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력, 얼떨결에 손안에 들어오다
        2009년 01월 10일 11: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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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란 이후의 반란으로 권력을 잡은 것은 외척도 아니고 환관도 아니었다. 그것은 동탁이라는 전혀 의외의 인물이었다.

    동탁의 설레임

    환관들이 대장군 하진을 죽이고 정권을 잡으려다 원소군에 의해 몰살당한 이른바 십상시의 난 이후 조정은 대혼란에 빠졌다. 하룻밤 새 무려 2천명의 환관이 죽었고 하진의 죽음을 비롯해, 외척세력들도 회생불능의 타격을 입었다.

    난리의 와중에 궁궐은 불에 타고 황제의 옥새도 사라져 버렸다. 게다가 일부 내시들이 어린 황제와 진류왕 협을 빼돌리는 바람에 14살, 9살의 어린 황제 일행이 궁 밖으로 피랍되었다. 하태후와 다른 황족들도 환관들에 의해 끌려가다 겨우 탈출 할 수 있었다.

    선황제의 배다른 두 아들들이 모두 환관들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동탁의 마음속에 설레임이 일기 시작했다. 동탁이 정세를 정리해 보니 이랬다. 난리 통에 궁궐과 황제가 사라졌는데 자세히 보니 없어진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정권을 잡고 있던 양대 세력 즉 환관과 외척이었다. 정권의 주인들이 순식간에 모두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하필 그 때 도읍지인 낙양근처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갖고 있던 것이 바로 자신이라면?!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충 정세파악을 마친 동탁은 순간적으로 정권이 눈앞에 왔다 갔다 하는 묘한 흥분감이 느껴졌다.

    동탁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역시 군대를 이끌고 오길 잘했어!’

    그 때 동탁의 사위이자 모사꾼인 이유(李儒)가 말했다.
    "장군, 지금 우리 눈앞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정치적 빈 공간이 확 열려있습니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하면 천하의 대권을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권력 장악 경로

    "나도 그런 생각이 드네만, 아니 어찌 나처럼 황제 자리에 별 관심도 없이 변방을 돌던 사람이 이런 기회를 얻게 되었는지? 거참 신기한 일일세… 천하 대권이 원래 이렇게 쉽게 굴러 떨어지는 것이란 말인가?"

    "본시 권력이란 감나무에 달린 감과 비슷하여 이렇게 익으면 저절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권력투쟁에 눈알이 빨갛게 되어 있던 사람들 보다는 되레 한걸음 뒤에 떨어져 있던 사람들에게 기회가 오는 일이 많습니다."

    "음… 거참 재밌구만 그려… 그런데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모르겠네. 혹시 계책이 있는가?"

    "장군께서 천하의 실권을 장악하려면 지금부터 2단계의 과정을 밟으셔야 합니다. 우선 사라져 버린 기존의 힘없는 천자를 먼저 확보해야 합니다. 그래야 일단 임시 집권이 가능합니다. 그렇게 해서 형식상 모든 중앙군의 지휘권을 장악하십시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다음 단계로 현 황제를 폐하고 새로운 천자를 세워야 합니다. 그렇게만 되면 세상은 장군을 천자보다 상위에 있는 천자 교체 권력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에 믿어지는 순간, 천하는 모두 장군의 차지가 될 것입니다."

    맞는 과정 설계 인 듯했다. 우선 기존의 절차를 존중해 낡은 권력을 장악하고, 구체제의 실권을 잡은 다음, 형식적인 신권력을 창출하라는 얘기였던 것이다.

    동탁은 그 계책을 듣자, 우선 황제의 생사를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제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고 싶어 동탁은 조바심이 났다. ‘빨리 뭔가 손을 쓰지 않으면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탁은 결국 백방으로 군사를 풀어, 거지꼴을 하고 낙양근처에서 헤매고 있던 황제 일행을 찾아냈다.

    형주자사, 반기를 들다

    다행히 배다른 형제인 소제와 진류왕은 살아있었다. 14살 된 어린 황제는 동탁을 만나자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동탁이 실종되었던 소제를 데리고 낙양으로 귀환하는 바람에 조정의 실권은 일단 동탁이 장악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동탁이 완전한 권력을 장악한 것은 아니었다. 동탁은 다음 단계로 자기 정권을 세우기 위해 소제를 폐하고 새로운 황제를 내세우고 싶어 했다.

