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과 똑같은 생일, 입당동기예요"
        2009년 01월 10일 09:0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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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과 제 생일이 똑같아요. 아마 천생연분이니까, 서로 보듬어주며 살라는 운명 아니겠어요” 민주노동당 대전시당의 민선희 당원(41)이 너스레를 떨며 웃는다. 그녀는 유머가 풍부했다. 얼굴에선 웃음이,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그녀는 대통령의 사돈기업인 한국타이어에서 죽어나가는 노동자들의 유족들을 돕고 있는 한국타이어 유족대책위 간사다. 한국타이어에서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다 어느날 “죽어가는 동료들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며 거리로 나선 남편 정승기씨(46)와는 생일뿐 아니라 민노당 입당 동기다. 그들은 지난 2004년 12월 24일 입당했다. 

    조선일보만 읽던 집에서 자란 평범한 가정주부

       
      ▲ 민선희씨.(사진=변경혜 기자)

    <조선일보>만 읽는 집에서 자랐다는 민씨는 스스로를 ‘아무것도 몰랐던’ 순진한 주부였다며 “한국타이어 같은 일들은 신문이나 방송에만 나오는, 나와는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민씨는 “지금 생각해보면 진실을 알리겠다며 나선 남편이나 그의 동료들, 저 같은 가족들이 정말 순진했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심각한 문제니까, 사람이 죽어가니까, 대전지방 노동청에서 모른 척하면 ‘우리 편에 있는’ 청와대나 노동부에 탄원하면 그냥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그게 다시 대전지방노동청으로 돌아오고, 세상이 그렇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어요”라고 말했다. 지난 몇 년의 시간이 생각난 듯 잠시 그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거대 기업, 그것도 현직 대통령의 사돈기업에 맞서 몇 안되는 힘없는 노동자들과 유족들의 싸움이 얼마나 힘들고 처절했을까?

    남편 정씨는 유족들을 도왔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온갖 협박은 물론 급기야 지난 5월엔 한국타이어 신탄진 대전공장에서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읍내동 제품출고관리부서로 전환배치되고, 전환배치된 공장에서는 직장 상사가 "노동운동을 하지 말고 회사를 그만두라"며 ‘커터칼’을 들이대고 협박을 하기도 했다.

    "청와대, 노동청이 노동자 편인줄 알았지요"

    민씨는 “그때 일을 생각하면 ‘이러다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섬뜩했다”며 “그런데 더욱 놀라게 한 건 그 일을 겪고도 흉기를 휘두른 직장상사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방치하다가 여론이 안좋아지니까, 그제서야 가벼운 징계와 자리를 이동시킨 한국타이어의 태도였다”고 말했다.

       
      ▲ 한겨레가 2008 지역 10대뉴스로 선정한 한국타이어 산재문제.(한겨레 인용)

    그래도 민씨 부부는 꿋꿋했다. 지난 11월 서울에서 열린 한국노총 노동자대회에 유족대책위 자격으로 나란히 참석한 민씨 부부는 동료들의 죽음에 무관심했던 노조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나눠주다 한국타이어 노조 간부들과 마찰을 빚었다.

    민씨는 “동료들이 죽어나가고, 유인물 나눠줄 때, 1인시위 할때 단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던 노조가 한국노총 노동자대회에 투쟁조끼 입고 구호외치는 걸 보니까 정말 화가 치밀어올랐다”며 분노했다.

    그는 “‘한타노조 필요없다’고 하니까 저희들한테 욕하고 ‘뻑큐’ 날리고, 정말 가관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남편 따라 한국타이어 산재의혹 진실을 알리기에 나선지 벌써 5년째. 평범한 주부에서 어느덧 그녀는 ‘투사’라는 이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유족들을 찾아 일일이 만나고, 회사 앞에서 1인 시위, 한국타이어와 끊임없는 재판, 홈페이지 만들고 운영하기, 현장사진 찍기, 소식지 만들기 등등 그녀가 해야 할 일들은 많기만 하다.

    카툰도 그리는 ‘재주꾼’

    그런 와중에 그녀는 그림그리기에도 열중이다. 한타 조합원들이 회사에서는 얘기도 꺼내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까워 2006년 문을 연 홈페이지(minjunojo.com)에 카툰을 내보이기 위해서다.

       
      ▲ 민선희씨가 그린 카툰.(minjunojo.com 인용)

    민씨는 “결혼 전에 유화에 조금 관심 있어서 공부한 정말 초보인데 남편 권유로 카툰을 시작했다”며 “아직은 너무 서툴지만 홈페이지 방문자들에게 한국타이어 진실을 알리는데 보탬이 되고 싶어서 하는 것 뿐”이라고 부끄러워했다.

    ‘부부가 너무 힘든 길을 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민씨는 “제가 안 하면 남편 혼자 더 힘들 것 같다”며 “같은 길 가는 게 부부 아니냐”고 웃으며 말한다.

    민씨는 이어 “솔직히 말하면, 힘들어서 우울증 증세까지 생겨서 작년에 3개월쯤 병원치료를 받기도 했었다”며 “약국에서는 우울증 처방전에 보통 2가지 약이 적혀 있는데, 저는 4가지 약을 처방받았을 정도였다”고 그 동안의 어려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우울증 치료도 받아"

    하지만 그녀는 곧 웃으며 “그런데 병원치료를 받아도 별로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아서 ‘즐겁게 살자’ ‘화나는 일들을 가슴에 묻어두지 말자’고 나름의 원칙을 세워서 열심히 웃고 산다”며 “다른 장기투쟁 사업장 분들도 아마 저 같은 경우가 많을 텐데, 즐거워야 힘내고 오래 투쟁할 수 있다”고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한국타이어. 사법처리 5백여 건, 산업안전보건법위반 1천3백여 건, 산재은폐 의혹 1백80여 건에 발암물질로 알려진 벤젠이 함유된 솔벤트통 등 화학물질에 대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도 공장은 쉼없이 움직인다. 노동자들이 줄줄이 죽어나가도, 국회 국정감사에서 지적을 해도 노동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진상조사는 아직 갈 길이 너무 멀다.

    그래도 민씨는 희망을 얘기했다. “처음엔 민주노조 말도 못꺼냈던 조합원들이 지금은 우리 대책위 홈페이지에 노동자 권리를 요구하고, 직선제 노조를 말하고, 대의원선출도 이름을 직접 쓰던 자서식에서 이젠 기표식으로 바뀌는 걸 보면 그동안 싸워왔던 게 ‘헛되지는 않았구나’는 뿌듯함이 있다.”

    민씨는 “지난해에는 언론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여줬고, 남편과 같이 의지하면서 그냥 열심히 해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민씨는 갑자기 생각났다며 “새해 소망은, (한국타이어가) 대통령의 사돈기업이니까,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깨끗한 기업으로 성장해 한국의 대표기업으로 설 수 있도록 국민의 관심이 필요한 것 같다”며 한국타이어에 대한 관심을 가져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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