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노자 ‘혁명론’에는 혁명이 없다
        2009년 01월 15일 04: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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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월 중순 내가 <레디앙>에 「‘근본적 변혁’이 더 현실적이다」라는 글을 투고한 후, 박노자 씨는 한 달에 걸쳐 「나의 혁명론」이라는 제목의 글을 네 차례 연재했다. 그리고 최근 박노자 씨는 <한겨레> 12월 30일 치에 「대한민국과 그리스식 젊은이 반란」이라는 칼럼을 썼고, <레디앙>에는 「국제주의,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그의 글들은 대체로 근본적 사회 변혁과 국제주의를 비판하는 내용들로 이뤄져 있다. 먼저 나는 이번 글에서 박노자 씨의 ‘혁명론’을 비판할 것이다. ‘국제주의’에 대한 그의 생각에 대해서는 다음 번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다함께’에 대한 박노자 씨의 편견

    나는 지난번 글에서 혁명은 폭력을 부르기 때문에 가급적 피해야 하고 최선의 대안은 “급진적 개혁”일 뿐이라는 박노자 씨의 주장을 비판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박노자 씨는 이번 논쟁이 “탁상공론”이라면서 나의 반박에 대해 어떠한 답변도 내놓지 않고 있다. 혁명에 관한 논쟁을 먼저 제기한 쪽은 박노자 씨 자신인데도 말이다.

       
      ▲ 지난 해 열린 ‘다함께’ 회원들의 아프가니스탄 점령 반대 시위 (사진=다함께)

    오히려 박노자 씨는 나의 비판을 회피한 채 「나의 혁명론」에서 혁명에 관한 또 다른 논지를 매우 혼란스럽게 전개했다.

    박노자 씨의 새로운 글들에서도 공감할만한 점은 있다. 박노자 씨는 “우리의 역사적 시계는 지금 다시 한 번 1929년”이고, “케인즈주의적 위기 관리의 수법들이 ‘진짜 위기’의 도래를 연기시킬 뿐 구조적으로 불가피한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나 또한 이러한 시대인식에 공감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인식은 어떠한 실천적 과제를 함축하는가. 이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 변혁이 필요하다는 과제를 함축하고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박노자 씨의 실천적 결론은 이와 반대로 가고 있다.

    박노자 씨의 글은 「나의 혁명론」 3회 글까지도 혁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박노자 씨는 “체제 전복이란 정말 그렇게 쉬운 줄 아십니까?” 하고 질타하며, 마치 ‘다함께’가 아무런 현실 분석 없이 무턱대고 혁명을 주장하고 그것이 매우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여기는 몽상가들인 것처럼 재단한다.

    ‘다함께’에 대한 박노자 씨의 인상은 편견에 불과하다. ‘다함께’가 근본적 사회 변혁을 긍정한다고 해서 혁명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날 것처럼 여길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다. 그리고 한 묶음의 혁명적 강령을 선전하는 것을 통해, 혹은 추상적으로 혁명이 필요하다고 선동하는 것을 통해 혁명이 쉽게 발생할 것이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지금과 같은 세계 경제 위기 시기에 혁명 발생 가능성이 더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혁명이란 대중 자신의 자주적 행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여긴다. 따라서 혁명의 맹아는 대중 행동으로부터 나온다.

    대중이 지금 당장은 목적의식적으로 혁명을 추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경제 위기 시기에 자본가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삶의 조건을 방어하고자 하는 대중 행동의 논리가 자본가들의 이윤 체제의 논리에 근본에서 도전하게 돼 있다면 그러한 행동은 혁명으로 나아가는 가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나 또한 박노자 씨가 제시한 ‘급진적 개혁’ 과제들을 지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개혁 과제들을 둘러싼 개혁주의자들과 우리의 차이는 그러한 개혁 과제를 성취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개혁주의자들은 개혁 과제를 제시하지만 그것을 쟁취하기 위한 대중 행동이 체제의 논리를 넘어서려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반면 변혁가들은 ‘개혁 과제’를 지지하면서도 개혁주의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즉 변혁가들은 개혁주의자들과 달리 개혁 과제를 쟁취하기 위한 대중 행동이 체제의 논리를 넘어서도록 돕는다. 이는 ‘개혁 과제’를 실제로 성취하는 데에 있어서도 결정적 차이가 될 것이다.

