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 vs 민노 '만경대 전쟁'
        2009년 01월 08일 10: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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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만경대 방문이 서울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는 소식은 북경에 있는 연합뉴스 특파원과의 전화 통화로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왜 만경대 방문을 브리핑에서 제외하였느냐 하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었다.

       
      ▲조선중앙TV로 공개된 민노당 방북단 만경대 방문.

    만경대는 김일성 주석의 생가로 북에서는 일종의 주요 방문지이자 사실상의 관광지이다. 당국에서 정해 놓은 이른바 방문불허 지역에도 들어 있지 않은 곳인데, 이른바 강정구 교수의 ‘만경대 사건’ 이후엔 그곳이 뭔가 대단한 곳인 양 여겨지던 때라서 일일브리핑에서 방문 일정을 뺀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처음엔 별것 가지고 다 시비라면서 웃고 말았다. 아니 그럼 평양 와서 개고기 먹은 것도 브리핑 해야 한다는 것이냐며 웃기도 했다.(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평양단고기집’의 음식맛은 가히 천하제일이었다. 서울의 민중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가 있었다면 아마도 만경대 방문보다는 단고기 맛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우익 데모단의 요란한 환영행사

    그런데 막상 북으로 돌아가라고 계란을 투척해대는 우익 데모단의 요란한 환영행사를 받으며 인청공항에 들어섰을 때 정호진 부대변인의 얼굴을 보고는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겠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나에게 인천공한 귀빈실에게 진행될 도착 기자간담회의 준비상황, 그동안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보고하는 얼굴을 보니 피곤함에 찌들어 있었다. 겨우 일주일만에 살이 쏙 빠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겪었을 한나라당의 파상공세가 짐작되었다.

       
      ▲인천공항에서 민노 방북단을 맞는 우익 단체들.

    기자 간담회 예상 질문을 추려주면서 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분위기였다는 점도 말해주었다. 그냥 별로 중요한 일정이 아니라서 브리핑에서 뺐다고 말하는 정도에서 막아질 일이 아니었다.

    최선의 방어는 최선의 공격이다라는 격언을 떠올렸다. 이번 기회에 걸핏하면 색깔론을 들이대는 한나라당의 못된 버릇을 고쳐줄 할 방법을 찾아야했다

    도착한 다음날 나는 “박근혜 전 대표, 만경대와 주체사상탑에 다녀왔나?”라는 제목의 논평을 발표하면서 한나라당에 대한 반격에 나섰다.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의 공수(攻守) 역할이 바뀌는 신호탄이었다.

    박근혜 대표는 2002년 북의 김정일 위원장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하고 김정일 위원장과 환담을 나누는 등 공식일정을 소화한 뒤 판문점을 통해 귀국했다. 당시 한나라당을 탈당 미래연합이라는 신당의 대표로 있던 박 대표이기 때문에 정치적 비중은 적었지만 박정희와 김일성이라는 사람들의 자녀들이 만난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의 관심을 끌었던 만남이었다.

    박근혜 공격으로 공수 역할 교체

    대변인실은 일단 그때를 떠올렸다. 평양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보는 곳이 바로 만경대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그곳에 가지 않았을 리가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우리는 그의 평양 방문과 관련되 기사와 보도 등을 전부 뒤지기 시작했다.

    대표단의 평양방문이 진행되는 동안 이영순 원내공보 부대표가 이미 박근혜 대표의 만경대 방문 의혹을 제기했지만 우리는 좀더 분명한 팩트와 정치적 태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대변인실에서 부대변인으로 활약하던 황선 부대변인의 자신만만한 태도도 우리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가 누구인가? 한총련의 대표로 방북해 꽤 오랜 기간 평양에 머물렀으며 그 뒤 6.15 선언 이후 평양방문 길에 아이를 낳아 세간에 화제를 낳았던 인물이다. 우리 중에 단연 가장 뛰어난 나름 ‘평양통’인만큼 북의 분위기와 상황을 잘 아는 사람도 없었다.

    황선 부대변인은 조금의 의심도 없이 ‘박근혜는 확실히 만경대에 갔다’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성과는 금방 나왔다. 박 전 대표가 방북과 관련해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했고 이 인터뷰를 바탕으로 기사가 작성된 기록을 찾은 것이다.

