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의 음모 '스펙' 경쟁 무찌르자
        2009년 01월 01일 12:27 오후

    Print Friendly

    기축년의 새 아침이 밝았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어려운 한 해를 보내면서 새로운 한 해가 오기를 간절히 바랬는데, 살면서 이렇게까지 새로운 해가 오기를 바란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시간들 속에 사람들이 자기 맘대로 해를 정하고 달을 정한 것에 불과하지만, 또 사람들의 삶 역시 그러한 장치들에 의해서 움직이기 마련이다. 이러한 장치들을 문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소 뒷걸음에 쥐 잡는 해

    어쨌든 한 해가 다 가고 연말이 되어서야 지난 해가 Year of the Rat, 쥐의 해였고, 새로 오는 해가 소의 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로 이사한 집이 쥐의 천국이라서, 연말에 고양이를 새로 들이는 둥, 쥐와 실랑이를 하다보니 이런 것이 다 새롭게 느껴졌다. 소의 기운이 쥐의 기운을 몰아내는 이 신년, 옛말처럼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격’ 같은 예기치 않은 행운이 서로들 덕담으로 오고간다.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은 아직 이름을 붙이지는 못한 12권짜리 한국경제에 관한 일련의 책의 1번 타자인 셈인데, 100개도 넘는 이름들 중에서 결국 최종으로 남은 이름이었다. 계수 조정을 하기 이전의 119만원 세대와 배틀로얄 세대가 마지막까지 경쟁하던 이름들이었다.

    가장 낮은 숫자로는 72만원 세대까지도 있었다. 이 이름과 관련해서 가장 피해를 받은 사람은, 내가 알기로는 20대 당사자 운동을 개척하고 있는 희망청이라는 곳의 활동가들이 상징적으로 88만원의 생계비를 받고 있는데, 이들이 가끔 조금 상향된 새 책을 써달라고 하기도 한다.

    어쨌든 72만원이든, 88만원이든 혹은 119만원이든, 이러한 수치는 상징적 수치들이며 동시에 미래형의 수치라는 점이다.

    조금 덜 받더라도 더 많은 자율적 삶을 살 수 있는 것들이 생태주의에서 일종의 미래 노동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한국은 아주 많이 받고 거의 자유가 없거나, 혹은 아주 조금 받고 ‘몸의 자유’가 사실상 사라진 저급한 노동에 시달리는, 그 두 가지 형태가 지배하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미래 노동의 모습

    시장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 가운데 하나라면 아주 많은 제도와 장치들로 제어하지 않았을 때, 이것이 지독할 정도로 비인간적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라는 경제에서 시장이 가장 극성에 달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북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고대 상업문명이 끝까지 갔을 때, 인간은 결국 사람도 상품으로 만들어서 이걸 사고 파는 노예 상인의 시대가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어쨌든 2009년은 2~3%를 제외한 많은 한국인들에게는 아주 괴로운 시대가 될 것 같은데, 특히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의 토호들은 물론 민주당의 호남 토호들까지 온통 ‘삽질’로 나서게 되면서 이 경제 위기의 진짜 클라이막스는 2009년 하반기 혹은 2010년 상반기에 걸쳐있지 않을까라는 게 내 조심스러운 전망이다. 그리고 이 시기, 특별히 20대를 위한 배려의 장치들을 만들지 않는다면 시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한중일이라는 극동의 세 나라의 분위기만 외형적으로 살펴보면, 일본이 가장 시끄럽고, 중국이 그 다음이고, 한국은 가장 조용한 것이 내가 살펴본 형국이다. 일본은 ‘격차사회’라는 말과 함께 신자유주의의 일본식 줄임말인 ‘네오 리베’가 이미 한참 유행 중인데, 여기에 ‘워킹 푸어’라는 단어가 한참 맹위를 떨치고, 지난 몇 달간 ‘파견 킬’이라는 살벌한 단어가 등장했다.

    토요타에서 수천 명의 파견 노동자에게 핸드폰으로 해고 조치를 알린 이후, ‘대면관계’에 익숙한 일본 사회가 들끓고 있다. 생각해보면 기륭전자를 비롯한 한국의 비정규직들의 해고는 통화가 아니라 핸드폰 문자 메시지로 전달되었는데, 이게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에 대해서 최소한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우리는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은 듯하다. 여기에 ‘길거리에 나선 30대’라는 표현으로, 30대 비정규직의 대량 해고 사태에 직면하면서 일본은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대결 국면으로 가는 중이다.

    중국의 경우는 ‘단절’이라는 표현에서 상위의 엘리트 집단이라고 분석되던 대학 졸업자들의 실업이 처음으로 발생하면서, 이 전대미문의 현상에 대해서 대처할 방법을 찾지 못하자 중국 사회가 술렁이는 중이다.

    한중일의 경우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이상한 고용통계가 아닌 약간 정석적인 방식으로 생각을 해보면, 한국의 상황이 훨씬 더 열악해보이는데, 기이할 정도로 침묵하고, 매스 미디어와 정치권에서 ‘하나마나한 소리’의 레토릭 장식품처럼 ‘청년 실업’이라는 말을 하는데, 그 대책으로 일부에서 대학생 자격고사 같은 것을 만들자고 하는 걸 보면서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시장에서 총공급과 총수요에서 문제가 생긴 것인데, 대학생 졸업자격을 국가가 부여하는 자격고사 같은 것을 만든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이제 대학생마저도 사교육 열풍에 밀어넣겠다는 ‘적들의 음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도 든다.

