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 ‘좌파’는 존재하는가?
    2009년 01월 09일 11: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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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차별 학살이 계속되고 있다. 벌써 천 명 단위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그 중 2백 명 가량이 어린이들이라고 한다. 세계 곳곳에서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를 규탄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은 학살을 중단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대목에서 한 번쯤 이런 의문을 던져볼 만하다. 도대체 이스라엘 안에는 전쟁에 반대하고 팔레스타인 인민의 주권을 옹호하는 양심 세력, 진보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빈곤층이 이스라엘 극우파의 지지 기반 

우선 이스라엘의 의회인 크네셋의 정당 분포를 살펴보자. 이스라엘은 100%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실시한다. 그래서 그런지 수많은 정당이 난립하고 있다. 현재 집권 연정을 주도하는 카디마당조차 득표율이 20%를 겨우 넘는 수준이다.

   
  ▲ 이스라엘 의회 크네셋

하지만 이것이 꼭 제도 탓만은 아니다. 근본 이유는 이스라엘 사회 자체의 심각한 균열이다. 이스라엘은 세계 곳곳의 유대인 혹은 유대교도들이 모여서 만든 나라다. 그런데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그들의 출신지에 따라 경제사회적 처지가 전혀 다르다.

부유층이 주로 이스라엘 건국을 주도한 서유럽, 미국 출신 이스라엘인들인 반면, 동유럽이나 북아프리카, 중동 출신 이스라엘인들은 대부분 빈곤층이다. 역설적인 것은 바로 이들 상대적 빈곤층, 소외계층이 주로 극우 정당들을 지지한다는 점이다.

크네셋 안에는 ‘샤스’, ‘이스라엘은 우리의 조국’, ‘민족연합-민족종교정당’, ‘토라 유대교 연합’ 등 그 차이를 알기 힘든 극우 정당들이 포진해 있다. 2006년 총선에서 이들이 거둔 득표율을 모두 합하면, 30%가 넘는다.

이들은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으로 되어 있는 곳도 모두 유대인이 차지해야 할 땅이라고 믿는다. 애초에 팔레스타인과의 공존 가능성은 배제돼 있는 것이다.

과거 극우 시온주의를 대변하던 리쿠드당(‘통합’)은 베냐민 네탄야후 전 총리의 극우 신자유주의 노선이 당내에서조차 커다란 반발을 일으켜 분당과 신생 카디마당의 등장을 낳은 이후 점점 더 지지율이 추락하고 있다. 이로써, 그나마 극우 진영 내에서 정교분리파인 리쿠드당 대신 종교 정당들이 전면에서 나서게 된 셈이다.

카디마당 창당의 소용돌이 속에서 갈 길을 잃은 노동당

리쿠드당과 함께 오랫동안 이스라엘 정치를 반분해오던 노동당도 위기 상태인 것은 마찬가지다. 노동당의 지지율은 심지어 한 자리 수로까지 폭락했다.

노동당은 이스라엘 노총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에도 가입한, 유럽 기준으로 보면,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다. 하지만 현재 가자 침공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국방장관 에후드 바라크가 노동당 대표인 데서 알 수 있듯이, 노동당 역시 강경 시온주의 세력일 뿐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블레어 식 ‘제3의 길’을 주장하고 있어서, 도대체 리쿠드당이나 카디마당과 차이가 무엇이냐는 핀잔을 듣는 형편이다. 다가올 총선에서는 아마도 노동당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것으로 보인다.

리쿠드당과 노동당이 위기에 빠진 직접적 이유는 카디마당(‘전진’)의 등장이다. 카디마당은 2005년에 리쿠드당 소속 아리엘 샤론 총리가 탈당을 결행하면서 탄생했다. 즉, 카디마당의 주축은 구 리쿠드당 온건파다.

   
  

여기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시몬 페레스(현재는 전범 정부의 대통령) 등 노동당 우파까지 합세해서 급속하게 거대 정당으로 부상했다.

