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팔레스타인 인민의 대안인가?
    2009년 01월 15일 09: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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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이 멈출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침략 명분이 되고 있는 하마스는 현재 휴전 협상 여부를 놓고 지도부가 논쟁 중이라고 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이번 학살극의 한 쪽 당사자인 팔레스타인의 정치 지형은 어떠한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과연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인민의 대안인가? 이들이 아니라면 또 어떠한 정치적 대안이 존재하는가?

   
  ▲ 팔레스타인 하마스 무장군

팔레스타인은 지금 내분 중

우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팔레스타인 국가기구(1993년의 오슬로 협정으로 등장한 자치정부) 자체가 현재 내분에 휩싸여 있다는 사실이다. 팔레스타인 의회인 입법 평의회는 양대 정당이 지배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과거 임시정부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이끌어온 ‘파타’(‘승리’)다.

파타는 2006년 총선 전까지는 제1당이자 여당이었다. 고(故) 야세르 아라파트가 바로 이 당의 역사적 지도자였다. 파타는 팔레스타인 민족 해방을 위한 무장 투쟁을 가장 먼저 시작한 정치 세력이다.

하지만 오슬로 협정 이후부터는 이스라엘에 유화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서는 이 때문에 투항 세력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자치정부 내에서 장기간 권력을 독점하다보니 각종 부패 사건에 연루되어 있기도 하다.

한 마디로 인기가 급락하는 중. 한편 파타는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사회민주주의 정당 국제조직)에 참관 자격으로 가입해 있기도 하다. 파타에 대한 환멸에 반비례해서 세력을 급신장한 또 다른 거대 정당이 ‘이슬람 저항운동’, 즉 하마스다. 하마스는, 잘 알려진 것처럼, 이슬람 근본주의 정당이다.

하마스는 본래 이집트의 이슬람 근본주의 정당 ‘무슬림 형제단’의 팔레스타인 내 동조 세력으로 출발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에 정교일치의 수니파 이슬람 공화국을 건설하고자 한다.

하마스는, 파타와는 달리, 이스라엘과의 영구 전쟁을 고집한다. 그리고 그 수단으로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한다. 이스라엘에게 하마스가 절멸의 대상인 것처럼, 하마스에게 이스라엘은 공존이 불가능한 불구대천의 원수다.

사실 현재 입법 평의회의 최대 정당은 하마스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국가기구는 정당 내각제를 취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총리를 지명한다.

현 대통령은 파타 소속의 마흐무드 압바스. 하마스가 원내 제1당이 된 2006년 총선(44.45% 득표) 이후 압바스 대통령과 하마스 내각 사이에서는 긴장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이 내분을 계속 부추겼다.

급기야 2007년 6월에 압바스 대통령은 ‘제3의 길’이라는 소수 정당에 속한 미국 유학파 경제학자 살람 파야드를 수반으로 중립내각을 구성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애초에는 하마스도 이 안을 지지했다.

하지만 파야드는 총리직 수락의 조건으로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할 것을 요구했고, 하마스는 이를 거절했다. 결국 하마스는 가자 지구를 점령하고는 웨스트 뱅크(이른바 서안 지역)의 팔레스타인 국가기구와는 분리된 사실상의 독자 정부를 구성했다.

반면 웨스트 뱅크에서는 파타와 이스라엘의 지지를 받으며 파야드 내각이 출범했다. 지금 팔레스타인에는 두 개의 정부가 서로 합법성을 주장하며 준 내전 상태에 있는 것이다.

파타도, 하마스도 아닌 팔레스타인 좌파

여기까지는 국내 언론의 단편적인 보도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는 사실들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잘 안 알려진 사실이 있다. 파타와 하마스 외에도 팔레스타인 인민을 대변하는 또 다른 정당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바로 좌파 정당들이다.

   
  ▲ 팔레스타인 해방 인민전선의 2005년 메이데이 포스터

그 중 가장 유서 깊은 것이 ‘팔레스타인 해방 인민전선’(PFLP, 이하 인민전선)이다. 인민전선은 1953년에 처음 출범했으며, 그 이후부터 PLO 내에서 파타와 자웅을 겨루며 무장투쟁의 한 축을 맡아왔다.

인민전선의 이념은 맑스-레닌주의와 낫세르 식 아랍 사회주의의 독특한 결합이다. 인민전선은 팔레스타인 해방을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 것만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이들에게 팔레스타인 혁명은 통일 아랍 공화국을 건설할 중동 전체의 혁명의 출발점이다. 그래서 이들은 요르단이나 모로코 같은 아랍 세계 내부의 왕정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1969년에 인민전선 내에서 마오주의 세력이 떨어져 나와 새로 만든 또 다른 좌파정당이 있다. ‘팔레스타인 해방 민주전선’(DFLP, 이하 민주전선)이다. 민주전선은 PLO 내에서 파타, 인민전선에 이어 제3당의 지위를 유지해왔다.

민주전선의 이념 역시 맑스-레닌주의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해방에 대한 관점이 인민전선과는 좀 다르다. 이들은 아랍인과 유대인 두 민족이 공존하는 팔레스타인 민중민주공화국을 건설하려 한다.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에 대해서는 비타협적 투쟁 노선을 견지하지만, 유대인들과의 공존에 대해서는 좀 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충실한 시각을 갖고 있다.

