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자 학살은 무너지는 미국패권 상징
        2009년 01월 12일 05: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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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오슬로 시내는 거의 전쟁터입니다. 오늘은 조용하다시피 했지만 어제까지는 노르웨이에서 보기 드문 초강력의 격렬한 반(反)이스라엘 시위들이 이어져 왔습니다. 여기 동영상에서 맥도널드 식당이 습격당하는 일을 보실 수 있는데, 사실 여러 모로 이 ‘가자에서의 학살 반대 시위’들은 일종의 이민자 청년들의 ‘봉기’를 방불케 했습니다.

    시내의 고품격 상점들(이민자 출신들을 거의 잘 채용하지 않는)의 창문들이 깨지고 경찰들이 공격당하고, 사치스러운 시내 거리들이 아수라장이 되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약 500명의 극우적 기독교인으로 구성된 ‘이스라엘 친구들’의 친이스라엘 시위가 성난 군중의 습격을 당해 주로 나이 든 신자들인 그 ‘이스라엘 친구’들이 경찰의 보호 덕택으로 간신히 몸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 이스라엘 군대에 돌을 던지는 팔레스타인 시위대

    사실 이 사태를 보면서 가장 괄목하다 싶은 것은, 이스라엘에게는 극소수의 극우파 기독교인 이외에 노르웨이에서 거의 친구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노르웨이 여러 정당 중에서 가자에서의 학살을 노골적으로 지지한 데는 단 한 곳, 극우 중의 극우인 소위 ‘진보당(Fremskrittspartiet)’입니다.

    ‘이스라엘=반인륜 국가’

    그러나 그들도 이스라엘을 특별히 좋아한다기보다는 아랍인들에 대한 인종적 혐오감 때문에 ‘그래도 백인’이라고 인식하는 이스라엘의 편을 든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러나 극단적 인종주의자를 빼고는 이쪽에서 이스라엘의 편을 든 사람 찾기가 아주 힘들 것입니다.

    우파 신문들마저도 가자지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학살’이라고 부르고 노총이 주축이 되어 여러 도시에서 열린 평화적 반전시위에 거의 10만 명이 참가하는 가운데 이스라엘에 대해 ‘반인륜적 국가’라는 딱지가 이제 완전하게 붙어버렸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같은 종교적 민족투쟁조직의 악마화와 이스라엘의 토벌 작전의 합리화, 홍보에 엄청난 예산과 노력을 쏟고 있지만, 적어도 북유럽에서는 이게 다 물거품이 되고 말았어요. 팔레스타인 민중은 여론의 전장에서 완승을 거두었습니다.

    이건 정의의 승리라는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주된 후견인 미국의 패권력의 커다란 위기를 반영하기도 합니다. 최근 10년 동안을 보시면 미국이 시도한 국제적 행동 중에서는 성공으로 완결된 그 어떤 행동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지칭하고 그 정권의 무력화, 즉 궁극적으로 북한을 주력부대로 하는 중국의 동쪽 전선에서의 전투력을 약화시키려고 했지만 북한이 실제로 핵무기를 만들고도 건재하지 않습니까?

    이라크를 침략해 괴뢰정부를 세워 실질적 재식민지화를 도모했지만, 실제로 시아파의 이라크 새 정부는 이란의 영향권으로 급속하게 흡수되고 있지 않습니까? 아프간을 정복하여 중앙 아시아의 유전, 가스전에 대한 접근의 교두보로 만들려고 했는데, 1980년대에 아프간을 침략한 소련과 똑같이 아프간 전역의 20% 정도만 통제하여 날로 토착세력의 공격에 인력을 잃고 돈을 소모하는 늪에 빠진 신세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루지아에 강경 친미 정권을 심었는데, 미국과 이스라엘이 훈련시키고 무장시킨 그루지아의 용병들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5일도 버티지 못한 것이고,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정권에 엄청난 지원금을 풀어도 지금 그쪽 경제가 무너지는 데다가, 새 정권에서의 파벌싸움으로 사실상 정치력이 없다시피 하지 않습니까?

    이란 공격을 계속 들먹였는데 이스라엘이 제안한 공격 계획을 미국이 2008년에 “중동 전체가 화약고처럼 터질 것 같다”고 접게 했고요. 실전(實戰)에서 득점보다 실점이 많기에 여론의 싸움에서도 계속 패배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미국의 연전연패

    사실, 예컨대 미국의 아프간 점령이나 이라크 괴뢰정부 조절 등이 성공적이고, 이스라엘의 봉쇄로 지쳐버린 가자 시민들이 하마스의 권력을 스스로 무너뜨렸다면 반미, 반이스라엘 여론들도 지금처럼 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이 절대 되지도 않는 일들을 무력으로 밀어붙여 더욱더 안되게 만드니 결국 세계 여론이 폭발되고 말지요.