    우리는 만세를 불렀다. 한나라당은 이제 자기가 파놓은 ‘색깔론의 똥구덩이’에 전직 당대표를 밀어넣게 될 것이다.

    “오찬 뒤 `평양 8경’ 중 2경이 있는 모란봉과 김일성 주석 생가가 있는 만경대 관광길에 나섰다. 비는 계속 오고 있었다. 학생소년궁전도 관람했는데 어린이들이 많이 나와 환영했다.”(박근혜의 평양방문기 구술인터뷰 일부)

       
      ▲ 평양을 방문한 박근혜 전 대표

    그의 방문기중 이 두줄을 나는 백번도 더 반복해서 읽었던 것 같다. 한나라당과의 전쟁을 수행하려면 어차피 상대편의 수뇌부를 공격해야 했다. 박 전 대표의 이 방북기는 우리에게 한나라당을 궁지로 몰아 넣을 수 있는 최상의 카드였다.

    당황한 한나라당

    하지만 대변인실은 조심해서 접근하기로 했다. 우리가 ‘니네도 갔잖냐!’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마치 가지 말아야 할 곳에 우리도, 니네도 다녀왔으니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 식이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방문을 문제삼는 못된 색깔론이 문제이고 한나라당의 태도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방북과 관련해 ‘반북정서’에 불을 지르고 신나했던 한나라당을 곤경에 몰아넣고 우리가 코너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반격의 핵심이었다.

    첫 논평이 나간뒤 원하던 대로 한나라당은 완전히 당황하기 시작했다. 박근혜라고 하는 한나라당 내 최대 인물이 자신들이 저질러놓은 빨간 페인트 공격을 흠뻑 뒤집어 쓰게 생겼기 때문이다. 언론의 관심도 급속히 이동했다. 박근혜 대표 측이 만경대 방문을 부인할수록 언론은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전세는 뒤집혔다.

    한나라당의 당황은 그들의 긴 침묵으로 드러났다. 대변인, 수석부대변인, 통외통위 국회의원 등 한나라당이 총출동해 민주노동당을 공격하다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들은 한측으로는 휴전을, 한측에서는 법적 대응을 호언하며 나를 고발하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우리는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색깔론은 의외의 허를 찔리는 순간 ‘속수무책’이었고, 우리의 공격은 ‘자비’라는 단어를 잊었다.

    색깔론 저격수들 꼬리내리다

    한나라당은 ‘전쟁의 포커스’를 만경대에서 일심회 사건, 모당원의 밀입북사건 등으로 이동시키려고 했지만 우리는 한발 더 나가 당시 원내대표이던 김형오 현 국회의장과 당시 사무총장이었던 황우려 의원의 평양방문과 만경대 방문 사실 등에 대해 공개하면서 압박수위를 높여 나갔다. 게다가 황우려 사무총장은 색깔론 공세에 앞장서 있던 상황이었다.

    6.15 이후 남북관계가 급진전하면서 조성된 교류와 화해의 분위기에 뒤늦게 동참해 사진 한 장이라도 남겨놓는 행사에 얼굴 내밀기 바빴던 때의 행보가 한나라당의 본질과 충돌하는 순간이었다.

    뜻밖의 역공의 대상이 된 박근혜 전 대표는 인터넷기자 간담회에서 이와 관련된 질문이 쏟아지자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며 해서는 안될 비유를 들었다. 그는 만경대 방문 사실은 부인했지만 우리가 추가로 밝혀낸 ‘주체사상탑’ 방문사실에 대해서는 "주체사상탑은 63빌딩같은 관광지이고 전망대이다."라고 한 것이다.

    아니, 북측이 ‘김일성 주석과 주체사상의 불멸의 업적을 기리 기념하기 위해 세운 주체사상탑’이 단순 전망대이면, 용인 민속촌 정도의 분위기만 남아있는 초가집 한 채 방문한 것을 가지고 난리치는 한나라당은 뭐란 말인가?

    박근혜의 당황과 색깔론 공격수들의 꼬리감추기 분위기 속에 한나라당은 ‘만경대 전면전’에서 퇴각했다. 민주노동당은 오히려 최고위원들까지 전면에 나서 한나라당을 공격하면서 분위기를 잡아나갔고, 평양방문 이후 보름만에 개성공단을 방문하면서 ‘평화정당’의 메시지를 구축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만경대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가능한 대북관련 행보였다.