    그래서 동탁은 우선 문무백관들을 낙양의 온명원(溫明園)으로 모이게 했다. 이 자리에서 대신들을 먼저 협박해 황제를 바꿔야 한다는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미 조정을 군사적으로 장악하고 있다고 믿은 동탁은 길게 얘기하지 않았다.

    "지금의 천자께서 너무 나약하시어 문제가 많소. 지난 번에 환관들에게 끌려갔다가 나를 만났을 때는 엉엉 울기도 하였소. 영락없는 어린애요. 내 생각에는 천하와 신민을 위해 진류왕이 새로운 천자가 되는게 맞소!"

    한마디로 정권 교체에 대한 합의를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 아직 까지 조정은 동탁에 의해 완전 장악되어있지 않았다. 이 때, 그 자리에서 누군가 대담하게 동탁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는 형주자사 정원이었다.

    "아니 될 말이오!!!"

    형주자사 정원이 너무 크게 소리를 질러 동탁이 다 놀랄 정도였다. 정원이 벌떡 일어나서 외친 한마디에 갑자기 좌중에 찬바람이 쌩~ 불었다.

    "천자는 천하 신뢰체계의 중심점이오. 이는 민심의 합의를 상징하는 상징점이고, 결코 함부로 바꿀 수 없는 것이오. 바꾸려면 민심의 합의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오. 이를 거치지 않으면 천자가 될 수 없소. 그 시간적인 부담과 절차의 정당성을 동장군이 어찌 혼자서 감당할 수 있단 말이오?"

       
      ▲그림=억수씨

    동탁과 여포

    순간 동탁은 당황했다. 그러나 그도 쉽게 물러서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금 그대들에게 이렇게 의견을 구하고 있는 것 아니오?"

    "아니 지금 이것이 민심의 합의를 구하는 것이오? 권력의 찬탈을 꾀하는 것이 아니오?"
    "뭣이! 네놈이 기어코…"

    그 때 그 자리에 있던 노식이 거든다.
    "천하는 보이지 않는 신뢰체계이며 관성의 체제입니다. 한번 굳어진 신뢰체계는 관성이 됩니다. 민심의 합의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전에 예고된 절차뿐입니다. 그래서 14살이건 9살이건 함부로 천자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 이런 자리에서 황제 폐위를 논한단 말이오. 이 논란 자체가 불가한 일이오."

    노식의 주장 역시 날카로웠다. 아직 동탁의 말이 먹히지 않고 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황이었다. 동탁은 할 말이 떨어지자 갑자기 안색을 바꾸고, 당장 칼을 뽑을 듯한 기세로 정원에게 성큼 성큼 다가갔다. 그러나 동탁은 잠시 후 멈칫 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칼자루에 손을 대는 순간 정원의 등 뒤에 늠름하게 버티고 서있는 장수 하나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동탁은 그 장수로부터 왠지 범접할 수 없는 살기를 느꼈다.

    그 때 분위기를 간파한 사도 왕윤이 분위기를 바꾸는 말을 날렸다.
    "이런 대사는 술자리에서 논할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른 날 다시 의논합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동탁도 정원을 벨 수는 없었다. 자리는 곧바로 파장 분위기가 되고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그 꼴을 본 동탁의 참모 이유가 동탁에게 말했다.

    "장군, 대권을 얻으려면 저 자부터 먼저 손을 보셔야겠습니다.!"
    "흠, 나도 그 생각이다. 그런데 저 정원의 뒤에 서있던 장수는 누구이더냐?"

    "정원의 양자로 이름은 여포, 자는 봉선이라는 자입니다. 힘과 무예에 있어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는 놈입니다."

    여포의 무술

    다음날 아침 일찍, 먼저 칼을 뺀 것은 동탁이 아니라 정원이었다. 정원은 아침부터 동탁의 진중으로 군사를 몰고 와서 싸움을 걸었다. 정원군의 선봉은 어제 본 ‘여포’라는 장수였다. 그는 방천화극이라 불리는 가지가 하나 달린 창 한 자루를 꼬나들고 있었다.

    형주자사 정원은 동탁처럼 하진의 통문을 받고 군대를 움직여 낙양까지 왔다. 그러나 정원은 동탁처럼 권력의 찬탈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형주에서 데려온 군대를 낙양 근처에 주둔 시켜 놓고 정세를 관망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동탁의 언사를 보고 행동을 시작한 것이었다.

