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조합원이 10만명 늘어나는 노조
        2009년 01월 14일 10:1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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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인 이근원 공공운수연맹 대외협력실장은 지난 해 08년 7월부터 올해 1월까지 6개월 동안 ‘안식년’ 휴가를 받고 미국 노동운동을 살펴보기 위해 약 2개월 동안 미국에 체류했다. 필자는 서비스노조국제연맹(SEIU) 본부가 있는 워싱턴과 LA 지역 노조에서 주로 머물렀다. 

    20여년 노동운동 현장을 지켜온 필자가 몸으로 느낀 미국노동운동의 실상은 우리의 노조 운동에도 여러 가지 의미있는 시사점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5차례에 걸쳐 그의 글을 싣는다. <편집자 주>

    두 달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미국엘 다녀왔다. 주로 미국노동조합 중 하나인 SEIU를 보고 왔다. 그 기록을 남기려고 한다. 무엇보다 ‘기억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안식년 휴가 기간 중이었다. 내가 쉰다는 것은 누군가 내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에 대한 부채감이 있었다.

       
      ▲워싱톤 SEIU 본부 건물 입구 전시물. 약 400명이 일한다

    더구나 떠나기 전 여비를 보태주고, 심지어 옷과 모자를 사준 사람도 있다. 이민 가는 것도 아닌데 1주일 남짓을 헤어짐의 의식도 치러야 했다. 그들과 내가 본 것을 공유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드는 것이 이 글을 쓰는 첫 번째 이유다.

    이민 가는 것도 아닌데

    두 번째는 한국의 노동운동을 돌아보기 위해서다. 한국노동운동의 위기에 대한 얘기는 질리도록 들었다. 문제가 무엇인지, 나갈 방향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대충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한발도 나가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답을 SEIU라는 한 노조의 활동을 보면서 함께 찾아보고 싶다.

    물론 ‘장님이 코끼리 만지고 온’ 짧은 경험에 불과하다. 녹음된 얘기들을 다시 들으며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그들의 운동에 대한 무지도 많았다는 점을 고백한다. 이와 더불어 짧은 영어 실력으로 인해 미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도 많다는 점 등도 전제하고 읽어주기기 바란다.

    가는 비행기 안에서 『알려지지 않은 미국노동운동 이야기』(리차드 보이어, 하버트 모레이스 지음)를 보면서 갔다. 답답한 기록이다. 한창 잘 나가던 미국노동운동의 현재를 보여주는 얘기로 전혀 남의 역사 같지 않았다.

    일본 노동운동도 마찬가지지만 치열한 투쟁의 역사를 가진 그들의 오늘을 보면서 자꾸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어떤 길을 가게 될까? 한 때 잘 나가던 운동, 격렬하고 전투적이었으나 사회적으로 고립된 ‘그들만의 노동운동’으로 기록되는 비극을 피할 수 있을까?

    오는 비행기에서는 『Who moved my Cheese?』([스펜서 존슨 지음)를 두 번이나 읽으면서 왔다. “당신들은 어떻게 변화 했는가? 변화(change)라는 단어가 계속 고민된다.”라고 하자 SEIU의 산드라(Sandra Gonzales)가 선물로 사준 책이다.

    그들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마지막 날 SEIU 워싱톤 본부에서 한국노동운동에 대한 브리핑을 하는 기회가 있었다. “변화(change)와 전략(strategy)이라는 두 단어를 무겁게 배우고 간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하고 왔다. 우리는 위기에 처한 노동운동을 바꾸기 위한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

    1년에 조합원이 10만명씩 느는 노조

    SEIU의 공식명칭은 Service Employees International Union이다. 주로 서비스 업종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다. 세부적으로 보면 healthcare(보건), public sector(공공부문), property services(청소부, 경비원 등) 등 크게 3부분으로 조직되어 있다. 현재 조합원은 약 190만명이다. 올해 안으로 2백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1921년 당시 미국노총인 AFL에 의해 건물서비스노동조합(The Building Service Employees International Union)으로 창립되어 청소부 2,900명을 대표하는 7개의 지역지부를 가진 산별노조로 출범했다. 1941년 병원노동자 조직을 시작으로 점차 조직대상을 공공부문 및 교육노동자까지 확대하여 1968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했고, 당시엔 약 40만명의 조합원을 포괄하고 있었다.

