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듀, 부시!
        2009년 01월 16일 10: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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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을 평가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통상적으로는 성격, 능력, 비전, 경제정책, 외교정책, 국내정책 등등의 항목을 기준으로 행해진다. 그러나 이번에 임기를 마치는 부시에 대해서는 사실 그렇게 조사하지 않아도 이미 평가가 내려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부시라고 잘한 것이 왜 없겠는가마는 잘못에 비해 크기나 비중에서 비교가 안 된다면 그건 별 의미 없는 일이다. 다음 주면 이임하는 부시 8년을 간략하게 정리해보자.

    부시 8년의 면모를 보여주는 몇 가지 대표적 사례들

       
      

    G. 테닛 CIA 국장 : "후세인은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부시 : "그것은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후세인이 꾸며낸 정보야." – 2002년 9월 18일. 백악관 CIA 정보 브리핑.

    물고문(waterboarding) : 사람을 뉘인 채 사지를 묶고 수건을 덮어씌운 얼굴에 물을 쏟아 부으면서 심문하는 것.
    부시 : "물고문을 금지하는 것은 좋은 정보수집 방법을 막는 것이다." -2008. 3. 8. 고문금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1800여 명이 사망한 2005년 카트리나 허리케인 재해 : 연방재난청, 재해 6일이 지나서야 주민 대피용 버스 요청.
    부시 : "연방재난청의 허리케인 재해 대책은 시의적절했다." – 2009. 1. 12. 이임 기자 회견.

    미국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부정적인 여론의 평가는 2기 부시 내내 이어졌다. 대통령 지지도 조사가 시작된 이래 70년 동안 이러한 기록은 없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 부시의 무오류설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진 것일까? 그것은 이미 알고 있듯이 대통령 부시의 무지와 무능력 때문이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그가 믿는 기독교 복음주의 중에서도 극우파에 속하는 근본주의 기독교 때문이다.

    2004년 10월 17일 R. 서스킨은(<월스트리트 저널> 출신 저술가 및 언론인)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기고한 글에서 부시는 자기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는 것임을 굳게 믿고 있다고 적고 있다. 그가 질문을 받을 때 내보이는 조롱하는 듯한 엷은 미소와 짜증스러운 표정은 그러한 믿음이 밖으로 나타난 모습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따르는 자신이 잘못이나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비판을 허용하거나 들으려 하지 않을 것임은 당연지사다. 부하들에게 극도의 충성심을 요구하는 것은 또 물론이다. 이는 부시의 개인적 성품이기도 하지만 부시정권 출범시 이미 구조화된 것이기도 하다.

    2001년 부시정권이 들어서면서 헤리티지 재단은 정부의 인사정책 기조에 대해, 충성심 1번, 능력 2번으로 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그리고 이는 부시정권 인사의 기본 틀이었다. 유엔 대사에 볼튼, 세계은행 총재 월포위츠 등의 임명 사례가 그것을 대변해준다.

    무개념 정책과 정치

    부시가 대통령으로서 내리는 각종 정책의 결정기준은 무엇일까? 언론들이 지적한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그는 기본적으로 공공정책에 대한 기본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가 아닌가라는 원칙에 따라 정책이 수립, 집행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또는 보수주의 집단에 정치적으로 이득이 되는가 아닌가가 기준이라는 것이다.

    그의 유명한 비서 K. 로브가 정립했듯 그는 51% 정치를 해온 것이다. 사회통합의 정치가 아니라 나머지 49%는 버리는 갈등과 분열의 정치가 오늘의 부시와 공화당을 낳은 셈이다.

    한편 부시의 행태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특히 닉슨 이후 레이건, 그리고 부시에 이르기까지 공화당 정권이 길러온 제왕적 대통령 이데올로기에서도 비롯된다. 특히 국가안보 분야에서 비밀주의, 대통령의 권한남용 같은 불법이 다반사로 저질러졌는데,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들이 대통령은 법 위에 군림한다고 믿고 행동해왔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라는 닉슨의 말도 이런 이데올로기에서 나온 것이다. 부시의 대외정책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가능하다.

    부시의 무지와 무능

    생각하기 싫어하고, 제대로 알고 싶어 하지 않으며, 일하기 싫어하는, 그래서 자기의 부하들로부터도 역사와 정책에 대해 정말 아는 게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받는 게 부시이다.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부시는 즉흥적이고 직감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는 리더쉽을 가지게 된다.

    문제는 그것을 과단성 있는 정치적 리더쉽이라고 착각할 뿐 아니라 그것을 따르도록 강요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사실 부시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공화당도 마찬가지이다.

    공화당은 논의와 학습을 통해 내공을 다지고 그에 기초해 판단을 내리는 것을 엘리트주의적이라며 경시하거나 심지어는 야유하는 듯한 반지성적 전통을 키워온 정당이다. 바로 이 때문에 공화당은 정치철학적으로는 수구꼴통 보수주의에(보수주의에도 여러 갈래가 있는데) 사로잡힌 군소 극우 정당 수준에 머물러 있다.

    부시는 정치적으로 이런 공화당에 크게 의존했을 뿐 아니라 또 공화당을 이런 방향으로 틀어지게 했다. 부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얽혀있는 악순환 구조였던 셈이다.

    그 결과 부시 8년은 미국은 미국대로, 공화당은 공화당대로 크게 망가지는 기간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역사의 평가에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반성할 줄 모르는 무지의 산물이다.

    레이건 :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미국의 정신은 소멸된다. 우리가 가장 중시해야 할 일은 우리의 역사를 기억하는 일이다." – 1989. 1. 11. 레이건 이임연설.

    부시 : "나는 길든 짧든 역사에 신경 쓰지 않는다. 왜? 그 때 되면 죽기 때문에 누가 뭐라고 썼는지 내가 못 읽으니까." – 2008. 12. 23. ABC 인터뷰.

    부시이임 = 상황종료?

    더 이상 무엇을 말하랴. 일단 그가 이임한다는 것이 우선 안심이다(이임 후 그가 부통령 체니, 국방장관 럼스펠드 등과 함께 전범재판에 회부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기서 강조해야 할 것은 미국을 망가뜨린 집단이 부시와 공화당뿐이 아니라는 점이다.

    부시와 공화당을 철저히 이용한 각종 각급의 보수주의 단체들 역시 마찬가지의 책임을 지고 있다. 이들은 닉슨 이래 지난 40여 년 동안 미국 사회에서 엄청나게 탄탄한 기반을 확보했다. 교회면 교회, 연구소면 연구소, 사회단체면 사회단체, 기업이면 기업, 대학이면 대학, 미디어면 미디어. 미국사회 전반에 걸쳐 보수주의자들의 돈, 보수주의자들의 힘, 보수주의의 문화는 대단히 강고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이들이 부시 8년을 결정한 책임자의 하나라는 점은 이들이 앞으로 미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또 다른 요소임을 말해준다. 그것은 또 변화를 내세운 오바마 정부의 갈 길이 결코 평탄치 않을 것임도 함께 예고하고 있다.

    * 이 글의 필자는 단국대학교 언론영상학부 교수로 지금은 미국의 한 대학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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