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양심 세력들이 힘 못쓰는 이유
    2009년 01월 08일 09: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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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와 비슷한 성격의 신문은 이스라엘에도 있습니다. <하아레츠> (Haaretz)라고 하여 가끔 좌파나 평화주의자 등 ‘이단아’들에게 발언권을 (제한적으로)주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약간 더 균형잡힌 어조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 Haaretz.com

유엔 학교에서 이스라엘군의 무차별적 포격이 수십 명의 아이와 어른 등 민간인들을 살육한 뒤에 과연 이번에 <하아레츠>가 뭐라 할까 궁금했는데 역시 논설 하나가 게재돼 있군요.

‘비극적 사건’ (수십 명 민간인의 도살)에 대한 2~3줄 정도의 언급을 한 뒤에 "하마스의 미사일 위협에 노출돼 있으면서도 괄목할 만한 냉정을 유지하는 이스라엘 국민"을 보다 길게 찬양한 뒤에 되도록이면 조기에, 적절한 시점에서 군사작전을 종료시켜 휴전 협상을 하자는 이야기를 아주 조심스럽게 꺼내는 것입니다.

희생자에게 용서를 비는 자세 따위는 당연히 없고 유일하게 ‘우리’, 즉 이스라엘 국민의 ‘국익’을 보다 훌륭하게 계산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는 듯한, 그러한 어조입니다. <하아레츠>는 이스라엘에서 ‘좌파’로 통하는 신문입니다. 

우파신문인 <제룻살렘 포스트>로 들어가면 ‘쓰러진 우리 영웅들'(이스라엘의 전몰 군인)에 대한 찬가와 함께 ‘팔레스타인 문제의 궁극적 해결’을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는 구역들을 이스라엘의 ‘친구’ 격인 요르단과 이집트 정권의 관할에 맡김으로써 팔레스타인 아랍인 국가 건설의 가능성을 영원히 봉쇄하자는 ‘실용적인 제안‘들만 보입니다. 그게 ‘민주국가 이스라엘’에서 허용되어지는 ‘여론의 다양성’ 수준입니다.

이스라엘 여론의 수준

이스라엘이라고 해서 당연히 양심 세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세력이 전혀 없는 사회라고는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태평양 전쟁 와중에서도 예컨대 일본제국의 감옥에서 병역과 전쟁을 거부한 수백 명의 공산주의자와 여호와 증인 등이 옥고를 치르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스라엘이라고 해서 계급 갈등이 없는 것도 당연히 아닙니다. 원래 이스라엘 건국 이후에 사민주의적 성향의 ‘마파이’당이 집권해 왔는데 그 정책으로 초기의 이스라엘은 대표적 국가 자본주의적 경향의 복지사회로 틀이 잡힌 것입니다.

그런데 1980년대말 이후의 신자유주의로 전환돼 지금으로서 전체 인구의 약 24%가 빈민이 된 것입니다. 이건 지금 대한민국의 수준보다 약간 심각한 상황이니 여러분들은 아마도 쉽게 상상이 갈 것이죠. 뭐, 전체 아동 중의 약 삼분의 일이 충분히 음식을 먹지 못한다 하니 민간인 맹공을 이렇게도 잘하는 신자유주의 국가 이스라엘이 정작 자신의 국민을 먹여살리는 일은 제대로 못한다고 봐야 합니다.

양심세력도, 계급갈등도 다 있는 나라가 이스라엘인데, 이 나라의 대표적인 반전, 평화, 아랍인과의 연대 지향의 양심세력 – 예컨대 구 공산당을 포함하고 있는 카다쉬당 – 들이 별로 힘을 못 쓰고 있는 것은 오늘날의 실정입니다.

양심세력들이 힘을 못 쓰는 이유

제가 그나마 연대를 할 수 있다 싶은 카다쉬당은 전체 국회 120석 중의 3석만 차지하고 있어 그 영향력은 아마도 한국의 민노당 정도 될 것인데, 거기에서 다수의 당원과 지지자들은 유대인이 아닌 아랍계 이스라엘 국민들입니다. 유대인으로서 카다쉬당에 입당하면 완전한 ‘왕따’가 되는 걸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지요.

심지어 한국보다 더 엄격한 징병제 국가 이스라엘인데도, 카다쉬당 당원들을 군대에서 받아주지 않고 특례 공공복무로 강제적으로 보내버리는 경우가 있다던데, "이 정도 빨갱이라면 총을 맡길 수 없다"는 이야기지요. 거의 ‘비국민’ 가까운 대우를 받습니다.

빈부 격차가 거의 한국 수준이고, 노동계급의 빈곤화도 거의 한국식으로 진행되는, 추악한 반(反)노동 사회인데도, 왜 절대 다수 유대인 노동자들이 카다쉬당과 같은 진정한 – 평화주의적이며 반(反)시온주의적 – 좌파를 외면하고 있나요? 왜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시체 사진을 봐도 "우리 군의 성공을 축하한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하나요?

