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싸움 국회를 고무 찬양함
        2009년 01월 05일 08: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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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초부터 삼국지, 무협지보다 재밌는 국회 활극이 재현되었다. 1월 2일, 국회경위 80명은 국회의장의 지시를 받아 국회본회의장 앞의 민주당 의원, 보좌진, 당직자들을 해산시키기 위한 강제 진압을 실시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민주당의원은 80명이다. 각 의원실에 딸린 공식 보좌진만 500명이 넘는다. 그 외 교섭단체로써 국회 본청 안에 배치할 수 있는 전문위원 등 당직자들을 생각하면 그 숫자는 훨씬 더 늘어난다.

    이상한 활극

    이를 겨우 국회 경위 80명이 해산시킬 수 있을까? 어차피 안되는 작전이었던 것이다. 그럼 김형오는 왜? 어차피 안 될 줄 알면서 소위 ‘진압’을 개시 한 것일까? 예나 지금이나 정치의 핵심 요체는 ‘핑계’에 있다. ‘핑계거리’만 확실하면 여타의 정치적 행동도 별로 부담이 없다.

       
      ▲ 김형오 국회의장이 4일 오후 2시반께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의장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미디어오늘)

    김형오 의장은 ‘직권상정’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었지만, 이를 단순히 거부했을 경우 한나라당 당내 강경파로부터 공격받을 가능성 있었다. 그런데 사실 직권 상정을 한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다한들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국회본회의장을 탈환하지 못하면 결국 법안 통과는 요원해진다. 직권상정 이후에도 여러 가지 난관이 남아있는 것이다.

    핑계정치학의 본질

    그리고 위에서 간단한 숫자 비교를 해 보았듯이 단순히 질서유지권 수준에서 국회 본회의장 탈환은 불가능하다. 국회 본회의장은 예전식으로 말하면 천혜의 요새(?) 쯤 된다. 국회 본회의장을 물리적으로 탈환 하려면 한나라당 의원 나리들이 직접 몸으로 뛰는, ‘몸 정치’를 해야 하고 그렇게 해도 탈환이 가능할지 의문시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장이 직권상정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 김형오는 무척 부담되었을 것이다.

    결국 김형오는 ‘의장이 직권상정을 해도 해결이 안 되는 상황이다.’라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 ‘어차피 실패할 작전’을 실시한 것이다. 이를 통해 거봐라 어차피 안되지 않느냐? 라고 한나라당 강경파를 상대로 핑계를 댈 수 있게 되었다. 상황을 한 단계 악화시켜서 뭔가 회피할 명분을 얻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김형오의 핑계정치학이 이번 국회 활극의 본질이었던 셈이다.

    2.

    그런데 이 대목에서 우리가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오늘의 국회가 ‘의회주의의 역동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왜 저 인간들은 저렇게 맨 날 싸우나?라고 욕한다지만 실제로 의원들 행동의 배경에 반드시 자신들의 정치적 지지 기반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 정당을 지지하는 국민이 있기 때문에 그 정당이 계속 존재하는 것이고, 그 정당이 존재하니까 그 의원이 존재하는 짜임새 속에서 단지 ‘국회의원들이 싸운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을 욕하는 것은 무조건 옳은 이야기는 아니다.

    "국회란 원래 싸우는 곳"

    우리는 오히려 ‘국회란 원래 싸우는 곳’이라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 사회의 모든 투쟁을 의회라는 특정 공간(그리고 시간)으로 최종 집결시켜서 거의 모든 사회모순을 의회 내부로 수렴시킨 합리적 제도가 바로 의회주의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 바라보고 있는 국회 활극은 그 ‘의회주의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야당 당직자로 보이는 한 남자가 국회 경위들에 의해 들려나가고 있다(사진=민주당)

    만약 국회에서 ‘실력 대결’이 없고 ‘표 대결’만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럴 경우 4년 내내 얼마나 심심한 정치판이 되겠는가? 국회에서 토론이고 뭐고 할 필요도 별로 없다. 어차피 다수당이 정해져 있는 것이니 그냥 한나라당 뜻대로 4년간 하면 된다.

    과반에 못 미치는 야당의 존재로도 저항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수단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국회를 단순히 표대결이나 하는 형식적 공간으로 이해하지 않고 논리전, 심리전, 뿐 아니라 물리전 까지 수행할 수 있는 풍부한 정치투쟁의 공간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표 대결만 있다면?

    우리는, 전기톱의 등장에서부터 대규모 집단 난투극의 과정을 거치면서 ‘국회 경위 숫자만큼의 의석수를 가진 정당’이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할만한 명분’을 갖게 될 경우 아무리 거대 여당이라도 ‘맘대로 입법’을 추진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게 될 것이다.

    예전에는 코미디언들이 몸 개그를 하면 욕하는 풍토가 있었으나 요즘은 그렇지 않다. 말 개그를 하건 몸 개그를 하건 웃기기만 하면 된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정치는 원래 80%를 입으로 하는 것이지만, 가끔 몸 정치를 하는 것도 나쁜 일이 아니다.

    의회주의는 국회라는 공간, 회기라는 시간 그리고 법률이라는 문서. 그렇게 3위가 맞아 떨어져야 결과가 나오는 시스템이다. 바로 이 때문에 의회주의의 역동성이 더 현실화된다. 즉 의회란 단순히 ‘표’의 대결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형식적이고 건조한 공간이 아니다.

    물론 공산당 1당 체제에서 매우 형식적인 의회가 있기는 하지만, 세력 간 역학관계를 그대로 반영해 구성된 의회는 역동적 성격을 띨 수 밖에 없다. 하부의 세력관계가 변함에 따라 실시간으로 그 상부에 구성된 의회 내부의 역학관계도 변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어떻게 더 의회주의의 역동성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지난번 쇠고기 사건 때처럼, 특정 사안에 대해 2만명 이상의 국민이 동의하면 임기 6개월짜리 임시직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방법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국회를 단지 4년에 1번 구성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국회 앞 광장을 일종의 장외 국회로 개방할 필요도 있다. 지금은 철통 경비를 하고 있는 국회 앞의 그 넓은 잔디밭을 민주광장으로 개방해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발언하고 집회할 수 있게 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진정으로 국회는 정치의 전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국회를 단순히 4년에 한번 뽑는 의원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좀 더 실질적인 사회 세력간 투쟁 수렴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그 구성을 좀 더 다양화하고 공간의 의미를 더 확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때로는 의회를 넘나들고 때로는 법을 넘나드는 이런 현상 일체가 ‘의회’를 전제로 한 것이다. 즉 이 모든 것이 역동적 의회주의의 실체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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