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에서 현실로, 기본소득 정책화 나서야
    [독자투고] ‘자본주의 너머’ 상상하게 해…주 30시간 노동 등 운동을
        2012년 05월 07일 10:0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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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녹색당이 농민기본소득을 총선공약으로 내걸고, ‘기본소득 청(소)년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면서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있는 듯하다. 노동과 무관하게 모두에게 소득을 지급한다는 말은 노동에 지친, 노동할 기회조차 상실한 사람들에게 어떤 설렘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하긴 기본소득을 처음 접했을 때, 나도 그랬었다. 그러나 현재의 기본소득 담론은 이것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2009년에 비해 논의 수준이 더 깊어진 것도 아니고, 정책으로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 가능성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내게 기본소득이 오래 전부터 더 이상 신선하지 않은 이유다.

    내가 기본소득을 처음 접한 것은 2006년 전병권의 “21세기 변혁의 주체? 노동계급의 분화와 다중(multitudes)”이라는 글에서이다. 이 글 말미에는 “자본주의의 한계에 대한 인식 속에서 우리는 시민적 주체를 재구성하는 공화주의적 향수에 경계심을 가져야 하며, 사회의 주변적인 존재자들(실업자,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에게조차 노동 여부를 떠나 무조건적 생존 소득보장을 요구하는 투쟁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사진=대학생 사람연대

    당시 실업, 비정규직, 불안정노동의 걷잡을 수 없는 증가와 그 해결 방안에 혼란을 느끼던 나는 노동 여부를 묻지 않는 기본소득에 대해 상당한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그 후 2009년 민주노총의 기본소득 연구 프로젝트에 참가하면서 기본소득에 대해 공부할 기회가 생겼다. 이미 이진경은 99년 <진보평론> 창간호 “노동의 인간학과 맑스주의”에서, 이환식은 “지식 사회의 이율배반(Antinomy)”에서 기본소득을 암시적으로, 혹은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 국내 복지연구자들 중심으로 기본소득 소개가 있었다.

    기본소득은 자산조사나 노동조건 부과 없이 무조건적으로 모든 구성원들이 개인 단위로, 국가로부터 지급받는 소득이다. 이처럼 단순하고 명쾌한 아이디어에서 기본소득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복지 사각지대의 해소, 보편복지, 완전고용시대의 종말에 따른 탈노동 패러다임으로의 전환, 노동력의 탈상품화의 가능성, 임금노동이 아닌 일·활동(가사노동, 예술활동, 돌봄노동 등)에 대한 사회적 인정, 행정비용 감소 등등의 엄청난 강점을 갖게 된다.

    2.
    2009~2010년은 한국사회에서 무상급식 논쟁 등에 힘입어 보편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시기이다. 경기도 무상급식도 기본소득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었다. 당시 경기도 교육청은 “초등학교 5~6학년생 전원에게 무상급식을 지원”하는 안과 “저소득층 순차지원” 안을 두고 논란을 벌이다가,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무상급식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우리 사회 보편복지의 전환점을 이루게 된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보편복지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기본소득 진영은 책자 발간과 국제학술대회 개최 등의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하였고, 언론의 주목도 받았다.

    이후 기본소득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비판은 크게 1)자본주의의 근본 문제인 생산수단의 사적소유 문제를 직접적으로 건드리지 않고 분배에만 한정된다는 점, 2)기본소득을 받으면 과연 누가 노동을 하려 할 것인가, 즉 노동 거부 문제, 3)재정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등에 모아졌다. 물론 이 외에도 국가의 역할 증감 문제, 비물질노동, 복지국가와 기본소득의 관계 등 논란의 지점은 다양하며 문화사회, 공동체 실현 등 기본소득을 보완해야 할 논의지점도 많을 것이다.

    기본소득 비판에 대한 나의 의견은 대략 다음과 같다. 기본소득이 생산수단의 사적소유 철폐, 즉 자본주의 철폐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개량에 불과하다는 비판은 부당하다. 기본소득은 생산수단의 사적소유 철폐를 전면적으로 제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것의 철폐를 가로막는 방해 요소는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20세기 사회주의 이후 생산수단의 사적소유 철폐를 향한 경로를 그 누구도 제대로 제출한 바 없는 시점에서 기본소득이야말로 부족하지만 사적 소유 문제를 분명히 건드리고 있다.

