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신당? 잘 모르겠다…민노, 탈당"
        2009년 01월 10일 06: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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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386 의장님들’을 밥맛 없어 하는 것은 잘난 그들을 시새워 해서일 수도 있지만, 뭣 좀 햅네 힘들어간 본새라거나 ‘의원 나리’로의 변신이 영 탐탁치 않아서일 게다.

    386 의장님들

    그런데, 88학번에다 전대협 6기 의장이었으니 ‘386 의장님들’에 속함이 분명한 태재준더러 “밥맛 없다”라거나 비슷한 비아냥을 하는 이를 본 적은 없다.

       
      

    적어도 그의 행동거지가 앙드레김 패션쇼 마냥 어깨뽕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은 분명하고, 보수정당의 국회의원이 아니라 진보정당의 진성당원이었고, 홀연히 미국 유학을 떠나 여느 ‘의장님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기 때문이리라.

    태재준이 사회복지학 박사논문을 들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2000년 가을에 시카고대 석사과정에 입학했으니, 8년이 넘는 꽤 긴 이별이었고 반가운 해후다.

    가끔 입국했을 때 국민승리21,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으로 변모해간 진보정당의 동료들을 찾곤 했던 그이니만큼 근황을 전혀 모르지는 않았지만, 다시 돌아와 새 정착을 꿈꾸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학부에서는 국제경제학을 공부했는데, 왜 사회복지학으로 바꾼 거죠?”

    사민주의 좋아서 사회복지 공부

    “92년에 감옥에 들어갔다, 95년에 사면받아 나온 다음 96년에 졸업했지요. 당시에는 운동권 사람들이 사법고시 많이 봤고 집에서도 그거 하라 했지만, 저까지 사법고시 할 필요 없을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공부하며 고민해보자 싶었죠.

    개인 관심은 동아시아 정세에 관련해 외교학을 공부해보고 싶었는데, 당시 상황이나 우리 사회에서 보자면 사회복지학이 필요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당시 학생운동은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민주화가 진행되는 상황에 걸쳐 있었고, 저 같이 80년대 후반 학번들은 그런 시대 상황에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제 생각을 정리해보니 사회민주주의 계통에 가장 가까운 거 같고, 감옥에서 책을 보다 보니 한국 사회 대안모델로도 사민주의가 적합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사회복지를 공부하게 된 거죠.

    그리고, 석사 한 김에 박사까지 해보고 싶었는데, 당시 한국에는 사회복지학 교수가 적었고 미국이라는 사회도 알고 싶어 2000년에 유학을 떠났어요. 지원한 대학 몇 군데에서 입학허가를 받았는데, 그 중 시카고대가 명문이라 알려져 있었고 큰 대학이라 인접학문도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아 시카고대를 선택하고 8년 동안 공부했습니다."

    그 8년이 어떠했을지 넘겨짚기는 어렵지 않지만, 그래도 재미 있는 얘기 좀 해달라는 주문에 태재준은 그저 “엄청 심심하고 추웠어요”라고만 답했다. 대신 그는 미국 체류 중에도 틈틈이 간여하던 ‘자율과 연대’ 이야기를 했다.

    "엄청 심심하고 추웠어요"

    “국민승리21 때 ‘현실’ 지부와 청년위원회 활동을 조금씩 하다 유학을 떠났죠. 미국에서 온라인으로 지켜보다 보니 ‘자율과 연대’가 있더라고요. 사민주의도 맘에 들고, 당원 민주주의라는 주장도 좋아서 준회원 정도로 참여하며 가끔 글 쓰고 했지요.”

    사실 태재준이 민주노동당에 알려진 것은 그의 학생운동 전력보다는 ‘sd’라는 아이디로 ‘자율과 연대’에 올리던 글 덕택이다. ‘sd’는 당원들의 참여에 기반하는 당 운영, 다양한 사회복지 정책, 시민운동 등과의 폭넓은 연대를 주장했고, 그런 주장이 옳든 그르든 민주노동당이라는 한 시대의 조류에는 ‘sd’의 경향이 작은 않은 흐름으로 자리잡아 갔다.

    작년 겨울 귀국한 직후 태재준은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뿌렸다. 단체도 아닌 개인이 보도자료를 내는 경우도 드물거니와 그 내용이 자신의 박사논문 소개인 것이 생경했다.

    하지만 나는 반가웠다. 유학까지 갔다면 당연히 그럴듯한 논문 한 편 들고 와야 하는 것이고, 그걸 알린다는 것은 그 실현을 바라는 것일 테니, 앞으로도 태재준과 만날 일이 가끔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논문 자세한 내용이야 차차 듣기로 하고, <레디앙> 독자들한테 그 개요만 설명해 주세요.”

    ‘동맹’으로서의 가족

    “‘가족동맹’ 얘기예요. 주류 가족이론에서는 가족을 그 구성원 간에 평화롭고 이타적인 단위로만 봐요. 반면 여성주의 가족이론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갈등을 주로 부각시키죠.