    대변인실 팀워크의 개가

    만일 우리가 만경대 논란에 빠져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면 한나라당이 바라는대로 평양방문의 성과는 눈 녹듯 사라질 판이었고 개성방문 일정도 좌절될 수 있었다.

    새삼 느끼지만, ‘만경대 전쟁’의 승리가 가능했던 건 엄청난 분량의 기사를 검색하고 한나라당 의원들의 블로그나 미니 홈피에 올라 간 글까지 뒤지느라 고생한 대변인실 동지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늘 어려운 조건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그 당시에는 더 어려웠던 국면을 함께 돌파해준 정호진, 황선 두 대변인과 부성현 동지에게 이 지면을 통해 새삼 감사를 드린다. 지금 인터넷 포탈에서 ‘만경대 민주노동당’을 검색해보시라. 그때 이들의 노고가 어떻게 국면을 시시각각 변화시켜 나갔는지 한눈에 읽을 수 있을 것이다.

                                                      * * *

    <참고자료>

    11월 8일 대변인 브리핑 내용 중 일부

    ○ 만경대 방문 관련, 한나라당의 여전한 이중잣대

    북한을 다녀온 뒤 한나라당의 색깔공세에 맞서 민주노동당 대표단에서 전면전을 치르자는 결정이 있은지 4일째가 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민주노동당이 한나라당과 왜 정쟁하는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한나라당의 못된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 정쟁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나라당처럼 이중적 잣대가 아니라 팩트에 근거해서 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께서 어제 기자간담회에서 만경대에 가지 않았고 주체사상탑은 관광차 다녀왔다고 한다. 민주노동당에 대해 상당히 반박하는 내용이었다.

    만경대는 둘째 치더라도 북측이 “자주시대를 대표하는 지도사상인 주체사상을 창시하고 그 전면적 승리를 이룩한 김일성 주석의 불멸의 업적을 만대에 길이 칭송하기 위하여 세운 대기념비적 건축물"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그곳에 관광차 다녀왔다.

    이것이 민주노동당의 만경대 참관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해명하라는 것이 민주노동당의 입장이었다. 자신의 행보는 관광이고 민주노동당의 행보는 국가정체성에 큰 문제가 있다는 식의 한나라당의 입장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어 실망스럽다.

    우리는 첫째, 박근혜 전 대표가 언론사의 만경대 방문 보도 뒤 기사를 고치도록 요구했는지를 물었다. 둘째, 박 전 대표가 주체사상탑을 방문했는지를 물었다. 셋째, 대북특사를 자청한 박근혜와 반북 반통일 언사를 거듭하는 한나라당의 대선후보 박근혜 중 어느 쪽이 진짜 박근혜인지를 물었다. 이에 대해 박근혜 전 대표가 답변을 해야 한다.

    북한 방문이 많아 질수록 교류협력은 진전되고, 평화실현에 도움이 된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다. 통일부가 정해놓은 방문 금지구역은 오히려 철폐돼야 한다. 평화교류로 가는데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도 되고 김형오도 되는데 다른 사람이 가면 안 되는 이중적 태도를 가진 한나라당의 입장은 도대체 무엇인지 이걸 묻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되고 다른 사람이 가면 이적이 되는 현실을 묻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원하는 것은 방문지 논란이 아니다.

    김형오 대표 외에도 현직 당 지도부 중에서도 있고 평의원 중에서도 많이 있는 것으로 안다. 민주노동당이 이들을 다 공개하기 전에 한나라당이 고백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고, 이중잣대에 대해 공개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우리는 박근혜의 주장에 여전히 너무 많은 의구심을 갖고 있지만 진실은 너무 쉽고 어이없이 밝혀질 수 있음을 분명히 하겠다.

    또한 박근혜 전 대표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면 그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고, 거짓말로 밝혀진다면 그는 지금 너무 많은 곳에 빚을 지게 될 것이고, 이명박, 손학규와 같은 경쟁 후보에게 내부경선에서 좋은 논란거리를 남긴 것이 될 것이다.

    2006년 11월 8일 민주노동당 대변인 박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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