    즉,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자본주의적 임금노동이 아닌 ‘일’, ‘활동’에 대해서도 소득이 주어지게 되므로 노동력의 탈상품화의 가능성이 커질 수 있어, 자본주의 종식에 기여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또한 (노동연계적) 복지국가 모델은 아무리 좋은 실업급여라 할지라도 “자본주의 사회가 규정한 범위에 속하는 노동”을 찾을 때까지 임시로 생계비를 주는 것이기에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틀에 갇힐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노동이데올로기(=자본주의) 비판을 가능하게 하고, 자본주의 너머를 풍부하게 상상하게 한다. 이는 기본소득의 큰 매력이고 개인적으로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핵심 이유이다.

    노동 거부의 문제에 대해서는 1970년대 미국과 2010년 나미비아 실험에서 기본소득이 지급되었지만 임금노동을 하게 되면 추가 수입이 생기므로 오히려 노동은 증가했다는 보고가 있다. 따라서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노동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생길 수는 있지만,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노동거부는 사회 전체적으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재정문제에 대해서는 기본소득 진영은 기본소득 지급에 필요한 재정규모를 산출하고 이를 마련하기 위해 세수 증가와 신설 등의 대안을 제출하고 있다. 그러나 증세와 세수 신설을 통한 세수 증가만 말하고 있을 뿐 이를 실현할 연구도, 운동도 없기에 재정문제는 기본소득의 현실 가능성을 떨어트린다. 현재 한국의 재정규모와 기본소득의 갭은 너무 크다.

    3.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이기도 한 나는 기본소득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깊이 있는 연구와 운동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몇 가지 문제제기를 하고 싶다.

    첫째, 기본소득 논의가 비교적 활발하거나 시행되고 있는 나라는 1)복지국가의 경험을 갖고 있는 유럽 선진자본주의 국가 2)절대 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브라질, 나미비아 등의 국가, 3)석유 등 특별한 재원이 있는 이란이나 미국의 알래스카 등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브라질, 나미비아의 사례는 그 자체로는 고무적인 실험이지만 우리보다 복지수준이 훨씬 낮으므로 모범사례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서유럽은 어떠한가? 기본소득의 대표적 이론가인 곽노완은 “서유럽의 경우는 추가세수 없이 기존의 현금지급형 사회복지만 기본소득으로 통폐합해도, 모든 국민이 1인당 평균 매월 140만 원 정도의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다. 한국의 경우 1인당 매월 1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서유럽의 경우 조세부담률은 40% 수준이다. 한국은 25% 수준이지만 이 중에서도 국방비가 약 10%를 차지한다. 따라서 한국은 기본소득 실현에 있어 재정을 마련할 방법이 중점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현재의 복지 국가모델과 기본소득의 대립 쟁점은 재정 마련보다는 오히려 노동 부과 여부가 중심이 된다. 즉 하르츠처럼 노동연계 프로그램의 강화가 논쟁의 쟁점이 되는 것이다.

    재정 상황이 매우 열악하여 복지국가가 이제 정책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는 한국에서 기본소득 진영은 불로소득 및 투기소득에 대한 세율 인상과 생태세, 토지거래세 등 다양한 세수 신설을 대안으로 내놓는다.

    또한 세수가 50%대로 진입해야 기본소득이 가능하기에 현재의 25%대를 2배로 올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1% 올리나 25% 올리나 가진 자들의 저항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대폭적인 증세를 통해 해결하자고 말한다. 기본소득 진영의 낭만성이 핵심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이다.

    노무현 정부의 종부세 신설이 결국 노무현의 죽음으로 이어졌다는 말에서도 드러나듯이 기본소득 연구자들이 언급하는 증세가, 세수 신설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유럽은 1965년경 조세부담률이 27% 수준으로 지금의 한국과 비슷했지만 그 후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현재의 40%대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의 복지국가론자들이 복지국가 건설 목표 기간을 20년으로 잡고 있는 것도 증세의 현실화와 관련이 깊을 것이다. 이번 19대 총선에서 내놓은 공약을 실현하려면 5년 동안 약 268조가 필요하지만 증세의 어려움 때문에 대부분 채권발행을 통해 재원을 마련할 예정이라는 보도도 있다.

    증세 없이 복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정치적 사기일 뿐이라는 말에 비추어 볼 때 어쩌면 이번 총선공약은 빚에 의존하는 복지로서, 사기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복지국가 건설이든, 기본소득 지급이든 증세를 통한 재원 마련은 필요조건이다. 증세의 수준은 그 사회의 성숙도를 나타내며 증세는 그 사회의 계급투쟁의 결정판이 될 것이다.

    기본소득 진영이 지금처럼 재정 마련을 위한 전쟁에 개입하지 않은 채 기본소득의 긍정성, 당위성만을 소박하게 반복한다면, 기본소득은 앞으로도 계속 프로파간다 수준에 머물게 될 것이다.