    요즘 내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정부 관료들이나 혹은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과 토론할 때 주로 하는 얘기가 있다. IMF 경제 위기 때, 어려웠지만 우리는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도입하면서 복지사회의 기반에 해당하는 인프라를 만들었었다. 이번 경제위기는 더 길고 추울 것이지만, 어쨌든 이 기회에 ‘사회적 일자리’와 함께 ‘사회적 경제’ 혹은 제3부문이나 제4부문을 본격적으로 형성해야 하지 않을까… 이건 나의 본심이다.

    최근 아주 공개적인 통계는 아니지만, 어느 정부연구원에서 추정한 게 있는데,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1% 정도의 생산을 하는데, 고용은 전체적으로 5% 정도를 차지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물론 여기에는 자활과 같이 ‘사회적 일자리’에 해당하는 것들, 이제 막 시작한 사회적 기업 그리고 생협과 같은 협동조합을 모두 포함한 수치이다. 노무현 시절에 이헌재 부총리가 농업을 해석하듯이 한다면, 5%나 되는 ‘시민’들이 1% 밖에 GDP에 기여하지 못하므로 이는 퇴출되어야 할 사람들이 될 것이다.

    물론 이걸 사회적 경제라는 눈으로 본다면, 단 1%의 돈만 가지고도 5%의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는 중이니까, 사회적 안정성에 대한 기여가 그만큼 높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만난 20대들

    최근 정부에서 시범사업격으로 실시하는 몇 개의 사회적 기업에 관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3년 정도를 지원해주고 여기에서 제시하는 임금은 76만원이었다. 서울에서 이 돈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분명히 도시 빈민임에 틀림이 없는데, 이 돈이라도 받고서 일을 하도록 해야하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이 금액을 높이도록 하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이명박 정부가 주는 돈, 아니 정부에서 주는 돈은 절대로 받을 수 없으므로 이러한 정부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열려있는데, 내 생각에는 일단은 그렇게 해서라도 대기업과 공공 부문의 두 축만이 ‘우아한 직업(decent job)’을 제공한다는 극도로 천박한 ‘개인적 해법’에 대한 다른 해법들을 찾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지난 3년간, 정말로 많은 20대들을 만났고, 아마 한중일의 20대라고 한다면, 내가 가장 많이 만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의 일부는 아주 힘 있는 부모들의 자제이고 컨설팅 회사나 로펌 같은 데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지방대학에 가느니, 차라리 집안 일이나 도우면서 살겠다고 근실한 결심을 했지만, 결국은 농촌의 ‘마을 형들’하고 천렵하고 술 마시면서 몇 년을 보냈다가 알콜중독이 심해져 있었다.

    이런 속에서 ’20대를 위한 우정과 환대의 공간’은 어떻게 열 것인가? 이런 고민들이 여전히 내 머리 속에서 정리되지 않고, 정돈되지 않은 상태로 펼쳐져 있다. 방향은 알겠는데, 답은 여전히 모호하다.

    우정과 환대의 공간

    대체적으로 정리해보면, 내가 만난 20대들의 일부는 ‘근자감’ 즉,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희망에 가득 차 있었고, 많은 20대들은 잔뜩 겁에 질려서, 졸업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불안해하고 있었다. 이번 학기 채점을 하면서 학생들이 왜 이렇게 줄었지라고 생각해보니까, 아닌 게 아니라 휴학생들이 부쩍 늘었다.

    자, 어쨌든 신년이 밝았다. 수년에 걸쳐 20대의 문제를 싫든 좋든, 연구목록의 하나로 넣을 수밖에 없던 나도, 주활동 무대를 금융경제연구소에서 연세대학교의 문화인류학과와 청년문화원으로 옮겼다. 비정규직 시간강사라는 나의 신분은 변함이 없다.

    두 과목을 맡으면 학기 중에 대체적으로 90만원 약간 넘는 돈을 받는다. 사람 값이 임금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은 경제적 원칙이겠지만, 아무리 자본주의라도 사회와 문화가 그렇게 기계적으로 ‘경제의 철의 법칙’을 따라 움직이지는 않는다.

    올해에는 나도 좀 정신을 차리고, 이제는 쥐의 해에 겪었던 어려움들은 좀 털어버리고 뭔가 좀 해볼 생각이다. 작년에 미루어두었던 ’20대 권리장전’도 정리를 좀 해보고, 20대 당사자 운동을 위한 세부 프로그램들도 이제 새로 생긴 20대 활동가들과 함께 정리해볼까 한다.

    프랑스의 학생 아파트 같은 것들은 방향도 선명하고, 상징성도 높아 보인다. 복지 특히 지역복지라는 눈으로 본다면, 어렵다고 해도 해볼 수 있는 것들이 아주 없지는 않다.

    다양안정성의 사회

    <레디앙>의 20대 독자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소의 해를 맞이해서, 내가 드릴 수 있는 신년사를 바치고 싶다. 작년에는 10대 좌파 소녀들에게 신년사를 바쳤다.

    20대 여러분, 어려운 건 알지만, 여러분 스스로도, 정말로 사람 한 점 한 점이 ‘우정과 환대의 공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점을 보아 하나의 면이 될 때, 다양하면서도 안정성이 있는 그 ‘다안성’의 한 점이 될 것이다. 작년에는 점을 놓기 위한 점바둑을 우리는 펼쳤던 것 같다. 올해는 그 점을 이어서 본격적인 포석을 두기 시작하는 한 해가 되면 좋겠다.

    신년, 부디 취업과 삶에 시달리는 많은 <레디앙> 독자들 여러분들의 삶에도 밝은 빛이 들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자본의 음모에 의해서 만들어진 스펙 경쟁부터, 올해는 무찌르자.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