    동탁은 그렇지 않아도 자신이 직접 정원을 처단 할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상대가 싸움을 걸어오자 ‘이게 웬 떡이냐?’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측은 곧바로 전투를 시작했다.

    그러나 예상 외로 싸움은 정원 측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그것은 여포 때문이었다. 선봉장 여포는 긴 머리를 뒤로 묶은 채 그 위에 금관을 쓰고 양손으로 방천화극 한 자루를 풍차 돌리듯 하며 종횡무진 동탁의 진영을 휩쓸었다. 원래 여포는 오원군 태생으로 창, 극, 도, 검 등 모든 무기를 잘 다루었으나 그 중 방천화극을 다루는 솜씨는 가히 따를 자가 없었다.

    여포의 용맹을 본 군졸들은 감히 대적할 상상도 하지 못했다. 도망가던 자, 감히 대적하던 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우왕 좌왕 하던 자들 모두가 방천화극의 이슬로 사라져갔다. 여포는 마치 아무도 없는 논 위에서 낫으로 볏단을 베듯 동탁의 부하들을 무수히 쓸어 넘겼다. 동탁은 결국 크게 패하여 30리 밖으로 도망가고 말았다.

    이날 밤, 동탁은 겨우 대오를 수습한 뒤 부하들 앞에서 긴 탄식을 하였다.
    "내가 어느 날 갑자기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오듯이 권력이 들어왔다고 생각했으나 아무래도 그게 아닌 것 같다. 갑자기 여포라는 장수가 나타나 다 된밥에 재를 뿌리고 있으니.. 이렇게.. 되는 일이 없는 것 같소."

    적토마와 황금 천 냥

    동탁은 말을 제대로 잇지도 못했다. 황건적에게 패해 변경으로 좌천될 때 보다 더 우울했다. 그러자 그 때 누군가가 동탁을 안심시킨다.
    "장군, 너무 상심하지 마시옵소서. 제게 한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동탁이 놀라서 쳐다보니 그는 호분 중랑장 이숙이었다.
    "그래 어떤 좋은 계책이 있단 말이냐?"

    "제가 여포와는 동향 친구이오니, 가서 여포를 회유하여 보겠습니다. 여포는 매우 용맹스러운 장수이지만 성격이 단순하여 눈앞의 이익에 크게 흔들리는 사람입니다. 특히 재물에 탐욕이 많은 자 이옵니다. 장군께서 적당한 재물로 신임을 보여주시면 회유할 수 있습니다."

    "그게 말처럼 쉽게 되겠느냐?"
    동탁은 처음에 고개를 갸우뚱 했다.

    "겉보기엔 튼튼해 보이는 적의 대오라도 사실 한걸음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대한 허점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군, 한번 내부를 들여다보게, 시도나 해 보십시오."

    동탁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없기도 했다. 동탁은 이 때, 여포를 회유할 재물로 하루에 천리를 간다는 비장의 명마 적토마와 황금 천 냥을 꺼내 준다.

    적토마는 동탁이 주로 싸우던 유목민족들로부터 뺏어온 명마였다. 적토마는 온몸이 타는 듯한 붉은 털로 뒤덮여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그 특이한 용모 때문에 이 말은 달릴 때는 마치 불길이 흐르는 듯이 보여서 신비감을 자아내곤 했다. 울부짖을 때는 하늘로 치솟을 듯한 기상이 느껴졌다. 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적토마의 풍모를 한번 보고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출세를 위해서라면

    다음 날 밤, 이숙이 은밀히 여포의 진영을 방문했다. 그리고는 불과 몇 시간 만에 적토마와 황금 천 냥으로 여포를 구워삶는데 성공했다. 딴 마음을 먹은 여포는 아예 한술 더 떴다.
    "동 장군께 어떻게 보답을 하는게 좋겠소?"

    사실 여포는 정원의 양자로 있었으나 오랫동안 정원의 밑에서 지내면서 둘 사이에는 누적된 불만이 쌓이고 있었다. 정원과 여포는 둘 다 불만이 쌓이면 그때 그때 표시하지 않고 마음속에 담아두는 성격이었다.

    "정원은 말만 양아버지였을 뿐 내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었소. 이제 동장군께서 이렇게 진귀한 명마 한 필과 이 많은 재물을 주셨는데 나는 일찍이 이런 걸 내 양아버지란 사람에게 받아본 적이 없소."