    개혁주의자들과 변혁가들의 차이

    그런데 박노자 씨는 변혁가들을 반대하면서 ‘개혁 과제’를 지지하고 있다. 박노자 씨가 개혁주의자여서라기보다는 박노자 씨가 변혁가들에 대한 편견, 즉 변혁가들은 노동 계급 의식에 대한 비현실적 환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편견 때문에 변혁가들을 비판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노동 계급 의식에 대한 비현실적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도 일상적 시기 다수 노동 계급 의식은 개혁주의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박노자 씨와 달리 그것이 고정 불변의 것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게다가 박노자 씨는 노동 계급 다수의 개혁주의 의식 때문에 혁명이 불가능하다고 보지만, 나는 그와 달리 노동 계급 다수의 개혁주의 의식에도 불구하고 대중 행동이 벌어질 수 있고 이것이 때에 따라서는 근본적 변혁의 가교가 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노동 계급의 의식도 변할 수 있다.

    따라서 ‘다함께’는 ‘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논점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면서도, 개혁 과제를 성취하기 위한 대중 행동을 건설하는 데에 있어 박노자 씨 뿐만 아니라 평상시에 다수 대중이 지지하는 개혁주의 지도자들과도 협력할 수 있다.

    급진적이긴 하지만 추상적이고 종파적인 사람들이 이러한 우리의 행동을 ‘기회주의적’이라고 비판한다면, 나는 그런 비판을 대중 행동을 건설하고 그 속에서 변혁가들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활용할 수 없는 자신들의 무능력에 대한 한탄으로, 그리고 그 반대로 그러한 기회를 잘 활용할 줄 아는 우리의 능력에 대한 칭찬으로 받아들이겠다.

    우리가 개혁주의 지도자들과의 논쟁을 회피한다면, 나쁜 의미의 ‘기회주의자’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운동의 전진에 필요한 중요한 논점들에 대해서는 대체로 회피하지 않아 왔다고 자부한다.

    박노자 씨와의 논쟁도 마찬가지다. ‘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문제가 더욱 중요해질 세계 경제 위기 시기에 박노자 씨는 혁명이 비현실적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나의 글은 혁명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박노자 씨의 주장을 비판하고 오늘날 근본적 변혁의 현실성을 밝히는 데에 목적이 있다.

    혼란과 모순

    박노자 씨는 혁명, 무엇보다 세계 혁명이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다함께’의 혁명관”은 공상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박노자 씨는 서구에서 혁명의 불가능성을 주장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생산성이 가장 높고 일반의 소비 수준이 가장 높은 세계 체제의 핵심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 계급 권력 행사의 가시적인 ‘탈폭력화’”라면서 지금의 혁명 전략은 “레닌의 시기와 조금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체제에 대한 민중의 “두꺼운 ‘동의적 기반’이 있기 때문”에 한국과 같은 “준핵심부(혹은 준주변부)”는 혁명의 “이론적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서구는 그것도 거의 없으리라고” 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에서의 대중 항쟁이 떠오를 무렵 박노자 씨는 「나의 혁명론」 4회 글을 통해 ‘서구’의 일원인 그리스․이탈리아․스페인의 경우는 한국 대만 러시아 동유럽 등과 같은 “준주변부”로서 “가장 먼저 반체제적 운동의 커다란 파도를 일으킬 나라들”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눈치 빠른 독자들이라면, 「나의 혁명론」 4회의 연재와 최근 <한겨레> 칼럼을 통해 박노자 씨 주장이 변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애초 박노자 씨는 서구에서는 혁명의 ‘이론적’ 가능성조차 없다는 관점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서구의 일부 나라들에서는 혁명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결론을 함축하는 입장으로 변화한 것이다.

    박노자 씨가 자신의 입장을 수정한 것이라면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럼에도 세계 체제의 “핵심부”에서는 혁명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박노자 씨 주장은 변하지 않은 듯하다. 이는 박노자 씨가 G8의 일원으로 세계 자본주의 주요 열강 가운데 하나인 이탈리아 같은 나라를 “준주변부”로 규정함으로써, 최근 경제 위기 상황에서의 저항을 모두 “준주변부”의 반란이라고 규정한 데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최근의 세계 경제 위기는 무엇보다 세계 체제의 중심부에서 시작됐고, 이 때문에 그리스 뿐만 아니라, 박노자 씨가 “생산성이 가장 높고 일반의 소비 수준이 가장 높은 세계 체제의 핵심부”라고 규정할만한 프랑스, 독일 등에서도 반체제적 투쟁이 확산되고 있다.

