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대 위원장은 왜 화를 냈을까?
        2008년 12월 31일 02:0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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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측 방문 일정은 우리 쪽의 입장을 정말 많이 배려한 것이었다. 처음에 포함되어 있었던 신천학살만행 기념관 방문 일정 등 민감한 부분에 대해 일정 조정을 요청하자 북측은 그렇게 하자고 했다. 남쪽의 민감한 분위기와 온갖 어려움을 뚫고 북에 온 민주노동당 대표단을 배려하고 있다는 평가였다.

    여러 방문지 중에 내 기억에 남는 방문지는 정성제약주식회사였다. 남쪽의 녹십자와 합작으로 세운 제약회사이어서 여러 가지 의미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그 제약회사의 운영으로 많은 이익을 내고 많은 약을 생산해 내고 있다며 자랑스럽게 우리를 안내한 그곳 담당자의 말이 인상 깊었다.

    방문을 마치고 버스에 올라타는 우리들에게 정성제약회사 측은 작은 쇼핑백 하나씩을 주었는데 회사의 홍보책자와 작은 약품 한 두개 씩이 들어 있었다.

    정성제약주식회사… 조선의 비아그라~ 청춘!!

    우리의 관심은 공장 안내 당시 회사 측이 자랑스럽게 그 약효를 자랑했던 ‘청춘’이라는 약이었다. ‘청춘’이라는 이름에서도 느껴지지만, 원앙새 한 쌍이 예쁘게 그려져 있는 철제 포장재에서도 그 약의 제조 목적을 훤하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약효였는데, 이미 버스에서부터 먹어봤다는 사람들이 나오면서 약효를 묻는 말에 조용히 엄지손가락만 올리는 것을 보고 분위기는 묘해졌다.

    보통 북에서 받은 선물은 필요한 사람에게 몰아주거나 하는 분위기였는데 이 약만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노회찬 의원이 ‘젊은이들에게 이 약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라며 장유유서 정신을 발휘하라고 젊은 실무진들에게 농담을 했을 때 권영길, 문성현 두 대표의 은근한 눈빛을 외면한 강력한 반발이 있었을 정도였다.

    이 “조선의 비아그라”(제약회사 안내원의 표현이었다)가 남쪽 방문단에게서도 확실한 약효를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은 방북 이후 한 방북단 실무진의 약에 대한 호평을 통해 잘 알 수 있겠다.

    “이 ‘청춘’이라는 약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민족이 힘을 합치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해낼 수 있는가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미제’보다 더 뛰어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남북교류의 계속된 확대 강화가 얼마나 필요한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때 그 ‘미제’가 美製인지, 美帝인지 모르겠지만 약효에 대한 확신만큼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 김영남 위원장(오른쪽)과 환담하는 문성현 대표

    평양방문 이틀째인 11월 1일 오전, 민주노동당 대표단은 조선사회민주당 대표단과 공식회담을 진행했다. 그런데 이날 회담에서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문성현 당대표가 회담 공식 제안문을 발표하던 중 김영대 위원장이 갑자기 긴급발언을 한 것이다.

    공식 회담 제안문 중 핵실험에 대한 유감 표현에 대한 것이다. 김영대 조선사회민주당 위원장이 강한 목소리로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김영대는 왜 화를 냈을까?

    “핵시험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얘기다. 핵실험은 북미대결에서 나온 것이다. 다른 곳을 겨냥하지 않는다.”

    회담장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 붙었다. 짧은 순간이지만 무거운 침묵이 양측에 감돌았다. 이 돌발 상황에 대해 모두가 당황해 했다. 상대편 대표가 공식 회담문을 낭독하고 있는 도중에 이런 식의 문제제기를 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외교적 ‘결례’이었거니와, 사실상 회담이 필요하지 않으니 돌아가라는 식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냉각된 분위기를 녹인 건 권영길 대표였다.

    “그래서 토론하자는 것 아니겠느냐? 제안문은 끝까지 다 들어보시라.”

    별 내용은 없는 발언이지만, 권영길 특유의 ‘어눌한 다독 화법’이 통했다. 북측은 아무런 반응없이 회담 제안문을 끝까지 다 듣고 김영대 위원장의 공식 회담문도 낭독되었다.

    노회찬 의원이 “당사 앞에 우리를 막아선 시위대를 뚫고 왔다. 우리도 쉽게 온 것은 아니라는 점을 헤아려야 한다”며 문성현 대표의 발언 도중 벌어진 돌발상황에 대한 어필을 하기는 했지만 회담 분위기는 오히려 풀려 나갔다. 금강산사업, 개성공단사업의 계속 의지와 6자회담 복귀와 순조로운 진행에 대한 바람까지 양쪽의 의견일치가 계속되었다.

       
      ▲ 김영남 위원장과 면담이 끝나고 기념사진을 찍은 대표단

    김영대 위원장은 회담 말미에는 농담까지 곁들였다.
    “민주노동당이 우리의 핵실험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는데, 그렇다면 우리도 (그 부분에 대해) 유감이다.”

    회담 말미엔 농담까지

    회담장에는 양쪽 실무단이 웃음을 참느라 쿡쿡거리는 소리에 이어 양측 대표단의 화기애애한 미소까지 번졌다. 회담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이날 회담을 두고 남쪽에서는 일부 보수언론이 “왜 웃었느냐?”며 시비성 기사가 올랐던 모양이지만, 현장에 기자들이 있었다면 “회담 파행 위기 넘겨”라는 기사가 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웃자고 회담하지 멱살 잡자고 회담하러 간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일부러 왜곡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영대 위원장이 화를 내며 돌발 발언을 한 것 말고는 회담과 방북일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회담장에서도 그랬고, 그날 오후 일정에서도 그런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김영대 위원장은 왜 화를 냈을까?

    “북핵실험에 강한 유감과 깊은 우려”를 표현한 민주노동당의 공식 입장에 북 최고위층이 불쾌해 했고, 출발성명에 대한 반발이 내부적으로 있었던 점을 고려해 볼 때 초청당사자인 조선사민당과 김영대 위원장로서는 몹시 곤란한 처지에 있었을 것이다.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당 대표의 발언 도중 화를 내고 반박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부담을 덜고자 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입장을 북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가감없이 전달했고, 북의 사민당 측은 민주노동당의 입장에 강한 반발을 보여줌으로써 내부적으로 충분한 메시지 전달이 가능했던 것이다.

    정치적으로 계산된 ‘외교적 결례’였다는 것이 내 짐작이다. 어쨌든, 김영대 위원장의 그 발언이 있고 몇 초의 침묵이 어찌나 길게 느껴졌던지 나는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그 때의 당혹감이 떠올라 마른 침을 삼키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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