    SEIU의 획기적인 변화는 96년 Andy Stern이 위원장이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10년간 908,313명을 신규조합원으로 조직화하는 데 성공함으로서 미국 안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보이는 노조로 평가되고 있다. 매년 10만명 정도씩을 늘려 온 셈이다.

       
      

    아래 표를 보면 얼마나 빠르게 성장해 왔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했을까가 내내 궁금했다. 위원장 한명이 바뀐다고 이런 거대한 변화가 가능할 수 있을까?

    짜고 대답하는 것처럼 답은 늘 같았다. “변화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생각했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변화는 투쟁이다.” 라고 그들은 말했다.

    다양한 변화에 대한 수많은 저항이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당시 현직에 있는 지도부들까지도 이러한 변화에 저항했다”고 부위원장인 Tom Woodruff는 쓰고 있다.

    그들은 8개의 실을 없애고, 중앙 조직의 100개에 달하는 업무를 폐지하고 상근간부들을 현장 조직가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채용되어 있는 스탭들이 만든 노조는 물론 지부들과의 어려운 토론과정이 있었다.”고 한다. 조직대상은 3가지 영역으로 분명하게 설정했다. 그리고 조직사업에 막대한 돈괴 인력을 집중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다.

    조직 활동가만 1,800명

    WAVE라는 조직 활동가 프로그램을 통해 매년 250명 가까이 채용한다. 1년짜리 프로그램인데 10년째라고 하니 단순계산으로만 2,500명의 조직 활동가를 만들어 낸 셈이다. 그리고 75% 정도가 활동 중이라고 하니 1,800명 정도가 전국에서 조직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을 통해 다음 지도력이 구축된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조합원 수의 증가가 따라 주었기 때문이다. ‘과감한 투자’는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위원장 Andy Stern

    이런 설명을 들었지만 미국에 머무는 내내 “이들은 처음에 어떤 방식으로 변화를 시도했을까?”라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우리 역시 노동운동이 변하지 않으면 미래가 암울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변화하지 않으면 죽는다.”라는 사실도, “운동의 중심을 정규직 중심에서 비정규직 중심으로 옮겨야 한다.”라는 사실도 안다. 그러나 그렇게 과감한 변화(Bold Action)를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

    더 중요한 것은 그 변화는 끝나지 않고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2년간 호주 노동조합을 방문하여 그 경험을 배우고 2007년부터 각 지부마다 설치를 본격화하기 시작한 Member Resource Center가 그 하나다. 조합원들의 고충처리를 받는 일종의 콜 센터와 유사하지만 내용은 그것을 훨씬 뛰어 넘는다.

    또한 워싱턴 본부는 최근 뉴미디어 팀을 구성, 무려 12명이나 배치했다. 주로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인터넷 환경에 맞게 새로운 전략을 구성하기 위한 부서다. 그 부서에 대한 브리핑 마지막쯤에서 물었다. 이런 새로운 변화가 어디서부터 오는가? “위원장 앤디 스턴” 그게 이 사람들의 대답이었다.

    전략이 있는 행동 – “Change That Works” Campaign

       
      ▲캠페인 설명 자료

    2008년 11월 4일 대통령 선거에서 이들이 오바마의 당선을 위해 기울인 노력과 관련된 여러 수치들은 가히 천문학적이다.

    그들이 준 보고서에 의하면 무려 3,504,947호를 각가호호 직접 방문했다. 전화를 이용한 선거운동은 16,539,038회, 우편물 발송 5,125,378통, 새로운 유권자 등록을 무려 227,000명 넘게 했다. 또한 10,000명 넘는 사람들의 부재자 투표나 조기 투표를 도왔다. 물론 이들의 대부분은 오바마를 찍었을 것이다.