이유는 아주 쉽습니다. 이스라엘은 근본적으로 민족주의자들이 힘으로 남의 땅을 빼앗아 만든 정착민 사회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정상적인 (즉, 반(反)민족주의적인) 유대인 좌파들, 예컨대 분드(Bund)당과 같은 급진 사민주의자들은 차라리 – 레닌의 사형제 복원과 비밀 경찰제도 부활에 매우 비판적이었지만 – 러시아 볼셰비키들과 연대하면 하지 시온주의자들과는 절대 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 만큼 ‘팔레스타인 빼앗기 프로젝트’ 자체는 유대인 좌파들에게 비난과 경멸의 대상이었지요. 이스라엘 초기의 집권당인 ‘마파이당’은 1930년대의 유대인 좌파 사회에서 ‘좌파’로 인정되지 않는, 국가/국민주의를 인정하고 들어간 ‘극도로 기회주의적인 우파 사민주의자’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뭐, 요즘 주대환 님께서 대한민국을 인정하자 하시니 저는 유대인 민족 국가를 만들자는 (그 당시 소수의) 우파와 폴란드나 러시아, 헝가리 등에서 살면서 사회주의를 위해 이민족들과 함께 손잡아 투쟁하자는 좌파들의 1930년대의 논쟁을 회상합니다.

제2차대전 이후, 시온주의를 견제할 좌파세력 사라져

문제는, 히틀러와 스탈린이 분드 등을 다 도살하고 중앙, 동유럽 유대인 사회가 제2차대전 이후에 초토화된 뒤에 시온주의자들을 견제할 만한 세력이 거의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공산당을 오랫동안 이끌어온 메일 빌네르 동지 같은 분들이야 전전 유대인 사회 좌파의 마지막 양심을 지키긴 했어요. 우파들의 ‘식칼 테러’를 당하면서도요.

빌네르 동지가 한번 그랬지요. "1930년대의 빌뉴스에서 반유대주의자들이 유대인을 대하는 방식으로 지금 이스라엘 사회가 아랍인을 대하고 있다"고요. 그런데 그의 당에서 다수의 당원들은 역시 이스라엘 국적의 아랍인이었어요.

견제 받지 않은 각종의 우파(사이비 ‘사회주의자’들과 파쇼적인 극우 분자 등)가 이스라엘을 무력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아랍인들의 인권을 유린하면서 무력으로 그 국가를 유지시키고 있는 것이지요.

조지 오웰 <1984년>의 명언이 있잖아요 – "전쟁은 곧 평화다"? 그게 이스라엘의 일상입니다. 거기에서 군대는 학교 이상의 더 중요한 사회화기관이고, 국사는 바로 전쟁의 역사고, ‘초비상 상태’는 끝나지 않습니다. 군사화 정도로 봐서는, 차라리 대한민국도 아니고 아예 북한의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전쟁은 곧 평화?

‘선군형 군사 독재’인 북한에서는 ‘재야’란 아예 있을 수 없지만, ‘군사 민주주의 국가’ 이스라엘에서는 약간의 이단아들이 있어도 영향력은 미미합니다. ‘군사 민주주의’라는 괴이한 사회정치 형태의 태생적 한계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 ‘혈맹 이상의 혈맹’ 미국의 원조 덕이기도 하지만 – 이스라엘의 유대인 정착민은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이웃 요르단, 이집트보다 약 3배 높은 1인당 국민 소득을 누립니다. 이스라엘 기준으로 봐서 가난하다 해도 중동의 통상적 기준으로는 ‘중산층’에 가깝다는 것이지요.

즉, 중동 전체의 차원에서는 이스라엘 유대인 집단 전체는 일종의 ‘기득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이스라엘 양심 세력들이 과연 힘을 쉽게 쓰겠어요?

이스라엘의 극소수의 양심세력들을 당연히 지원하고, 연대해야 하지만, 그들이 ‘군사적 민주주의 국가’를 지금 상태에서 정상화시킬 수 없다는 현실도 직시해야 합니다. 아랍민중들이 이스라엘에 무력적으로 결정타를 먹히든지, 이스라엘의 후견국인 미국의 영향력이 크게 약화돼 이스라엘 지배층이 아랍인들과의 화해 모색으로 진정으로 들어가든지 그렇게 되지 않는 이상 문제의 해결이 없을 듯합니다.

계급갈등의 일차성과 피지배계급의 국제주의적 지향은 역사의 보편이라 할 수도 있지만 지배계급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헤게모니가 거의 절대화되는 특수상황에서는 이 보편적 법칙은 적용되지 못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바로 그러한 특수한 케이스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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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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