어 현행 최소 2년이 됐다. 기간이 늘어날 때마다 집주인들이 전세값을 크게 올려 받아 세입자들이 큰 고통을 당했지만, 여전히 너무나 짧다. 전세금 인상도 집주인 마음대로다. 법에 5% 제한선이 있긴 하지만 아무런 제재장치가 없어 있으나 마나다.

    대다수 선진외국에서 발달한 공공임대주택은 임대차 기간이 30년 이상이고, 독일처럼 민간 주택 임대차 시장이 발달한 곳도 임대차 기간이 10년 이상인 데다 인상폭도 엄격히 제한돼있는 것과 비교하면 셋방사는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불리하다.

    주택금융의 미발달과 집값이 오르기만 하는 특수한 조건에서 자리잡은 한국만의 독특한 전세제도는 그에 걸맞은 보호장치가 매우 취약해 불완전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오늘은 한국만의 독특한 주택 임대차 제도인 전세제도에 대해 공부했다. 다음 시간에는 최근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집값 하락기 ‘역 전세대란’에 대한 대안을 공부해보겠다.

    * 이 글은 오마이블로그 ‘손낙구의 세상공부‘에 올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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