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권 색깔만 다른 게 아닙니다"
    성모없는 성모병원서 흐르는 눈물
    By mywank
        2009년 01월 05일 10: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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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성모병원에 ‘성모’는 없는 것 같다. 반 세기 전 미국의 흑백 차별 못지 않은 ‘차별’만 횡행한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식권 색깔까지 다르게 해 사람들을 경악케 한 이 곳에 성모가 발디딜 곳은 없다. 만약 있다면 그건 ‘성모의 눈물’일 것 같다.  

    차별과 배제의 결과인 ‘계약해지’로 해고된 파견노동자들의 삶을 위한 전쟁터인 이 곳에서 그들은 자본의 냉혹한 논리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 지난 해 9월 30일 계약해지된 이 병원 파견노동자들은  5일에도 병원 본관 로비에서 피켓팅을 하고 있었다. 

    성모의 눈물과 파견노동자들의 투쟁

    이들에겐 새로운 해가 아직 오지 않았으며, 고통스런 싸움의 시간만 이어지고 있을 따름이었다. 피켓에 적힌 글귀들은 이들이 처한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용역깡패, 구사대동원, 고소고발, 가처분, 감시사찰-노동탄압집합소’
    ‘열심히 2년을 일한 게 죄입니까. 우리도 한 직장에서 정년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병원 로비에서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는 강남성모병원 파견노동자들 (사진=손기영 기자) 

    투쟁 111일째. 하지만 병원에서 이들이 있을 공간은 없다. 병원 밖 천막농성장이 지난 11월 강제 철거된 이후로, 지난해 12월 초에는 2~3평 남짓 마련한 로비 농성장마저 빼앗겼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슬픈 일은 정규직 노조로부터 받은 배신감이다. 지난해 12월 26일에는 강남성모병원 정규직지부는 지부 사무실에 있던 이들의 투쟁물품을 모두 치워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반발하자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들이 물품들을 직접 들어냈을 때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이들은 말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식권 색깔을 달리하는 발상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5일 오후 피켓농성을 마치고 본관 로비에 있던 작은 벤치에 앉은 강남성모병원 파견노동자들은 "이제 병원에서 우리가 있을 수 있는 공간은 여기 밖에 없다"고 말문을 연 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은 강남성모병원 파견노동자들과 나눈 대화 전문.

                                                      * * *

    – 연말연시의 분위기와 ‘MB 악법’ 논란 등 굵직한 이슈들 때문에 비정규직 문제가 관심 밖인 것 같은데.

    조현숙 = 지금 때가 때인 만큼, 그럴 수도 있겠죠. 국회 쪽이 바쁘니까 그럴 수도 있겠죠.

    홍희자 = 빡세게 싸웠어야 하는데, 솔직히 그동안 저희가 ‘빡센 투쟁’은 하지 못했잖아요. 약해서는 안 되는 것 같아요.

       
      ▲로비 한편에 오세훈 시장이 강남성모병원에 수여한 표창장이 걸려있었다 (사진=손기영 기자) 

    이영미(조합원 대표) = 언론에서 기사가 될 만한 것, 사진이 될만한 것만 찾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건 당연한 현실이잖아요. 그래서 소수가 힘들게 싸우고 있는 비정규 사업장들은 언론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고공에도 올라가고 단식투쟁도 벌이는 것 같아요. 제가 기자라면 저도 그랬을 것 같아요.(웃음)

    홍석 = 저는 솔직히 아쉬운 마음이 들어요. 사람의 욕심은 끝도 없기는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은 절실하기 때문에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다행히 연말연시에 연대하는 분들은 꾸준히 찾아주신 것 같아요.

    김세영 = ‘MB 악법’ 문제는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비정규직인 우리에게도 분명히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기 때문에 현장에 가서 같이 가서 싸우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그래도 지난 해 12월 24일과 30일 촛불문화제 때 병원에 정말 많은 분들이 오셨어요.