    박노자 씨 주장대로라면 이런 나라들의 민중은 혁명적 투쟁을 할 가능성이 없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나라들에서도 반체제적 운동이 등장하고 있으니, 이제 박노자 씨에게 혁명의 불가능성을 입증할 마지막 성지는 노르웨이 뿐인 듯하다.

    이런 박노자 씨 이론을 실천에 진지하게 적용한다면, 근본적 변혁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혁명이 불가능한 노르웨이에 있을 이유가 없게 되는데, 박노자 씨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궁금하다.

    불균등 결합 발전론에 대한 그릇된 이해

    박노자 씨는 “준주변부”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혁명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자신의 관점을 트로츠키의 불균등 결합 발전 원리로 정당화한다.

    박노자 씨가 트로츠키의 불균등 결합 발전 원리를 올바르게 수용한다면 반가운 일일 것이다. 불균등 결합 발전 원리는 각 국민적 자본주의 발달이 불균등하면서도 결합된 형태로 나타난다는 원리다. 이 때문에 후진국에서는 그 자신의 후진성과 선진국에서 도입된 선진적 요소들이 결합되어 모순이 더 첨예하게 표현된다.

    트로츠키는 이로부터 후진국에서도 노동 계급 혁명이 가능하다는 관점을 도출했다. 심지어 이런 나라들에서 혁명이 먼저 일어날 수도 있다.

    여기까지는 박노자 씨 주장과 언뜻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트로츠키와 박노자 씨의 결론은 정반대다. 트로츠키가 불균등 결합 발전의 원리를 통해 후진국에서 노동 계급 혁명의 가능성에 착목한 반면, 박노자 씨는 이 원리를 선진국에서 혁명의 불가능성(따라서 세계 혁명의 불가능성)을 입증하는 데에 이용하고 있다.

    왜 이런 차이를 보이는 것일까? 이는 박노자 씨가 트로츠키의 연속 혁명론의 두 번째 측면, 즉 국제적 차원의 연속 혁명론이 바로 불균등 결합 발전의 원리와 긴밀히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트로츠키는 국제적 차원의 연속 혁명론을 통해, 후진국에서의 혁명과 선진국에서의 혁명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이에 대한 트로츠키의 주장은 설령 후진국에서 혁명이 먼저 시작된다고 하더라도 결합 발전의 원리 때문에 이는 후진국에 모순을 수출했던 선진국으로까지 혁명이 금세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트로츠키와 레닌 등은 러시아 혁명이 유럽 혁명의 전주곡이 될 것이라고 여겼고, 실제 1918년에서 1926년까지 독일 이탈리아 헝가리 영국 등 전유럽에 혁명적 투쟁이 전파됐다.

    심지어 박노자 씨가 그토록 혁명의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하는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의 경우도 당시 러시아 혁명이 가져온 급진화의 충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는 무엇보다 2005년 7월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주최의 ‘북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성과와 한계’ 토론회에서 박노자 씨 자신이 주장했던 바다.

    게다가 당시 박노자 씨는 노르웨이의 사례야 말로 개혁을 쟁취하기 위해서라도 혁명적 투쟁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주장했다. “노동계급이 ‘복지모델’이란 양보를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은 부르조아 정치, 사회에 위협적 존재로 자신을 드러내며 위기감을 고조시켰기 때문이다. 부르조아가 그냥 양보하지는 않는다. 체제전복의 위협이 있을 때만이 양보한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그런데 지금의 박노자 씨는 혁명 불가능성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트로츠키의 이론을 편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불균등 결합 발전 이론에 대한 편의적 사용은 박노자 씨의 중국에 대한 분석에서도 드러난다.

    박노자 씨는 중국에서도 혁명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하는데, 의아하게도 중국에 대해서는 불균등 결합 발전의 원리를 적용하지 않는다. 불균등 결합 발전의 원리에 따르면, 가장 발달된 산업화의 결과물과 후진성이 가장 극단적으로 공존하는 중국에서는 다른 어떤 곳보다 혁명의 가능성이 높아야 할 텐데 말이다.

    “핵심부”는 가시적으로 “탈폭력화” 했는가

    다시 박노자 씨의 세계 체제 내의 지위 분류법으로 돌아가보자. 박노자 씨는 이탈리아 같은 나라가 “준주변부”라서 반체제적 투쟁이 벌어진 것처럼 말한다. 박노자 씨는 중상위권의 경제 수준에 권위주의적 잔재가 많이 남아있는 곳을 “준주변부”라고 규정한다.

