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인한 놈'들 "얼어죽든가, 내려오든가"
        2009년 01월 15일 10:2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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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 식당에서 밥을 같이 먹었다. 거의 다 먹었을 무렵, 나는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친구는 대학에서 법을 전공했다.

    “내가 너한테 물을 한 잔 주려고 해. 그런데 옆에 있는 주인아저씨가 중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못 주게 빼앗아가. 이건 불법이 아니야?”
    “응, 아니야. 민사 소송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형사처벌의 대상은 아니야”

    “빼앗아서 안 돌려준다면? 그럼 갈취에 해당하는 거 아닌가?”
    “그렇긴 하지만 네가 얘기한 일의 경우 그 액수가 얼마나 되겠어? 그나마도 원래 주인에게 돌려 준다면 아무 문제가 안돼”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굴뚝 밑의 문화제
     
    1월 10일, 나는 울산에 다녀왔다. 진보신당 미행팀의 일원으로, 6년 째 복직투쟁을 하고 있는 울산 현대중공업 미포조선의 비정규노동자들의 싸움을 지지하러 방문한 것이다. 그리고 100M 상공의 쓰레기소각장 굴뚝 위에서 18일 째 농성하고 있는 두 명의 노동자를 보았다.

    그들의 이름은 이영도, 김순진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학생, 시민, 진보신당 당원, 노동자들이 촛불 문화제를 열었다. 굴뚝 주위는 화이바를 쓴 현대중공업 경비들이 둘러싸고 있고, 문화제는 굴뚝이 올려다 보이는 골목길에서 열렸다.

       
      ▲고공농성장소인 미포조선 내 굴뚝, 저 위에서 김순진-이영도씨가 생사를 걸고 농성하고 있다.(사진=진보신당)

    우리들이 사측에 요구한 것은 한 가지. 100M 상공에서 농성 중인 저 분들께 물과 음식, 방한도구를 올려 보낼 수 있게 하라는 것이었다. 한 겨울의 추위와 바람 때문에 행사에 참여하는 몇 시간 동안 손과 발이 못 견디게 시려워졌다. 그런데 저 높은 곳에서, 20일 가까이 추위와 바람에 시달리고 계실 두 분은 어떤 상태일까? 저분들이 가지고 있는 방한도구는 겨울옷과 여름용 침낭 하나가 전부이다.

    두 명의 노동자가 굴뚝 꼭대기에 올라간 후, 남은 사람들은 침낭이나 핫팩 같은 방한도구와 음식을 전달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시도했다. 굴뚝 위에서 밧줄을 내려 보내면 생수와 침낭, 음식들이 든 자루를 끝에 달아 올려 보냈다. 그러나 경비들이 달려들어 저지했고, 올라가는 바구니를 굴뚝 중간에서 가로채 버렸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물품

    지난 1월 3일에는 구급대원 3명과 민주노총 울산본부장님이 저들을 만나보기 위해 굴뚝 위로 올라갔다. 본부장님은 옷 속에 핫팩과 육포들을 숨겨 갔지만 경비들이 몸수색을 해서 전부 빼앗아갔다. 그들이 반입을 허용하는 것은 물과 초콜릿이 전부이다. 20일 가까이 밤에는 잠도 잘 수 없는 추위 속에서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그게 전부다.
     
    “사측은 굉장히 약은 거야” 법대생인 내 친구가 말한다. “만일 물 같은 것조차 올려 보내지 못 하게 한다면 거의 살인죄에 가깝겠지. 그러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물품은 허용하는 거 아니야.”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물품… 그러나 두 분이 저 상태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발은 이미 동상에 걸리셨고, 저체온증을 막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 하지만 굴뚝 위에서는 그마저도 쉽지 않다.

    사측에선 이미 두 분을 사유지 불법점거로 기소하고, 그들 때문에 소각장을 가동하지 못 한다고 하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걸었다고 한다. <시사 360> 보도에 나온 현대미포조선 홍보과장은 저 분들이 빨리 농성을 풀고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농성 기간 동안 사측에서 먼저 협상을 주선하거나 하다못해 위에 계신 두 분에게 핸드폰으로 통화라도 시도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 했다. 현대미포조선에서 그들에게 보이고 있는 태도는 다음과 같은 것으로 해석된다. ‘얼어 죽든가, 내려오든가’

    얼어죽든가, 내려오든가

    사람의 목숨을 걸고 흥정질을 하는 저들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나는 친구에게 화가 난 목소리로 “만약 노동자 분들께서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 그 책임은 사측에게 있는 것 아니냐”고 물어 보았다. 친구에게는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법적 공방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법적인 책임을 교묘히 빠져 나가기 위해 ‘최소한의 물품’을 올려 보내는 행위를 하고 있는 사측에게 그 정도의 법적 공방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일일까. 국내 굴지의 대기업의 입장에서는 약간의 법적 공방일 수 있지만 굴뚝 위에 올라간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겐 가족과 동료의 목숨이 달린 일이다. 역설적으로 현대미포조선이 지금처럼 배짱을 부리고 있는 한, 굴뚝 위의 두 노동자들이 자신의 의지로 땅에 내려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100M높이의 굴뚝(사진=진보신당) 

    두 노동자들은 어째서 목숨을 걸고 굴뚝을 올라가야만 했을까? 이야기의 시작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미포조선 안에는 ‘용인기업’이라는 내주하청업체가 있었다. 내주하청업체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직위는 매우 독특한 것이었는데, 신분은 비정규직이지만 정규직과 똑같은 처우와 고용을 보장 받았다.

