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선택한 민족, 마취된 사람들
    2009년 01월 15일 09:3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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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자에서 일어나는 – 인간으로 참을 수 없고, 있을 수 없는 – 일들을 지켜보면서 ‘민족주의’라는 근대의 현상에 대해 계속 생각하기만 합니다. 모르핀이 수술할 때 몸을 마취시키듯이 이 민족주의라는 정신적 독이 양심을 마취시켜버립니다. ‘마취’라기보다는 아예 ‘말살’이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 팔레스타인의 구급요원이 부상당한 아기를 급히 병원으로 옮기고 있다

이스라엘 행동을 이해하는 나의 러시아 친척

최근에 러시아에서 사는 나이 드신 친척 한 분에게 이번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에 "이스라엘의 행동을 당연시한다"는 그 친척은 아주 무서운 말을 했습니다. "나무를 벨 때에 부스러기들이 늘 튀어나온단 말이야"라고요.

그게 러시아 속담인데, 그 의미는 "대사를 거행할 때에 늘 누군가의 희생이 따르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스탈린이 제일 좋아했던 속담이기도 하지요. 그 친척 분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유아 살해에 대해 그 말을 할 때에 "우리 민족의 생존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어쩔 수 없지 않으냐"라고 덧붙였습니다.

‘남’의 생명은 나무 부스러기 취급 당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민족주의의 진짜 모습입니다. 그 친척에게 "당신도 시온주의자냐"라고 물을 때에 "나는 이런 사상에 재미 없지만 민족적 수난 시기에는 누구나 다 시온주의자가 되는 게 아니냐"는 대답이 왔습니다.

이게 민족주의의 또 하나의 특징입니다. ‘수난’은 자기 민족에게만 쓰여지는 단어지요. ‘우리’에게는 수난이 있어도 ‘남’의 수난은 보통 인정되지 않습니다. 뭐, 한국/북한 민족주의라고 해서 다를 게 있나요?

우리의 수난이야 잘 기억되지만, 한반도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피폭자들의 고통을 진심으로 수난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이 과연 많은가요? 피폭자 중의 10~15% 정도는 사실 조선인이었음에도, 한반도에서는 일제를 패망시킨 원폭 투하를 비난하기가 참 어렵더랍니다.

민족주의의 재앙적 폐해

그건 그렇지만, 저는 이스라엘의 민족주의는 예컨대 대한민국의 민족주의보다 백배, 만배 더 위험하다고 봅니다. 처음부터 ‘남의 땅 빼앗기’ 프로젝트라는 식민주의적 측면이 있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민족’과 ‘국가’ 관계 설정의 역사적 방식에 차이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원칙상 ‘혈통’과 ‘국가’가 동시에 신성시돼야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국가’를 만든 집단이 ‘혈통’이 다른 지배자들을 섬기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인데다가 국가 자체가 반쪽 국가이며 대외의존성이 태심하니 민족주의적 말과 기회주의적 행동은 늘 같을 수가 없고 ‘국가와 민족’의 신성함은 전혀 실감되지 않습니다.

즉,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지배자들이 아무리 파시스트적인 민족주의적 총동원의 분위기를 몰아가고 싶어도 그 자신들의 표리부동함이 당장에 드러나 모든 것이 웃음거리 이상은 못 됩니다. 영어 몰입과 전범 업체 미쯔비시와의 합작을 추구하는 이명박씨는 과연 ‘히틀러감’인가요?

히틀러와 같은 폼을 잡아 "신성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다들 희생을 감수하라! 국가관 확립을 위해 분투하자, 미네르바와 같은 민족 반역자를 완전히 박멸하여 씨를 말리라, 만세!"라고 이야기한다면 이건 아마 곧 무슨 개그의 감이 되면 되지 심각하게 받아들일 사람이 없을 걸 같아요.

강부자들의 돈을 지켜주는 ‘국가’야 그 분들에게 필요하지만 ‘민족’에 대해서는 구두선 이상의 애착은 없어 보입니다. ‘같은 우리 민족’인 조선족이나 고려인을 대한민국이 제대로 챙겨준 적이라도 있나요? 그리고 맏형 미국이 원하는 대로 군사적 ‘국가의 힘’을 쓸 생각도 없지 않아 있는 모양이지만 돈이 최고다 보니 ‘힘’을 쓰는 것도 아주 조심스러울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대한민국

예컨대 미국이 이란을 폭격하는 발악적 행동으로 들어간다면 이명박과 같은 ‘완고한 친미주의자’도 그 행동에 동참하거나 찬양하기 전에 백번 생각할 것입니다. 중동에서 돈을 벌어봤으니까 기독교도 제국주의자들의 만행을 도와주었다가 어떤 일이 생길 수 있을는지 뻔히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국가가 민족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적 질서를 기반으로 하고, 민족적 이념보다 비즈니스로 움직이기에 ‘미네르바 사냥’과 같은 유사 파시즘 이상으로 나아가기가 힘들걸요.

   
  

이스라엘은 아주 다릅니다. 미국에 대한 의존성은 한국보다 더하면 더 하지만, 미국 지배집단의 상당 부분을 ‘우리 민족’으로 보기에 ‘민족’과 ‘외세’가 거의 하나인 셈입니다. 그리고 유대민족의 절반 이상은 이스라엘 밖에서 살지만 원칙상 다들 언제나 국가의 구성원이 될 자격이 있기에 민족과 국가 사이의 괴리도 없습니다.

고려인이나 조선족을 "영구 귀국하라"고 초청하기는커녕 애써 배제하는 대한민국과 완전히 딴 판이지요. 이스라엘은 아랍인(약 20%)이나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등 수많은 종족들이 섞어서 사는 공간이지만 ‘유대인 민족’만이 진정한 의미의 국민입니다.

‘민족’, ‘국가/국민’ 그리고 미국이라는 외세가 삼위일체처럼 하나가 되기에 이 ‘신성한 복합체’가 벌이는 모든 행동들이 그 자체로서 도덕적이라는 시각은 그 쪽에서 주류’입니다. ‘신이 선택한 우리’는 실수를 하면 하지 범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시온주의와 주체사상

‘우리’가 본원적으로 신성하니까요. 시온주의의 가치론에서는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국가 보위’ 이상의 보편적 가치란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했기에 ‘우리’라는 특수가 바로 ‘보편’의 자리를 점합니다.

시온주의라는 사상적 마약에 중독되지 않는 이스라엘인은 얼마든지 ‘보편적 양심’의 소유자일 수 있지만 시온주의에 빠지기만 하면 ‘보편의 논리’, ‘우리의 역사 개척’ 이상의 도덕의 논리는 원천 봉쇄됩니다. 이 정신적 질환이 러시아에서 사는 제 친척 일부에게까지 전염됐으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시온주의와 가장 구조가 비슷한 한반도계 민족주의 사상은 아마도 주체사상일 터인데, 주체주의자들에게 ‘미국’이라는 후원자가 없고 지금으로서 별로 힘이 없기에 천만다행입니다. 그러나 원칙상 특수(조선민족)를 보편(인류 공동의 도덕 가치)의 잣대로 만든 것은 시온주의와 주체사상은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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