    박노자 씨 말대로 이탈리아나 그리스 등의 남부 유럽 국가들은 권위주의적 잔재가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권위주의적 잔재가 많이 남아 있다고 해서 곧장 “준주변부”로 규정하는 것은 비약이다.

       
      ▲ 지난 해 말경 그리스에서 벌어진 격렬한 시위 모습

    왜냐하면 얼마든지 “핵심부” 가운데에도 국가 형태가 부르주아 민주주의이면서도 권위주의적 잔재가 많은 나라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노자 씨는 세계 체제의 “핵심부” 국가의 특징을 “가시적인 ‘탈폭력화’”라고 규정하다보니, 권위주의적 잔재가 남아 있는 나라들을 “핵심부” 국가에서 제외하는 분석 상 오류를 보인 것이다.

    한 국가의 세계 체제 내의 지위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발달 정도 사이에 필연적인 연관은 없다. 물론 부르주아 혁명을 먼저 겪은 나라들의 경우 대체로 자본주의 발전이 빠르게 나타나 대체로 세계 체제의 “핵심부”에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역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G8에 속한 “핵심부” 국가들 중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 등은 권위주의적 잔재가 많이 남아 있고, 러시아나 중국 같이 명백히 권위주의적인 국가들도 있다는 점만 보면 잘 알 수 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동력은 자본주의 초기 영국․네덜란드․미국․프랑스에서 벌어진 부르주아 혁명을 제외하고, 부르주아 자신에 의한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 투쟁과 조직화의 성과였다. 부르주아지는 권력을 장악한 후에는 민주주의를 배신했다.

    그들 또한 착취적 계급이었기 때문이었다. 효과적 착취를 위해선 효과적 억압도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부르주아지는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적 요구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는 심지어 부르주아 혁명을 겪은 나라들조차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민주주의는 노동계급의 몫이 되었고,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노동계급 투쟁과 조직을 부르주아들이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만 했던 상황의 산물이 됐다.

    반면 한 국가의 세계 체제 내의 높은 지위는 부르주아지들이 노동 계급을 효과적으로 착취하고 다른 나라의 부르주아지들과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통해 성취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발달 정도는 각 국가마다 노동계급 투쟁과 국가가 맺은 관계에 영향을 받는 것이지, 세계 체제 내에서 특정 국가 부르주아지가 성취한 경제적․정치적․군사적 위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박노자 씨처럼 이를 직접적으로 연관 짓는 분석은 선진국 부르주아지가 민주주의적 계급이라는 점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셈이다.

    박노자 씨는 ‘다함께’가 공상적이고 자신은 실사구시적이라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박노자 씨야말로 각 나라 계급투쟁의 주관적 측면을 실사구시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채 세계 체제 내의 지위로부터 곧장 계급투쟁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환원론적 접근법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 혁명과의 공통점과 차이점

    한편 박노자 씨의 편견과 달리, ‘다함께’는 러시아 혁명의 경험이 오늘날 1백퍼센트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박노자 씨와 같은 이유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박노자 씨는 러시아 혁명 당시와 오늘날의 차이점만 강조하지만, 우리는 공통점과 차이점 모두를 인식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계급 세력 관계와 노동 계급 의식에 대해 실사구시적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먼저 공통점을 강조하겠다. 많은 이들에게 러시아 혁명은 한 후진국에서 벌어진 특수한 종류의 혁명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러시아 혁명은 세계 혁명의 한 일부분이었다. 러시아는 제국주의 사슬의 약한 고리에 불과했다. 따라서 러시아에서의 변혁은 세계적 차원의 변혁의 신호탄이었던 것이다.

    러시아 혁명과 그 이후 유럽 차원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혁명의 확산은 바로 자본주의 체제의 세계적 성격과 그것에 대한 세계적 차원의 변혁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줬다. 그래서 레닌은 『좌익 공산주의―어린애 같은 혼란』에서 “러시아 혁명의 국제적 의의”에 대해 말했던 것이다.

    즉,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착취․억압․소외는 러시아나 남한이나 심지어 자본주의 “핵심부” 국가들에서나 공통적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는 그 자신을 변혁할 세력인 노동자 계급을 대규모로 창출한다.