    박정화 = 맞아요. 투쟁 100일을 하루 앞둔 지난 24일 저녁 병원에서 ‘100일 촛불문화제’를 열었어요. 세상의 모든 사람이 들뜨는 날인데, 많은 시민들이 동참해주셨어요. 그만큼 오실지 정말 몰랐어요.”

    – 오늘로써 투쟁 111일째다. 100일 넘긴 소회는?

    박종묵 = 이제 실직적인 생계 문제가 직면한 것 같아요. 병원 측에서 우리와 대화할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이제는 교섭하는 것을 떠나서 그냥 인간적으로라도 한번 만나고 싶어요.

       
      ▲중앙의료원 소식지를 보고 있는 홍희자 조합원(왼쪽)과 박정화 조합원 (사진=손기영 기자) 

    조현숙 = 이제 근로소득세를 안내도 돼요. 그리고 실업급여를 신청했다는 점들이 100일이 지나니까 문뜩 떠오르네요.(웃음)

    박정화 = 100일 전에 이 투쟁이 끝내기를 원했는데, 아직 병원 측에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니까 정말 답답하네요.

    홍희자 = 특히 12월은 정말 빡세게 싸우려고 했는데, 원하던 대로 진행하지 못한 것 같아요. 보건의료노조의 요구를 수용하는 바람에…. 그런 상태에서 100일을 맞았어요.”

    조현숙 = 투쟁이 길어지면서 병원 측과의 갈등뿐만 아니라, 정규직지부, 보건의료노조 등 노조 내의 갈등도 생겨났어요. 예기치 않는 갈등들이었죠.”

    – 정규직지부와 보건의료노조와 왜 갈등이 생겼나?

    홍희자 = 보건의료노조는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강남성모병원 정규직지부가 교섭을 대신해줄 테니 투쟁을 자제해 달라’, ‘12월 20일까지 교섭으로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정규직지부도 함께 싸우겠다’고 저희에게 약속했죠.

    조현숙 = 하지만 지난해 12월 24일 ‘100일 문화제’가 열릴 때, 병원에서는 성탄미사가 있었어요. 그런데 보건의료노조에서 우리 촛불문화제가 병원 미사 시간과 겹치면, 12월 26일 예정된 병원 정규직지부 본교섭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일정이나 장소 문제를 조정해달라고 했죠.

       
      ▲박종묵 조합원(왼쪽) 농성에 동참한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홍희자 = 또 25일 명동성당 앞 기자회견과 선전전에서도 보건의료노조의 이름을 내걸지 말라고 요구했죠. 그리고 당초 기자회견에 참석하겠다는 말과 다르게, 보건의료노조 쪽에 아무 분들도 오시지 않았어요.

    박정화 = 우리는 보건의료노조에 완전히 배신당한 거예요. 또 지난해 12월 26일 병원 측과의 교섭이 이뤄지지 못하자, 정규직지부는 ‘이날 오후 5시까지 정규직 사무실에 있는 저희들의 짐을 빼라’고 했어요. 이것은 단순한 짐의 문제라 아니라, 우리와 담을 쌓겠다는 이야기나 다름없어요. 하지만 아직 정규직지부 조합원들 중에 우리의 투쟁을 지지하는 분들도 계신 것 같아요.

    홍희자 = 지난해 12월 26일 교섭이 비정규직들 때문에 이뤄지지 않았다고 핑계를 대는 것 같아요. 정규직지부의 요구에 못 이겨서인지, 결국 12월 29일 새벽에 보건의료노조 본부와 서울본부 소속 간부들이 트럭을 몰고 와서, 병원 정규직지부 사무실에 있던 저희 짐을 모두 뺐어요.”

    박정화 = 보건의료노조가 정규직지부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아요. 정규직 지부는 병원 측의 눈치를 보는 것 같고요. 제일 힘이 없는 것은 우리인데, 우리는 아무 눈치도 보지는 않잖아요. 우리는 다 똑같은 보건의료노조 조합원이에요.