    기본소득을 실현 가능한 정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리고 기본소득이 우리 사회 진보적 재편의 키워드가 되기 위해서는 증세에 대한 연구와 대중적 운동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세금혁명당은 좋은 사례일 것이다. 생태당이든, 지대당이든, 금융거래세당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증세운동과 기본소득을 연결시키는 대중적 운동이 필요하다.

    둘째, 노동사회 재편과 기본소득의 연관성의 문제이다. 기본소득 진영은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 완전고용이 끝난 신자유주의 시대, 그 대안으로서의 기본소득을 설정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노동시간의 양극화를 통해 실업과 불안정노동을 양산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 노동시간의 양극화는 심각하다. 한국 노동자의 2008년 연 평균 근로시간은 2,256시간으로 OECD 평균(1,764시간)의 1.3배에 이르며 2,000시간 이상 일하는 국가는 우리나라와 그리스(2,120시간)뿐이다.

    한국의 금속 노동자들은 12시간 맞교대에 연간 3,000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들도 다수이다. 실업률은 어떠한가? 그리스 청년 실업률은 50%를 넘어서고, 유럽도 20%를 상회한다. 한국의 청년실업률도 실질적으로는 20%를 상회한다.

    기본소득 진영의 논자들은 “불안정노동사회를 해소하려면 노동시간 단축으로 총노동을 재분배해야 하는데, 기본소득은 생활수준 하락 없이 시간 단축을 가능하게 해 준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우리 사회 노동 개혁의 핵심 과제인 노동시간 단축과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개혁 과제조차 기본소득 도입 이후로 미뤄놓고 있는 것이다.

    현재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창출은 한국 사회 누구도 명시적으로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본과 노동, 그리고 노동진영 내부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수박 겉핥기식으로 거론되고 있을 뿐, 구체적 실현의지를 가진 단위는 없다.

    가장 진취적인 이슈를 내걸고 있는 기본소득 진영조차 임금 문제에 얽매여 노동시간 단축을 기본소득 도입 이후로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실질적인 주 40시간대의 실현과 이를 통한 장시간노동과 저임금의 고리를 끊지 못한다면 점진적 복지국가 건설조차 요원하며 기본소득은 노동사회 재편의 핵이 아니라, 빈곤 구체책으로 전락할 소지가 다분하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는 노동자의 이해와 직결되어 있다. 한국의 노동운동 세력은 그 고리를 스스로 끊을 수 없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운동진영에 맡길 일도, 기본소득 도입 이후로 미룰 일도 아니다.

    실업을 몸소 겪고 있고, 나쁜 일자리를 맴도는 당사자들이, 현 시점에서 가장 선진적인 이슈를 던지고 있는 기본소득 진영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공유”를 노동운동을 향해, 정권을 향해 요구해야 할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은 모든 당의 총선 공약에 단골 메뉴로 들어가 있다. 하지만 실질적 방안, 특히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창출을 연계시키는 안들은 어느 당의 공약에도 없다.

    기본소득 진영은 노동시간의 극단적 양극화를 방기한 채, 임금노동이 아닌, 일, 활동에 대한 소득을 주장하거나 노동시간 단축을 기본소득 도입 이후로 미루는 안이한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공유가 기본소득 운동의 과제가 될 때, 기본소득 운동은 비로소 현실에 발을 딛게 될 것이다.

    한국적 현실에서 신자유주의 시대의 대안은 덴마크·네덜란드 등의 노동유연성 안정 모델, 복지국가 모델, 기본소득 등 다양할 수 있다. 노동유연 안정 모델을 포함하여 복지국가 모델은 노동연계복지라는 면에서 자본주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노동력의 탈상품화, 자본주의적 노동이 아닌 ‘일’, ‘활동’ 등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라는 측면에서 자본주의 너머를 상상하게 한다. 그러나 복지국가나 기본소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과제들이 있다. 바로 재정 마련과 노동시간 단축과 이를 통한 좋은 일자리 공유 등이 바로 그것이다.

    기본소득 진영은 노동사회 재편을 위한 주 30시간대 실현,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라는 과제와 기본소득의 결합을 위한 운동에 돌입해야 한다. 그리고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향해 실질적 주 40시간제 쟁취와 일자리 창출을 요구함으로써 노동운동의 개혁을 강제해야 한다.

    이제 기본소득은 이 사회의 개혁적 과제들을 떠안는 운동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럴 때만이 지금과 같은 순진하고 반복적인 지루한 운동을 탈피해서 변혁의 역동성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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