    사건의 기원

    직원들의 대부분은 20년 이상 업계에서 일한 숙련노동자들이었고,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시험까지 치른 이들이다. 어째서 현대미포조선은 이런 하청업체를 운영한 것일까?

    당시 고숙련 비정규직의 임금이 정규직보다 높았고, 그들의 노동력이 유동적이었기 때문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안정적으로 고용하기 위해 내부하청업체를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2003년, 조선업 경기가 불황에 직면하자 사측은 용인기업을 외주하청업체로 만들려 했고 용인기업의 노동자들은 그러한 움직임을 당연히 반대했다. 그에 대하여 회사는 30명의 용인기업 노동자를 일방적으로 해고한다. 그리고 해고노동자들은 복직투쟁을 전개하는 동시에, 사측의 해고가 부당하다는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이후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에서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지만, 6년이 지난 2008년 7월, 대법원에서는 해고가 정당했다는 고등법원의 판결이 잘못되었으니 다시 재판하라는 판결을 내리게 된다.

    대법원에서 어떠한 사건에 대한 재심 판결을 내렸을 때 고등법원의 판결이 대법원의 판결과 다르게 될 확률은 거의 없다. 대법 판결 이후 해고노동자들은 사측이 대법판결을 수용할 것을 요구하는 활동을 벌였지만 사측은 일관되게 고등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날 때까지는 복직을 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너 좋아하는 투쟁이나 해라" 조롱 

    그리고 사측은 정규직 노동자인 김순진씨와 일부 노동자들이 해고노동자들의 선전 활동을 돕자 그들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대법판결이 확정판결이 아닌데 회사를 비난하는 것은 명예훼손이라며 김순진씨에게 정직 1개월의 중징계를 단행하고, 다른 조합원들에게도 사규를 위반한 명목으로 징계를 가한다.

    그러던 11월 14일 아침, 정규직 조합원 이홍우씨가 4층 현장사무실에서 목에 줄을 묶고 투신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홍우씨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목뼈골절과 기관지 파손의 중상을 입는다. 이홍우씨는 평소 노동조합 운동에 적극적이었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많은 불이익을 당하고 있었다.

    사건이 벌어지기 전 날, 그는 업무 중 사고로 다쳐서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사측에 요구하나 묵살 당하고 “너 좋아하는 투쟁이나 열심히 해라”라는 조롱을 당한다. 그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결심을 하고 다음 날 아침, 출근하는 사원들이 볼 수 있는 건물 4층에서 목에 밧줄을 걸고 ‘해고노동자들의 복직’, ‘김순진씨에 대한 징계철회’, ‘현장 노동운동 탄압 중단’, ‘산재은폐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홍우씨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와 대화를 하려 노력했지만 사측에선 강제로 그를 진압하기 위하여 하이랜드카를 보냈고 그 장면을 본 순간 이홍우씨는 건물 아래로 몸을 던졌다.

    이홍우씨가 투신한 당일, 김순진씨를 비롯한 해고노동자 복직운동을 한 조합원들은 퇴근 후 회사 정문에서 철야농성을 시작했다. 그러나 농성장의 텐트는 바로 다음날 경찰들에 의해 강체철거 당했다. 이들은 추위를 피하기 위해 버스정류장에 비닐을 쳤고, 그 안에 농성물품을 모아 두었지만 이번엔 울산시 동구청이 민원을 이유로 직원들을 동원하여 농성물품을 수거해갔다.

    한 달이 넘도록 이홍우씨 투신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해고노동자들의 복직을 요구하는 농성을 전개했지만 사측은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기는커녕 사보를 통해 회사를 비판한 조합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는 글을 발표 한다.

       
      ▲진보신당 당원들이 10일 밤 미포조선 인근에서 연대농성을 하고 있다.(사진=진보신당)

    12월 23일, 김순진씨는 분개하며 더 큰 싸움을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이영도씨는 그의 결심을 지켜주면서 만일 그에게 있을 수도 있을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해 함께 있어야 겠다고 다짐한다. 12월 24일 새벽. 두 명의 노동자는 현대미포조선부지 옆, 높이 100M의 현대중공업소각장 굴뚝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20일이 지났다.
     
    이 모든 일들이 그저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일까? 노조와 회사는 원래 싸우게 되어 있는 것이고, 극단적인 방법을 택해서 어떤 결과가 발생하게 되더라도 결국 둘 다 책임이 있다는 양비론을 선택할 수도 있다.