    이들의 대중 행동을 통해서만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 변혁이 가능하다. 노동 계급은 자본주의 국가를 그대로 인수할 수 없고, 노동자 대중의 민주주의적 기관으로 대체해야 한다. 노동 계급 대중 행동이 성공한 혁명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혁명을 이끌 변혁 정치 조직이 필요하다. 그러한 조직은 노동 계급 운동 외부가 아니라, 그 내부에 선진적 일부로 존재해야 한다. 이런 점들이 러시아 혁명과 21세기의 혁명이 가진 공통점일 것이다.

    차이점도 있다. 그러나 차이점이 언제나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가령, 당시에 비해 오늘날 노동 계급의 양적 질적 영향력이 매우 크게 신장됐다. 또한 자본주의 세계화 덕분에 국제주의의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더 열려 있다.

    세계화 덕분 국제주의 가능성 더 커져

    물론 20세기 초 러시아와 달리 오늘날 서구나 남한과 같은 나라에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존재와 이와 연관된 개혁주의의 문제가 중요한 차이점으로 존재한다. 러시아에서 개혁주의의 영향력이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러시아에서도 1917년 2월 혁명 직후에 노동 계급은 개혁주의 정치 세력을 지지했다. 그러나 러시아 절대주의의 광폭한 탄압과 체제의 극심한 모순 때문에 개혁주의의 입지가 넓지는 못했다.

    반면 오늘날 서구나 남한의 경우 개혁주의의 영향력을 주요하게 고려해야만 한다. 사실 러시아 혁명 직후에도 안토니오 그람시, 레닌, 트로츠키 등도 이를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서구의 혁명가들에게 개혁주의 지도자들과 공동전선을 추진할 것을 강조했다.

    레닌의 『좌익 공산주의―어린애 같은 혼란』은 바로 이 점을 강조한 역작이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진지전’ 개념 또한 공동전선 개념과 동일한 것이다.(안토니오 그람시에 대한 세간의 곡해와 달리, 그람시는 ‘진지전’을 강조하면서 자본주의 국가를 분쇄하는 ‘기동전’을 폐기하지 않았다.)

    개혁주의 의식은 고정 불변의 것이 아니다

    박노자 씨와 나의 차이는 개혁주의의 영향력을 인정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것이 아니다. 차이는 개혁주의의 뿌리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박노자 씨는 개혁주의가 주로 서구 노동 계급이 여타 지역의 노동 계급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소비 수준을 누리는 데에서 비롯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개혁주의는 노동 계급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겪는 소외의 산물이다. 노동 계급이 생산 과정에서 겪는 소외는 모순된 결과를 낳는다. 착취와 소외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체제에 대해 어느 정도의 불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생산 과정에서 자본가들에게 통제력을 빼앗긴 상태에 놓여있다 보니 일상적 시기에 노동자들은 세계 전체를 노동 계급의 집단적 통제 하에 둘 자신감이 높지 않다. 이 때문에 많은 노동자들이 체제의 그 일부만을 개선하고자 하는 개혁주의를 지지하게 된다.

    여기에 노동조합과 개혁주의 정당과 같은 기구와 그 지도자들이 노동자들의 개혁주의적 의식을 반영하거나 재생산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박노자 씨와 같은 분석은 서구 노동 계급의 개혁주의가 마치 그들의 물질적 ‘풍요’ 때문인 것으로 여기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박노자 씨는 서구 노동 계급이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면서 투쟁하는 것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으로 언급한다.

    마치 서구 노동 계급이 개혁주의에서 벗어나려면 물질적 ‘풍요’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듯이 말이다.(사실 세간의 정규직 양보론도 이와 비슷한 논리를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서구 노동 계급의 물질적 ‘풍요’는 상대적인 것이다. 제3세계 노동 계급에 비해 서구 노동 계급이 상대적으로 더 나은 조건에 처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자국의 자본가 계급과 비교하여 서구의 노동 계급이 풍요로운 것은 아니다. 노동 계급은 절대적 빈곤에 의해서도 체제에 대한 불만을 갖게 되지만, 상대적 빈곤에 의해서도 불만을 갖게 된다.

    장기 호황의 끝자락이었던 1968년 반란 전야까지도 개혁주의 정치인들은 서방에서 혁명의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치부했는데, 그러한 분석조차 1968년 반란을 통해 근시안적인 인상에 불과했다는 점이 드러났다. 그래도 그 때는 장기 호황의 여운이 있는 시기였으므로 심지어 급진 좌파들조차 그렇게 여길 법도 했다.

