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영남 발언, 저질 한국사회 쌩얼
        2009년 01월 12일 10: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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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조영남이 미네르바라며 잡혀간 사람을 폄하했다고 한다. 지난 10일 방송된 MBC라디오 표준FM ‘조영남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에서 벌어진 일이다.

    보도에 따르면 조영남은 이날 방송에서 “점쟁이 같은 모르는 남의 말을 추종하는지 모르겠다”, “다들 믿다가 잡아보니 별 이상한 사람이고 다 속았다”는 요지로 비난했다고 한다. 현재 이 프로그램 게시판엔 청취자들의 항의가 폭주하고 있다.

       
      

    잡혀간 미네르바라는 사람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그가 전문대를 졸업한 무직자이고 독학으로 공부했다는 사실뿐이다. 이걸 보고 가짜란다. 미네르바라는 사람이 알고 보니 그 ‘미네르바’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가짜’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전문대 나왔다고 해서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가짜라는 딱지를 붙이는 건 ‘차별’이다. 전문대 나온 사람이 하는 경제비평은 가짜비평이고 점쟁이의 요언인가?

    그가 체포되자마자 집중적으로 부각됐던 건 학력이었다. <중앙일보>는 미네르바 체포와 관련해 「실체 드러난 경제 대통령 가짜에 놀아난 대한민국」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학력이 떨어지니 가짜라는 소리다. 이런 사고방식에서 조영남 망언 사태가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다시 드러난 한국사회의 ‘쌩얼’

    지난 학력위조 사태 때 우리 사회의 본체가 드러났었다. 이곳이 최고의 전문가조차도 학력을 위조하거나 학벌 세탁을 하지 않으면 대접 받지 못하는 ‘학벌사회’라는 것. 그때 사회 주류들은 ‘국민을 속인’ 학력위조 관련자들을 준엄히 꾸짖었다. 그리고 거짓말이 횡행하는 세태를 개탄했다.

    그리고 지금은 전문대 나왔다는 이유로 사람을 ‘가짜’, ‘점쟁이’라며 능멸하고 있다. 이러니 학력위조 안 할 수 있나? 이제부터 국민은 전문지식 쌓을 시간이 있으면 학벌 세탁에나 집중할 일이다.

    미네르바는 경제비평의 내용이 문제가 돼서 잡혀간 사람이다. 그럼 그 글의 내용을 따져야지 왜 그 사람의 학력이 문제가 되나? 전문대 나온 사람은 경제위기를 맞춰도 가짜고, 명문대 출신자들은 못 맞춰도 전문가인가?

    내용이 아니라 신분을 따졌던 시대를 우린 알고 있다. 조선시대가 그랬다. 천민이 사대부에게 국가대사를 고하면 사대부는 그랬다. “네 따위가 감히”, “비천한 것이 하는 말을 어찌 믿겠느냐.”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신분사회니까.

    봉건적 신분이 사라진 사회에 나타난 신종 신분 ‘학벌’. 그것에 미쳐 돌아가는 사회. 입 달린 사람들은 때마다 입시과열, 학벌주의를 개탄한다. 모두들 학벌주의를 타파하자고 한다. 그러나 전문대 출신자가 국가대사를 논하자 즉각 본색을 드러냈다.

    “학벌이 비천한 자는 꺼져라! 국가대사는 고학벌 사대부가 논한다.”

    미네르바 사태로 우리 사회의 ‘쌩얼’이 다시 드러났다. 그 사람이 한 말의 내용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신분을 따지는 사회. 한국사회에선 이것이 너무나 당연하므로 조영남은 방송 중에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한국적 상식’에 입각한 망언을 했을 것이다.

    국민을 가짜로 만들려고?

    이번 사태로 드러난 우리 사회 주류의 사고틀을 다시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고학력 고학벌 – 전문가 – 진짜
    저학력 저학벌 – 점쟁이 – 가짜

    한국사회 주류가 지금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은 ‘고학력고학벌’ 라인에서 국민을 배제하는 것이다. ‘돈’을 통해서다. 일단 등록금을 통해 국민을 걸러낸다. 국제중, 자사고, 대학자율화, 전문대학원 등이다.

    그리고 입시경쟁과 시험경쟁을 극대화시켜 사교육비 부담액을 늘린다. 평준화 해체, 선택권 강화, 일제고사 등이다. 영어도 그렇다. ‘오렌지’와 ‘어린지’ 사이를 가르는 것은 돈이다. 요즘 강화되는 영재교육도 결국 돈이다.

    ‘영재-국제중-자사고, 외국인학교-일류대-전문대학원, 미국유학’ 이 코스를 완주하고 신종 양반이 되기 위해선 상상을 초월하는 돈을 써야 할 것이다. 경쟁이 격화될수록 액수는 점점 더 올라간다.

    이렇게 되면 일반 국민의 자식들은 당연히 이 양반 코스에서 탈락한다. 이 코스 바깥에서 개인적으로 아무리 열심히 실력을 쌓아도 결국 ‘가짜’로 능멸받을 뿐이다. 미네르바라는 사람이 전문대 나왔다고 능멸 받는 것과 현재 추진되는 교육정책을 조합하면 이런 미래가 나온다.

    국민-가짜-점쟁이
    부자-진짜-전문가

    과거에 대졸 대통령론을 폈던 전여옥 의원은 이번에도 미네르바가 아마도 스스로를 ‘예일대 박사’로 믿었던 것 같다고 모욕했다. ‘예일대 박사’쯤 돼야 국가경제를 논할 자격이 있다? 없는 집 자식은 입도 뻥긋하지 말라는 소리다.

    민영화된 방송국이 막장 통속극과 예능을 생산해주면 일반 국민은 거기에만 매달려 지지고 볶으면 그만이고, 국가대사는 일류대 나오고 미국 유학한 ‘전문가 나리’들께서만 고고하게 담론하는 나라. 그런 세상이 돼가는 것이다.

    전문대 나왔다는 이유로 모욕받고 방송진행자까지 망언을 일삼는 것은 잡혀간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장차 일류 학벌코스에서 제외될 우리 일반 국민 전체가 능멸당하는 셈이다. 국민을 천민으로 여기는 ‘그들’의 본색이 드러났다. 한국사회의 ‘쌩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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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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