    한강다리에 올라간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안 하는데

    그러나 개인적인 문제로 자살을 하겠다고 한강다리에 올라간 사람일지라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불행을 안타까워하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척이라도 한다. 그의 주장이 현실불가능 한 것이고 심지어 논리적 타당성이 없다 해도 그렇게 한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들보다 훨씬 논리적이고 현실적으로 타당한 주장을 하는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단지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들은 체 만 체 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는 동안 그들이 주장을 하기 위해 담보로 내놓은 자신들의 생명은 그 불씨가 점점 사그라들고 있다.

    누군가가 형법상 범죄로 분류되는 주장이 아닌 어떤 주장을 할 때, 그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걸어야 한다면, 그가 그런 선택을 하게 된 책임이 개인적인데 있기 보다는, 그를 둘러싼 현실이 부조리하고 불합리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인종이 다르거나 정치적 지향이 다르다고 서로 죽이는 전쟁터나 정부를 비판하는 국민들을 잡아다 죄를 뒤집어씌우고 고문하는 독재 국가에서도 사람들은 살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곳이 좋은 사회이고 그런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자신의 주장을 알리기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담보로 잡아야 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90일을 넘게 단식한 기륭전자의 노동자들이 그렇고, 노동쟁의 과정 중 분신했지만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노동자들, 삼보일배로 지리산에서 서울까지 가는 스님과 신부님…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신문이나 뉴스에 잘 나오지도 않을 뿐더러, 이야기를 들어서 아는 사람들조차 그저 수수방관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풍경이다. 지금 이 사회는 좋은 사회일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일까?

    버스요금 모르는 건 봐줄 수 있지만
     
    1월 12일, 나는 울산에 내려갔던 진보신당 당원들과 같이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사람들이 다시 모인 곳은 서울 동작구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의 사무실 앞이다. 우리들은 그곳에서 지역구민들을 상대로 현재 울산 미포조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정몽준 의원의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선전을 벌였다.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은 현대중공업의 대주주이며 실질적인 오너이다. 현대공장단지가 있는 울산 동구에서 그는 네 번이나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그 여세를 몰아 2008년 총선에서는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정동영 후보를 물리치고 동작을 국회의원으로 당선된다.

    그래서 다음 대선의 한나라당 주자로 유력하다는 말도 나온다. 비록 본인은 국회 출석율이 매우 낮고, 몇 달 전엔가 국회에서 버스요금이 70원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통에 빈축을 샀지만 말이다.

    그가 버스요금을 잘 모르는 건 봐줄 수 있다 해도 지금 미포조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와 노동자 두 명이 굴뚝위에 올라가서 20일째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면 참기 힘들다. 알면서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이라 해도 마찬가지이다.

    "미포조선 일은 보고하지 말라"(?)

    그는 현대중공업에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말 한 마디만 하면 얼어 죽어가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따뜻한 음식과 방한도구를 올려 보낼 수 있을 것이며 사측이 협상을 제의해서 그들이 농성을 멈추고 내려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현대중공업에서 회의를 했을 때 정몽준 의원이 ‘미포조선 일은 보고 하지 말라’ 라고 말을 했다는 건 사실일까?

    자신이 책임 하에 있는 회사의 노동자 두 명을 죽든말든 수수방관하는 그가 우리나라 4,800만 명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에 올라갈 수 있을까? 자기 회사의 종업원의 목숨을 헤프게 여기는 사람이 버젓이 한 나라의 최고통수권자가 되길 바라기까지 한다면 그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이 나라는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니다.

       
      ▲진보신당 농성에 함께한 어린이(사진=진보신당)

    날씨가 춥고 바람이 차가웠다. 지하철 역 출구 안쪽에서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누어 주었다. 추위에 잔뜩 웅크려서 전단지를 안 받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전단지를 받고, 내용을 읽어보는 사람들 또한 많이 있었고 그들이 나는 반갑고 고마웠다.
     
    Als die Nazis die Kommunisten holten,
    나찌가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
    habe ich geschwiegen;
    나는 침묵하고 있었다.
    ich war ja kein Kommunist.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Als sie die Sozialdemokraten einsperrten,
    그들이 사회주의자들을 가둘 때,
    habe ich geschwiegen;
    나는 잠자코 있었다.
    ich war ja kein Sozialdemokrat.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Als sie die Gewerkschafter holten,
    그들이 노조에게 왔을 때
    habe ich nicht protestiert;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ich war ja kein Gewerkschafter.
    나는 노조가 아니었으니까.
     
    Als sie die Juden holten,
    그들이 유태인에게 왔을 때
    habe ich geschwiegen;
    나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ich war ja kein Jude.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니까.
     
    Als sie mich holten,
    그들이 내게 왔을 때
    gab es keinen mehr, der protestieren konnte.
    아무도 항의해 줄 이가 남아있지 않았다.

    (그들이 처음 왔을 때 – 마르틴 뉘멜러 (Martin Niem&ouml;ller))
     
    다른 이의 문제라 할지라도 그것이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일 때에는 자신의 문제인 것처럼 발언하고 행동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문제들에 대해 비판하고 저항하는 일이 곧 자신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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