       
      ▲김세영 조합원(사진=손기영 기자) 

    조현숙 = 자기들만 살겠다고 말하면, 솔직한 거예요. 자기네 밥 그릇 챙기는 거잖아요. 자기들은 밥그릇이 줄어들지 몰라도, 우리는 먹을 밥그릇조차 아예 없어요.”

    홍석 = 심지어 함께 농성장에서 투쟁했던 보건의료노조 서울지부의 한 간부가 제게 연락을 해서 ‘같이 짐을 같이 빼자’는 말도 했어요. 전화를 받고 정말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죠.

    지금 병원의 횡포에 맞서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힘을 합쳐서 투쟁을 해도 모자란 판에, 정규직지부가 저희들의 짐을 빼는 것은 병원 측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려는 것으로밖에 설명이 안 돼요.

    박정화 = 요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분들이 병원에 와서 1인 시위를 하시는데, 피켓을 보관할 자리도 없어요. 그래서 피켓을 조합원들의 집에 가져가곤 하죠. 노조에서 쫓겨나니까 우리가 있을 곳은 없는 것 같아요. 당장 투쟁속보도 복사해야 하는데….

    조현숙 = 우리가 이런 일을 당했지만, 보건의료노조를 탈퇴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아요. 노조가 그동안 워낙 정규직 중심으로 운영되다보니 비정규직 투쟁도 처음이고 방법도 잘 찾지 못한 것 같아요. 아직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어요. 우리가 떠밀어서라도 함께 가겠어요. 앞으로는 잘하겠죠.

    – 식권 색깔이 다르다고 하던데.

    김세영 = 정규직들은 식권을 식당에서 마음대로 살 수 있는데, 비정규직들은 업체에 일괄적으로 신청해, 업체 관계자로부터 일정량을 지급 받죠. 식권을 나눠줄 때 못 받으면 인사팀에 사인을 하고 수령해야 하죠. 정규직 식권은 주황색이고 비정규직 식권 노란색이에요. 이전에는 모두 분홍색이었는데….

       
      ▲정규직 직원용 식권(위쪽)과 비정규직 직원들의 식권 (사진=손기영 기자)

    어떤 비정규 직원은 비정규직용 식권을 보고, "차라리 밥을 안 먹겠다"는 이야기도 했어요. 한 달에 한 번 씩 배급받는 기분이 좋지 않다는 이유였죠. 정규직에는 나름 자부심이 될지 모르지만 비정규직들에게는 서글픈 일이에요. 이 병원 직원이 아니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인식시키기 위해 정규직들과 식권도 달리한 것 같아요.

    박정화 = 정규직용 식권과 비정규직용 식권의 색깔만 다른 게 아녜요. 정규직용 식권에는 ‘즐거운 식사시간 되세요’라는 문구가 들어있는데, 비정규용 식권에는 ‘타인 및 다른용도로 사용불가’라는 문구가 들어있죠. 비정규직은 즐겁게 식사하면 안 돼나요.”

    박종묵 = “어떻게 보면 사소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일종의 탄압인 것 같아요. 식권구매 자체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줄을 서서 식권을 배급받는 기분은 정말 상상하기도 싫어요. 우리보고 단식하라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조현숙 = 또 업체에서는 그 식권비용도 몇 푼 안 되는 비정규직들의 월급에서 공제하겠다고 하죠. 먹는 것 가지고 치사하게….

    한편 이들의 정규직지부에 대한 비판과 섭섭함을 토로한 것과 관련해 지부의 한 관계자는 “저희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고, 욕을 먹을 각오로 이런 결정을 내렸다”며 “이에 대해 지금 저희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논쟁거리로 밖에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 보건의료노조 서울지부의 한 간부는 “당시 노조 차원에서 짐을 빼지 않았으면, 정규직지부에서 나서서 뺐을 것”이라며 “이럴 경우 병원 측에서 나와 이를 보고 조치를 취했을 텐데, 양 측간에 예기치 않은 충돌을 막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사실 옳은 결정은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나중에 다시 강남성모병원 파견노동자들의 짐을 정규직지부 사무실로 보냈지만, 정규직지부가 이를 받아들이기 거부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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