    미국의 세계 패권이란 이미 과거 이야기로 돼가고 있습니다. 물론 그 실추, 몰락의 과정이 지금도 진행형이고 가자학살과 같은 대형 유혈극으로 계속 점철될 것입니다. 또, 실추돼가는 패권의 일부라도 되찾으려고 미국이라는 부상당한 야수가 그 어떤 ‘마지막 발악’, 예컨대 이란 폭격 류의 대형 도박에 들어갈 확률도 없지 않아 있지요.

       
      

    그런데 또 한 가지 문제는, 미국의 세계 패권이 망해간다 해도 중국이 이를 어느 정도 대체할 만한 충분한 능력을 얻자면, 지금의 성장 속도로 간다고 가정한다면 지금부터 적어도 10~15년 정도 내지 그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이고, 또 그 과정에서 구 패권세력과 신 패권세력 사이의 무력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런데 지금 같으면 옛 패권이 완전한 몰락 전이고 새로운 패권의 지형이 완전한 공고화 이전이니 일종의 ‘패권 공백기’ 내지 ‘혼돈의 시대’라고 할만도 합니다. 옛날 같았으면 ‘전국(戰國) 시대’라는 말도 바로 이러한 정치역학적 현상을 놓고 쓰긴 했지요.

    이 ‘전국 시대’의 특징이란 각종의 크고 작은 무력 내지 외교, 여론 충돌에서 힘의 관계에 따라 새로운 게임 룰들이 점차 정해진다는 것입니다. 국제법이란 결국 전례(前例) 위주인데, 그 전례를 남기는 방법은 힘(무력이든 외교력이든 여론동원력이든)을 행사하는 것 외에 없습니다.

    예컨대 이스라엘의 공격을 지금 잘 버텨내고 있고 약화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하마스는 미국에 의해서 ‘테러 조직’으로 등록돼 있어도 사실상 국제정치의 하나의 행위자가 이미 된 것이지요.

    유럽연합과 유엔이 이스라엘과 하마스에 동시에 휴전을 제의할 때에 하마스를 무력 갈등의 한 측으로 사실 공인한 것임과 다름이 없습니다. 하마스처럼 전투성이 강한 조직이 국제외교와 여론의 장에서 ‘인정’을 받음으로써 보수적이고 친미적인 이집트, 요르단, 파키스탄 등의 정권은 엄청난 타격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1979년의 이란 혁명과 같은 성격의 과정, 즉 종교의 외피를 쓴 급진화된 성직자, 중소부르주아들의 집권과 국가자본주의적 경향의 강화는 중동에서 과거가 아닌 몇 개 나라의 가까운 미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독도’는 한일이 어떻게 관계맺을 것인가의 문제

    힘의 행사가 불가능하거나 불필요한 경우에는 민족주의적 여론 동원이 새로운 룰을 정하는 데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독도 문제의 실체라면 결국 미래의 한-일 관계에서의 양쪽의 지위입니다.

    일본이 한국과의 경제적 블록화 등을 진정으로 원하고 한국과의 급격한 ‘가까워지기’를 지향한다면 한국 지배층을 거의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하여 그들의 독도 관련 주장을 묵시적으로라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한국 지배계급이 독도를 중심으로 한국 내의 민족주의적 여론을 집중시키는 것은, 국내적 사회, 정치적 갈등 봉합을 위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대외적으로 일본 지배자에 대한 압력 수단인 셈이지요. 아직은 일본 쪽에서 이 압력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지만 경제 위기가 심해져 한국과의 부분적 블록화가 절실해진다면 또 어쩌면 받아들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력을 보다 쉽게 쓸 수 있는 세상, ‘민족’ 내에서의 각종 격차들이 심해지는 만큼 민족주의적 동원 이데올로기가 보다 중요해지는 국가, 민족주의적 광란의 세상,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무너져가는 과정에서 국민국가가 다시 한 번 절대화되는 세상, 이게 21세기 벽두의 세계입니다.

    국가적, ‘국민적’ 정체성이 날로 든든해지는 형국에 세계 각국 민중들에게 계급적 정체성을 일깨워줄 방법이 무엇일까요? 주문을 외우듯 “노동자에게 조국이 없다”는 말을 반복만 하면 부족합니다.

    새로운 연결의 끈이 필요한데, 저는 그게 예컨대 지역 문화, 지역적 정체성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동아시아’라는 화두가 지금 부진을 거듭하는 좌파에게 절실하다는 것이지요. 이 이야기를, 다음에 상술해보도록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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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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