    여포는 그렇지 않아도 여차하면 다른 주인을 찾아 출세길을 떠나거나 아니면 독립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그러던 여포에게 동탁이 접근하자 ‘이번이 기회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동탁진영으로 넘어가려고 하니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동탁의 부하들을 낫으로 볏단 베듯이 쓸어 넘겼던 것이 아닌가?

    "내가 지금 동 장군께 간다고 하더라도 내가 장군의 부하들을 마구 죽였는데 과연 대접을 받겠소? 아예 내가 정원을 죽이고 군사를 이끌고 동 장군께 단체로 항복하면 어떻겠소?"

    이숙은 여포가 스스로 정원의 목을 베겠다고 하자 속으로 ‘이게 웬 떡이냐?’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겉으로는 표정관리를 했다.
    "그… 그렇게만 해준다면야, 동장군께서 더 좋아하시긴 하겠지만…"

    여포는 그 길로 정원의 막사로 들어가 방심하고 있던 양아버지 정원을 한칼에 베어 버렸다. 워낙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정원은 손 한 번 쓰지 못하고 불귀의 귀신이 되고 말았다.

    칼보다 무서운 황금

    대장을 잃어버린 군사들이란 마치 큰 공원에서 엄마 잃은 미아이거나 야망을 잃어버린 정객이랑 비슷하다. 여포는 정원의 목을 높이 들고 군사들에게 소리쳤다.
    "내가 정원을 죽였다. 나를 따르고 싶은 군사는 나를 따르고, 죽은 정원을 따르려는 군사는 집에 가도 좋다."

    군사들은 한동안 술렁이더니 반은 남고 반은 떠나버렸다. 어제 저녁까지도 부자지간으로 지내다가 갑자기 양아들이 양아버지를 죽이니, 실로 허망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튿날 여포가 정원의 목을 들고 동탁 진영에 항복하자 동탁은 크게 잔치를 베풀어 여포를 환영했다. 황금 천 냥과 명 마 한필로 정권장악에 최대 장애물을 제거해 버리고 나니, 동탁의 눈에는 새삼 재물의 힘이 강력해 보였다. 동탁은 속으로 생각했다.

    ‘황금이 칼보다 더 무섭군.’
    결국 여포는 이날로 동탁의 양아들이 된다.

    동탁은 정원을 제압하고, 여포를 얻자 곧이어 지난번처럼 온정원에서 대신들을 모아놓고 자기 맘대로 황제를 교체한다. 소제를 폐위하고 9살 진류왕을 황제로 옹립하니 이 사람이 한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다. 동탁으로서는 2단계 정권 찬탈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동탁정권이 시작되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천자가 두 번 바뀌고 변방의 실력자가 갑자기 정권을 장악하니 세상은 또 한 번 뒤숭숭해지고 말았다.

    조조, 수배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반발세력이 생기는 것도 당연했다. 원소 등 일부 야심가들은 동탁정권에 찬동할 수 없어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가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원소는 자신이 직접 군대를 몰아 환관들을 진압했는데 정작 천자를 빼앗은 것은 동탁이었던 것이다. 원소는 속에서 천불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정은 조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조조는 원소처럼 그냥 고향으로 내려가지는 않았다. 조조는 한 황실에 충성하는 일부 청류파 관료들과 은밀히 내통한 다음 동탁을 죽이기 위한 동탁암살 음모에 가담한다.

    그러나 이는 곧 들통 나고 조조는 이내 수배자의 몸이 되어 쫓기는 신세가 된다. 전국에 조조의 얼굴을 그린 현상 수배전단이 배포되고 급기야 조조는 낙양을 빠져 나간지 얼마 못되어 중모현 현령에게 붙잡히고 만다.

    그러나 중모현 현령 진궁은 조조를 붙잡아 넘기기보다는 오히려 동탁을 암살하려했던 조조의 의지에 동조해 아예 벼슬을 버리고 조조를 따라나선다.

    "저의 이름은 진궁이라고 합니다. 조공의 충의에 감복하여 따르고자 하니 부디 물리치지 마십시오."

    조조는 ‘이제 죽었구나!’ 싶었다가 졸지에 동지를 얻으니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날 밤 조조와 진궁은 노자를 챙겨 나는 듯이 말을 몰았다. 밤낮으로 쉬지 않고 도망간 두 사람은 한참 말을 달린 끝에 어느 고을로 들어섰다. 조조가 말했다.