    저는 이런 두 견해가 옳지 않다고 보고, 협력과 갈등이 공존하는 단위로서의 ‘가족동맹’을 주장하는 거죠.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위해 외부 가족동맹에 대항하며 내부 협력하고, 그 내부에서는 각자의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갈등하는 그런 가족 말이예요.”

    태재준은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여성이 사회적 경제활동에 참여하며 돈을 벌 때 남성의 폭력성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조사하여 근거로 제시했다.

    “아내가 처음 돈을 벌어오면 아내에 대한 남편의 폭력 빈도가 늘어나요. 이건 여성의 경제적 기여가 가족 내부에서 자기 지위를 위협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가부장들의 반응이죠. 그러다가 여자가 더 돈을 벌어오면 폭력이 줄어요. 이 단계에서는 가부장들이 아내와의 관계보다는 아내가 벌어오는 돈으로 가족 전체의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키는 측면을 보는 거죠.

    또, 그러다가 아내가 남편보다 더 많은 수입을 거두어 들이면 다시 폭력이 늘어나요. 이 때에는 돈 더 많이 버는 아내에게서 가부장 지위를 지키기 위해 폭력을 쓰는 거죠. 이런 현상이, 가족은 협력과 갈등이 공존하는 동맹이라는 제 주장을 증명한다고 생각해요.”

    여성 수입과 남성 폭력의 함수

    “사회복지학보다는 인류학이나 사회학에 가까운 거 같네요. 순수이론적 측면 말고, 그런 주장에서 우리가 얻을 시사점 같은 건 뭔가요?”

    “저소득층에서는 여자가 처음 돈을 벌어올 때 폭력이 늘어나는 정도, 여성의 수입이 안정됐을 때 폭력이 줄어드는 정도, 그리고 여성 수입이 남성 수입을 넘었을 때 다시 폭력이 늘어나는 정도가 중산층보다 훨씬 심해요.

    여성 수입과 남성 폭력의 함수 그래프 진폭이 큰 거죠. 이건 여성의 기여든, 여성의 위협이든 저소득층 가족의 구성이나 동인이 경제적 곤궁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걸 보여주죠. 그리고 경제위기 시기에는 중산층에서도 저소득층 같은 남성 폭력 진폭이 나타나요. 이런 현상에서 경제위기가 중산층 가족 내부에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있어요.”

       
      

    경제위기에는 중산층도 저소득층 행태화 

    사실, 가족 구성원이 서로 기대기도 하고 싸우기도 한다는 주장은 새삼스러울 것 하나 없고, 세상 사람 다 아는 경험적 진실일 테지만, 학문의 장에서 그런 걸 증명해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태재준이 전하는 저소득층이나 경제위기 이야기는 진보정당의 주요 활동이 어디 맞추어져야 하느냐는 해묵은 논쟁을 푸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먹고 살기 어려워 갈라선다는 이야기는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봤지만, 암울한 조국통일의 미래나 민주화 걱정으로 남편과 아내가 서로 두들겨 팬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으니까.

    “돌아와 보니 어때요? 촛불집회나 이명박 정부 등장 같은 거?”

    “사람들이 예전보다 훨씬 더 심하게 생존투쟁을 벌이는 거 같아요. 낙오되지 않기 위해. 이명박 정부는 그런 열망의 표현으로 등장한 거 같고. 그런데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로 수십만 명이 거리로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아예 못살았으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 같고, 국민 안전 진짜 위하는 좋은 선진국에서도 그런 일은 생기지 않겠죠. 선진국 문턱에 서있는 한국, 이제 막 가지게 된 국민들의 자부심이랄까 자존심을 이명박 정권이 잘못 건드린 것 같아요. 사람들의 기대수준은 높아졌고, 정부의 태도와 능력은 거기 미치지 못하고.”

    두어달 전에 태재준은 민주노동당에서 탈당할 것이라 말했었다. 탈당이나 입당에 꼭 그럴싸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닐 테지만, 97년께부터 10년 넘은 당적을 ‘정리해야겠다’고 말하는 것이 범상한 일은 아니다.

    민주노동당에 실망, 진보신당은 모르겠다

    “분당되었으니 이제 탈당해야 할 거 같아요. 민주노동당에 실망도 했고. 핵심적으로는 너무 정파에 휘둘리는 거 같아요. 민주노동당은 2004년을 정점으로 계속 하강세인 거 같아요. 부유세 다음에는 나오는 것도 없잖아요.

    당원이 1만 원씩 내는 당으로 출발했는데, 이제는 이 진성당원제가 정파들의 지구당 장악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지요. 이런 상황에서 굳이 당원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예요. 진보신당은 아직 모르겠어요.”

    태재준은 박사논문의 이론틀을 가족을 넘어 개인이나 국가에 적용할 수 있는 ‘위계동맹모델’로 만들어 보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경제와 노동, 가족을 아우르는 대안모델도 공부해보고 싶어 한다. 공부로 사회진보에 기여하겠다는 게 지금의 꿈이다.

    지난 몇 년 동안 태재준의 친구들은 그가 “심심해하고, 추워하더라”고 전했었다. 이제 긴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태재준에게 누가 ‘따뜻한 친구’가 돼줄 수 있을까? “진보신당은 아직 모르겠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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