    방문 당시 SEIU 본부는 물론 로스엔젤레스 사무실은 거의 텅 비어 있었다. 전략지역으로 모든 상근자를 다 파견 보내고 최소의 인원만 남아 있었다.

    더 놀랐던 것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바로 ‘100일 계획'(100 Days For Change, 최근 "Change That Works Campaign"으로 이름을 바꾸고 진행 중이다.)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SEIU는 이미 대통령 선거 전부터 오바마 당선 이후의 전략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10월초 도착할 때부터 “오바마가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많이 물어보았었다. 그 때마다 그들은 신중했다. 그러면서도 앞이 안 보이는 시기에 이들은 이후를 준비한 셈이다.

    오바마 당선 이후 노조 전략

    8월 22일 전국에 걸쳐 있는 지부에 개요를 내려보내 토론을 시작했고, 10월 8일 최종 계획이 마련되었다. 대선 이후 SEIU가 전략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의료개혁(health care reform), 다른 하나는 노동법개정(Employee Free Choice Act)이다. 이를 위해 상원의원 15명, 하원의원 19명이 집중 공략 대상으로 정해져 있다.

    모든 상근자들은 1차로 올해 1월 5일부터 5월 14일까지, 2차 4월 28일부터 8월 15일까지 기간 중 선택하여 130일 동안 이 투쟁을 전개하도록 되어 있다. 전략 대상이 아닌 주에 있는 사람들은 전략 대상이 되는 주(州)로 옮겨 활동한다.

    1,000만 달러(우리 돈으로 약 120억원이다!)를 중앙에서 충당하고, 중앙의 전체 상근자들의 각 50%씩을 돌아가며 파견 보낸다. 지역에 소재한 지부는 조직가를 제외한 상근자(non-organizing staff)의 30% 를 각 기간 동안에 나누어 파견하고, 전체 예산의 20%를 분담한다. 이를 위해 Organizer, CD Team, Member Lobbyist, Research Analyst 등 영역별로 되어있는 세부 계획이 벌써 진행 중이다.

       
      ▲ 캘리포니아 주 전체 정치담당자 모임

    “누가 언제부터 이런 계획을 준비했나?”라고 물었다. 결과적으로는 무식한 질문이었다. 아래로부터 체계적으로 토론하는 과정을 철저히 밟고 있었다. 이들은 2008년 12월 9일~11일 덴버에서 큰 대회를 가졌다.

    아쉽게도 참가가 예정되어 있다가 막판에 참관을 거절당했는데 바로 이 계획의 구체적 부분을 최종 점검하는 자리였다. 이 대회를 앞두고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모인 정치활동 담당자들이 토론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밑에서부터 철저히 토론하여 전체적인 전략을 형성하는 과정을 본 셈이다.

       
      ▲ 사용자측 주요 인사에 대한 분석자료

    로스엔젤리스에서 SEIU 1877 지부를 방문했을 때도 느낀 것이지만 이들은 전략적으로 행동한다. 슈퍼마켓 노동자들의 단협 갱신 투쟁을 준비하는 전략회의를 하는 것을 보고, 두 번에 걸쳐 설명을 듣는 기회를 가졌다.

    매우 놀라운 자료

    아주 세부적으로 준비를 하는 데 3월을 D-Day로 보고 역으로 사업계획을 잡는다. 각 부서별 계획을 확립하고, 이를 점검한다. 특이한 것은 우리로 말하면 정책실에서 그 계획을 총괄한다는 점이었을 뿐 전략과 전술을 세우는 과정은 유사했다.

    그러나 3월의 투쟁이라는 마지노선을 정해 두고 상황의 변화에 따른 10가지가 넘는 시나리오를 준비할 정도로 치밀했다. 예측 가능한 상황을 미리 점검해 두고, 모든 준비를 갖춘 이후에 투쟁을 전개한다. 최근 사용자(a decision maker of a target company)에 대한 분석을 해 놓은 표를 Anjali라는 정책담당자로부터 이메일로 받았다. 놀랍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이들은 이렇게 운동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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