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파입네" 사기친 나를 반성합니다
        2009년 01월 12일 09:1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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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수요일인 1월 7일 저녁 저는 노원역에 있는 서울북부고용지원센터를 찾아갔습니다. 진보신당 노회찬 공동대표가 설립한 마들연구소의 명사초청 월례특강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강연자는 신영복 선생이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그분은 우리에게 사색의 인도자, 지혜로운 어른이시지요. 발 디딜 틈도 없이 강연장을 빽빽이 메운 500여 청중들 틈새에서 저는 그분의 지혜를 생생한 입말로 듣고 싶었던 겁니다.

       
      ▲ 지난 7일 마들연구소 주체로 열린 신영복 선생 신년특강 ‘성찰과 모색’ (사진=마들연구소)   

    새해가 되면서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새해가 새해 같지 않아.” 늘 이맘때마다 가끔씩 듣게 되는 말이긴 하지만 올해는 참 유난스러울 정도로 많이 들려옵니다.

    새해 같지 않은 새해

    지난 연말에도 그랬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명동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해오고 계신 분을 찾아갔을 때, 그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12.12사태가 일어난 그해의 크리스마스 느낌이었다.” 비장미마저 감도는 말이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이런 느낌이 드는 것. 길게 설명하지도 않아도 모두가 공감하고 있을 겁니다. 지난해 우스갯소리로 자주 하던 말들 중에 이런 것들이 있었지요. ‘대통령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청와대에 고양이 한 마리 풀어놔 드려야겠어요.’

    그렇습니다. 대통령 하나 바뀌고 정권도 바뀌면서 세상살이가 참 팍팍해졌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우스갯소리에 불과합니다. 대통령 할아버지가 와도 이런 세상살이는 바뀌지 않을 겁니다. 자본이라는 악마가 세계를 점령한 이상 우리는 매일 ‘불안’과 ‘실망’을 함께 앓아야 할 겁니다.

    신영복 선생의 강연은 이런 느낌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성찰의 메시지이자 실천을 종용하는 나팔소리였습니다. 신영복 선생의 저서를 읽어본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듯이 이 강의는 선생의 ‘관계론’에 대한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에 대한 이력을 낱낱이 살펴봤다고, 그 사람을 안다고 떠벌인다면 그것은 호들갑에 불과합니다. 그런 호들갑은 종종 오만과 어울리며 결국은 폭력을 호출하지요. 신영복 선생도 그런 폭력에 의해 20년을 감옥에서 보내신 분입니다. 선생의 관계론은 그 감옥에서 시작됐습니다.

    성찰의 메시지, 실천의 나팔소리

    “교도소에 오래 살아서 그런 것인지 사람들에 대한 느낌이 생기더군요. 한 10년쯤 있었더니, 딱 보면 저 사람은 죄명이 뭔지,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면 그 사람의 형기가 얼마인지도 알 수 있겠더군요. 교도소에서 인간관계라는 것은 그야말로 목욕탕 관계입니다.

       
      ▲ 노회찬 진보신당 공동대표(왼쪽)와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사진=마들연구소)

    모든 사람이 다 알몸으로 만나는 장소가 교도소입니다. 서로 존경할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과 3~4년 같은 방에서 오래 지내지요. 그래서 사람들에 대한 동물적인 감각이 익혀졌나 봅니다.”

    선생은 ‘우리’라는 것은 실체로서의 ‘나’의 집합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관계’를 통해서 존재하고 그것을 유지하는 힘은 바로 사람 사이의 애정에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관계입니다. 서로 관계가 없으면 인식도 없습니다. 사람은 인간관계가 있을 때 인간이 됩니다. 더구나 진정으로 서로 알기 위해서는 애정이 있어야 합니다. 애정이 없이 누가 누구한테 자기를 보여줄 이유가 없겠지요.

    애정이 없어도, 관계가 없어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 근대사회가 가졌던 오만함이었습니다. 아프리카 어디에 들어가든 그 사람을 조사하면 이해할 수 있다는 방식의 오만함이지요. 우리 사회가 별로 주목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는 자세가 그렇게 오만에 빠져 있습니다. (…)

    관계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엄청납니다. 20세기 이후의 전쟁은 매우 잔혹합니다. 전쟁에서 안 보고 죽이기 때문입니다. 칼을 들고 전쟁하는 시대에는 한 사람이 많은 사람을 죽이지 못합니다. 지금은 안 보고 단추하나 누르면 몇 만 명씩 죽어나갑니다.

    만남이 없는 사회, 자본주의 사회는 얼굴 없는 사람이 제품을 만들고 얼굴 없는 사람이 소비하니까, 여기에 멜라민 넣고 유해색소를 넣고 하는 것입니다. 관계가 있으면 애정이 있으면 그렇게는 못 하지요.”