    하지만 이미 1970년대 말 이래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자본가들의 공격이 계속된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복지주의에 안주한다고 여기는 것은 너무도 현실을 도외시하는 것이다. 오늘날 서구 대다수 나라들에서 노동자들은 실질임금 감소와 복지 축소에 상당한 불만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1970년대 후반 1968 반란이 패배하게 된 후부터 침체해 있던 서구의 노동 계급 운동은 1990년대 중반 프랑스 공공부문 파업을 필두로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 물론 나라마다 편차가 있고 대체로 더디긴 하지만, 프랑스․독일․이탈리아 같은 곳은 상대적으로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이러한 곳에서는 세계 경제 위기 상황에서 자본가들의 공격에 맞선 노동자들의 저항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물론 내가 서구에서 개혁주의의 영향력이 사라졌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노동 계급이 일상적으로 개혁주의의 영향력 하에 놓여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가변적일 수 있다는 점을 말하려 하는 것이다. 더 중요한 점은 개혁주의의 영향력이 강력한 상황에서도 노동자들은 투쟁에 나설 수 있고, 그 투쟁 경험은 노동 계급 의식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프랑스 같은 곳을 보자. 박노자 씨라면 프랑스가 세계 체제의 “핵심부” 국가이므로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 이상의 진전에 대한 열망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는가” 하고 도식적으로 재단하겠지만, 실제 오늘날의 현실에서 프랑스는 혁명가들이 가장 높은 지지를 받는 곳에 속한다. LCR(혁명적 공산주의 동맹) 소속 혁명가인 올리비에 브장스노는 한국의 민주노동당보다도 두 배 가량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는 것을 보라.

    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노동 계급 의식은 경제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 계급 투쟁 경험에 의해 커다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경우 멀게는 가장 단호한 부르주아 혁명이었던 프랑스 혁명의 전통과 그를 뒤이어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여러 차례 체제를 뒤흔들었던 강력한 노동 계급 투쟁의 전통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직접적으로는 지난 10여년의 동안 1995년 프랑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 2005년 유럽 헌법 반대 투쟁, 2006년 CPE 법안 저지 투쟁 등 거대한 투쟁에서 모두 승리했던 경험과 더 깊이 관련돼 있다.

    따라서 각 나라의 혁명 가능성을 실사구시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세계 자본주의의 모순 정도와 그것이 국민 국가들 사이에서 결합된 방식과 같은 객관적 조건과 함께, 최근의 세계 자본주의와 국민 국가적 차원의 계급 세력 관계, 노동 계급 투쟁의 경험에서 비롯한 각 나라의 주관적 조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만 한다.

    21세기 혁명의 현실성

    그렇다면 오늘날 혁명의 가능성이 있는가? 먼저 객관적 조건을 검토해보자. 이는 “우리의 역사적 시계는 지금 다시 한 번 1929년”이라고 규정한 박노자 씨의 시대인식만 언급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세계 경제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고, 이는 세계 곳곳에서 노동 계급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자본가들 간 경제적․군사적 경쟁도 심화하고 있다. 비록 단기적으로 강대국들 간 전쟁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테러와의 전쟁”을 비롯한 각종 군사적 충돌이 더욱 빈번해지고 있고 강대국들 간 긴장도 더욱 고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오늘날 ‘테러와의 전쟁’의 최전선인 중동과 반신자유주의 운동이 가장 멀리까지 나아간 라틴아메리카, 세계 체제의 모순이 극심하게 아로새겨진 중국 같은 곳은 세계 체제 사슬의 ‘약한 고리’라 말할 수 있다.

       
      ▲ 이스라엘에 의해 공격받고 있는 가자지구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격은 이집트를 비롯한 여타 중동 국가들에서 격변을 부를 가능성이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반신자유주의 운동은 우익들의 반동에 의해 위기를 맞이할 수 있고, 이는 첨예한 계급투쟁을 낳을 수 있다. 세계 경제 위기 여파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중국의 경우도 모순이 폭발할 수 있다.

