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 3~4년 지속, 제도적 대안 필요
    노조 제안과 당 정책대안은 달라야
        2009년 01월 16일 04:5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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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IMF 경제위기 속에서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고통분담’을 내걸고 기업들의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을 묵인 또는 보조함으로써 노동자에게 경제고통의 책임을 전가했다. ‘명퇴(명예퇴직)’, ‘조퇴(조기퇴직)’란 말이 쏟아졌고 자살자는 속출했다. 그리고 노동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졌다.

    2008년, 당시의 부작용과 충격으로 이미 극심한 양극화 사회에 빠진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강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2009년, 경제위기는 대한민국 사회 전체를 다시 한 번 뒤흔들고 있고 이제 정권과 자본, 노동운동과 진보정치는 이 충격파가 어디로 향할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사진=정상근 기자

    그런데 노동운동과 진보정당,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똑같이 ‘일자리 나누기’를 들고 나왔다. 물론 두 진영의 ‘일자리 나누기’의 본질은 다르다. 다만 이명박 정부의 ‘일자리 나누기’는 경제위기 충격파를 노동자들에게 전담시킬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반면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의 ‘일자리 나누기’는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일자리 나누기’, 동상이몽

    진보신당이 16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가진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나누기’ 간담회는 다시 한 번 경제위기란 상황에 직면한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의 대응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 또한 사회연대전략 외 별다른 노동전략이 없는 진보신당이 전문가들의 정책적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날 자리에는 노중기 진보신당 정책위원장과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 이상호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임영일 한국노동연구소 소장, 강인순 경남대 교수 등이 참석했다. 애초 민주노총 관계자도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이날 토론회의 주요 논점은 ‘경제위기에 맞선 노동운동 전략’으로서 ‘일자리 나누기’또는 ‘일자리 동맹’이 적절한 전략인가의 여부였다. ‘일자리 나누기’ 전략으로는 정권의 공세를 당해낼 수 없다는 지적과 노동과 진보정당이 피하더라도 제기될 문제이니 만큼 내용을 채우자는 주장이 오갔다. 그리고 노동계급 내부 뿐 아니라 다른 계급과의 연대전략으로 제시된 ‘복지동맹’ 문제도 논의대상에 올랐다.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일자리 나누기’가 이미 보수언론과 현 정부가 임금감축을 전제로 자기 용어화시켰”기 때문에 ‘일자리 나누기’만을 슬로건으로 사용하는 것에 부정적이었다. 그는 “보수진영이 아닌 사람들도 ‘임금 감축 없이 무슨 일자리 나누기냐는 말이 더 나올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위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진보신당이 총선공약으로 제시한 노동시간 2000시간 상한제에 대해 “불황이 덜 심각한 업종에서만 적용가능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유의미한 방안이 되기 어렵다”며 “다른 견인기제를 찾지 않으면 노동만 고립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를 위해 자영업자, 실업자, 노년-청년층 등 새로운 동맹군을 많이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화된 슬로건의 위험성"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실장은 반면 “어차피 ‘일자리 나누기’는 부각될 수밖에 없는, 피할 수 없는 의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일자리 나누기’를 수단으로 ‘임금 양보’를 제시할 것이지만 저쪽에서 마음먹고 ‘임금 양보’를 예각화시켰을 때 우리는 대단히 무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임금 연대를 했을 때 두 가지 우려가 있는데 하나는 임금연대를 했을 경우 그 책임이 우리에게 온다는 우려와 양보하면 저들이 더 밀어붙인다는 우려”라며 “그러나 책임이 우리에게 오지는 않으며 오히려 노동이 위기해결 과정에서 실질적인 주관자로 나선다고 인식할 것이고, 저들은 어차피 밀어붙일테니 어느 곳에서 격전의 전선을 형성할 것인지 고민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상호 금속노조 정책연구원은 “이미 금속노조는 ‘일자리 나누기’라는 표현을 폐기했고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만들기’라는 표현으로 바꾸었다”며 “보다 생산적으로 일자리 지키기, 나누기, 만들기를 종합적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돈문 카톨릭대 교수는 “노동 쪽에서 말하는 ‘일자리 나누기’나 ‘만들기’ 모두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며 “이것이 굳이 노동 쪽에 국한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보수-극우 정권도 일자리는 만든다고 하기 때문에 어떻게 일자리를 만들 것인지 문제를 제기해야지 한나라당과 비한나라당 전선을 그대로 가져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특히 “노조의 제안과 당의 정책 대안은 달라야 한다”며 “당은 핵심적인 정책을 의제화하고 선택 집중한 뒤 누구와 연대할 것인가를 판단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고용, 일자리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산업 정책이 빠진 것이 조금 부족해 보이는데, 전 국민을 일자리 동맹의 잠재구성원으로 보고 잘못된 정책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어 “저들이 건설기업 살리기 관련 문제에만 왜 그렇게 매달리는지 숨겨진 의도를 부각시켜야 한다”며 “‘일자리 나누기’는 평소에 해야 하는 얘기인데 경제위기 속에서 한다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피할 수 없는 문제…노동 쪽에도 요구할 것 요구해야"

    조 교수는 또한 “노동계가 국민적으로도 신뢰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그러한 조직에서 총고용 보장을 말할 때 사람들이 신뢰하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현실은 우리의 얘기보다 더 어려우며 ‘일자리 나누기’ 속에서 노동 쪽에 대해서도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며 “임금 문제 또한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테지만 ‘먼저 말하느냐 나중에 말하느냐’가 문제”라고 말했다.

    임영일 한국노동연구소 소장은 “현재 다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급박한 상황으로 인식하지만 이 불은 3~4년은 가는 불로 더 길게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 소장은 “당은 당면의 문제를 풀기 위한 단기적인 정책 시각에서 벗어나야 하며 제도를 고치고 만드는 장기적인 시각에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일자리 나누기’ 용어의 한계는 공감하나 그 싸움이 안 벌어질 수는 없으니, 노동전략과 고용전략의 조율 작업을 세밀하게 해야 한다”면서도 “사실 ‘일자리 나누기’는 호황기일 때 세밀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타이밍이 맞지 않아 별 성과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 공방은 계속될 것이기에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 소장은 “올해 노동전략의 고민은 현재의 조직노동이 어떻게 전선에 올바르게 배치되고 복무할 것인가의 문제”라며 “특히 최저임금제 문제는 총력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복지 연대에서도 다양한 결합 방식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며 “다만 이것이 길게 갈 상황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인순 경남대 교수는 “당 차원에서는 새로운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정책들, 예컨대 ‘일자리 나누기’라면 일반 대중이 일자리를 왜 나누어야 되는지, 그 필요성을 확산하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정책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특히 이명박 정부의 일자리 만들기에 대항하는 일자리 만들기 정책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키기나 나누기는 당에서 요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노동시간 또한 이미 단축되고 있다”며 “특히 서비스와 관련해서 여성친화적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에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심상정 진보신당 상임공동대표는 이날 토론회에 대해 “오늘은 다양한 노동전략과 관련된 의제와 문제제기에 대해 의의를 두어야 할 것”이라며 “오늘 좌담회를 계기로 진보신당은 책임 있는 노동전략을 만들어야겠다는 책임감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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