    관계론과 자본주의 세계

    이렇게 관계가 망가진 사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는 느닷없이 해고되고, 식량이 남아돌아도 굶어죽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생의 인식은 시․서․역에서 맹자, 노자, 장자, 불교에 이르는 동양의 고전에서 비롯됐습니다. 서구의 존재론적 사고와 대비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관계론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인간들의 ‘관계’를 파괴하는 자본주의 세계를 겨냥합니다. 선생의 시선은 확실히 자본주의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순간, “나는 있다, 그러니까 세계는 바뀌어져야 한다. 나는 타자다, 그러니까, 세계는 바뀌어져야 한다”고 내뱉은 어느 문학평론가의 말이 겹쳐졌습니다.

    “인간의 관계성을 가장 나타내는 것이 물입니다. 우리가 희망을 만들기 위해서는 물로서 배워야 합니다. 물은 항상 낮은 곳으로 흐르지요. 다투지 않습니다. 바위를 만나면 돌아가고 절벽을 만나면 뛰어내리고 큰 웅덩이를 만나면 건너뛰지 않고 차곡차곡 쌓여서 넘칩니다. 이러한 물의 자기 변화를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매우 중요하게 배울 점이 또 있습니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점입니다. 바로 하방연대(下方連帶), 낮은 곳과의 연대입니다. 노동운동이든 교육운동이든 모든 운동은 낮은 곳과 연대해야 합니다. 바다는 가장 낮은 물이지만 가장 큰 물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물을 받아들이기 때문이지요. 물은 관계의 실천론입니다. 모든 물은 다 만납니다. 낮은 곳으로 가서 큰 것을 이뤄야 합니다.”

       
      ▲ 500여명이 참석한 이날 강연회에는 몰려든 인파로 앉을 자리가 부족해 강연중인 연단 위에 몰려 앉는 청중들도 눈에 띄었다(사진=마들연구소)

    그러면서 선생은 우리시대에 운동을 이끄는 사람들의 사고가 물처럼 흐르지 못한다고 질책하셨습니다. 촛불집회 때도 소위 사회단체를 이끄는 사람들은 자기 단체의 몸집을 키우는 데 급급했다고 꼬집었습니다. 존재론에 매몰됐다는 것이죠. “물처럼 변화해야 합니다. 침통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좌파입네 하며 쉽게 사기 친 나

    강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는 시종일관 고개를 주억거려야 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잠시 시위 행렬에 동참한 것을 빼고는 그 동안 제 삶은 좌파적인 가치와는 전혀 무관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탐욕에 쉽게 내둘러져 상처를 주고받는 굴레를 벗지 못했습니다.

    그런 굴레에서 참으로 아둔하게도 벗어나질 못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학생 때 시위 경험을 자랑스레 늘어놓고 이번 선거에서 누굴 뽑아야 하느니, 이라크 파병을 중단해야한다느니, 한미 FTA를 반대한다느니 떠벌였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나는 좌파입네 하고 아주 쉽게 사기를 쳤습니다.

    촛불집회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거의 매일 집회에 나갔지만 구경꾼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소속된 정당이 사람들의 지지를 많이 받게 되고 당원이 증가하는 것에 고무되기도 했지요. 그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저의 태도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내내 저에겐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육식에 환장하던 저의 오랜 식탐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신영복 선생의 강연 내용입니다.

    “글씨를 쓸 때, 처음에 한 획을 그었는데, 좀 비뚤고 굵다고 해서 지우고 다시 쓸 수 없습니다. 한 획의 실수는 그다음 획을 어떻게 어떤 각도로 쓸 거냐를 가지고 만회해야 돼요. 이걸 쓰는 과정에서 전체 균형을 보는 거죠.

    글씨를 쓰면서 한 글자의 실패는 다음 글자로 한 행은 다음 행으로 그 결함을 보완해 나가는 겁니다. 획과 획, 자와 자가 서로가 신세를 지는 형국. 이런 농밀한 관계가 있는 글씨가 서도의 진정한 경지입니다.”

    저는 서로가 서로를 신세지는 관계를 외면하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허망한 질문에 나를 가두었던 가짜 좌파였던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정말 지나가는 개가 저를 보더니 웃고 있었습니다. 진짭니다! 전 그동안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개’가 들어간 욕 중에 가장 무시무시한 것이지요)을 하고 있던 겁니다.

    개가 저를 보더니 웃더군요

    웃는 개를 지켜보면서 문득 언젠가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희망이란 오늘을 힘겹게 사는 사람들이 다가설 수 있는 창”이라는 글귀입니다.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은 별로 없지만 2009년 새해 다짐을 선생님의 말을 빌려 해봅니다. 작심삼일로 끝난 이전의 연례행사와는 조금은 다른 느낌을 가지면서요.

    희망을 함께 일구고 나누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인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과 ‘가슴으로부터 발에 이르는 여행’을 새롭게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긴 여정을 견디기 위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인 양심(良心)과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로 걸어가는 것으로서 자부심(自負心)을 갖도록 애쓰겠습니다. 새로운 출발을 향한 다짐을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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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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