    여기에 자본주의 세계 체제 “핵심부”에서 시작된 세계 경제 위기 상황은 더 많은 곳에서 위기를 심화시킬 수 있다. 심지어 서구의 몇몇 나라,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같은 나라를 포함해서 말이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 불균등 결합 발전의 원리에 따르면, 어떤 한 나라에서의 혁명은 다른 나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노동 계급은 실제로 투쟁에 나설 것인가. 지금과 같은 경제 위기 시기에는 일상적 시기의 노동 계급 의식을 잣대로 투쟁 가능성을 재단할 수 없다. 경제 위기 시기에는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대량으로 공격하기 때문에 사회주의 노동자가 아닌 대다수 노동자들조차 자신의 생활 조건을 방어하고자 투쟁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요구는 그 자체로는 자본주의 체제 내적 요구일 수 있다. 그러나 일상적 시기에 체제가 양보할 수 있었던 요구조차도 경제 위기 시기에 자본가들은 쉽게 양보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된다면 노동자들은 자신의 생활 조건을 방어하기 위해 자본주의적 논리 자체에 도전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생활 조건을 방어하기를 포기할 것인가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 그러한 갈림길에서 노동 계급이 한 걸음 더 전진한다면 체제 자체를 변혁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다. 노동자들의 의식은 그 과정에서 더욱 급격히 변화할 수 있다.

    변혁 정치 조직 건설은 필수적이다

    문제는 혁명이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이 언제나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바로 여기에서 개혁주의의 문제가 중요하게 고려돼야 한다. 러시아 혁명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혁명에서 노동 계급은 혁명 초기에 개혁주의 혹은 좌파개혁주의 정치 세력을 지지하곤 했다. 혁명기에 노동 계급 의식이 급변하긴 하지만, 한꺼번에 도약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수 노동 계급은 온갖 개혁주의 조류를 시험대에 올린 후 그것이 일관된 개혁을 성취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한 후에야 혁명가들을 지지하게 된다. 물론 혁명기에 조성되는 첨예한 모순 때문에 개혁주의 조류의 비일관성과 동요가 매우 짧은 기간 동안 입증될 가능성이 높지만 말이다.

    그러나 심지어 대중이 개혁주의 조류에 실망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혁명가들의 조직을 지지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대중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을 만큼 경험 있는 변혁적 조직이 노동 계급 대중 운동 내에 뿌리 내리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념적 조직”의 역할을 폄하하는 박노자 씨의 주장과 달리, 오히려 개혁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어느 정도 통일성을 갖춘 변혁 정치 조직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변혁 정치 조직을 건설하는 것과 노동조합이나 각종 공동전선 기구들에서 선진적 투사로 활동하는 것은 모순이 아니다. 두 가지 과제는 어느 하나의 과제로 환원될 수 없기 때문에, 쉽지 않더라도 두 과제는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

    ‘다함께’는 노동 계급 운동 내에 영향력 있는 변혁적 정치 조직으로 성장하고자 하고, 실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따라서 우리는 변혁 정치 조직을 현실의 대중 운동과의 유기적 연관 속에서 건설하려 한다.

    이 때문에 우리의 실천은 국제적 상황뿐만 아니라, 남한의 정치 상황과 노동 계급 운동이 처한 구체적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전지전능한 리더십’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다함께에 대한 불공정한 비교

    그런데 박노자 씨는 변혁 정치 조직 건설을 비판하면서, 종종 ‘전지전능한 리더십’이라는 잣대를 들이댄다. 박노자 씨가 볼셰비키를 비판할 때 그들이 처한 불가피한 조건조차 무시하는 것을 보라.

    ‘다함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박노자 씨는 혁명의 불가능성을 주장할 때는 20세기 초 러시아 상황과 오늘날 남한의 상황이 다르다고 강조하면서도, ‘다함께’의 노동조합 내 영향력을 깎아내릴 때는 불공정하게도 남한 노동조합에서의 개혁주의 문제를 무시한 채 당시 볼셰비키의 경험을 단순 비교하여 잣대로 들이댄다.

    변혁 정치 조직 건설은 이미 주어진 무오류의 지도부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주어진 조건 하에서 추구하는 의식적 노력의 결과물인 것이다. 지도력은 우리의 원칙․강령․전략 등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라고 강요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실천 속에서 노동 계급 다수에게 그 올바름이 입증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우리의 노력이 성공할지 지금으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우리의 실천 또한 여러 차례 계급투쟁의 시험대를 거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근본적 변혁 지지자들 모두가 박노자 씨처럼 근본적 변혁을 목적의식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기각한다면, 근본적 변혁과 “급진적 개혁” 모두에서 성공을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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