    "이 마을에 여백사라는 분이 계시는데 제 선친과 교류해온 친구 분이오. 오늘 밤은 여기서 묵도록 합시다."

    조조와 진궁이 여백사의 집을 찾자 주인 여백사는 두 사람을 반갑게 맞았다. 조조는 그간의 일들을 소상히 전했다. 조조의 얘기를 듣고 난 여백사는 조조와 진궁을 쉬도록 한 뒤, 술을 사오겠다며 나귀를 타고 집을 나갔다.

    "마침 집안에 술이 없네. 술을 사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게."

    그러나 술을 사러간 사람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조조는 여백사가 오지 않자 은근히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그 때였다.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 왔다.

    ‘써억 썩, 써억 썩…’
    숫돌에 칼 가는 소리였다.

    ‘아니, 저건 칼을 가는 소리?!! ‘
    조조는 순간적으로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꼈다.

    ‘아뿔싸! 내가 여백사를 너무 믿었구나!’
    조조는 재빨리 진궁에게 뭔가 수상하다는 말을 전하고 남몰래 뒤뜰로 넘어가 납작 엎드렸다. 그 때 담 너머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죽이려면 묶는 게 좋겠죠?"
    "놓치지 않으려면 묶어야지."

    그런 대화를 엿 듣던 조조는 단박에 상황을 눈치챘다. ‘이것들이 우리를 묶어서 관아에 넘기려는구나. 안되겠다. 선수를 쳐야겠다.’

    조조식 합리성

    조조는 진궁에게 사태의 위급함을 알린 다음 재빨리 칼을 빼들고 뛰쳐나갔다. 조조와 진궁이 놀라는 하인들은 물론 여백사의 아내와 두 딸들까지도 베어버리니 짧은 순간에 여덟 명이나 참살당하고 말았다. 너무나 순식간의 일이었다. 조조는 또 숨어 있는 사람이 없나 하여 부엌을 뒤졌다. 그런데 거기에는 돼지 한 마리가 묶여 있는 것이 아닌가!

    "앗! 이럴수가!"

    조조는 밧줄 옆에서 버둥거리는 돼지를 보며 탄식했다. 돼지를 잡으려고 칼을 갈던 사람들을 오해하여 모두 죽인 것이었다.

    "의심이 지나쳐 죄 없는 사람들을 베었구려. 은혜를 원수로 갚았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조조와 진궁은 기가 막혔다. 어이없게도 자신들을 대접하려던 사람을 순식간에 8명이나 죽였으니 후회가 막급이었다.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서둘러 여백사의 집을 떠났다. 그들이 한참 마을 밖으로 빠져나갈 때였다. 술을 사러갔던 여백사가 나귀를 타고 앞에서 오고 있었다. 나귀에는 술과 과일 등이 실려 있었다. 여백사는 두 사람을 보고 말했다.

    "아니 자네들, 이 밤중에 어딜 가는가?"
    조조가 시치미를 뚝 떼고 대답했다.

    "잠시 후,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조조는 이렇게 대충 얼버무리고 여백사와 헤어졌다. 조조는 그렇게 여백사와 헤어지는가 싶더니만 곧바로 다시 여백사를 향해 말을 몰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칼을 뽑아 나귀 위에 타고 있던 여백사의 목을 베었다. 여백사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을 짓고 있다가 갑자기 목이 날아가고 말았다. 이 광경을 멀리서 바라본 진궁이 놀라 소리쳤다.

    "아니 이게 무슨 짓이오?!!.."

    "생각해 보시오. 여백사가 돌아가 가족들이 모두 죽은 사실을 알면 틀림없이 괴로워 하다가 우리를 원수로 여길 것이오. 이렇게 부담스런 정치적 관계는 아예 싹트기 전에 잘라야 하오. 차라리 내가 세상 사람들을 저버릴지언정, 세상 사람들이 나를 저버리게 할 수는 없소."(寧敎我負天下人, 休敎天下人我負)

    이 차갑고 합리적인 대답에 진궁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는 ‘일단 방향이 잡히면 무슨 일이든 철저히 한다.’ 는 조조식 합리성을 보여준 한마디였다. (9편. 관우, 낮술이 식기 전에 적장을 베다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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