중도파 정당을 표방하는 카디마당은 어찌 보면 신자유주의 시기에 각 국의 기득권층이 가장 필요로 하는 정당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즉, 온건 신자유주의 정책 합의를 통해 기존의 좌와 우를 통합함으로써 사회적 불만을 가장 효과적으로 잠재우는 통치 정당.

다만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여기에 하나 더 따라붙어야 할 것이 있다. 시온주의라는 영구 전쟁 이념의 충실한 계승.

너무도 허약하고 동요하는 반전 좌파 

그럼 전쟁에 반대하는 좌파는 정말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그렇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스라엘 국가의 원죄와 전쟁 반대의 대의 사이에서 동요하거나 그 세력이 너무 미약하다.

크네셋 안에는 우선 지난 총선에서 3.77%를 얻은 ‘메레츠-야차드’(‘생명력-다함께’)가 있다. 이 당 역시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에 속해 있으며(즉, 사회민주주의 정당), 시온주의 내에서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받아들이는 흐름(현재는 ‘지금 평화를’이라는 평화운동 단체가 이 흐름을 대표)을 대변한다.

하지만 그 뿌리가 결국 이스라엘 건국이념과 잇닿아 있다 보니 ‘방어전’이라는 알리바이와 ‘평화’라는 이상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는 모습을 보인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아모스 오즈의 경우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오즈는 사실 이스라엘 사회 안에서 고집스럽게 평화와 공존의 대의를 고집해온 양심적 지식인이다. 그리고 노동당에 실망해서 지금은 메레츠-야차드를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06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당시에는, 비록 침략 전쟁이 장기화되자 입장을 바꾸기는 했지만, ‘방어전’이라는 명분 아래 전쟁을 옹호한 바 있다. 이스라엘 건국의 대의 자체가 평화와 양립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비극적 사례라 하겠다.

그나마 원칙 있는 반전 정당은 크네셋 안에 ‘하다쉬’, ‘통합 아랍 리스트-타알’ 그리고 ‘발라드’뿐이다. 이들의 득표율을 모두 합쳐도 8%가 조금 넘는 정도다.

이 중 통합 아랍 리스트-타알과 발라드(‘민족민주회의’의 약칭)는 이스라엘 내 아랍 주민들을 대변하는 정당들이다. 이스라엘 선관위는 이들 아랍계 정당들이 하마스, 헤즈볼라 등과 연계한다고 해서 정당 해산을 요청했지만, 대법원에서 가까스로 해산 판결을 면했다.

   
 

한편 하다쉬(‘평화와 평등을 위한 민주전선’의 약칭)는 이스라엘 공산당을 비롯한 좌파 정파들의 연합이다. 하다쉬는 이스라엘 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아랍인과 유대인(대부분 북아프리카 출신 유대인)이 함께 참여하는 정치조직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회 안에서는 거의 게토처럼 유폐당한 신세다. 예를 들어 하다쉬와 입장이 비슷한 평화운동 단체 ‘거쉬 샬롬’(‘평화 블록’)은 이스라엘 평화운동 안에서도 왕따 취급을 당한다.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인정하자고, 가자 지구를 포기하자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좌파는 ‘이스라엘’을 긍정할 수 없다?

이것이 현재 이스라엘의 정치 현실이다. 우리는 민주공화국은 진보좌파의 필수적인 정치 무대이며, 모든 민주공화국에는 대중적인 좌파가 존재하기 마련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분명히 민주공화국의 외양을 띠고 있는 한 나라, 이스라엘은 이러한 상식에 들어맞지 않는다.

어떤 국가 구성은 애초부터 인류사의 대의와 어긋날 수 있다는 것을, 미래의 희망이 과거의 제약을 넘어설 가능성 자체를 봉쇄할 수 있다는 것을 이스라엘의 사례는 말해준다.

* 이 글은 주간 <진보신당> 25호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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