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직활동비만 1천억원 넘어
        2009년 01월 18일 01: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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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은 크다. 넓다. 한 주(州)가 우리나라만 하다. 더 큰 곳도 많다. 거기다가 노동법의 문제도 있다. 예를 들면 가사(home care)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에 대한 판단이 주(state)마다 다르기도 하다. 또 우리나라처럼 2명 이상만 있으면 노조가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과반수의 동의를, 그것도 투표를 통해서 받아야만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이 인정된다.

    조직화에 승부를 건다

    거기다가 80%의 사용자들은 노조 결성을 방해하기 위해 이를 전문으로 하는 컨설턴트 회사와 계약을 맺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무수히 넓은 지역에 퍼져 있는 개개인을 모두 조직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상상을 넘는다.

       
      ▲조직대상 기업 및 기초 자료.

    마침 로스엔젤리스에서 경비원 노조(Local 1877의 SOLAR 2006)의 조직가인 Greg Sawer이라는 분과 함께 직접 노조 조직화를 하는 과정을 본 적이 있다. 58살이라는 이 조직가는 우리로 치면 저수지(reservoir)를 경비하는 노동자들을 찾아다녔다. 가야할 대상이 적힌 명단이 빼곡한 채 몇장이나 되었다.

    차를 몰고 Sunland, Sun valley 등 낯모르는 거리를 한참을 갔지만 3군데를 못 찾았다. 정보가 정확하지 않았고, 동네 사람들에게 10번도 넘게 물어보았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다. 네비게이션에도 안 나온다. 우리로 따지면 114로 물어도 모른단다.

    조직화 현장을 가다

    다행히 Silver lake라는 곳을 찾아 Wackenhut라는 회사의 경비원 4명을 만날 수 있었다. 3시간만에 만난 셈이다. 들어가지도 못하고 정문 앞에 서서 그들에게 노조의 필요성에 대해 얘기하고, 최근 노조가 맺은 단협도 주고, 노동법 개정(Employee Free Choice Act)에 대한 서명도 받는다.

    “해고되면 어떻게 하느냐?”라는 아주 익숙한 질문에 대한 답도 해 준다. 이렇게 조직을 해야 한다.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조합원을 하나하나 조직해 나가야 한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Andy Stern이 위원장이 되었을 때 그는 조직활동가 출신이었다. 따라서 조직 전체에 조직화 관점을 부여했다. 지도부의 교체 이후에 이런 전략이 가능했다.”고 UCLA 노동자 교육센터의 Kent Wong 소장은 말했다.

    각 지부(branch)는 전체 조합비의 일정 부분을 조직화 사업에 반드시 써야 하도록 강제했다. 97년에는 10%, 98년에는 15%, 99년에는 20%로 경과 규정을 두었다.

    조직사업비는 실제 조직 활동에 들어간 비용만을 계산하는 것으로 비록 선출된 임원이 전적으로 조직활동을 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급여는 포함되지 않고, 조직활동을 위한 사무실을 빌렸더라도 임대비용은 포함하지 않는 등 세부적으로 규칙을 정했다. 중앙차원에서는 50%의 조합비를 투여했다.

    상근자들도 조직부서로 대거 이동시켰다. 이 과정에서 조직을 떠나가는 상근자들도 있었다. 대대적인 변화를 시도할 때 우리 역시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그전에는 전체적으로 매년 2,000만 달러에 그친 조직사업비는 7,500만 달러(1,012억 원 수준)로 3배 이상이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각 지부는 조직활동만을 전담 지휘하는 책임자(Full-time organizing director)가 요구되었으며, 그 수는 24명에서 74명으로 늘어났다.

    조직만을 담당하는 상근자는 100명에서 300명으로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에 대한 조직활동가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500명 정도에 불과하던 조직가를 3,500명 수준으로 확대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99년에는 로스엔젤리스에서 가사(home care) 노동자 74,000명을 조직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1940년 이래 가장 큰 조직화 성공사례라고 한다.

    산업별로 조직한다

       
      ▲청소부, 공항노동자, 경비원 조직 관련 포스터.

    Knet Wong 교수에 의하면 “다른 조직은 작업장별, 일터별 조직화 전략을 가지고 있는 데 반해 SEIU는 전략적인 조직화 기획을 통해 산업전체에서 조직화 전략을 짜고 있다.”고 한다. 즉 산업별로 조직화하는 것이다.

    그 유명한 “청소부에게 정의를” 운동을 비롯해서 경비원, healthcare, 공항노동자 등 대상을 분명히 한 조직화 전략을 전개한다.

    영화 ‘빵과 장미’로 유명한 청소부들을 조직했던 과정에 대해서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이들을 조직하기 위한 계획은 SEIU 지도부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들은 각 건물마다 소규모로 있는 청소부들을 따로 조직하지 않았다. 대략 3~4개 건물에 고용되어 있는 사람들을 한꺼번에 조직하고, 조직의 중심을 세워 나갔다. 취약한 지역에는 조직가를 집중 배치했다.

    “종합적인 연구, 즉 사용자와 노동자들의 강점과 약점 모두를 파악하는 연구를 바탕으로 해서 조직화에 성공” 할 수 있었고, 동시에 다양한 활동의 동원, 즉 “학교, 교회, 공동체, 정치적 활동 등과의 연대를 통한 종합적인 기획과 조직화를 시행한다”고 Kent Wong 교수는 분석했다. 정책과 조직화 전략을 모두 갖추고 대응책을 마련한 후에 싸움을 시작하는 셈이다. 지역 차원의 다양한 활동과 정치적 활동에 대해서는 다시 얘기하도록 하자.