이 점에서 민주전선과 비슷한 경향을 보이는 또 다른 좌파 정당이 ‘팔레스타인 인민당’(이하 인민당)이다. 이 당은 팔레스타인 공산당의 후신이다. 공산당이 1991년에 소련 붕괴 등의 영향으로 당명을 개정한 것이다.

인민당은 인민전선, 민주전선에 비해서는 당세가 약하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노동운동에 뿌리를 둔 거의 유일한 정치세력이라는 점이 돋보인다.

좌파의 동요와 한계 그리고 하마스의 성장 사이의 함수 관계

   
  ▲ 팔레스타인 해방 인민전선의 총선 포스터

한데, 이렇게 팔레스타인 해방투쟁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입법 평의회 내에서 좌파 정당들의 의석은 얼마 되지 않는다. 2006년 총선에서 인민전선은 4.25%를 득표했고, 민주전선과 인민당의 선거연합은 2.92%만을 얻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다. 현실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인한 이념적 동요도 그 한 요인이었다. 그리고 오슬로 협정과 그 산물인 자치정부 출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우왕좌왕한 탓도 있었다. 가령 인민전선은 최근까지도 자치정부 선거를 보이콧해왔다. 이것은 그만큼 파타나 하마스의 주도권을 강화시켜주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들이 있다. 인민전선과 민주전선 모두 웨스트 뱅크나 가자 지구보다는 해외의 팔레스타인 난민 정착촌에 더 강력한 지지 기반을 갖고 있다.

민주전선은 시리아와 레바논의 정착촌에서는 강력한 제1당이지만, 팔레스타인 자치 구역 내에는 거의 조직 기반이 없다. 인민전선은 그나마 자치 구역 내에 거점을 갖고 있지만, 웨스트 뱅크나 가자가 아니라 예루살렘 인근의 라말라 지역에 한정돼 있다.

또한 인민전선이나 민주전선 모두 팔레스타인인들 중에서도 이슬람교 신자들보다는 기독교도들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래서 이슬람 근본주의의 확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가 힘들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인민전선과 민주전선은 1987년부터 시작된 인티파다(웨스트 뱅크와 가자에서 벌어진 팔레스타인인들의 대중적 저항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좌파 정당으로서는 그나마 공산당-인민당이 오랜 노동운동 경험 덕분에 대중투쟁 지도부 안에서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막상 대중투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데도 해외 망명지의 강력한 좌파 정당들은 여기에 제대로 개입하지 못한 이러한 이념적-정치적 공백 상황이 바로 하마스와 이슬람 근본주의가 급성장하는 주된 배경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스라엘의 무차별 학살은 가자 지구 내에서 하마스를 유일한 대안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좌파가 대안으로 부상할 수 있을까?

하지만 좌파가 파타-하마스의 답답한 양극 구도를 깰 역동적 가능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05년의 대통령 선거 결과가 미약하나마 그 가능성의 일단을 보여준다. 이 선거에서 ‘팔레스타인 민족 이니셔티브’(PNI)의 후보인 무스타파 바르구티(의사)가 19.48%를 얻어, 62.52%를 득표한 압바스에 이어 2위를 기록한 바 있다.

   
  ▲ 무스타파 바르구티

비록 압바스와의 차이는 크게 났지만, 그래도 20%에 가까운 지지율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바르구티 후보가 두 차례나 이스라엘 점령군에 체포되는 등 온갖 수난을 겪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더욱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바르구티 자신을 비롯해서 2002년에 PNI를 창당한 세력은 인민당 탈당파들이다. 이들은 파타도, 하마스도 아닌 민주적인 제3세력을 지향한다. 그 목표는 예루살렘 동부를 수도로 한(이것은 오슬로 협정의 한계를 뛰어넘겠다는 것이다) 완전한 독립 팔레스타인 민주 공화국의 건설이다.

PNI는 자치정부 내의 독재와 부패를 일소할 민주 개혁을 천명하며, 하마스까지 포함하는 거국 비상 정부를 구성할 것을 주장한다. 또한 인티파다를 ‘군사화’(하마스의 방식)하는 데 반대한다. 대신 평화적 수단에 의해 대중투쟁을 지속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오리엔탈리즘 비판으로 유명한, 팔레스타인이 낳은 전 세계적 석학 고(故) 에드워드 사이드가 지지한 당이 바로 PNI다. 자치 구역 내의 시민사회운동 세력들도 이 당을 지지한다.

입법 평의회 내에서 PNI의 의석은 단지 두 석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이 당이 보여준 대중정치의 잠재력은 결코 사장되어선 안 될 희망의 징조임에 분명하다.

또한 인민전선, 민주전선, 인민당, PNI 등 좌파 정당들이 지금 당장은 쉽게 힘을 합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2005년 대선에서 인민전선이 바르구티 후보를 지지했던 사례도 있는 만큼 좌파 연합전선의 결성이 꼭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 같다.

테러리즘이나 전쟁이 아닌 대중의 힘에 의한 해방, 시온주의도 이슬람 근본주의도 아닌 민주적 사회적 연방 공화국의 이상 ― 더 이상 빼앗길 게 없는 팔레스타인 대중들 사이에서 참으로 어렵사리 자라나는 이 절박한 희망만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모두를 구원할 수 있다.

아니면, 야만뿐이다.

* 이 글은 주간 <진보신당>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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