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담이거나 농락이거나
        2009년 01월 04일 09:4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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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연설에서 위기를 극복하고 ‘선진일류국가’를 위한 ‘중단 없는 개혁’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단호한 법치와 강력한 의식개혁을 주문했다. 의식개혁을 통해 도덕과 윤리 수준을 끌어올려 강한 나라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인성교육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 이명박 대통령 신년 국정 연설(사진=청와대)

    ‘인성교육(정직, 신뢰, 투명성, 공정성) -> 의식개혁 -> 강한 나라’라는 도식이다.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가 교육이라고도 강조했다. 교육개혁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반드시 이루어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신년연설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현 정부의 교육철학을 확고히 했다.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자율과 창의가 교육 현장에 넘쳐나도록 할 것입니다.”

    말은 좋다. 하지만 신년연설에서 밝힌 교육개혁의 내용은 기숙형 공립학교와 마이스터 고등학교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학생-학부모-학교-교사의 경쟁을 주문했다. 그것을 위해 학교정보공개와 교원평가제도를 뿌리내려 공교육을 변화시키겠다고 했다.

    안병만 교과부 장관은 신년사에서 지난해가 정부 정책의 기틀을 형성하는 해였다면 올해는 그 정책을 현장에 실현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정부가 올해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교육개혁을 감행할 것임을 밝힌 것이다.

    ‘어떤 어려움’이란 당연히 국민의 저항이 될 것이다. 국민이 무어라 해도 우린 갈 길을 가겠다? 새해엔 막 나가는 교육개혁을 보게 될 것 같다. 으스스하다. 

    한국을 약한 나라로 만들겠다?

    정부의 교육개혁은 인성교육을 파괴한다. 그러므로 대통령이 인성교육과 현 정부의 교육개혁을 연결한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교육개혁으로 대통령이 인성교육의 내용으로 제시한 ‘정직, 신뢰, 공정성’이 모두 교육현장에서 사라진다. 투명성은 강화될 수 있다.

    교과부 장관은 공교육 내실화 등을 위해 고교 다양화, 학교정보공시제, 학업성취도 평가를 시행하며 국민이 교육에서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것도 연결이 안 된다. 고교다양화 등 정책내용과 명분이 서로 모순된다.

    대통령이 말한 기숙형 공립학교와 마이스터 고등학교에 자사고를 더하면 교과부 장관이 말한 고교 다양화가 된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평준화 해체가 된다. 즉 입시경쟁의 심화다. 그러니까 정부는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셈이다.

    ‘인성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입시경쟁을 심화시키겠습니다.’

    이게 말인가? 일국의 대통령과 장관이 정초부터 국민을 농락하나? 학생과 학부모는 경쟁하고 있으므로, 학교와 교사를 더 경쟁시키기 위해 학교정보공개와 교원평가가 시행되고, 그것을 위해 학업성취도평가를 하게 되는데, 이건 결국 ‘학생-학부모-학교-교사‘를 통째로 시험지옥에 빠뜨리겠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인성교육으로 의식개혁을 하겠다? 한국인이 시험귀신으로 의식개조될 뿐이다.

    대통령은 ‘인성교육 -> 의식개혁 -> 강한 나라’를 제시했다. 하지만 정책은 입시교육이니 실제로는 이렇게 된다. ‘입시교육 -> 의식타락 -> 약한 나라’. 이게 대통령이 국민에게 제시할 비전인가? 

    투명성만 강화된다

    정직이란 가치는 당연히 무너진다. 정직은 노력한 만큼 정직하게 보상받는 환경에서 만들어진다. 꼼수가 통하는 세상에서 정직은 자라날 수 없다. 고교다양화와 경쟁체제로 강화되는 입시경쟁은 반드시 사교육비 경쟁으로 이어진다. 즉, 학생의 노력보다 부모의 돈이 더 중요한 환경을 만들게 된다. 돈으로 산 점수서열에 의해 학생서열이 갈리는 교육현장에서 정직이란 가치는 사라진다.

    신뢰나 공정성도 마찬가지의 운명에 처한다. 첫째, 돈으로 산 서열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둘째, 사교육 창궐에 따라 공교육에 대한 신뢰도 무너진다. 고교다양화 환경에서 일반학교는 고액 일류학교를 절대로 따라갈 수 없으므로 공정성은 근본적으로 거세된다.

    교과부 장관은 대학자율화도 공언했다. 대학이 자율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면 당연히 특목고, 자사고 등을 나온 학생들을 우대할 것이다. 강남부잣집 자식들이 우대받고, 강북, 지방의 아이들이 차별받는 구조에서 공정성? 소가 웃을 말이다.

    투명성만 강화된다. 고교다양화로 인해 학교서열이 투명하게 갈리고, 일제고사를 통해 학생서열이 투명하게 갈리고, 교원평가로 교사서열이 투명하게 갈린다. 그리하여 일류는 일류끼리 삼류를 삼류끼리 짝짓기가 이루어져, 국민의 신분이 투명하게 갈린다.

    조선시대처럼 ‘투명한 사회‘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반상이 투명하게 갈리고, 지위가 투명하게 세습됐던 사회로. 이제 학교 교복만 봐도 그 아이의 신분을 알아볼 수 있는 ’투명한 사회‘가 될 것이다. 이미 비평준화 지역은 그 투명성 때문에 아이들이 주눅이 들어, 낮은 서열의 학교 아이들은 교복을 기피한다고 한다.

    일류고등학교 졸업장이 그 사람의 신분을 투명하게 말해주는 사회, 예컨대 경기고 동창 지배체제로 돌아간다. 이런 나라가 선진일류국가? 정말로 소가 웃겠다.

    ‘공평한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며 소수만 가는 일류학교 만들고, ‘자율과 창의’가 넘치도록 ‘공교육을 내실화’한다며 입시경쟁을 강화한다. 농담 아니면 농락이다. 농락이면 분노할 일이고, 농담이면 웃을 기력도 없다. 이런 걸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하겠다고? 천지신명이 한국을 버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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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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