    SEIU 각 지부의 이름은 모두 숫자로 되어 있다. 왜 그런 건지 이상해서 물어 보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Local 721 같은 경우는 7개로 흩어져 있던 조직을 하나로 모은 데서(seven to one) 이름이 생겼고, 시카고의 Local 1은 가장 먼저 생긴 지부라고 한다.

    아마도 프랑스의 대학들이 파리 1대학, 2 대학 하는 식으로 하면서 서열을 없앤 것처럼 수많은 지부의 통합을 이뤄나가면서 차이를 없애고, 하나의 노조라는 인식을 주기 위한 방편으로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현재 지부는 모두 174개다. 계속해서 통합을 해 나가는 과정 중에 있고, 그 가운데서 반발하는 큰 지부도 있다. 하나의 노조를 만들기 위해 ‘자주색’으로 모든 옷과 로고, 기념품 등을 통일시켜 나가고 있다.

    조직활동가를 조직적으로 양성한다

    조직 활동에 집중하면서 당연히 조직 활동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 특히 우리처럼 조직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 집집마다, 작업장마다 찾아가서 직접 조직해야 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는 미국 노동을 생각하면 조직 활동가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SEIU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99년부터 WAVE라는 조직 활동가 양성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WAVE 교육자료. 

    다행히 이번 방문 기간 동안 두 번에 걸쳐 Elisabeth Morris와 Beth Pointer라는 이 분야 책임자들로부터 WAVE에 대한 약 3시간에 걸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 교육을 시작하기 전에는 조직 활동가들을 채용하기 위한 교육이 제대로 없었다.

    따라서 활동가들 사이의 경험 차이도 컸고,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30%만 남았다고 한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교육을 도입했다. 한 기수당 인원은 45명으로 지역에서 25명을 추천하고, 중앙에서 20명을 추천하여 45명 안팎으로 진행한다.

    45명이 참가하는 교육을 1년에 6번 실시(2달에 한 번씩 새로운 기수를 모집하여 교육)하여 전체적으로 250명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교육을 실시한다.

    여기에는 UNION SUMMER라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여름학교에 참가했던 대학생들도 있다. 주로 노동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참가한다. 한 기수당 전체 과정은 1년이다. 1년에 250명 가까이 새로운 조직 활동가가 탄생하는 셈이다.

    현재 조직 활동가 중 약 75%가 이 교육과정을 거쳐 채용된 사람들이다. 1년을 동고동락한 이들이 조직 활동의 중심에 서게 되고, 인적 네트워크도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10년 동안 이 사업을 전개해 온 셈인데 조직 활동가의 리더십이 형성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교육을 마친 사람들은 다음 기수들의 교육에 선배(senior) 조직 활동가로 보조 활동을 전개한다. 중간에 5일간 진행하는 집중교육에는 2인당 1명꼴로 선배 조직 활동가가 참여하여 교육을 진행하기도 한다. 대략 75% 정도가 계속 남아있다고 한다. 처음 이 교육을 수료한 Beth Pointer에 따르면 자기가 교육을 받을 때 22명이 받았는데 현재 20명이 노동운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대단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말하지 말고 들어라

    교육은 매우 세부적이고, 실제 역할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주야 교대시간 혹은 쉬는 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1~2분 안에 핵심을 전달하는 방법, 말을 많이 하기 보다는 듣는 법을 중심으로 하는 방법, 역할 바꾸기(role play)등을 통한 실제 훈련 등을 실시한다.

    설명에서 인상적인 것은 “듣는 방법에 대한 교육”이었다. 조직가가 얘기를 시작하면 말하는 노동자가 입을 닫거나, 조직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을 중심으로 얘기가 흘러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말하지 말고 들어라”라고 한단다.

    처음에는 교육을 먼저 하고 실습을 했지만 이제는 실습을 먼저 하고 교육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한다. 현장 실습은 3개월, 6개월 단위의 캠페인에 직접 참가하여 노동자를 조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여기에는 WAVE 진행자 5명이 모두 이를 보조한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자꾸 민주노총이 실시했던 50억 기금을 통한 비정규 활동가 양성 프로그램이 연상되었다. 평가가 진행 중이므로 뭐라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적어도 ‘일관된 하나의 전략’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SEIU LA 사무실에서 한국상황 브리핑을 마치고. 케익에는 Solidarity가 적혀있었다. 모자 쓴 이가 필자. 

    신규 채용자에 대한 이런 교육과 동시에 5년 전부터 시작된 조직가에 대한 SEP(Staff Enrichment Program)이라는 재교육도 있다고 한다. WAVE에 대한 파악에 중점을 두어 자세한 내용을 듣지 못했지만 가상의 상황을 던져주고 전략 시나리오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 재교육은 5~10년차 조직, 선전, 정책담당자 등을 대상으로 한다고 한다.

    이들은 교육 전에 시나리오를 하나 받는다. 예를 들어 이 도시에 병원이 하나 있는 데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에 대한 것으로, 그 도시에 사는 정치인들, 정치적 상황, 거주하고 있는 조직가, 인구, 지역 단체, 노동자 구성 등 모든 정보를 다 준다.

    이를 바탕으로 6개월 안에 조직해야 하는 데 여기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무슨 프로그램이고, 왜 그런지를 종합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재정은 얼마나 소요되고, 스탭은 몇 명이 필요하고, 진행 일정은 어떤 것이고, 선전은 어떻게 할 것이며, 정치적으로 어떤 사람하고 연결하고, 지역의 각종 공동체와는 어떻게 연대할 것인지 등등 구체적인 것을 만들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얘기해야 한다.

    참가자들은 10장~12장의 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 교육은 5년 전부터 시작했고, 45명을 선택하여 교육한다. 잘 하면 졸업할 수 있고, 통과되면 1년에 10,000 달러씩 월급을 인상시켜 준다고 한다. 일종의 승진 시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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